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947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947화(947/951)
제947화. 갑작스러운 상황
침묵이 무거웠다.
이안은 손끝이 덜덜 떨리는 걸 애써 숨기려 옷자락을 길게 잡아당겼다. 맥주를 한껏 들이켠 마법사들이었지만, 날카롭도록 시린 상황에 정신이 번쩍 든 지 오래다.
“아레나 장관님.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이안의 물음에 그녀는 잭과 랭노드의 시체를 힐끗 본 다음,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시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길래 우리 쪽에서 사람을 보내려고 했어.”
기다림. 별것 아닌 간단한 출장이라 여겼건만, 시간이 갈수록 아레나는 자신이 판단 실수 했다는 생각에 초조해졌다. 아레나가 당직 마법사에게 포탈을 넘어가 보라 명령하려는 순간이었다.
“그, 저희가 마법사님들 시신을 찾아서 올라왔구먼유. 마침 사다리 닿을 만큼만 높아서리, 마을 사람들끼리 이렇게 저렇게 해서…….”
말소리 난 쪽으로 마법사들의 시선이 움직였다. 그러고 보니 낯선 자들이 모여 있었다. 당연히 황궁에 볼일 보러 온 외부인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그들은 잭과 랭노드가 파견 간 지역의 인근 마을 주민이었다.
“잭과 랭노드가 붉은숲으로 들어간 게 일주일 전, 그러니까 그쪽으로 가자마자 바로 일에 착수한 거야.”
별일 아닐 거라고, 그 어떤 마물이라 할지라도 마법사 둘이 있는 이상 금방 끝낼 거라고, 두 사람은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마법부 전체가 그리 여겼다. 지난 10년간의 마물 전쟁에서 이미 전반적인 마물 놈들의 위험성을 확인했고, 다시 힘이 올라오곤 있다 한들 두 사람은 정예 중의 정예다. 그동안 그 누구보다 많이 바리엘 외곽지를 돌며 전투에 참여한 마법사들이지 않나.
“그래서요?”
이안은 처참하게 쓰러져 있는 시체를 보며 되물었다. 그들의 목과 가슴, 복부 쪽에 구멍이 뚫려 있다. 이는 지난 보고서에서 봤던 그 자상과 같은 것이다.
이안의 물음에 아레나 대신 마을 사람들이 대답했다.
“마법사님 돌아가시는 날짜를 알고 있으니, 저희는 그냥 일상생활 하면서 기다렸지요. 마법사님이 어지간히 알아서 일 보시고 돌아가실까 싶어서…….”
“아니, 근데 어젯밤까지 소식이 없는 겁니다요. 분명히 일 일찍 끝내고 우리 주점에서 같이 술 마시기로 했는데, 이거 뭔가 이상하다 싶어서 마을 사람들끼리 수색대를 꾸려 붉은숲으로 들어갔습니다.”
횃불을 들고, 데라족의 무기로 무장한 다음 동네 사냥개들까지 다 풀었다. 그 덕분에 해가 뜨기 전에 두 사람의 시신을 발견할 수 있었고, 수습하여 마을까지 이송한 것이다.
“…수상한 점은?”
아레나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침묵 속에서 완전히 말라 버린 음성이었다.
“저번 사냥꾼 때도 그랬고, 이번 마법사님들도 그렇고, 사실 붉은숲에서는 별다른 이상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마을 의사 말로는 도, 돌아가신 지 사흘이 넘은 것 같다 하니…….”
두 마법사가 목숨을 건 사투를 벌였지만, 인근 마을에서는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건 둘 중 하나다.
“기습이거나, 상대가 월등히 강한 놈인가 보군.”
헤일이었다. 그는 용병 시절의 경험을 떠올리며 궐련을 물었다. 그러고는 시신 가까이 다가가 착잡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훑었다.
“기습이라고 해도 마법사가 둘이었습니다. 만만치 않은 놈인 건 확실해요.”
“어, 맞아. 아무리 기습으로 뒤통수를 갈겨도 둘을 동시에 처리하기에는 어렵지. 두 사람의 경계가 완전히 풀려 있었더라면 몰라도.”
“그게 무슨 말인데?”
알 수 없는 말에 마법사들이 인상을 찌푸렸으나, 이안은 작게 중얼거렸다.
“‘인간형’일 수 있다는 건가요?”
“맞아. 어린 소녀, 길 잃은 노인, 혹은 찾고 있던 마물에게 당한 부상자 같은. 그런 모습이라면 두 사람도 의심하지 않았겠지.”
인간형 마물. 이게 사실이라면 상당히 까다로운 문제가 된다. 인간의 형태에 가까운 마물일수록 지능적이고 강하기 때문이다.
100년 전의 마물 전쟁에서 기록되어 있듯, 과거 토올룬의 왕이 대표적인 인간형 마물의 표본이었다. 사람처럼 행동하고 사람처럼 지각하지만, 결국에는 악의 근원인 것들.
“확실한 건 아니지만 가능성을 열어 두는 게 좋겠어. 황궁 부검의는 불렀습니까?”
“그래. 곧 오겠지.”
헤일의 질문에 아레나가 작게 대답했다. 그녀는 적잖은 충격에 빠져 보였다.
지난 10년간의 전쟁에서 단 한 명의 부하도 잃지 않은 그녀였다. 황궁친위대가 마검사를 잃을 때 마법부는 단 한 명의 마법사도 잃지 않았다며, 그 저력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고 떠들어 대는 언론의 소란을 기꺼이 영광스럽게 생각했던 그녀다.
“하, 씨발.”
근데 부하를 잃었다. 그것도 정체 모를 마물에게, 가이아의 평화 끝자락을 붙잡은 이 순간에, 어떠한 경고도 예고도 없이 말이다.
원래 죽음이란 그런 것이지만, 아레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부하를 잃는다는 게 이런 감정인 줄 알았다면, 영광이고 뭐고…….
“돌아 버리겠네, 진짜.”
“장관님.”
아레나가 자책하며 입술을 깨물자, 마법사들이 다가와 그녀를 위로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속이 타들어 가는 건 똑같았다.
잭과 랭노드, 그들의 남은 가족에게는 뭐라고 전할 것인가? 너무도 귀한 신의 자식들이 허무하게 목숨을 잃은 건, 제국민에게 또 무어라 설명할 것인가?
“일단 이번 일, 새어 나가지 않게 해.”
아레나는 몸을 일으키며 나지막이 지시했다. 저 멀리서 황궁 부검의가 달려오는 게 보였다.
“마법사 둘을 상대할 만큼 강력한 마물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면 혼란에 빠진다. 아직 놈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 다행히 붉은숲은 유동 인구가 많지 않고, 북쪽에서도 외곽지니 아스타나의 도움을 받아서 조사를 진행한다.”
“알겠습니다.”
“대신 제국민들에게는 다른 이유로 북쪽 붉은숲 인근 통행금지령 내리고, 그쪽 마을. 이름이 뭐라고 했지?”
“토보로 마을입니다.”
“그래. 토보로 마을. 그쪽도 거주민 전원 아스타나 쪽으로 대피하도록. 마을이 비면 우리가 조사단 거점으로 쓰겠다.”
“아…….”
촌장으로 보이는 이는 난감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수확기에 들어선 것도 그렇고, 당장 마을을 비우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피해 입은 것이 없다. 그 마물이 붉은숲을 통해 이미 다른 쪽으로 이동했을지도 모를 일 아닌가.
“보상을 원하나?”
한참이나 머리를 굴리던 촌장이 아레나의 제안에 눈을 반짝이며 고개 들었다. 하지만 그는 얼굴을 굳힌 채 가로저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아닙니다. 최대한 마법사님들의 조사에 협조하겠습니다.”
아레나의 눈동자가 냉랭하다 못해 살벌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든, 붉은숲을 다 태우는 한이 있더라도 놈의 정체를 확인한 다음 머리를 잘라 짓밟겠노라는 결의가 느껴졌다.
“포탈을 다시 열어 줄 것이다. 그대들은 먼저 돌아가서 마을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전하고 준비하라. 정확히 언제 다시 연락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예, 알겠, 알겠습니다.”
“이안.”
아레나가 이안에게 포탈을 다시 열라 지시했다.
바닥에 적힌 수식은 소란으로 인해 반쯤 지워져 있었지만, 이안은 막힘없이 새로 써 내려갔다. 이번에는 일반인이 사용한다는 걸 고려하여 고도를 최대한 바닥과 맞물리게.
지이잉. 지잉.
마을 사람들은 뒤에서 갑자기 나타난 포탈에 화들짝 놀라며 흠칫거렸다. 그러고서 아레나와 마법사들에게 꾸벅 인사한 다음, 조심스레 포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럼,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그래.”
그들은 누워 있는 잭과 랭노드를 힐끔거리다가 이내 포탈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외부인이 사라지자 부검의가 와서 마법사의 시체를 확인했다.
“아, 이게…….”
“조심히 옮겨. 그리고 철저하게 분석해.”
“알겠습니다. 장관님.”
“보고서는 나한테 바로 올리고, 보좌관.”
“예.”
보좌관은 메모지를 팔에 받치고서 연신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었다. 마법사들이 긴급 호출을 받고 도착하기 전, 마을 사람들의 진술을 기록한 것이었다.
“금방 정리해서 공유하겠습니다.”
부검의가 시체를 옮기고 보좌관이 사무실로 뛰어가는 동안, 아레나는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서는 움직이지 않았다.
마법사들은 잭과 랭노드의 피가 말라붙은 풀밭을 보며 제안했다.
“이번에는 제가 가겠습니다.”
“예, 저도요.”
“두 명이 아니라 다섯 명 정도로 조사단을 꾸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확실히 준비해서 가도록 하죠. 잭이랑 랭노드, 너무 가벼운 마음으로 갔어요.”
별거 아닐 거라고, 사냥꾼을 죽인 마물이라고 해 봤자 그들의 마법 앞에서는 하찮은 미물일 것이라고, 지난 10년간의 승리가 그들에게 자만과 오만의 판단을 선사했다.
“저도 가서 잭과 랭노드의 원수를 갚겠습니다. 시발새끼, 어떤 놈인지 모르겠지만 두 사람 몫까지 아주 잘근잘근-”
“됐어.”
아레나가 말을 잘랐다. 한차례 울분을 쏟아 낸 그녀의 감정은 고요했다. 이안은 처음 보는 아레나의 눈빛에 자신도 모르게 긴장했다.
“곧 있으면 제국합동모병 기간인 거 잊었어? 보호막 치고, 혹시 마검사가 있는지 물색하려면 인원이 많은 게 좋아.”
그녀가 한숨을 내쉬며 궐련을 꺼내자, 옆에 있던 헤일이 불을 붙여 주었다. 그는 아레나가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이미 눈치챈 것 같았다.
“내가 간다. 그리고 같이 갈 인원은 총 셋으로 한정하고. 내일 중으로 전달할 거니까 그렇게 알아.”
“장관님이 직접 가신다고요?”
“왜?”
모병 기간에 마법부의 업무 지침은 마력 소모를 최소화하는 것. 임무에 투입하는 인원을 늘려 마력 소모를 분담하는 게 정석이었다. 그런데 셋만 투입한다니?
게다가 노련한 잭과 랭노드가 당한 이상, 어지간한 마법사로는 놈을 잡거나 추적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또 보냈다가 시체로 돌아오는 걸 볼 바에, 내가 가서 처리하는 게 낫지.’
아레나의 결정에 마법사들은 한참이나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말리고 싶지만 말릴 명분이 떠오르지 않은 게다. 그들은 이안을 힐끔거렸다. 이럴 때 똑똑한 이안이 한 마디 덧붙여서 아레나를 좀 말려 주면 좋으련만.
“장관님이 직접 가시면 소문을 막기 힘들어집니다.”
그렇지! 장관의 동선은 비밀에 부칠 수 없다. 의문을 가지는 자들이 생길 것이고 결국에는 중앙 전체에 소문이 날 것이다! 비약 같아도 가능성 있는 가정이었다.
“제국합동모병 기간이라 시끌시끌해서 정신없을걸? 마법부 장관이 외근 좀 나갔다고 신경 쓸 만큼 한가한 인간들 없어. 적어도 여기 황궁에는.”
전국, 아니, 가이아 전역에서 수천 명의 인재가 몰려들어 힘을 겨루고 자신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자리다. 마법사들 수가 적으면 업무가 돌아가지 않으니 의아하게 보겠지만, 장관 한 명을 비롯한 소수의 인원이 자리를 비우면 티도 안 날 것이다.
“그리고 이안이, 네가 있잖아.”
“그런 말씀 마십시오.”
“겉치레로 하는 말 아니야.”
여차했다가는 아레나만큼 거대한 마력을 사용할 수 있는 이안이 있다. 이안을 비롯해 헤일 등의 몇몇 실력자가 딱 버티고 있다면, 행사 진행에는 무리가 없을 터다.
“이번에는 내가 간다.”
아레나는 딱 정했는지, 토 달지 말라는 듯 단호하게 선언했다.
“내가 가서, 딱 정리하고 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