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949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949화(949/951)
제949화. 이능력자들의 결투
“일반인 참가자 쪽 상황은?”
“참가자들을 일일이 확인하고 있는데, 마력운용자나 마검사의 자질이 느껴지는 자는 아직 없다고 합니다.”
마법사의 물음에 서류를 넘기던 이안이 대답했다.
곧 시작될 대련을 앞두고 여기저기서 열기가 넘쳐 흐르다 못해 터질 듯 뜨거웠다. 바르사베와 베릭 역시 각자의 구역으로 가 몸을 풀고, 경건하게 기도하고, 상대에게 욕설을 날리며 나름의 준비를 하는 게 보였다.
“이번에 참가자가 5천 명 남짓이라 하지 않았나?”
“맞습니다. 한데 오늘 보니 예상보다 조금 웃돌 것 같습니다.”
“근데 그중에서 단 한 명도 없단 말이지…….”
마법사가 속상하다는 투로 중얼거리자, 이안이 덧붙였다.
“제가 가서 다시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래. 교차 검사해 보자고. 저쪽엔 덜렁대는 애들뿐이니까.”
일반인 시험장 쪽으로 간 마법사들이 들으면 즉각 항의할 말이었지만, 이안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그래도 일단 마검사 둘은 확보하였으니 이번 시험, 수확은 좋은 편입니다.”
저기, 바르사베와 베릭 말이다. 마법사는 서류 끄트머리로 이마를 긁적이며 꿍얼거렸다.
“황궁친위대만 좋은 일이지, 뭐.”
마법부는 얼마 전에 동료 둘을 잃었다. 가슴속 아려 오는 빈자리는 차치하더라도, 물리적으로 일손이 부족해진 탓에 마법부엔 비상이 걸리고 말았다.
그 탓에 지금껏 ‘이안은 야근시키지 않는다’를 고수하던 아레나의 철칙도 깨지지 않았던가.
“황궁친위대가 단단해지면 저희도 좋은 일입니다.”
“이안아. 가끔 보면 넌 너무 애늙은이 같을 때가 있어.”
“그런가요?”
부정하지 않고 가볍게 웃는 모습에 마법사는 할 말을 잊어버렸다.
그때, 어디선가 호각이 울렸다. 시험을 시작한다는 신호. 이안과 마법사들은 미리 준비한 격투장에 보호막을 올렸다.
지이잉! 지잉!
무려 스무 개에 달하는 공간을 분리하여 각자 독립적 보호막을 세운 것이다. 이를 처음 본 사람들은 신기하다는 듯 손으로 매만졌고, 곧 직원들의 안내가 이어졌다.
“안으로 들어가면 승패가 가려지기 전까지 나올 수 없습니다. 그 어떤 수단으로도 보호막은 깨지지 않으니, 참가자들은 최선을 다하여 자신의 역량을 보이길 바랍니다.”
“만약에 깨지면? 내가 물어 줘야 하는 거 아니지?”
험악하게 생긴 사내가 보호막을 퉁퉁 두드리며 씩 웃었다. 그 오만한 태도에 직원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그러자 가까이 있던 마법사가 방긋 웃으며 안내했다.
“보호막을 깨는 자가 있으면 남은 시험과 관계 없이 바로 특등 합격입니다.”
“뭐? 정말?”
“그럼요. 안 그래, 이안?”
마법사의 물음에 이안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사들이 힘을 합치고 있긴 하지만, 중심을 잡고 마력을 분산, 보호막 유지에 힘을 쓰고 있는 건 전적으로 이안이었다. 보호막을 깨트린다는 건, 곧 이안의 마력을 파훼했다는 것. 마법사도 아니면서 천재 마법사의 힘을 꺾어 눌렀으니, 볼 것도 없이 곧바로 모셔 갈 것이다. 깰 수만 있다면 말이다.
“그거 좋은데?”
“며칠 동안 개고생 안 해도 되고.”
“어이, 그렇다고 보호막 깨는 데만 집중하지 말라고! 네 상대는 나니까!”
“겸사겸사하면 되지 않겠어? 크하하핫!”
참가자들이 들뜬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이에 바르사베는 주먹에 보호대를 차며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 댔다. 꼬락서니들을 보니, 다들 이능력 하나만 믿고 무뢰한처럼 살아온 시정잡배 같다.
“어이, 예쁜이. 길게 길게 놀자고?”
상대가 능글맞게 인사하자, 바르사베는 대꾸하는 대신 검을 빼 들었다.
그러자 반대편에 있던 베릭이 헛소리를 들었다는 듯, 보호막에다 얼굴을 대고서 소리쳤다.
“예쁜이? 저 새끼 눈깔 삐었네! 바르사베! 저런 놈한테 지면 넌 진짜 저기 다리 위에서 뛰어내려라.”
“닥치고 너나 잘해.”
바르사베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격투장 위로 올라섰다. 저 먼 2층, 시험을 참관하기 위해 자리한 황궁친위대원들이 보였다. 어릴 적부터 삼촌, 이모처럼 따르며 가까이 지냈던 이들.
그리고 무엇보다-
‘아버지.’
헤르치 대장이 팔짱을 낀 채로 바르사베 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 자리에서 모든 걸 보여 주겠노라 결심하며 검 손잡이를 꽉 붙잡았다.
스윽.
“자, 시작해 볼까? 예쁜이?”
“…너는 그 혀부터 잘라야겠다.”
“뭐?”
촤아아악!
눈 깜짝할 사이에 상대의 눈앞까지 다가온 바르사베. 그녀의 눈이 번쩍 빛나며 주위로 마력이 휘몰아쳤다.
사내는 옆구리로 들어오는 검날의 기운을 느끼고 반사적으로 능력을 개방했다.
“……!”
“큰일 날 뻔?”
바르사베의 검을 맨손으로 막은 사내. 그의 손바닥이 강철로 변해 있었다. 몸 일부분을 변질시켜 강화하는 이능력자다.
바르사베는 빠르게 허리를 돌려 반대쪽을 공격했지만, 이번에는 옆구리 전체가 강철로 변했다. 힘없이 튕겨져 나온 검날. 찢긴 옷자락 아래로 시커먼 금속 피부가 드러났다.
“크하하핫! 아가씨! 미안하지만 다치기 싫으면 여기서 포기하라고! 예쁜 얼굴에 상처라도 나면 마음 아프잖아?”
바르사베는 검날이 나간 걸 확인했다. 그녀는 혀를 쯧 차며 검을 버리고는 허리춤에서 단검을 빼 들었다.
사내는 끝까지 건들거리며 천천히, 오만하게 다가왔다. 어떻게 해도 벨 수 없으니, 결국 이기는 건 자신 아니겠는가?
“…….”
바르사베는 두 손으로 단검을 포개어 잡고서 상대를 찬찬히 살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빛과 같은 속도로 그의 주위를 돌며 빈틈을 찾아 마구잡이로 찔렀다.
푸욱! 푹!
촤아아악!
하지만 사내의 강철 몸은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았다. 되레 마치 숙녀에게 기회를 주겠다는 듯 두 손을 번쩍 들고서 여유롭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촤아악! 쉬익!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법부와 황궁친위대 참관인들이 동시에 속삭였다.
“까다로운 상대네요. 마법사면 몰라, 마검사가 처리하긴 좀 어렵겠어요.”
“바르사베가 ‘검’을 부를 수 있으려나.”
“그건 모르겠는데. 대장님, 어떻습니까?”
친위대원들의 물음에도 헤르치는 팔짱만 낀 채로 침묵을 유지했다.
한편, 마법부 측에서도 바르사베의 고전에 안타까워하며 침음했다.
“크으, 저 새끼 저거, 확 통째로 불살라 버리면 되는데.”
“이안아, 바르사베가 지지는 않겠지?”
“뭐, 찔러도 공격 들어가는 게 없으니까 아무래도 지구전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하필 바르사베한테 제일 취약한 부분 아니야?”
이안은 난간에 기대어 바르사베의 공격을 자세히 살폈다. 번개보다 빠르고, 바람처럼 상대의 온몸을 감싸는 검이다. 그걸 가만히 보던 이안의 입가에 미소가 돌았다.
“괜찮습니다. 누님은 지금 확인하고 있어요.”
“확인? 무슨 확인?”
마법사들이 이안의 말에 눈을 가늘게 뜨고 지켜봤지만, 그들은 알아챌 수 없었다. 그저 통하지 않는 공격을 끝도 없이 퍼붓는 안타까운 상황만 보였다.
“이제 슬슬 지루해지는데, 아가씨. 그만하고, 우리 밖에 가서 놀까?”
두 손을 번쩍 들고 허세를 보이던 사내가 하품을 쩌억 하며 중얼거리는 순간이었다.
푸욱!
그의 입안으로 단검이 꽂혔다. 물론 반사적으로 강철로 변하여 상처 하나 입지 않았지만.
의외의 공격에 다들 놀란 눈치였다. 단 한 사람, 바르사베만 빼고. 그녀는 단검을 까드득 비틀며 중얼거렸다.
“…날카로운 부분에만 반응하네?”
피부를 베는 공격에만 강철로 변하여 스스로를 보호한다는 걸 알아챈 것이다. 혀가 철로 변한 남자가 당황스럽게 눈만 깜빡거렸다.
휘익!
퍼억!
그렇다면, 이자에게 검은 소용없다. 바르사베는 바로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고, 뒤돌려차기로 있는 힘껏 남자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
촤아아악!
쿠웅!
입에 단검을 문 채 공중에 붕 뜬 남자는 보호막까지 날아가 부딪혔다. 여성의 몸에서 나왔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굉장한 힘. 등골이 오싹해진 남자가 단검을 뱉으며 일어서려는 순간-
“누워 있어.”
바르사베가 무릎으로 그의 턱주가리를 돌려 버렸다.
“……!”
사내는 본능으로 느꼈다. 이건 졌다. 전력을 다해도 안 되겠다.
하지만 그리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바르사베는 일말의 자비도 없이 계속해서 주먹을 퍼부었고, 마지막에는 어깨에 올라앉아 그의 목을 팔로 조르기 시작했다.
꽈아아악.
“커, 커허헉, 컥…….”
사내가 바르사베를 팔로 쳐 대며 벗어나려 애썼지만, 그녀는 단단히 딱 붙잡은 채로 꼼짝하지 않았다.
20초 정도 지났을까. 결국 사내의 눈이 돌아가더니 흰자를 보이면서 온몸의 힘이 빠졌다.
쿠웅!
앞으로 쓰러진 사내가 입을 벌리고 기절하자, 바르사베는 단검을 집어 놈의 머리채를 붙잡았다. 그러고는 듣지 못할 상대에게 중얼거렸다.
“내가 말했지? 혀 잘라 준다고?”
후드득, 바르사베의 머리칼과 턱 아래로 땀이 비처럼 쏟아졌다. 짧은 시간 동안 어마어마한 체력을 소모한 탓이었다. 게다가 사내를 아기 다루듯 제압한 폭발적인 힘까지.
이를 지켜보던 참관인들의 눈이 빛났다. 검으로 쓰러뜨린 것은 아니지만, 그녀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강한 전사인지 잘 보여 주는 결투였다.
“누님.”
이안이 바르사베를 부르자, 그녀는 사내의 머리채를 잡은 채 웃었다.
“아아. 걱정 말라고.”
확 씨. 마음 같아서는 잘라 버리고 싶지만, 혹시 모르지 않나. 황궁친위대 동기가 될지. 바르사베는 놈의 주둥아리에 마지막으로 주먹을 때려 박고서 일어났다.
“134번, 시험 종료. 바르사베 승, 알카에만 패.”
시험관이 호각을 울리며 결과를 알리자, 이안이 보호막을 거두었다. 동시에 치유 마법사들이 그쪽으로 날아가 사내의 상태를 확인했다.
바르사베는 수건으로 땀을 훔치며 2층, 자신의 아버지가 있는 쪽을 올려다봤다.
씨익.
바르사베가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며 웃자, 헤르치는 어깨를 으쓱하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뿌듯함인지 아니면 대견함인지, 그것도 아니면 말썽꾸러기라 여기는 것인지 모를 미소였다.
“바르사베, 잘했다! 이쒸, 역시 그 정도는 해야 내 밥이라 할 수 있지.”
베릭이 보호막에 얼굴을 밀착시킨 채 환호했다. 그녀는 땀을 닦으며 베릭 쪽을 쳐다봤다.
“넌 뭐 하냐?”
나 끝낼 동안 아직 시작도 안 했네?
다른 격투장에서 굉음과 폭발이 연달아 터지는 것과 달리 베릭의 격투장은 조용했다. 바르사베는 합격증을 받으며 베릭의 상대를 살폈다.
“몰라. 나도 싸우고 싶은데, 상대가 반응이 없어.”
“사람 맞아?”
“먹는 건 아닌 것 같아.”
꾸물꾸물, 형체 모를 진득한 액체가 덩어리져 뭉쳐 있는 것 아닌가.
바르사베는 인상을 찌푸렸고, 마법사들과 황궁친위대원들은 서류를 확인하며 혀를 끌끌 차 댔다.
“아, 베릭 상대가 저 사람이구나…….”
“저거 시간 주면 안 될 건데.”
베릭은 지루하다는 듯 아예 바닥에 앉아서는 검 끝으로 상대를 쿡쿡 찔렀다.
“이보쇼. 이제 우리도 좀 싸우자. 바르사베보다 먼저 끝내려고 했는데 이러면 곤란-”
그때였다. 조용하던 액체 덩어리가 꾸물거리더니, 갑자기 몸을 부풀리는 것 아닌가. 조금씩, 조금씩, 하지만 끝도 없이 몸을 부풀렸다.
이를 지켜보던 이안이 중얼거렸다.
“…보호막 면적을 재설정하겠습니다.”
높이 십수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몸집. 그리고 독성 가득한 액체를 후드득 흘려 떨어뜨리는 입…….
베릭은 멍하니 이를 올려다보다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했다.
“엥?”
…이거, 사람 맞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