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945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945화(945/951)
제945화. 수석
“좋은 아침입니다.”
먼저 출근한 건지, 아니면 아직 퇴근을 안 한 건지 모르겠지만 사무실은 반 이상 차 있었다. 마법사들은 이안의 목소리를 알아채고서 슬쩍 고개 돌며 인사했고-
“어, 안 좋은 아침.”
“오늘 일찍 왔-”
“엥?”
이내 이안의 품에 안겨 있는 갓난아기를 발견했다.
마법사들은 눈이 동그래져서는 자연스럽게 이안의 곁으로 다가왔다. 구릿빛 피부에 아름다운 녹안. 아기지만 이목구비가 또렷하여 미래가 기대되는 외모! 그리고 은근히 이안과 닮은 듯한 분위기까지. 한 마법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더듬었다.
“이, 이안아. 너, 너, 혹시 사고 쳤니?”
퍼억!
바로 응징의 주먹이 날아와 턱주가리가 돌아갔지만 말이다.
마법사들은 단체로 린치를 가하며 정신 나간 마법사를 밟아 댔다.
“애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어!”
“그러니까. 이 새끼 재워. 영원히 재워.”
“아악! 악! 아니, 그렇잖아! 너무 닮았으니까!”
그렇게 닮았나? 사실 피는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는데. 이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로엘을 내려다봤다. 로엘은 또랑또랑한 눈동자로 이안을 보다가 배시시 웃으며 그의 볼을 붙잡고 만지작거렸다. 이안은 그런 아기를 내버려둔 채 설명했다.
“필리아와 네르사른의 아이입니다. 얼마 전에 중앙으로 왔는데, 오늘 황궁에 들러 대사막에 대한 보고를 한다고 하네요. 그동안 제가 잠시 맡겠다고 했습니다.”
“아, 그런 거였어?”
“난 또. 놀라라.”
필리아와 저택에 있어도 되지만, 이상하게 로엘이 떨어지지 않으려 한 탓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보고를 마치면 네르사른이 다시 아이를 데리고 돌아가겠지.
‘그 사이 필리아도 오랜만에 좀 쉬고.’
오랜만에 온 중앙이다. 필리아는 스승과 동료, 지인들을 만나 간단히 회포를 풀고 온다고 했다. 다들 의사이다 보니 지난 마물 사태 때 전부 전장으로 흩어져 얼마나 남아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짧게나마 과거를 추억하는 시간을 가질 터.
“아기 안 무거워? 내가 안아 줄까?”
“너, 그러면서 은근슬쩍 일 안 할 생각이지?”
“헉, 이 새끼, 나를 뭘로 보고? 바로 알아채네.”
“아이고, 귀여워라. 내가 마법부만 아니었으면 벌써 너만 한 아기가 있었을 건데. 이름이 뭐야?”
“왜 마법부 탓을 해? 네 얼굴 탓을 해야지.”
“아부- 부부-”
“어? 말한다!”
마법사들은 오랜만에 보는 귀여운 생명체에 눈을 떼지 못하고 헤실거렸다. 10년 전만 해도 이안이 저랬는데, 지금은…….
“로엘입니다. 다들 이제 일하러 가십시오. 오늘 주간 회의 있는 날 아닙니까?”
제2의 아레나와 다름없다. 저런 이안도 갓난아기인 시절이 있었겠지? 아아, 세월이 무색하구나.
마법사들은 어기적거리며 이안과 아기의 주위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고, 로엘은 그런 마법사들이 신기하다는 듯 작은 손을 휘적거려 얼굴을 퍽퍽 쳐 댔다.
“부부-”
“그래, 너도 우리 보고 일해라, 이거지?”
“알았다. 알았어. 역시 귀여움에 속으면 안 돼. 무서운 것들.”
이안은 피식 웃으며 로엘을 안은 채 자리에 앉았다. 그는 자연스럽게 한 손으로 보고서를 뒤적이며 자신에게 할당된 일이 무엇인지 확인했다. 그러다 멈칫, 이안이 작게 미간을 찌푸렸다.
“선배님. 이거 확실한 내용입니까? 북쪽 붉은숲 마물이요.”
“어? 어어. 아마도?”
“이상하네요. 거긴 지난달에 저희가 파견 갔었잖아요. 마물이라고는 흔적도 없었는데.”
북쪽 지대의 붉은숲 쪽에서 신종 마물이 출몰한 것 같다는 보고였다. 최근은 성인 남자들이 데라족 무기로 무장하면 서넛이 때려잡을 수 있을 정도의 미물이 나왔는데, 이번에는 사냥꾼들의 목이 모두 잘린 상태로 발견되었다는. 시신 훼손 상태나 그 흔적들로 보아, 몇 년 전 범람했던 마물과 비슷한 위험 수준이었다.
마법사들이 의자에 몸을 기대고서 대답했다.
“오늘 주간 회의 중요 안건이야. 어디서 균열이라도 또 생겼나, 마물 놈들 힘이 다시 강해지는 신호가 아닌가 싶어서.”
“아, 진짜 싫다. 이제 겨우 끝나나 싶었는데.”
점차 줄어들다 완전히 사라질 것 같았던 마물들이, 알고 보니 범람과 쇠퇴를 반복하고 있는 거라면? 영원히 박멸할 수 없는 존재라 주기마다 대응해야 하는 거라면? 앞으로 제국민들의 삶은 물론이고, 가이아 전체에 다른 미래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마물과 함께하는 삶.’
생각만 해도 피곤하고 끔찍했다.
이안이 미간을 찌푸리자, 로엘이 다시금 작은 손가락으로 이안의 눈썹을 매만졌다. 마치 걱정하지 말고 인상 펴라는 듯.
드르륵!
“아하이! 좋은 아침!”
아침부터 우렁찬 아레나였다. 그녀는 사무실 문을 벌컥 열어젖히더니, 이안과 로엘을 보고서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녀는 사무실을 잘못 찾아왔나 싶어서 문을 닫고 팻말을 확인했다.
“뭐지?”
“필리아와 네르사른의 아기입니다.”
“아아아, 맞다. 중앙으로 온다고 했었지? 옴마나, 귀여워라. 이리 와 봐. 우쭈. 우쭈쭈.”
아레나가 입으로 혀 짧은 소리를 내자 마법사들이 기겁하며 정색했다. 로엘은 꺄르르거리며 그녀를 껴안았고, 아레나는 이게 바로 찐 복지라며 킁킁 아기 냄새를 만끽했다.
“장관님. 사심 채우지 마십시오.”
“싫은데? 꼬우면 장관 하시든가.”
“아무튼, 북쪽 그거, 진짜래요?”
“어, 후속 보고 들어왔어. 보좌관!”
아레나의 부름에 보좌관이 카트를 끌고 들어왔다. 마법사들에게 나눠 줄 2차 보고서였다. 책상 사이로 돌아다닐 때마다 마법사들이 한 부씩 집었고, 바로 종이를 넘겨 댔다.
“음? 시신 발견 위치가 점점 남쪽으로 내려오네요? 이 정도면 이미 붉은숲 나간 거 아닌가요?”
“거기서 제일 가까운 나라는 아스타나. 일단 숲 봉쇄하고 그쪽에서 마물 처리를 하겠다고 하는데, 내 생각에는 우리가 가 봤으면 좋겠거든?”
“음. 하긴, 이게 변종인지 아니면 또다른 마물 범람의 신호인지는 모를 일이니까요. 마법사가 가서 보는 게 확실하죠.”
“그래서! 오늘의 안건!”
짜잔.
아레나가 로엘의 손을 번쩍 들며 웃었다.
“누가 갈래?”
또 시작이다. 또, 또! 이제 ‘누가 갈래?’ 말만 들어도 진저리가 나는 마법부다. 지난 10년 동안 쉴 새 없이 들었던 말이라서 질리다 못해 끔찍했다. 익숙하다는 듯 이번에도 이안이 슬쩍 손을 들려는 순간-
“잭이랑 랭노드. 둘이 다녀와.”
“지명당했네. 홀리.”
“왜요? 왜?!”
아레나가 두 마법사를 콕 집어 지시했다.
“사후반점으로 봐서는 거의 동시에 당한 것 같다네. 잘린 목 외, 구멍이 난 상처는 일정하지도 않고, 뒤로 갈수록 좁아지는 형태고…. 이게 무슨 말인지 알겠어?”
몰라요, 몰라. 마법사들이 눈을 가늘게 뜨며 입을 꾹 다물자, 이안이 덧붙였다.
“촉수 같은 걸 사용하는 놈일 수 있다는 거군요.”
“맞아.”
동시다발적으로 공격이 가능하고, 갈수록 그 끄트머리가 날카로워지는 형태를 지녔다고 추측할 수 있었다. 어디까지나 감식 의견과 현장 보고서를 통한 예상이지만.
“잭이랑 랭노드가 이전에 비슷한 놈 상대했었지? 마물 이름이…….”
“카타로디악.”
“그래, 그거. 그놈인지 확인하고, 아니라면 변종인지 조사해서 보고해. 이안은 오늘 중으로 포탈 열어 주고. 기한은 일주일. 충분하지?”
“오늘 바로 가요?”
“그럼 뭐, 할 거 다 하고 갈래? 밥 먹고, 똥 싸고, 씻고, 아예 휴가도 갔다 가든가?”
“…말씀하셔도 참.”
“개떡 같냐?”
“아니라고는 못 하겠네요. 으으.”
별안간 또 북부 출장이라. 잭과 랭노드가 끔찍해하며 마른세수를 해 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까라면 까야지.
그 뒤로도 아레나는 전달 사항을 이르고서 주간 회의를 마무리했다. 그녀는 끝내면서 잭과 랭노드에게 고개를 까딱거렸다.
“다녀오면 유급휴가 준다.”
“예? 정말요?”
“속고만 살았나.”
“장관님! 제가! 제가 가겠습니다!”
“됐어. 오늘은 여기까지. 곧 있으면 행정부에서 사람 올 거니까 실담물약 준비해서 따라가고.”
“아, 오늘이 시험 마지막인가요?”
시간 참 빠르다. 제국에서 제일 큰 시험, 제국관료시험 기간이라고 떠들썩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끝나서 마무리를 앞두고 있다. 마무리라 하면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한 이들의 마음가짐을 확인하는 단계.
아레나가 이안에게 로엘을 돌려주며 서두르자고 연신 박수를 쳐 댔다.
“이안, 포탈 먼저 열래? 시간 되겠어?”
“붉은숲이라면 좌표 정리해 둔 것이 있습니다. 선배님들만 괜찮다면 바로 열 수 있습니다.”
“어, 그래. 미적거려 봤자 뭐 하겠냐. 장관님 잔소리나 듣지. 바로 열어 주라. 후딱 다녀올게.”
잭과 랭노드는 책상 아래에서 주섬주섬 가방을 꺼내 들었다. 각종 물약과 기본 생필품 등이 담겨 있었다. 그러고는 곧장 떠나려는데-
“다아-”
갑자기 로엘이 이안의 품에 안겨서는 작게 발버둥 쳤다. 그러더니 잭과 랭노드의 옷을 꽉 붙잡는 것 아닌가. 마치 가지 말라는 듯이.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이안이 아기를 달랬고, 두 사람은 귀엽다는 듯 헤실거리며 로엘의 볼을 쿡쿡 눌러 댔다.
“잠깐 봤다고 정들었니? 에구, 예뻐라.”
“다녀올 때까지 잘 있어. 로엘, 로만드로 님 결혼식 때까지는 있는 거지?”
“네. 그렇습니다.”
“그래그래. 금방 다녀올게.”
“다아-!”
로엘이 더욱 힘껏 소리치며 옷을 붙잡았지만, 두 사람은 조심조심 손을 떼어 내며 로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안은 로엘을 안아 들고 그들과 함께 뒤뜰로 향했다. 아기 안지 않은 손을 땅 위에 올리니 주위가 금방 금빛으로 물들었다.
“아, 볼 때마다 사기라니까.”
잭과 랭노드가 서로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포탈 하나 열려면 몇 날 며칠 수식 확인하면서 준비해야 하는 그들과 달리, 이안은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서 정확하게 시전했으니.
지이잉! 지잉!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그래, 별일 있겠냐. 다음 주에 보자.”
“예쁜이, 로엘! 다음에 봐!”
“댜아아!”
두 사람이 하늘로 올라가자, 로엘이 손을 뻗으며 얼굴을 찌푸렸다. 꼭 무언가 싫다는 듯이. 이안은 로엘의 반응이 의아해 등을 토닥이며 달랬고, 이내 그를 부르는 소리에 몸을 돌렸다.
“이안, 실담!”
“예. 알겠습니다.”
이안의 품에 안긴 로엘은 그 어깨 너머로 포탈이 사라지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다가 눈을 감았다.
* * *
똑똑.
“실례합니다.”
이안은 고급스럽게 장식된 나무 상자를 들고서 행정부에 들어섰다. 제국관료시험도 거의 끝나가는 터라, 이전보다는 훨씬 덜 어수선한 분위기다. 행정부 직원이 일어나서 이안을 맞이하고는 상자를 받 아들었다.
“아, 고마워요. 우리가 받으러 가야 하는데.”
“아닙니다.”
“그런데 웬 아기?”
“제 동생이에요.”
“으응. 어쩐지 닮았네. 이 친구도 마법사면 참 좋겠다. 안녕?”
행정부 직원이 웃으며 로엘에게 인사하자, 로엘도 눈웃음으로 화답했다. 삭막한 황궁에 한 줄기 빛이로구나. 행정부 직원이 서류를 훑었다.
“어디 보자, 오. 마지막이네. 바로 가시죠. 아기는 어쩌나?
“조용해서 괜찮을 겁니다.”
“으응. 그래요. 어차피 멀리서 실담물약 반응만 기록할 거니까. 이쪽으로.”
행정부 안쪽 작은 방. 상위 10명의 합격자들이 일렬로 앉아 있었다.
그중 가운데 있는 한스. 한껏 긴장한 표정으로 다음 시험이 뭘지 고민하는 중이었다. 보통 마지막 시험은 외부에도 알려지지 않은 터라…….
끼이익.
“자, 마지막 시험을 시작합니다.”
이안은 밖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고, 행정부 직원이 그들 앞에 실담물약 하나씩 내려놓으며 설명했다.
“여러분은 이미 합격이 확정되었습니다. 이건 순위를 매기기 위한 마지막 시험입니다. 아주 간단해요.”
달그락.
사람들은 조심스레 물약을 집으며 행정부 직원을 쳐다봤다.
“이걸 마신 다음 제 질문에 답하면 됩니다.”
자, 어서 마시세요. 직원의 권유하는 눈빛에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단숨에 물약을 들이켰다. 직원은 전원 음용한 것을 확인한 후, 서류를 들고서 하나씩 질문했다.
“동시에 대답하십시오. 이번 시험에서 부정행위는 없었습니까?”
“네!”
“물론입니다!”
대답과 함께 누군가의 입에서 피가 주륵 흘렀다. 그걸 확인한 직원은 아무렇지 않게 점수를 매기며 질문을 이었다.
“행정부 직원으로서 청렴하고 정직하게, 자신의 이익이 아닌 황궁과 바리엘의 발전을 위하여 이바지할 결심이 서 있습니까?”
사각.
“네!”
한스는 긴장했지만, 어떠한 물약 반응도 없이 대답을 이어갔다. 그렇게 마지막 질문이 이어질 때까지 피를 흘리지 않은 건 오로지 한스뿐. 시험의 수석이 정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