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936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936화(936/951)
제936화. 대체 왜
“이안?”
이안이 계단을 내려가는 베릭의 뒷모습을 계속 주시하자, 한스는 의아해하며 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직원들의 시선도 있고, 계단 아래 고꾸라진 작당들은 어찌하면 되겠냐는 신호였다.
“…….”
하지만 이안은 여전히 계단 밑에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베릭이란 자는 이미 아래층 인파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그때였다.
“…우리도 내려가자.”
이안은 그리 중얼거리며 돌아보지도 않고 그대로 계단을 내려갔다. 한스는 그런 이안의 뒤를 허둥지둥 따라나섰다.
직원들은 이안이 사라진 계단 아래를 힐끔 쳐다보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계단에 널브러진 작당을 일으켜 세우거나 걱정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가라! 옆구리! 옆구리를 치라고, 멍청아!”
“아이고, 저 새끼 저거, 처맞고만 있네!”
“좋아! 그거지! 밀어붙여!”
“죽여라아아아! 와아아아!”
“더블! 더블이다! 으하하하!”
“야, 이놈아, 너 여기서 지면 내가 죽인다!”
아래층의 주는 투기장이었다. 곳곳에 크고 작은 격투장이 마련되어 있었고, 사람들이 빼곡하게 서서는 자신이 돈을 건 선수에게 응원과 욕설을 내질러 댔다.
위쪽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인파가 많았지만, 이안의 발걸음은 망설임이 없었다.
“이안!”
한스는 그런 이안을 바짝 쫓느라 숨을 헐떡였다. 흑정단원을 찾는 게 아니라 마치 무언가를 따라가는 것처럼 걸음이 재빠르다.
인상착의 비슷한 사람을 보기라도 한 걸까? 이안은 인파 속에서 나타났다 사라지는 붉은 머리칼을 계속 따라갔다.
“어이, 베릭! 오늘은 이길 수 있겠어?”
“당연하지!”
“병신, 맨날 말만 저러지. 크큭.”
“…넌 내가 얼굴 외웠다.”
“어이, 오늘은 제발 좀 이겨 보자고!”
“너 요즘 전적이 안 좋아!”
베릭이 도착한 곳은 철창을 대충 엮어 만든 간이 격투장이었다. 맨바닥에서 싸우는 사람도 있는데, 저 정도면 이곳에서 꽤 인지도가 있는 싸움꾼인가 보다. 이안은 팔짱을 낀 채로 베릭을 지켜봤다.
“자자, 베릭이 이긴다에 걸 사람 여기 돈 넣으시오!”
“반대로 데크가 이긴다는 여기!”
“번외입니다! 베릭이 몇 분 버틸지 거세요! 맞히면 세 배!”
사람들의 손이 화수분처럼 뻗어 나와 통에 돈을 담았다. 대부분 데크라는 자가 이길 거라고 예상하는 것 같았다. 이안과 한스 앞으로도 통이 지나갔지만, 그들은 참가하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이안, 흑정단원 안 찾아?”
한스가 이안의 곁에 바짝 붙은 채로 속삭였다. 이곳은 위층과 달리 밀집도가 높아 사람 찾기에 부적절했다. 차라리 위로 다시 올라가서 난간 틈으로 살펴보는 게 나을 것이다.
하지만 이안은 작게 고개를 저었다.
“잠깐 확인할 게 있어.”
“확인?”
한스는 이안이 베릭을 계속 쳐다보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아까 도움받은 것 때문에 그런가? 그런 것치고는 뭔가 표정이 진지한데.
“옛날에-”
“응?”
이안은 10여 년 전, 나움을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이상하게 감각이 곤두서고 머릿속 무언가가 신호를 보내는 것 같던 느낌. 그때 그 감각이 다시금 이안을 흔든 것이다.
“나움 형을 처음 봤을 때 있잖아.”
“에너제스 정문에서?”
“응. 그때랑 비슷해.”
“누구? 저 붉은 머리?”
한스가 놀라며 다시 베릭을 찬찬히 살폈다. 마법부에 별의별 사람이 다 있긴 하지만, 아무리 봐도 저 베릭이라는 자는 마법사 같지 않아 보였다.
‘형도 처음에는 마법사인 줄 몰랐었지…….’
형이 마법부에 들어가서 마법사들과 어울리는 걸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마법사들끼리만 나누는 신비로운 힘이 있노라고.
그들은 그걸 여섯 번째 감각이라 불렀으나 일반인인 한스 입장에선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나마 일반인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한다면, 뭐랄까. 인연이 섞인 느낌이라고 표현해야 하나? 아무튼-
“뭔가 느껴져?”
“근데 조금 달라.”
베릭은 물을 한 모금에 털어 넣고서 격투장에 올랐다. 상대, 데크라는 자는 베릭의 덩치 두세 배에 달하는 거구였다. 체격이 저리 차이 나는데 싸움을 붙이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될 정도. 하긴, 말이 안 되는 일이 일어나는 게 도박장이지.
“베릭! 이번에는 꼭 좀 이겨라! 내일 우리 엄마 생일이거든!”
“데크! 단숨에 해치워 버려!”
“베릭 새끼 뭉개 버려라! 크하하하!”
베릭의 동료로 보이는 사내가 그에게 무어라 귓속말로 속삭였다. 베릭은 고개를 작게 끄덕였고, 이내 몸을 달구기 위해 제자리에서 툭툭 뛰며 제 뺨을 두드렸다.
반면 데크는 마치 어린아이와 싸우는 것처럼 느긋했으며,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벌써부터 승리를 확신하는 것 같았다.
“자, 그럼 시작합니다!”
데엥-!
종소리가 울리자, 사람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베릭과 데크가 격투장을 빙빙 돌며 서로를 탐색했다. 먼저 몰아친 것은 베릭이었다.
타앗!
꽤 날렵한 몸놀림. 발차기가 상당히 날카롭고, 묵직했다. 저만한 체구에서 나올 만한 힘이 아니다.
하지만 데크는 두 팔로 가볍게 막아 냈고, 동시에 빈틈을 노려 베릭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올려 쳤다.
퍼억!
“커헉!”
두 선수가 연달아 주먹과 발길질을 주고받자, 사람들의 함성과 야유가 쏟아졌다. 서둘러 끝내라는 자와 끝까지 버텨 보라는 고함에 귀가 따가울 정도다.
비인간적인 광경에 한스가 인상을 찌푸렸으나, 이안은 무덤덤하게 두 사람의 격투를 지켜봤다.
“애새끼가 깐족깐족, 제대로 들어와라!”
“씨발, 누구보고 오라 가라-!”
퍼억! 퍽!
이안은 도박장에 오기 전에 흘려들었던 말의 주인이 베릭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맷집 하나는 좋다던 행인의 중얼거림, 사실이었다. 데크가 엄청난 힘으로 몰아붙였으나 베릭은 끄떡없이 덤벼들고 또 덤벼들었다.
‘승산은 없어 보이는데.’
이안은 경기 전 베릭에게 귓속말했던 사내를 쳐다봤다. 그는 베릭이 어떻게 싸우는지가 아니라 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애초부터 오래 버티는 데 베팅하고, 그걸로 돈을 버는 게 전략이었나 보다. 물론 이기면 좋겠지만, 그의 태도에서 승리에 대한 기대감은 보이지 않았다.
“빨리 좀 끝내라고!”
그때였다. 누군가 격투장 위로 단검을 내던졌다.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 심판조차도. 이안과 한스는 무기 제한이 없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는 살짝 눈이 커졌다.
투욱.
격투장 가운데로 떨어진 단검. 베릭과 데크가 단번에 잡으려 달려들자, 사방에서 무기가 날아들었다. 단검은 물론이고 도끼와 망치, 심지어는 포크까지 있다.
“그, 그래도 장검은 없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한스가 침을 꿀꺽 삼키며 중얼거렸다. 별다른 이유는 없을 것이다. 비싸니까. 이런 유흥거리에 내던지기에는 아까운 무기다.
“하아, 하아…….”
두 사람 다 결국 단검을 들고 대치했다. 시끄러운 소란 속에서도 베릭의 거친 호흡이 그대로 들려왔다. 피범벅이 된 베릭과 달리 데크는 입가에 상처가 조금 났을 뿐이다.
한편, 이안은 베릭이 검을 들고 선 자세를 보고서 눈썹을 까딱거렸다.
‘…뭐지?’
제멋대로 잡았지만, 균형이 확실히 잡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검 끝에서 두려움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승산이 없는 상황, 단칼에 죽을 수 있음에도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는 듯했다.
처음 본 이안조차 인정할 수밖에 없는 기백. 결과가 눈에 훤히 보이는 게임이건만, 어째서 도박꾼들이 베릭에게 환호하는지 알 것 같았다.
“난 말이지, 베릭. 네놈이 참 마음에 안 들었어.”
“그래? 통했네? 난 네 면상때기가 좆같았거든!”
촤악!
챙! 채앵!
검날이 짧다 보니 더 아슬아슬했다. 조금이라도 힘의 균형이 어긋나면 금방이라도 목덜미나 옆구리를 베어 낼 것 같은 아찔함이 애간장을 태웠다.
그때였다.
달깍.
시계를 보고 있던 베릭의 동료가 뚜껑을 덮으며 손가락을 탁탁 튕겼다. 겉으로 보기에는 베릭에게 정신 차리라고 기합을 넣어 주는 것 같았지만, 이안은 바로 알아챘다.
‘신호다.’
이제 어떻게 해서든 끝을 보라는.
이를 인지한 베릭이 이를 꽉 깨물었다. 노는 시간은 이제 끝났다. 그의 공격에 더욱 힘이 실렸고 재빨라졌다. 데크는 살짝 당황한 듯싶었지만, 사실 그 역시도 군중의 호응을 돋구기 위해 재미를 봤을 뿐이다.
채앵! 챙!
콰아아앙!
검과 검이 부러질 듯 맞물렸고, 힘이 풀리는 순간 서로에게 주먹이 날아들었다. 핏물이 튀어 오를 때마다 열기가 더욱 거세졌다.
얼굴을 제대로 얻어맞은 베릭의 고개가 뒤로 꺾여 움직임이 없어지자, 사람들이 찰나 숨죽였다. 쓰러지면 이대로 게임 끝이다.
“안 돼, 안 돼, 안 돼!”
“베릭! 마! 정신 차려!”
베릭의 상체가 뒤로 기우뚱거렸지만, 그는 다시금 중심을 잡고 데크에게 달려들었다.
“으아아아압!”
이성이 끊어진, 본능만이 느껴지는 기합이다. 데크는 비웃음을 지으며 그의 머리채를 잡아챘고, 몇 번이나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으며 괴성을 내질렀다.
퍼억! 퍽!
“아이, 텄네. 텄어.”
“베릭, 정신 차려!”
“끝내자, 이 정도면 오래 끌었다!”
데크는 겨우 숨만 붙은 베릭의 머리채를 질질 끌며 가까이 있는 단검을 집어 들었다. 한스는 못 보겠다며 눈을 질끈 감았고, 이안은 두 눈을 떼지 않은 채 팔짱을 꼈다.
“오늘의 승자는 누구?!”
“데크! 데크! 데크!”
푸욱!
데크의 단검이 베릭의 옆구리를 거칠게 찔렀다. 안 그래도 피와 땀으로 엉망이던 격투장 바닥에 새빨간 핏물이 주르륵 흘렀다. 베릭의 머리칼보다 더욱 짙고 끈적한 핏물이었다.
투욱.
“와아아아아!”
승자가 정해졌다. 데크는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격투장을 떠났고, 도박꾼들은 베팅한 돈을 받기 위해 직원에게 달려갔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한쪽으로 몰리자, 한스가 이안을 꽉 붙잡았다. 흘러가는 인파 속에서 이안은 우두커니 서서는 쓰러진 베릭을 주시했다.
“어이, 베릭.”
베릭의 동료로 보이던 사내가 격투장 위로 올라가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는 금화 두 닢과 은화 다섯 닢을 바닥에 던지며 인사했다.
“고생했다. 5분 이상 버텼으니까 두 배.”
“…….”
“이번 주가 누이 생일이라며? 돈 더 넣었으니까 고기나 먹어라.”
“…씨발아, 칼 맞았는데 돈 더 줘.”
“하, 거참.”
사내는 피식 웃더니 알겠다며 은화 두어 개를 더 던지고서 격투장을 내려갔다.
베릭은 핏물이 쿨럭거리며 터지는 옆구리를 붙잡은 채 몸을 말았다. 그 고통 속에서도 그의 반대쪽 손은 더듬거리며 동전을 집고 있었다. 아아, 오늘은 재수가 없네. 원래 이 정도까지는 아닌데.
“하 씨…….”
정신이 혼미해졌다. 큰일이다. 도박장 한가운데서 정신을 잃는 것만큼 최악인 게 없다. 병원으로 데려다줄 인간은커녕, 오히려 주머니만 털릴 텐데.
베릭이 정신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차.
스윽.
고급진 신발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의 위로 지는 그림자도. 환한 조명 탓에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으나 뭔가 익숙한 느낌이다.
“베릭이라고 했나?”
단조로운 것 같으면서도 다정한 목소리.
베릭이 미간을 찌푸렸다.
“뭐, 씨, 저리 꺼져…….”
돈 가져가면 죽는다. 하 씨, 데크 저 새끼, 진짜 이길 만했는데. 나중에 또 붙으면 그때는 두 방, 아니 배때기에 아예 구멍을 내 버릴 거다.
베릭이 혼자 중얼거리는 모습을 본 이안은 문득 바르사베의 말을 떠올렸다.
“마법사와 마검사의 만남은 가끔 운명적으로 다가온다 그랬어.”
마법사와 비슷하지만, 분명히 다른 결의 힘.
“마검사는 애석하게도 마법사가 기(氣)를 터 줘야 하거든.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지 않는 이상 계속 잠재되어 있어. 그래서 예전에는 자신이 마검사인 줄도 모르고 죽는 사람이 많았대.”
이안은 조심스럽게 한쪽 무릎을 꿇고서 베릭의 턱을 붙잡았다. 숨조차 제대로 못 쉬는 것 같은데, 이대로 두면 죽을지도 모르겠다.
“이봐.”
“…꺼지라고.”
지이잉. 지잉.
이안은 마력을 흘려보냈다. 치유 마법이면서 동시에 몸 안에 마력이 웅크리고 있다면 툭, 하고 건드려 터트릴 힘이다. 이안이 고개를 푹 숙여 로브로 눈을 완전히 가렸다.
“…….”
흘러간다. 아주 자연스럽게. 마치 바람이 뻥 뚫린 대지를 휩쓸 듯이 이안의 거대한 마력을 순식간에 받아들인다.
베릭은 완전히 정신을 잃었고, 이안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쯧.”
마검사가 되어 황궁에서 영광스럽게 일해야 할 인재가…….
“…대체 왜 여기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