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943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943화(943/951)
제943화. 모두 한자리에
이안은 초조하게 포탈을 올려다봤다. 그사이 주먹질을 멈춘 베릭과 바르사베도 이안의 곁으로 다가와 똑같이 고개를 들었다.
“왜 안 나오지?”
“뭔데. 저게 뭔데.”
“아하, 바보는 모르는구나?”
포탈을 처음 본 베릭인지라 저것이 무엇인지 감조차 안 잡히는 듯 보였다. 바르사베는 비웃음을 잔뜩 장전하고서는 다시금 베릭을 놀려 댔고, 두 사람이 투닥대며 2차전으로 넘어가려는 때였다.
“왔다.”
이안이 작게 중얼거렸다. 포탈에서 아주 살짝 보인 말 주둥아리. 이내 고삐와 연결된 마부석이 보였고, 뒤로 마차가 줄줄이 딸려 나왔다.
이안은 손을 들어 계속해서 마법을 시전했다.
지이잉! 지잉!
허공을 가르는 마차들이 빙글빙글 원을 돌며 안정적으로 하강했다. 말들은 놀라서 반쯤 거품을 문 것 같지만, 마법의 힘으로 단단히 고정되어 꼼짝하지 못했다.
필리아와 네르사른, 그리고 아기. 세 사람만 하여도 짐이 한가득일 터인데, 엔로우 가문의 차남까지 함께하여 마차가 끝도 없다.
“줄줄이 소시지.”
“먹는 걸로만 보이지.”
바르사베는 계속 투닥거릴 수 없는 분위기라는 걸 알아채고 먼지를 털며 수건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베릭은 신기한 광경에 입을 떡 벌리고서는 여전히 바보처럼 구경하는 눈치다.
타앗!
히이잉!
첫 번째 마차가 착지하자, 흥분한 말이 앞발을 들어 올렸다. 이안이 가서 진정시키려는 찰나-
“워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네르사른이었다. 못 본 사이 피부가 더 짙어지고 몸집도 커진 것 같았다. 말을 진정시킨 네르사른이 이안에게 인사했다.
“이안 경.”
“오랜만입니다.”
“데모샤.”
“데모샤.”
꽈악.
두 사람은 악수한 뒤 가볍게 포옹했다. 조금 놀랍게도, 네르사른에게서 희미하게 우유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이안은 마차 쪽으로 고개 돌렸고, 이내 갓난아기를 안은 필리아와 눈이 마주쳤다.
“필리아!”
“이안!”
타앗!
얼마 동안이나 못 본 거람, 우리. 이안이 달려가자, 필리아 역시 한쪽 손으로 이안을 꽉 안아주었다. 그리움에 사무친 눈빛과 목소리가 그간의 시간을 말해 주는 듯싶었다.
“세상에… 이안, 키가 엄청 컸구나.”
“필리아는 더 아름다워졌어.”
“말은요.”
“정말. 나 혼자 자란 것 같아.”
“장성하신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정말 훌륭하게 자라셨네요. 멋있으셔요.”
이안과 필리아가 이마를 가볍게 맞대며 웃었다. 그러자 그 잠깐을 못 참은 아기가 칭얼대며 제 어미에게 치근거렸다. 이안은 눈이 조금 커지더니,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지으며 물었다.
“동생이지요?”
자신의 동생이냐는 물음. 피는 섞이지 않았어도 필리아와 네르사른을 가족으로 여기기에 나올 수 있는 자연스러운 물음이었다.
필리아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동생이지요. 이름은 얼마 전에 정해졌답니다. 로엘.”
“로엘…….”
이안은 꼼지락거리는 작은 손가락을 툭, 건드렸다. 그러자 아기가 이안의 손가락을 있는 힘껏 붙잡는 것 아닌가. 여리면서도 뿌리칠 수 없을 만큼 강한 힘이다.
‘아니.’
이안은 고개를 살짝 저으며 정정했다. 뿌리칠 수 없는 게 아니라, 싫은 거다.
“이런, 로엘. 인사가 과해.”
필리아가 난감해하며 아기를 달랬으나, 로엘은 이안을 똑바로 쳐다보며 손가락을 놓지 않았다.
필리아를 닮은 녹안. 다만, 정원의 따스함이 느껴지는 필리아와 달리, 아이의 눈동자에서는 자연의 싱그러움, 생명력 따위가 느껴졌다. 울창하고 시원한 밀림이 생각나는, 그런 녹안이다.
“내가, 안고 있어도 되나?”
“어머, 괜찮으시다면요.”
필리아는 환영이라는 듯, 로엘을 이안의 품으로 넘겨줬다. 로엘 역시 그것을 원했나 보다. 이안이 안아 들자 손가락에 힘을 풀고 방긋방긋 웃기 시작했다.
이안은 저도 모르게 따라 웃으며 눈썹을 까딱거렸다. 이리 어린 아기를 안아 든 것도 처음이지만, 자신의 동생이라고 하니 더욱더 애틋했다.
“옴마, 녹아내리겄네. 녹아내리겠어.”
베릭이 중간에 찬물만 끼얹지 않았더라면, 이안은 그 자리에 서서 몇 시간이고 로엘의 눈동자를 들여다봤을 터였다.
“이안아. 나한테도 그렇게 다정하게 대해 봐라. 이거이거, 사람 차별이나 하고, 서러워서 살겠나.”
“이안, 이분은 누구?”
새로운 친구? 필리아가 흥미롭게 묻자, 이안이 무시하라며 고개를 돌렸다.
“얼마 전에 안 바보.”
“야! 첫인상이 얼마나 중요한데!”
“아아.”
친구구나. 필리아는 햇살처럼 웃으며 베릭에게 인사를 건넸다.
“필리아예요. 반갑습니다.”
“아, 저는 베릭.”
“필리아, 바보에게 존대할 필요 없어.”
“어머머, 바르사베 아가씨? 세상에, 너무 아름다워지셨어요.”
바르사베는 흙투성이인 손이라며 악수를 거절했지만, 필리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가볍게 안았다. 여전한 사람이구나, 바르사베가 피식 웃으며 필리아의 포옹을 받아들였다.
“아름답긴, 퍽이나. 이안이네 어머님? 멀리서 오신 것 같은데, 그쪽은 여기랑 미의 기준이 좀 다른가?”
“콱 씨. 입 다물어.”
바르사베는 필리아를 안은 채 이를 드러내며 닥치라고 으르렁거렸다.
그때, 뒤쪽 마차에서 들리는 인기척. 시종 몇몇과 고가의 옷을 차려입은 은색 머리칼의 소년이었다. 오드아이가 확연하여, 이안은 그가 시아오시임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안녕하십니까, 시아오시 님. 이안 하델입니다. 첫인사에 무례를 범한 점 용서해 주십시오.”
여기서 무례란, 로엘을 안은 채 반대쪽 손을 건넨 것이었다. 시아오시는 괜찮다며 희미하게 웃고서 이안에게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마법은 처음 보는데 정말 굉장하군요. 엔로우와 중앙까지 눈 깜짝할 사이에 올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는데.”
“그래서 마법이지요.”
“아, 한데 여기는…….”
황궁은 아닌 것 같고, 이안 하델의 저택인가?
이안은 자신의 품으로 안겨 드는 로엘을 다시금 추켜 안으며 소개했다.
“자크 백작저입니다. 제가 이곳에서 지내고 있어서요.”
“아, 그렇군요. 자크 백작님께도 인사를 드려야겠습니다. 그 전에 마차에 짐이 좀 많아서, 제가 묵게 될 호텔에 미리 보내 놓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요.”
앞으로 시험까지 한 달. 그리고 합격이라도 한다면 계속 중앙에서 생활해야 할 터였다. 이에 시아오시는 머물기 적절한 호텔을 미리 알아보았고, 장기 투숙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안은 방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시험까지는 자크 백작님 저택에서 함께 지내시면 됩니다.”
“아, 그런 무례를 범할 수는 없습니다.”
엔로우 가문에서 이안 하델에게 부탁한 것은 필리아와 네르사른이라는 접점 덕이었다. 하지만 자크 백작? 황궁친위대 마검사 집안으로 유명한 곳이긴 하지만, 접점이라고는 하나 없지 않나.
난감해하는 시아오시에게 이안이 웃어 보였다.
“괜찮습니다. 백작님께서 이미 허락하시어 환영의 뜻을 보이셨습니다. 아무리 중앙의 호텔이 훌륭하니 제 값어치를 한다 하여도 여기 백작저만큼 완벽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호텔에 묵게 되면 방 하나에 기거하며 매일 훈련장까지 왔다 갔다 이동해야 하지 않나? 게다가 시종들의 방까지 잡아야 하고. 아무리 엔로우 가문이라 하지만, 비용이 조금 부담스러울 것이다. 특히, 그의 눈높이에 맞춘 호텔이라면 더더욱.
“여긴 훈련장이 있으니 자유로이 쓸 수 있지요. 손님들이 쓸 방 또한 넘쳐납니다.”
“하지만…….”
시아오시가 여전히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자, 이안은 괜찮다는 듯 다시금 미소 지어 보였다. 시아오시의 순수함이 고스란히 느껴졌으므로.
세상에 공짜는 없다. 자크 백작이 시아오시를 자신의 저택에 묵게 하려는 게 단순한 호의 같은가?
“거절하시면 백작님께서 서운하실 겁니다.”
절대 아니다. 베릭을 받아들여 후원하는 것과 같이, 시아오시와 연을 터서 엔로우 가문과 결속을 다지려는 것이다.
엔로우 가문은 변방의 작은 영지지만,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 하완과 대사막을 연결하는 무역의 요충지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아오시가 선발 시험에 합격하여 제국방위부에 입부한다면?
‘제국방위부에 아는 사람이 하나 느는 거지.’
제국방위부에 들어간 시아오시가 어떤 방식으로 그들을 대할지는 모르겠다만, 어쨌거나 자크 백작 입장에서는 손해 보는 선택이 아니었다. 변경에서 온 가문의 차남과 친밀도를 미리 쌓아 두면, 어떤 방식으로든 이득이 되기 마련이다.
“아.”
시아오시는 그제야 알아챘다는 듯 탄성을 내질렀다.
‘영민한 자로군.’
마냥 순수한 줄만 알았는데, 크게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듣는 눈치가 상당했다.
이안은 어찌할 것인지 웃으며 그에게 선택지를 내주었다. 오히려 자크 백작의 의도를 알게 되었으니, 부담스럽다며 사양하려나?
“그렇군요. 제가 호의를 거절하면 그것도 실례겠습니다. 하면, 당분간 신세 좀 지겠습니다.”
시아오시는 이안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자크 백작도 백작이지만, 이안 하델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컸기 때문이다.
제국 전체에 명성이 자자한 천재 귀족 마법사를 이처럼 가까이서 볼 기회가 또 있을까. 아마 없을 거라고 시아오시는 생각했다.
그리고 이는 자크 백작의 의도와도 크게 다르지 않은 부분이었다.
‘자크 백작님은 나를, 나는 이안 하델을. 서로가 서로를 가까이하려 하는 상황이라…. 재밌구나.’
“잘 생각하셨습니다. 짐마차는 저쪽으로 이동하십시오.”
이안도 시아오시의 생각을 읽었다는 표정이었다. 시아오시는 엔로우의 차남. 영지 경영에서 한발 물러나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단순히 전장에 나가 검만 휘두를 게 아니라면, 그러니까, 황궁에서 한자리 단단히 잡으려면 검술 실력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아는 것이다.
“자자, 이쪽으로. 절 따라오십시오.”
“마차를 천천히 모세요! 여긴 훈련장이라 바닥이 울퉁불퉁합니다!”
어느새 나온 자크 백작저의 시종들이 엔로우가의 사용인들을 인도했다. 이안은 제 어깨에 얼굴을 푹 묻은 로엘의 등을 토닥이며 손님들을 돌아봤다.
“그럼, 다 같이 들어갈까요? 먼 길 오셨으니, 식사 시간 전까지 다과라도 들면 좋겠습니다. 자크 백작님은 지금 외출 중이라, 나중에 저녁때 오실 겁니다.”
“예, 알겠습니다. 하델 경.”
뒤를 돌려던 이안이 시아오시의 눈을 빤히 쳐다봤다.
“말씀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예? 하지만 어찌-”
자신은 가문의 차남이라 계승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작위 수여 또한 예정에 없었다. 반면, 이안 하델은 황족의 방계이자 마법사이지 않은가. 그러자 이안이 웃으며 대꾸했다.
“저는 마법사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사실상 귀족의 생활은 오래전에 지워진 지 오래다. 전장에 나가 식구들과 함께 피비린내 나는 곳에서 잠을 청하고, 실수를 하면 장관에게 혼나기도 하는 한 명의 마법사일 뿐이다.
“그래도 그럴 수는 없습니다.”
“황궁에 들어오시면 그리될 것인데요.”
한 명의 장교와 한 명의 마법사로서 말이다.
사실 이안에게는 다른 의도도 있었다. 이안은 엔로우 가문에 금화 1,000닢에 관해 물어보기 위해서는 우선 벽을 허무는 것이 좋겠노라 판단했다. 차남이라 이 일에 대해서 얼마나 자세히 알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그들 모르게 이미 빚을 한 번 진 이안이었다.
“천천히… 하겠습니다.”
“예, 좋습니다.”
필리아는 이안에게서 딱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로엘의 코를 톡 두드렸다.
“이안, 무겁지 않아요?”
“전혀. 깃털 같아.”
음. 거짓말.
하지만 필리아는 모른 척 네르사른의 팔짱을 끼며 즐겁게 걸었다.
“그럼, 이안에게 로엘 좀 부탁해야겠네. 바르사베 아가씨! 같이 들어가요! 오랜만이라 할 얘기가 많겠어요.”
바르사베가 좋다며 전투복을 벗자, 당황했는지 베릭이 고개를 휙휙 돌려 대며 소리쳤다.
“이안아! 다 들어가? 나는?”
“넌 계속 훈련해.”
“어? 다 들어가네. 나도 같이 가!”
이안의 지시에도 막무가내로 따라붙는 베릭.
시아오시는 저자의 정체가 대체 무엇일까, 고민하며 자크 백작저에 발을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