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944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944화(944/951)
제944화. 북쪽의 낯선 자
“아, 부-”
이안과 베릭 그리고 바르사베는 머리를 맞대고서 로엘을 살폈다. 새삼 작고 말랑말랑한 아기에게서 눈을 뗄 수 없는 것이다.
필리아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신기하십니까?”
“…예뻐서.”
“아기가 아빠 안 닮고 엄마 닮아서 다행인 듯.”
“네르사른 님. 베릭 이 자식이 건방진 발언을 했는데, 어찌, 제대로 쥐어 패 주면 안 되겠습니까?”
바르사베가 쪼르르 일러바치자 네르사른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안타깝게도 이미 수백, 수천 번은 들었던 말인지라 별 타격이 없다. 천려에서도 다들 아기가 필리아를 닮은 것 같다며 다행이라고 축제까지 열었으니까.
“아재, 싸움 좀 해요?”
베릭이 슬쩍 네르사른의 전투력을 측정하듯 힐끗거렸다. 거대한 키에 우락부락한 근육, 떡 벌어진 어깨. 그리고 거칠게 살아남았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곳곳에 새겨진 상처.
바르사베가 베릭의 볼을 쫙 잡아당기며 경고했다.
“아 놔. 이안아. 이 새끼 황궁에 들어가도 문제다.”
“그러게 말입니다.”
“아니, 왜!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베릭에 대한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던 시아오시가 조심스레 끼어들어 물었다.
“그분도 선발 시험에 지원하는 것입니까?”
“아, 베릭은 마검사입니다. 황궁친위대를 목표로 단련하고 있습니다.”
“아.”
이제 좀 이해가 간다. 분명 평민인 것 같은데 자크 백작저에서 기거하고, 무엇보다 천재 마법사인 이안과 백작가의 여식인 바르사베와 친밀해 보이는 것이. 마검사라면 황제의 곁을 보좌하는 핵심 인물 중 하나이니, 당연히 가까이 두는 게 맞았다. 자신을 저택에 들인 것처럼.
“그러니까, 아재 싸움 좀 하시냐고요.”
“그건 왜 궁금하지?”
네르사른이 미간을 작게 찌푸리며 물었다. 필리아와 로엘이 앞에 있어서 불쾌한 기색을 최대한 감추는 모습이다.
“싸움 좀 하면 대련 상대 좀 해 달라 하려 했죠. 어차피 당분간 여기서 머무는 거 아녀요? 바르사베는 이제 내 밑이라 영 별로.”
“이 새끼가! 딱 한 번 이겨놓고! 다들 오해하지 마세요, 내가 백 번 이기고 이놈은 딱 한 번 이겼어!”
“한 번도 이긴 건 이긴 거지.”
“당장 나와. 다시 뜨자.”
“헹. 난 좆밥이랑 안 싸워.”
베릭이 귀를 후비적거리며 놀리자, 바르사베가 쿠션에다 얼굴을 파묻고 소리를 내질러 댔다.
다행히 로엘은 눈만 깜빡깜빡, 소란이 재밌다는 듯 허공에 손을 내저었다. 이안은 그 손을 맞잡아 주며 네르사른에게 부탁했다. 태도는 영 불손했다만, 확실히 의미 있는 제안이다.
“네르사른, 시간이 괜찮다면 부탁을 들어주었으면 해. 바르사베는 오랜 기간 준비했지만 베릭은 훈련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거든. 이번 시험에 꼭 합격하는 것이 목표라 천려의 강인함을 전수해 주었으면 좋겠어.”
“예, 뭐. 남아도는 것이 시간이기는 하지요.”
이들이 온 것은 어디까지나 로만드로의 결혼식 참석을 위한 것이었다. 그때까지 중앙 구경이나 할 생각이었으니, 당연지사 훈련에 참가할 수 있다.
그리고 사실, 이는 그가 먼저 제안할 생각이었다. 한 달 넘게 가만히 앉아 있으면 몸이 뻐근해지는 게 천려의 전사인 터라.
“잘 됐군. 베릭, 스승으로 여기고 겸손하게 굴어라.”
필리아는 어머니와 마찬가지인 자다. 그런 그녀의 남자이니, 이안에게는 아버지와 다름없는 사내. 베릭은 이안의 경고를 받아들이고서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알았어.”
이상하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안이 저러면 토를 달 수 없다니까? 저번에 한 번 쥐어 터져서 그런가?
“네르사른 님. 실례가 안 된다면 저도 지도 편달 함께 부탁드립니다.”
“시아오시 님, 그런 말씀 마십시오. 시험 합격을 위해서 뭐든지 도울 생각이었으니까요.”
시아오시가 네르사른 쪽으로 고개를 가볍게 숙이자, 네르사른은 손까지 내저었다. 엔로우 가문은 천려의 친구이자, 중요 동맹이지 않나.
이안은 칭얼대는 로엘을 안아 들고서 시아오시 맞은편에 앉았다. 드디어, ‘그’ 얘기를 꺼낼 참이었다.
“한데 엔로우 영지는 어떤 곳입니까? 제가 식견이 좁아 변경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습니다.”
“평화로운 곳이지요. 주민들은 친절하고, 드넓은 들판을 조금만 걸어 나가면 금빛 사막을 볼 수 있는 신기한 곳이기도 하고요. 하완에서 들어오는 이국적인 이들도 많이 봅니다.”
짤막한 소개였지만 엔로우에 대한 애정이 듬뿍 느껴졌다. 이안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재차 되물었다.
“가문 시조의 함자가 시아오시 엔로우라 들었습니다만.”
“예, 제국의 검이셨습니다.”
“이안 님, 제가 초상화를 봤는데 지금 시아오시 님과 아주 똑 닮았더라고요.”
“그래?”
필리아의 설명에 이안은 뭔가 의아함을 느꼈다. 시아오시 엔로우. 생긴 것도 닮고, 이름도 그대로 계승한 자란 말이지?
시아오시는 그걸 알아채고 알아서 덧붙였다.
“가문의 계승은 형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이미 그것은 정해진 일. 이름 하나로 어찌 될 사안이 아닙니다.”
선조의 귀한 이름을 어찌 차남이 받았느냐는 궁금증을 정확하게 꿰뚫어 본 것이다.
“그리고 저 또한 형님의 계승을 당연히 인정하고요. 저는 경영에 흥미가 없는지라, 오히려 잘 되었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셨군요. 그럼 모르실 수도 있겠습니다.”
“무엇을요?”
“아주 오래전, 엔로우 가문이 영지 매매 대금을 하이만 은행에 맡겨 두었습니다.”
“저희가요?”
“예. 자그마치 금화 1,000닢입니다.”
“……!”
금화 1,000개라는 말에 베릭의 입이 떡 하고 벌어졌다. 살면서 상상조차 해 본 적 없는 금액이지 않나! 저 돈이면 고기가 몇 접시인지, 원…….
“하델 가문에서는 영지 매각에 관한 자료를 찾지 못하였는데, 혹 엔로우에서는 알고 계신 것이 있을까 하여서요.”
“아, 자세히는 모르지만, 금화 1,000개 정도라면 단순히 작은 땅 수준이 아닐 것인데요.”
“맞습니다.”
“혹시 언제쯤으로 추정하십니까?”
“100년 전, 진 베로시온 황제 시대의 일로 예상됩니다.”
“아?”
시아오시는 의아하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시죠?”
“진 베로시온 선황께 작위를 수여받은 것이 엔로우 가문의 시작입니다. 제가 알기로 선조께서는 평민 출신으로 가신에 올랐고, 다비온가의 여식과 혼인하여 은퇴 후엔 지금의 엔로우 영지를 경영했노라 알고 있습니다.”
이안이 멈칫거렸다. 대금이 오간 시점이 가문의 시초와 맞물리지 않나?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딱 하나였다. 지금의 엔로우 영지가 그 매매 대상이었다는 것.
‘하델가에서 변경 쪽에도 영지를 갖고 있었다?’
이상하다. 그렇다면 기록이 없을 리 없는데.
이안이 생각을 거듭하며 미간을 찌푸리자-
“데에-”
로엘이 손가락으로 이안의 미간을 꾹 찔렀다. 갑작스러운 아기의 행동에 눈이 동그래진 것도 잠시, 이안은 웃으며 아기를 동동 흔들었다.
“혹시 엔로우 영지 이전에는 누구의 소유였는지 알고 계십니까?”
“아, 그것이…….”
시아오시가 살짝 난감하게 말끝을 흐렸다. 말하기 곤란하다는 듯이 말이다. 엔로우가의 일원으로서 섣불리 남에게 말할 수는 없는 내용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이전 영주에 대한 기록은 바리엘에서 허락되지 않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지? 이안은 잠깐 사고가 멈춘 것처럼 눈을 깜빡였다가, 이내 뜻을 알아챘다.
“반역자라는 것입니까?”
“자세한 사정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기록이 모두 소실되었고, 엔로우 가문의 내력 역시 가주에게 한정되어 전해진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것이라고는 딱 하나-”
시아오시는 알려 줘도 될까 고민하는 눈치였지만, 이미 분위기가 완전히 기운 이후였다. 이안만이 아니라 이 자리의 모두가 궁금해하는 눈치다. 게다가 그는 이안 하델에게 당분간 신세 지는 입장 아닌가? 계승권 없는 자신도 아는 내용이니, 알려 줘도 괜찮을 것 같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이전 영주가 히엘로라는 이름을 사용했다는 사실이지요.”
“히엘로…….”
어디서 들었더라? 묘한 기시감에 이안은 몇 번이고 그 이름을 되새겼다. 하나 그럴수록 의문은 커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기시감이 설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히엘로의 기록이 지워졌다는 건 반역 가문이라는 뜻.’
반면 하델 가문은 황족의 방계다. 반역 가문과 조금의 연이라도 있을 리가 없다. 그랬다면 애초에 모두 몰살되어 이안은 태어나지도 않았을 테니.
‘그럼 이 기시감은 대체…….’
“아, 부-”
그때, 로엘이 이안의 손가락을 잡고 열심히 흔들었다. 아이는 무언가 말하고 싶은지, 열심히 소리를 내며 이안의 시선을 가져왔다.
“왜 그러니?”
이안이 웃으며 고개를 기울이자 로엘의 따뜻한 손이 이안의 얼굴 곳곳을 매만졌다.
시아오시는 그 모습을 보며 조심스레 제안했다.
“혹 대금에 대한 출처가 궁금하시다면 제가 아버지께 서신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잘 도착했노라 안부도 전할 겸이요.”
“그래 주신다면 감사한 일이지요.”
“예. 다만 이것만큼은 꼭 알아주십시오. 지금의 엔로우에는 아무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이었다.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똑똑.
“실례합니다. 자크 백작님이 귀가하셨습니다.”
“아, 일찍 오셨군. 모두들 인사하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집주인인 자크 백작이 돌아왔다는 소식에 대화가 끊어지고,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직 한 사람, 이안의 품에 안긴 로엘만이 연신 무언가를 말하며 이안의 손가락을 잡고 흔들어 댔다.
“아, 부부, 바-”
* * *
한편, 북쪽의 어느 숲속. 무장한 사냥꾼 무리가 수풀을 헤치며 걸었다.
이제는 거의 사라진 마물이 그나마 종종 나온다는 붉은 숲이다. 그들은 데라족의 무기로 무장한 채 연신 궐련을 피워 댔다.
“젠장, 며칠째인데 보이질 않는군.”
“이봐. 근데 진짜 마물 사체가 돈이 되긴 해?”
“아, 찾는 사람이 있다니까. 별별 인간들 많잖아. 내가 저번에 마물 핵이랑 껍데기를 주술사한테 팔았는데, 자그마치 금화 두 개를 주더라고.”
“허억, 그거 대박이군.”
“요즘 마물들은 장정 서넛이면 때려잡을 수 있다니까, 잘만 하면 큰돈을…….”
사삭.
그때였다. 어디선가 들린 기이한 소리. 사냥꾼들이 동시에 멈추고서 주위를 둘러봤다. 마물인가? 아니면 짐승? 무엇이 되었든 잡아 죽여 가져가리라!
“저, 저기!”
한 남자가 한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어둠 속에서 형형히 빛나는 붉은 눈동자. 그것은 곧 금빛으로 변하더니, 불꽃처럼 일렁이기 시작했다.
사냥꾼들은 침착하게 무기를 붙잡고서 자세를 낮췄다.
“하나, 둘, 셋 하면 동시에 간다. 알겠지?”
“어, 어어, 그래.”
“하나, 둘-!”
근데, 뭔가 기운이 심상치 않은데? 소문으로 듣던 그 잡놈이 맞나? 그러자 그것이 고개를 옆으로 꺾어 대더니, 기이한 소리를 내며 웃었다.
‘웃어?’
마물에게는 감정이 없다. 그래서 짐승 축에도 못 드는 악의 기운인 것이다.
“셋!”
사냥꾼이 셋을 외치며 달려드는 순간, 수풀에서 날카로운 무언가가 뻗쳐 나와 그들의 목을 동시에 꿰뚫었다.
푸욱!
“…커, 커억!”
마치 살아 있는 가시 같다. 사냥꾼들이 피를 토하며 죽어 가는 동안, 그것이 천천히 수풀 밖으로 나와 모습을 드러냈다.
‘사, 사람?’
그는 시체들의 주머니를 뒤져 돈 몇 푼을 챙겨 들더니, 이내…….
카드드득!
사냥꾼의 목을 완전히 잘라 내어 끝장냈다.
크로니는 흙투성이인 머리칼을 대충 넘기며 중얼거렸다.
“아. 죽이지 말걸.”
여기가 어딘지 물어봤어야 하는 건데, 어쩔 수 없나.
10년 전, 그때 모습 그대로인 크로니는 바리엘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눈동자는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