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942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942화(942/951)
제942화. 손님맞이
“이상하다.”
이상하다는 말에 이안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요즘 들어 베릭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는지라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자크 백작은 베릭이 많이 먹는다고 의아해했지만, 이안은 그것을 포함하여 그에게 분명 다른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 여겼다. 그게 뭔지는 감조차 안 오니 조금 답답할 따름이지만.
“뭐가?”
마법사가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 이상하다고 중얼거린 마법사는 의자에 몸을 푹 눕히고서는 천장을 올려다봤다.
“제국방위부로 마물 건 넘겼으니까 우리 일 좀 널널해지는 게 정상 아닌가?”
“마법부에서 정상을 찾네. 비정상적인 새끼.”
“왜 바쁘지? 대체 왜?”
“저번 주에 정시 퇴근 했잖아. 그럼 된 거지.”
“넌, 이 부조리한 업무처리 방식에 찌들어 있어.”
“그 말, 아레나 장관님께 가서 해 보시지.”
음. 여느 때와 다름없는 마법사들의 잡설이었구나.
이안은 다시 고개를 숙이고 보고서 작성에 열을 올렸다. 그러다 문득, 다시금 들린 말에 집중이 깨지고 말았다.
“그나마 지금은 행정부에 비하면 우리가 낫다. 제국관료시험 때문에 그쪽은 한 달 동안 집에 못 가게 생겼어.”
“참나, 고작 한 달? 우리는 1년 내내! 어?! 우리 엄마 아빠는 내 얼굴도 잊었더라! 지나가는데 못 알아봐서 내가 쫓아갔어.”
“그건 말이지, 네 꼬락서니가 너무 더러워서 그래.”
제국관료시험. 몇 년에 한 번씩 시행되는 제국 최고의 행정 시험이었다.
관료가 되기 위한 자들은 모두 바리엘 중앙으로 모여 한 달 내내 시험에 매진한다. 과목은 열 가지인데, 답안 제출에 각 사흘씩 주는 터라, 체력적, 정신적 소모가 엄청났다. 거리에 나가 보면 죽은 자처럼 비척대며 걸어가는 자를 쉬이 볼 수 있는데, 열에 아홉은 시험에 응시하는 자다.
“아 참. 이번에 나움, 네 동생도 시험 친다며?”
“아, 네.”
가만히 듣고 있던 나움이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저택 사용인들이 잘 뒷바라지해 주겠지만, 직접 얼굴 보고 격려해 주고 싶은데 시간이 안 맞아서 큰일이었다.
“합격하면 같이 황궁 밥 먹겠네. 아우, 보기 좋겠다.”
“되면 말이죠. 열심히 하는 것 같았으니 좋은 결과 있을 겁니다.”
“그래. 동생 머리 똑똑하기로 유명하잖아.”
다들 격려의 말을 던져 주던 때였다. 행정부 직원이 비척비척 힘겨운 발걸음으로 사무실에 들어섰다. 와, 저거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인데?
“다른 사람이 보기에 마법부가 저랬구나.”
“무슨 말씀입니까?”
“아니요. 별건 아니고, 곧 죽으실 것 같다고요.”
“예, 오늘도 못 자면 진짜 죽을 것 같긴 합니다. 하아, 그러니까 빨리 도장 찍어 주세요.”
“예예. 시체 치우는 건 질색이라.”
마법사들이 행정부 직원에게서 서류를 받아 서둘러 확인했다. 직원은 의자에 대충 걸터앉으며 피곤하다는 듯 눈을 감았다. 마법사가 도장을 쾅쾅 찍으며 물었다.
“두각 보이는 인재는 있습니까?”
“있죠. 제국 전체에서 몰려드는데. 근데 별 이상한 놈도 많습니다. 시험지 받자마자 10분만에 휘갈겨 쓰더니 자리 뜨는 놈이 있더라고요.”
“그래요? 시험 재미로 치는 놈인가.”
“아직 채점은 안 했는데, 항상 1등으로 나가서 행정부에 소문이 자자합니다. 진짜 천재일지, 아니면 저기, 어디 가문의 심심한 도련님의 중앙 나들이일지. 이름이… 한스라고 했던가?”
그의 마지막 말에 나움과 이안을 비롯하여 마법부 전체가 멈칫거렸다. 나움의 동생이 한스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 하나, 행정부 직원은 전혀 알지 못하여 연신 꿍얼댔다.
“뭘 알고 쓰는 건지 막힘도 없어요. 그래서 단단히 벼르고 있습니다. 헛소리만 늘어놓은 거면 다음번 시험에 건의하려고요. 그런 똥구렁이들은 걸러 버리자고.”
“아, 음. 예, 뭐, 그런 사람들이 많으면 인력 낭비긴 하죠. 근데 크흠.”
마법사는 도장을 쾅쾅 찍으며 나움의 눈치를 봤다. 한스가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악명 높은 제국관료시험을 그렇게 쉽게 치는 게 말이나 될까?
그러나 칸막이 때문에 나움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다들 은근슬쩍 걱정하며 침묵을 지켰고, 의아한 분위기에 행정부 직원이 고개를 들었다.
“왜들 그러세요?”
“아닙니다. 그, 입 다물고 쉬고 계세요.”
“그래도 우리는 이거 끝나면 좀 쉴 만해질 건데, 그다음은 마법부 차례네요. 크크.”
제국합동모병을 뜻하는 것이었다.
황궁친위대와 제국방위부의 주관으로 이루어지는 선발 시험이었지만, 혹시 모를 위험 방지를 위하여 시험장 곳곳에 마법사들의 보호막이 쳐지게 된다. 게다가 혹여 마검사의 자질을 가진 자는 없는지, 그 기운을 알아채기 위해 마법사들 역시 적잖이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음울한 미래를 떠올리며, 마법사가 마지막 도장을 찍었다.
“얼렁 가서 자빠지십시오.”
“덕담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드르륵!
행정부 직원이 나가자마자, 이안이 의자를 뒤로 끌어 나움 쪽을 쳐다보며 축하했다.
“나움 형, 축하해요. 한스가 1등이겠네요.”
고개를 살짝 든 나움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기쁨과 흥분, 기대와 뿌듯함, 그리고 나아가서는 대견함과 애틋함까지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어, 아니. 모를 일이지.”
말로는 저렇게 예의를 차려도, 나움은 알고 있다. 한스는 시간 죽이기 위해 설렁설렁 놀러 나온 지방 도련님이 아니다. 다 아는 문제인 터라 단번에 답안지를 작성한 것이고, 이에는 틀림이 없을 거다.
나움을 살피던 마법사들도 긍정적인 소식이라는 걸 인지하고서 나움 쪽으로 와 어깨를 두드렸다.
“와! 미리 축하해, 나움. 보통 제국관료시험 수석은 수상 자리까지 올라간다던데. 이거 보통이 아니구먼?”
“지금부터 잘해 주자.”
“글렀어…. 지난 10년 동안 우리가 한 짓을 생각해…….”
“언제고 한스가 수상이 된다고 하면 최연소 아닐까?”
지금 수상은 오랜 시간 황제 곁을 지킨 자였다. 노련하여 황제를 대신해 국정을 잘 이끌고 있지만, 다들 알고 있지 않은가? 황제의 목숨은 바람 앞의 촛불이요, 지금까지 꺼지지 않은 것은 신께서 바리엘을 보우하사 내려주신 작은 축복 덕이라는 걸.
‘언제 돌아가셔도 이상할 게 없긴 하지.’
마법사들은 속으로 생각했다. 수상이 바뀌려면, 먼저 황제가 바뀌어야 한다고. 그들은 이안을 힐끔 쳐다보았다. 나움과 잡담을 나누던 이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보고서에 집중하고 있었다.
황제의 자리가 비면, 그다음은?
‘이안일 것 같은데.’
황족의 방계 출신 귀족에 천재 마법사. 자격은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그리고 이안이 황제 자리에 오르면 당연히 수상 자리는 한스의 몫이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정치적인 선택으로도 최측근을 옆에 둘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법사들은 보고서를 넘기며 한 시대가 서서히 지나가고, 새 시대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그럼 로만드로 님은 결혼식 전까지 비비안나 님 얼굴 거의 못 보겠네.”
마법사의 푸념엔 일리가 있었다. 지금은 행정부가 바쁘고, 다음 달은 마법부가 바쁠 것이니까 말이다. 아마 그의 결혼식은 축제의 장, 그 자체가 되지 않을까. 한 해 동안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한 마법사들이 술과 맛있는 음식을 퍼먹으며 하루 종일 춤을 출 것이다.
“로만드로, 그래서 요즘 매일 밤 우십니다.”
이안이 피식 웃으며 덧붙이자, 마법사들이 흥미롭게 눈을 반짝이며 다가왔다.
“울어? 정말?”
“제 방과 붙어 있거든요. 밤만 되면 훌쩍이는 소리가 들립니다.”
“야, 이 아저씨, 귀여워서 어떡해?”
“맨날 부어 있어서 밤에 우는지도 몰랐네.”
이안은 희미하게 웃으며 시계를 쳐다봤다. 아직 퇴근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으나 오늘은 일찍 들어갈 생각이었다.
“어? 오늘 무슨 일 있어?”
“아, 자크 백작저에서 손님을 맞이하기로 해서요. 저녁 여섯 시쯤 포탈을 열 예정입니다. 장관님께 미리 허락받았는데, 혹시 몰라서 다시 공유해 드립니다.”
“포탈? 아아아, 대사막?”
마법사들은 기억난다며 손가락을 딱딱 쳐 댔다. 이안이 어릴 때 도움받았던 의사라고 했던가? 이름은 아마 필리아. 천려족 전사와 혼인하여 대사막으로 건너가 최근에는 아이까지 낳았다고 들었다.
“로만드로 님 결혼식 때문이구나?”
“예, 그것도 그렇고-”
이안은 웃옷을 걸쳐 입으며 ‘엔로우’ 가문에서 온 서신을 떠올렸다.
-친애하는 이안 하델 경. 보내신 서신은 천려의 네르사른과 필리아 부부에게 잘 전달했습니다. 두 분께서는 갓난아이를 위해 포탈을 열어 주시길 바라고 있습니다.
한데, 염치 불구하게도 이들의 오랜 연을 통하여 부탁을 하나 하고자 합니다. 제 아들, 차남인 시아오시 엔로우가 곧 있을 제국합동모병에 지원하고자 합니다. 포탈을 함께 이용하고, 부부와 함께 중앙에서 적응할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사례는 꼭 하겠습니다.
허락하신다면 아래 해당 시간과 장소에 포탈을 열어 주시길 청합니다. 문제가 있다면 바로 답신 부탁드립니다.
-엔로우 자작 보냄.
엔로우에서 사람이 온다. 10년 전, 하이만 은행에서 처음 들었던 엔로우 가문의 일원이 중앙으로 오는 귀한 기회였다.
이안은 마법사들에게 꾸벅 인사를 남기고 저택으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궁금했는데 잘 됐어.’
어째서 엔로우 가문이 자신 앞으로 금화를 남겨 놨었는지, 영지 매각 대금이라 하면 대체 어떤 영지를 말하는 건지 말이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지금껏 만나서 얘기할 기회가 없었는데.’
처음엔 부부가 바리엘 각지를 여행하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연락할 기회가 없었다. 후엔 마물 전쟁에 나서느라 여유가 없었고.
특히 가장 궁금했던 사실, ‘금화 1,000닢’에 관해 의논할 사항이 남아 있었다. 종이 쪼가리 하나로 주고받을 만한 대화가 아니었기에, 언제고 자신이 내려가든 그쪽이 올라오든 직접 마주 보고 의문을 풀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이안 님?”
“되었네.”
마부가 마차 문을 열어 주려고 하자, 이안이 거절하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촤아악!
단숨에 하늘 저 너머로 사라지는 이안. 어지간하면 마차를 타고 움직이시는데, 어지간히 바쁜 일이 있으신가 보다 싶었다.
아니, 근데 살짝 본 표정으로는 상당히 설레 보이는 것 같던데? 기분 탓인가? 마부는 코를 훌쩍거리며 투레질해 대는 말의 이마를 슥슥 문질렀다.
타앗!
이안은 순식간에 자크 저택에 도착했다. 정신없이 수련하던 베릭과 바르사베가 마력의 기척을 느끼고 잠시 멈칫거렸다.
“이안?”
“이안아!”
두 사람이 웬일로 하늘에서 뚝 떨어졌냐는 듯 쳐다봤다. 잠깐의 틈.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바르사베가 베릭의 머리통을 가차 없이 연타했다.
퍼억! 퍼억! 퍽!
“얽!”
이안에게 인사하려던 베릭의 턱이 그대로 돌아갔다. 비겁하다고 외치고 싶었지만, 이어지는 바르사베의 주먹 탓에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누가 싸움 중에 한눈팔래?”
“지도 팔았으면서!”
“지? 지이이-?!”
퍼억! 퍽! 콰아앙!
이안은 치고받는 두 사람을 뒤로하고 웃옷을 가볍게 벗었다. 무술 선생은 이제 베릭과 바르사베의 소란에 충분히 익숙해졌는지, 의연하게 덧붙였다.
“베릭, 주먹을 더 세게 쥐어라. 바르사베! 방금 건 피할 수 있었지? 아니, 거기서 원투, 원…….”
짤깍.
회중시계로 시간을 확인한 이안이 드넓은 뜰에 손바닥을 올렸다. 그러자 순식간에 피어나는 거대한 황금빛 원. 그와 함께 허공에 구름처럼 퍼지는 검은색 포탈.
퍼억! 퍼억!
“……!”
“……!”
뜻밖의 상황에 놀란 베릭과 바르사베가 서로의 얼굴을 동시에 후려치며 뒤로 자빠졌다. 선생도 놀라서 멈칫 일어나자, 이안은 신경 쓰지 말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각자 할 일 하십시오. 손님맞이를 하려는 것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