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937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937화(937/951)
제937화. 마법사의 단추
사아악.
이안은 베릭의 옆구리 상처가 아물고 있음을 알아챘다.
이상했다. 치유 마법을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예상을 벗어나는 감응 속도다. 이안이 의아하게 생각하며 그의 몸을 가볍게 살피려는 순간이었다.
“이안!”
한스가 멀리서 그를 불렀다. 그는 시끄러운 인파에 휩쓸리는 척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었는데, 그의 손끝은 한 남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코 옆에 점, 쭉 찢어진 눈, 그리고 치아는…….
‘안 보이네.’
하지만 궐련을 물고 있다. 따라붙기만 한다면 바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안은 몸을 일으켜 정신 잃은 베릭을 내려다봤다. 동료와의 대화를 미루어 짐작했을 때, 인근에 살면서 여기서 밥벌이하는 것 같았다.
‘이름이 베릭이라고 했지.’
언제고 찾으려면 다시 찾을 수 있다. 지금은 흑정단원 쫓는 것에 집중하고, 이자를 황궁으로 들이는 건 나중에 처리하는 게 맞을 터.
이안은 베릭이 꽉 쥐고 있는 금화 하나를 빼고, 자신의 단추 하나를 뜯어 넣었다.
‘성격이 보통은 아니군.’
기절한 와중에도 동전을 꽉 쥐고 있다.
이안은 돌아서려다가, 다시 베릭에게 다가가 흩어진 것들을 챙겨 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이대로 바닥에 떨구어 두면 깨어나기 전에 다른 이들이 가져갈 것이다. 칼에 베여 가며 번 돈인데, 잃어버리면 아깝지 않겠는가? 뭐, 이것도 황궁에 들어오면 추억으로 여겨질 한순간이겠지만.
“이안!”
그때, 한스가 발을 동동 굴리며 다시 이안을 불렀다. 놓치기 전에 얼른 쫓자는 게다. 이내 그가 먼저 인파를 헤치며 용의자를 쫓았고, 이안도 격투장을 내려가 사람들 틈으로 달려들었다.
퍼억!
“어이쿠, 조심해!”
“이런, 씨.”
부딪힌 이들이 한두 마디씩 욕설을 지껄여 댔지만, 이안은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내달렸다. 흑정단원의 인상착의는 분명히 흔치 않은 특징이었다. 아까 한 번 물 먹었지만, 확률상 이번에는 아닐 것 같다.
타앗!
그들은 도박판을 벗어나 좁고 긴 복도로 들어섰다. 궐련 냄새를 비롯한 불쾌하고 구역질 나는 냄새가 가득한 곳이다. 밖으로 나가는 통로인지, 아니면 관계자들의 뒷방인지는 모르겠다.
사람이 적어지자, 용의자는 뒤따라 붙은 한스의 발소리를 알아챘다.
“응?”
그는 고개를 돌려 한스를 쳐다봤다. 궐련을 물고 있긴 한데,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가까스로 걸음을 멈춘 한스가 움찔거렸다.
“뭐야?”
한스는 대답 대신 그의 입 부근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궐련의 불빛에 희미하게 보일락 말락, 아, 잘 보이지 않았다.
“뭐냐고 묻잖아.”
무엇 때문에 자신을 쫓아온 것인지, 사내는 사납게 되물으며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이어서 그의 손에 딸려 나온 것은 작은 단검.
아니, 사람이 좀 따라붙었다고 바로 칼을 꺼내?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인간이 아니다. 현상금이라도 걸린 놈인가?
“저, 저기 잠시 진정하고,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사내는 대답 하지 않고 능숙한 솜씨로 칼을 휘리릭 돌리며 한스에게 한 발짝씩 가까이 다가왔다.
“확인? 내가 먼저 해야겠는데?”
궐련 끄트머리가 유독 빛났다. 호흡을 크게 하여 연기를 힘껏 들이마시고 있다. 그는 곧이어 궐련을 바닥에 퉤 뱉어 버렸고-
후욱, 한스의 얼굴에다 연기를 뿜고서 달려들었다.
타앗!
“욱!”
얼굴을 덮친 궐련 냄새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독하고 역겨웠다. 한스가 당황해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순간이었다.
사아악!
사내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칼끝이 허공에서 멈춘 것이다. 벽 틈에 꽉 끼인 것처럼.
조금씩 걷히는 연기. 로브를 뒤집어쓴 소년이 그의 검 끝을 손끝으로 막고 있었다.
“……!”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어떻게 검을 손가락으로? 사내가 놀라서 입을 살짝 벌리자, 이안이 짜증스럽게 중얼거렸다.
“이곳에는 툭 하면 검부터 휘두르는 놈들이 많군.”
“너, 너, 누구야.”
그 순간,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금안. 이안이 고개를 서서히 들자, 맹수와 같은 금빛 눈동자가 드러났다.
사내는 신경이 쭈뼛 솟았다. 온몸을 꼼짝할 수 없었다. 비틀고 발악해도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한스, 괜찮아?”
“어? 어어. 좀 울렁거리는 거 말고는.”
“코 옆에 점, 쭉 찢어진 눈…….”
이안의 시선이 천천히 그의 입술 쪽으로 다가갔다. 그는 손끝으로 살짝 윗입술을 들어 올렸다.
“앞니가 없네?”
찾았다.
이안이 희미하게 웃자, 사내는 알 수 없는 공포감을 느꼈다. 곧이어 이안은 주먹을 꽉 쥐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스가 눈치 좋게 뒤쪽을 살펴 오는 자가 없는지 확인했다.
“너, 흑정단원이지?”
“……!”
사내의 눈이 커졌다. 흑정단을 쫓고 있는 세력이 아직도 있단 말인가? 어디지? 어디서 온 거지? 마법사인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황궁?’
황궁일 가능성이 크다!
사내의 머릿속이 어지러워진 만큼 눈동자도 어지럽게 흔들렸다. 이안은 주먹에 마력을 감싸고서 중얼거렸다.
“생각할 것이 아니라-”
지이잉! 지잉!
“대답을 해야지.”
분명히 입은 결박 안 했는데?
사내가 더듬거리며 입술을 떨었다.
“아니, 아, 아니……!”
아니라고, 자신은 흑정단원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래?”
이안은 눈썹을 까딱거리며 그의 얼굴에 주먹을 들이밀었다.
휘익!
코앞에서 멈춘 주먹. 사내가 벌벌 떨며 한쪽 눈을 슬쩍 뜨자. 이안은 희미하게 웃으며 주먹을 쫙 펼쳤다.
“걱정 마. 안 죽어.”
적어도 여기서는.
사내의 눈동자에 마력이 비쳤다. 손바닥 틈으로 새어 나오는 날카로운 빛줄기.
파지지직! 파직!
순식간이었다.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온몸이 굳고, 덜덜 떨리더니, 그대로 고꾸라진 것은.
이안은 기절한 사내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확인하더니, 한스를 돌아봤다.
“운이 좋았네. 다시 안 와도 되겠어.”
“뭐, 네가 찾는 그놈이라면.”
“맞을 것 같아. 느낌이 그렇거든.”
“하아, 근데 아까 격투장 위에는 왜 올라갔어? 설마 돈 가져온 건 아니지?”
긴장이 풀린 한스가 벽에 기대어 스르륵 주저앉으며 농담했다. 당연히 아니겠지. 이안이 왜-
“맞아.”
짜잔. 이안은 금화 하나를 쏙 보여 주며 웃었다.
“엥?”
“자, 그럼 옮겨 볼까? 한스. 위로 올라가서 사람 좀 불러올래?”
“어, 어어.”
이안이 너무 아무렇지 않게 말하자, 도리어 한스가 당황했다. 아무리 전문 싸움꾼이라지만 그 난리를 치면서 힘들게 번 돈이다. 근데 그걸 훔쳐 와? 너무한 거 아니야?
…아니지. 이안이라면 다른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거겠지. 아니, 그래도 대전료 훔친 건 좀…….
타앗.
한스는 연신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서둘러 달려갔다. 도박장에는 돈만 주면 손 보탤 인간이 한둘이 아니다. 게다가 대놓고 누군가를 질질 끌고 나가도 이상하게 볼 분위기도 아니고.
한편 이안은 한스가 올 때까지 기다리며 바닥에 쪼그리고 앉았다.
스윽.
그러고는 베릭에게서 가져온 금화를 살짝 기울였다. 어둑한 복도. 불빛이라고는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촛불들이 전부였지만, 금화는 그것만으로도 반짝였다.
그런 금화 한가운데, 검붉은 얼룩.
“…….”
베릭의 피였다.
* * *
베릭의 코가 움찔거렸다. 피부로 느껴지는 햇살. 게다가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고기조림 냄새. 푹 자고 일어난 것처럼 기분이 좋다…….
“음냐…….”
베릭은 베개에 얼굴을 파묻으며 잠투정을 부리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벌떡 일어났다.
“으아아아악!”
괴기한 괴성과 함께.
놀란 그의 누나가 국자를 든 채 달려왔고, 동생들이 문틈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형아, 일어났어?”
“뭐, 뭐지?”
“늦잠쟁이.”
“베릭, 일어날 거면 제발 조용히 좀 일어나. 놀랐잖아.”
베릭은 침대 위에 선 채로 가족들의 투정을 빤히 쳐다봤다.
꿈인가? 격투장에서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 살론, 그 새끼 인간미로 여기까지 얌전히 옮겨 줬을 리는 없고. 베릭은 반사적으로 제 옆구리를 만졌다.
“어?!”
상처가 없다. 분명히 데크 그 시발롬이 마지막 퍼포먼스랍시고 칼로 그었는데? 아문 흔적만이 있을 뿐, 상처는 사라지고 없었다.
“베릭 형, 뭐 해?”
“바보 대장 일어났다-!”
동생들이 왁자지껄 웃으며 달려들자, 베릭은 그대로 다시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봤다.
“누나.”
“응?”
문밖으로 주방이 바로 보이는 구조. 베릭의 누나인 헬나가 큰 솥에 끓인 고기조림을 맛보며 대답했다.
“나 얼마 동안 잔 거야?”
한 보름 누워 있었나? 헬나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트리며 베릭을 돌아봤다.
“평소보다 좀 더 잤지. 한 열 시간?”
“어제 들어왔다고? 내가?”
“어.”
“누가 데리고 왔는데?”
“몰라. 처음 보는 마부던데? 내가 너 술 작작 먹으라고 그랬지?”
마부는 베릭이 취해서 몸을 가누지 못한다고 덧붙이고선 침대에 눕히는 것까지 도와줬다. 돈을 내겠다고 하니 이미 받았다면서 가 버렸지.
베릭은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지 연신 눈만 끔뻑거렸다.
“돈을 받았다고?”
아. 맞다. 돈!
베릭이 화들짝 놀라 자신이 입었던 옷을 찾았다. 마부 이 개새끼, 혹시 그 돈을 털어 갔나?
“베릭, 진정해. 여기 있어.”
헬나가 주머니를 짤랑거리자 베릭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누나에게 다가갔고, 동생들은 뽀로로 다시 흩어져 노는 것에 집중했다.
“격투장, 이제 안 나가면 안 돼?”
헬나가 나지막이 물었으나, 베릭은 식탁에 앉아 주머니 속 돈을 쏟아 냈다.
“가끔만 나가잖아.”
“가끔만 나가도 위험하니까.”
“괜찮아. 고기 먹고 살려면 그만한 일도 없어.”
“베릭.”
헬나가 한숨과 함께 뒤를 돌았다. 그러나 굉장히 황당한 표정의 베릭과 마주하고는 멈칫거렸다.
“왜 그래? 무슨 문제 있어?”
“이런 개 호로 시불러어어얼!”
베릭이 주머니를 꽉 쥔 채 포효했다. 동생들은 또 시작이라며 꺄르르 웃으며 소파를 두고 술래잡기를 해 댔다. 헬나가 국자를 내려놓고서 가까이 다가왔다.
“무슨 일인데?”
“…하아.”
금화 하나가 없다. 대신 희한한 금빛 단추 하나가 들어 있을 뿐.
베릭이 머리를 쥐어짜며 짜증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누구지? 마부? 아니면 격투장? 잠깐, 격투장에서 마지막에 누군가를 봤던 것 같은데.
“어머.”
헬나는 단추를 집어 자세히 살피더니 작게 감탄했다. 단추에 새겨진 문양을 알아챈 것이다.
“베릭, 너 마법사 만났니?”
“어?”
“이거, 마법부 문양이잖아.”
“이게 마법사 거라고?”
“엄청 비싸다는데. 하나에 금화 한 개는 훌쩍 넘는데. 설마, 훔쳐 온 건 아니지?”
“누나.”
“미안. 그냥 해 본 말이야.”
우리 베릭, 돈 버는 게 고되도 남의 것을 멋대로 가져오지는 않지. 헬나가 베릭의 머리를 슥슥 문지르며 다시 요리에 집중했다.
베릭은 단추를 계속 바라보다 번뜩이는 기억에 벌떡 일어났다.
“맞다.”
마지막에 본 그놈.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었지만 분명히 기억난다. 백금발에 벽안,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놈이었지.
‘마법사였나?’
그러면 뭔가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하룻밤 사이에 사라진 자신의 상처도, 이 단추도.
‘마법부로 오라는 뜻이지?’
베릭은 웃옷을 챙기며 헬나에게 전했다.
“이걸로 일단 이번 달 생활비 하고, 애들 학교 등록해. 아, 단추는 내가 가져갈게. 시발. 이거 원래 돈이었는데.”
“응? 지금 나가게?”
네가 좋아하는 고기조림 다 됐는데? 헬나가 국자로 냄비를 팅팅 두드리자, 동생들이 우르르 달려와 식탁 앞에 앉았다.
옷을 입으려던 베릭도 멈칫거리며 침을 꼴깍거렸다.
“…그럼 한 그릇만 후딱 먹고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