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946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946화(946/951)
제946화. 전통의 맥주집
황궁 외벽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한 달 동안 이어진 대장정, 제국관료시험의 결과가 나오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오가던 사람들까지 걸음을 멈추고 궁금하다는 듯 기다렸고, 수험생들은 두 손을 꼭 모은 채 간절히 중얼거리며 벽보를 기다렸다.
“비키시오!”
황궁에서 나온 관료가 인파를 헤치고 나타났다. 병사 둘이 끄트머리를 함께 잡아야 할 정도로 거대한 종이. 그들은 능숙한 손길로 벽보를 붙였고, 사람들은 합격자 명단에서 제 이름을 찾기 시작했다.
“아이고, 젠장할. 낙방이네.”
“다시 찾아봐. 저기! 저기 네 이름이다!”
“허억! 억!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일순 소란이 일었다. 합격한 자와 불합격한 자의 명암이 극도로 대비되며 시끌벅적한 고함과 환호가 여기저기서 터졌다.
한스 역시 그 가운데 있었는데, 그는 맨 위에 적힌 자신의 이름을 보고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인파를 헤치고 나와 웃옷을 탁탁 털었다.
“그러게 왜 사람 말을 못 믿어서.”
그때, 한스 뒤에서 나지막이 속삭이는 누군가. 로브를 쓴 이안이었다.
한스가 기쁨을 나누고자 소리치려고 하자, 이안이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며 조용히 빠져나가자 신호했다. 두 사람이 조용한 골목에 들어서는 순간, 한스가 주먹을 불끈 쥐며 나지막이 환호했다.
“수석이면 승진 우선 대상자 맞지?”
“입사도 전에 승진을 생각하네.”
“딱 두고 보라고. 바리엘 최연소 수상이 되고 말 거니까.”
“대체 왜 안 믿은 건데? 네가 수석이라고 누누이 얘기했잖아.”
이안과 한스는 투덕거리며 주점을 찾아 나섰다. 한스가 멋쩍은 웃음과 함께 이안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아니, 난 또 선의의 거짓말 뭐 그런 건 줄 알았지.”
“내가 그런 걸 왜 해?”
“너는 그래도, 우리 형은 하니까.”
실담물약 시험 직후, 등수는 바로 매겨졌다. 부정행위에 대해 시인한 이들은 제명되었고, 단 한 번도 피를 흘리지 않았던 한스가 명단 상단에 적혔다. 한스는 아직도 짜릿하다며, 그날을 떠올리며 웃었다.
“막, 옆에 사람들 피 토하고 난리 나는데 이게 뭔가 싶더라.”
“그거 군기용이라서 그래.”
“군기용?”
“황궁은 만만한 곳이 아니다, 뭐 그런. 신입 환영식이랑 비슷한 거지. 아. 다 왔네.”
이안이 고갯짓으로 한 주점을 가리켰다. 자그마치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꿀맥주 주점이다. 이제는 중앙 곳곳을 넘어 바리엘 전역에 분점을 갖고 있는 터라, 전역에서 모르는 이가 없다.
“어어, 이안! 한스! 여기!”
“오늘 주인공 오셨네!”
미리 자리 잡고 있던 마법사들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제국합동모병 기간 전, 비교적 유일하게 한가한 시간. 한스의 수석 입학을 축하하기 위해 나움과 마법사들이 자리를 만든 것이다.
한스는 꾸벅 인사하며 들어섰고, 이안은 로브를 옷걸이게 걸고서 주점 안을 둘러봤다.
“통째로 빌렸어요?”
“그럼. 당연하지. 우리가 누구? 마법사들이잖냐. 그것도 황궁 마법사!”
“마법부의 권위를 이런 식으로 사용하는 건 옳지 못한 것 같습니다만.”
분점도 아니고 본점인데, 이거 너무 횡포 아닌가? 이안이 그리 중얼거리자, 주방에서 사장님이 꿀맥주를 한가득 내오며 너스레를 떨어 댔다.
“아이고, 아닙니다. 황궁에서 제국을 위해 일하시는 분들인데 이 정도는 당연하지요. 마법부만이 아니라 다른 부서 회식 장소로도 애용되고 있으니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사장은 마법사들에게 꿀맥주를 나눠 주고서 창가의 한 자리를 가리켰다.
“그리고 저희 주점이 황궁과의 인연이 꽤 깊습니다.”
“황궁과 인연이라니?”
“저 자리가 바로, 100년 전 진 베로시온 선황께서 황후분과 밀회를 가졌던 자리랍니다! 증조할아버지께서 틈만 나면 그때 일을 말하셔서, 귀에 딱지가 수백 번도 더 앉았었죠.”
진 베로시온, 그 이름이다. 이안은 흥미를 보이며 창가가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황후분께서는 클리포포드 출신이라 알고 있는데.”
“예, 뭐. 그렇지요.”
사장은 속 모를 비밀이 있다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자 마법사 한 명이 끼어들어 덧붙였다.
“사실 클리포포드가 아니라 바리엘 평민 출신이라는 설이 있어. 신분 세탁 하려고 클리포포드 쪽 왕실로 입적시켰다나 뭐라나.”
“아이고, 마법사님. 부정한 말입니다!”
“뭐 어때요. 다 알음알음 아는 얘기인데. 당시 황후께서 평민 시절에 여기서 일하셨다면서요. 오가며 본 사람들 증언이 생생한데 그걸 어찌 덮겠습니까.”
“증조할아버지가 손님들한테 그때 얘기하다가 황궁 끌려가서 크게 혼나셨어요.”
“혼나긴 뭘! 가서 꿀맥주만 수천 잔 만들었다고 하더만.”
“그, 나이 60 넘은 노인네에게 쉬운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 그건 인정.”
이안이 꿀맥주를 슬쩍 들여다보자, 마법사가 잔을 치워 버리고는 새 잔을 가져왔다. 꿀우유였다.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 성숙하고 점잖은 이안이지만, 아직 성인식을 치르지 않았기 때문에 술은 금지.
“나도 주고 싶은데, 아레나 장관님 알면 다 죽어.”
“괜찮습니다. 자리가 중요한 거니까요.”
“자, 그럼 한스! 이제 시작해 봐!”
마법사들의 부추김에 한스가 슬쩍 일어나 잔을 들었다. 나움 역시 미소를 띠고서 동생을 따라 술잔을 집었다.
“예, 다들 축하해 줘서 고맙고요. 부서는 다르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우리 형 좀 그만 괴롭히세요.”
“괴롭히긴 누가! 누가 나움한테 덤벼?”
“그럼 퇴근은 왜 안 시켜 주는 건데요?”
“저저,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 자식. 네가 황궁에 들어와 봐라.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에요.”
“자, 됐고! 짠 해. 짠!”
“오늘은 한스가 쏘는 거지?”
“나움이 쏴야지. 사회 초년생한테 뭘 뜯어먹으려고.”
“짠 하자고 새끼들아!”
마법사들이 잔을 부딪치자, 이안도 옆에서 우유잔을 가볍게 들어 합세했다.
째앵!
청명하고 맑은 소리와 함께, 다들 동시에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실로 오랜만에 갖는 즐거운 자리다. 놀고 먹은 건 둘째 치고, 언제 정시 퇴근을 했는지 가물가물할 정도.
“그래도 아레나 장관님이 정이 있어. 그래도 나움 동생이라고, 수석으로 합격하니까 일정 싹 다 빼 주시고.”
“여기, 회식비까지 받아 왔지롱! 캬캬캬! 모자라면 아레나 장관님 이름으로 외상 달아 놓으면 됨.”
“오늘 당직인 놈들 불쌍하다, 불쌍해.”
“그놈들을 추모하며, 우리 한 잔 더 하자.”
“사장님! 여기 술 끊어지지 않게 계속 내주세요. 쭉쭉! 무슨 느낌인지 아시죠?”
“예! 알겠습니다!”
식구 같은 나움의 동생이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행정부 수석 합격자다. 한스는 그 누구보다 빠르게 승진할 것이며, 언젠가 행정부의 요직에 오를 터. 마법부와 긴밀히 업무 협조를 하기 위해서는 미리미리 인연을 더 쌓아 두는 것이 좋다.
‘뭐. 다들 거기까지는 생각 안 하는 것 같지만.’
이안은 달콤한 우유를 한 모금 마시며 복잡한 생각 따위 지워 버렸다. 이제 곧 제국합동모병이 진행될 것이다. 그때 되면 정시 퇴근만 하던 자신도 남아서 일을 봐야 할지도 모른다. 학업까지 생각하면 그 누구보다 바쁜 생활을 하게 되겠지.
이안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한스가 눈썹을 까딱거리며 웃었다.
“난 이제 끝났는데.”
저게 놀리네. 이안이 무어라 대꾸하려던 차였다. 맥주 거품을 윗입술에 잔뜩 묻힌 마법사가 이안에게 물었다.
“근데 이안아, 오늘 잭이랑 랭노드 귀환하는 날 아니냐?”
“예, 맞습니다. 뒤뜰에 수식 적어 놓고 퇴근했으니 마력만 주입하면 발동될 겁니다.”
“아, 그렇구나. 연락 남겨 놓고 올걸 그랬다. 이쪽으로 오라고.”
“당직 선 애들이 말해 주겠지. 근데 출장 갔다가 바로 놀러 오기에는 너무 피곤하지 않을까?”
“장관님이 휴가도 준다 했잖아. 그리고 잭 그놈, 여기 꿀맥주라면 사족을 못 쓰는 놈이야.”
이안은 불현듯 시계를 확인했다. 귀환하기로 약속한 시각이 거의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창문 밖으로 고개를 살짝 내밀어 황궁 쪽을 쳐다봤다. 노을빛 지는 하늘 아래, 조금씩 어둠이 피어오르며 포탈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제대로 작동되고 있구나.’
마물을 확인하고 처리했다면 보고서 올리느라 시간이 또 걸릴 것이다. 마법사들은 두 사람이 올지, 안 올지 내기하며 시답잖은 대화만 나눠 댔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시간은 물 흐르듯 흘러 어느덧 하늘이 어둑해졌다. 이안은 문득 다시 바깥을 쳐다봤다.
“……?”
창틀에 기대어 무언가를 걱정하는 듯한 이안. 그를 본 나움이 슬쩍 다가왔다. 이안의 표정, 아니,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포탈이 안 닫히네요.”
“어?”
“분명 한 시간 전에 열렸는데.”
이안의 말에, 마법사들이 동시에 시계를 쳐다봤다.
포탈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데에는 그만큼 큰 힘이 든다. 그런데 한 시간째 열려 있다? 이는 아레나가 직접 포탈 유지에 개입하고 있다는 걸 뜻했다. 그리고 잭과 랭노드가 아직 복귀하지 않았다는 것도.
“뭐지? 보통 30분이 최대잖아.”
귀환 시 각종 예측 못 할 사정이 생길 것을 대비하여, 30분간의 유예 시간이 주어진다. 그 안에 마법부에 연락을 보내든, 아니면 직접 귀환을 하든 반응을 보여야 하는 게 그들의 규칙이었다.
지이잉! 지잉!
그 순간, 마법사들의 눈앞에서 반짝이는 불꽃이 튀어 올랐다. 검붉게 이글거리는 신호.
“……!”
“……!”
마법사들이 놀라서 동시에 일어났다. 영문 모를 한스만 맥주를 마시다 말고 캑캑거렸고, 이안은 재빠르게 로브를 집어 들었다.
“한스, 미안해. 긴급 호출 신호야.”
“어? 마법부? 괜찮아. 얼른 가.”
“사장님, 여기 돈 두고 갈 테니까 알아서 계산해 줘요. 한스, 미안하다 뒷정리 좀 부탁할게.”
이안을 선두로 주점 밖으로 나간 마법사들이 곧장 하늘로 날아올랐다. 나움은 걱정하는 한스의 등을 토닥이며 급하게 덧붙였다.
“나중에 연락할게, 한스. 집 먼저 들어가 있어.”
“형, 위험한 일은 아니지?”
“…모르겠어. 나도 처음 있는 일이라.”
긴급 호출 신호. 위급 상황 발생 시, 황궁 밖 마법사들을 모두 불러 모으는 장관의 특권이다. 10년째 마법부 생활을 하고 있지만, 이런 경우는 없었다.
“형! 조심해! 이안아, 너도! 다들 조심해요!”
한스는 창문 밖으로 날아가는 마법사들에게 소리치며 한숨을 내쉬었다. 테이블 위에는 갓 나온 따끈한 음식들이 김을 모락모락 풍기고 있었다.
* * *
촤아아악!
제일 먼저 도착한 이안이 마법부 안으로 들어섰다. 마법사는 보이지 않고, 직원들만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그들은 이안과 마법사들이 돌아온 것을 보고서 뒤뜰 쪽을 가리켰다.
“정원으로 가 보세요!”
타앗!
이안과 마법사들은 로브를 휘날리며 정원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눈에 보이는 것은 굳은 채 서 있는 당직들과 바닥에 주저앉은 채 이마를 짚고 있는 아레나.
“장관님?”
이안의 부름에 아레나가 고개를 돌렸다. 처음 보는 눈빛이다. 분노와 슬픔 그리고 망연자실함… 그 모든 게 복합적으로 휘몰아치는 눈동자.
그녀 앞으로, 나란히 누운 두 구의 시신이 보였다. 하얀 천으로 덮여 있었으나 누구인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이게…….”
잭과 랭가드.
일주일 후 돌아온다던 그들은, 처참한 몰골로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