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98
제98화. 확신
몬느에 탄광의 활기는 반쯤 죽어버린 상태였다.
일단 여름날에 있었던 영지의 혼란으로 광부들이 죄다 곡괭이를 놓은 게 컸다. 마을로 내려와 가족들의 안위를 지키고, 먹을 것을 해결하다 보니 벌써 겨울이 되지 않았나.
작업하기에는 여름보다 겨울이 수월하지만, 굴라의 배급으로 인해 창고가 그득하여 굳이 돌아올 이유가 없었다.
‘석탄 수익이 그리 큰 것도 아니고, 어차피 채굴하면 할수록 자원이 줄어들 터인데 갖고 있다가 좋은 시기에 힘을 실으면 되겠지.’
다그닥다그닥.
밤길이라 그런지 마차가 험하게 달렸다. 얌전히 이안의 옆에 앉아있는 매가 고개를 쳐들며 갸웃거렸다. 대체 자신이 왜 이걸 타고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미안하다. 하지만 나는 너를 따라갈 수도 없고, 교감할 수도 없으니. 탄광으로 가서 보내주마.”
저택에서 먼저 날리면 뒤쫓을 수 없이 놓칠 게 분명했다. 회중시계는 출발한 지 벌써 한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슬슬 도착할 때가 된 것 같은데…….
끼익.
“이안 님. 여기서부터는 길이 너무 험해서 바퀴가 위험합니다. 걸어 올라가셔야겠어요.”
“그런가? 알겠네.”
이안의 마차가 멈추면서 뒤따르던 병사들 역시 멈추고 말에서 내렸다. 다들 랜턴을 준비하는 동안, 이안은 전사의 매를 하늘로 날려 보냈다.
“자, 서두르자. 매를 따라가면 된다.”
“숲으로 들어간다! 따라와!”
“랜턴을 중심으로 모여서 걷는다!”
달밤에 이 무슨 소란인지 모르겠다. 다행히 하늘에 구름이 없어 완전한 칠흑은 아니다. 이안은 병사들과 함께 형태로만 존재하는 길을 타고 올라갔다.
“저쪽이 탄광인가?”
“그렇습니다. 다 온 것 같습니다.”
“아, 저기!”
휘이이익!
탄광 입구에 서 있던 인영이 손을 뻗으며 휘파람 소리를 냈다. 그러자 하늘을 유영하던 매가 사뿐히 내려앉으며 날개를 펼쳤다.
“이안 님. 오셨습니까.”
“베릭은?”
이안은 주위를 둘러보며 베릭을 먼저 찾았다. 다른 전사들도 보이지 않았다. 혹여 다급한 상황인 것인가 싶었지만, 그를 마중 나온 전사의 표정은 그저 ‘황당’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안쪽에서 열심히 때리고 있긴 한데…….”
“때려? 무엇을? 기사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보면 아실 겁니다.”
입구로 들어서자 공기의 질이 확 달라지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안은 소매로 하관을 가리며 전사의 뒤를 따랐다.
“혹시 여기 오신 적 있습니까? 저는 처음이라.”
“나도 보고로만 들었지, 안쪽까지 들어온 것은 처음이네.”
생각보다 갱도가 널찍해서 놀란 참이었다. 천장도 비슷한 규모의 광산과 비교하면 높게 잘 뚫은 것 같고. 작업자들이 오가기에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왜 안쪽에서 그러는 거지? 혹여 열이라도 가해지면 위험할 터인데. 베릭 혈기로 봐서 탄광 천장이라도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되는군.”
이안의 장난스러운 물음에 전사가 호탕하게 웃었다. 웃음소리가 탄광을 울리자, 뒤따르던 병사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밤에, 탄광으로 들어가는 게 여간 공포스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죽을 일은 없을 것 같아 안도가 되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완전히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들어오자, 전사가 한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깁니다.”
개구멍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좁다란 입구. 벽이 무너지면서 생긴 균열인지, 정상적인 통로로는 보이지 않았다.
콰앙! 쾅!
채앵!
“하아, 하아…….”
“베릭. 그만하고 나와 봐. 내가 해보지.”
“아 진짜! 이거 뭔데!”
“나와 보라니까? 넌 기합 넣으면서 빼는 힘이 더 많은 것 같아.”
안쪽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베릭과 동행한 전사의 대화였다.
불빛이 희미하다 못해 꺼질 것 같은 밝기다. 아마 비상용 랜턴 하나만으로 여기까지 들어온 모양이다.
“베릭.”
“아! 이안!”
채앵!
베릭은 검으로 뭔가를 내려치고 있었다. 옆에서 랜턴을 든 병사가 앞서 걸으려고 하자, 이안은 그의 팔을 붙잡고 잡아끌었다.
“이안 님?”
“랜턴은 나와 전사에게 주고, 그대들은 다시 돌아가 갱도 입구를 지켜라.”
조금만 더 들어가면 베릭이 있지 않나. 혹시 모르니 병사들은 돌려보내는 게 옳았다. 상황이 벌어져도 큰 도움 안 될 테니.
“네? 아, 알겠습니다.”
목소리로 봐서 위험한 상황은 아닌 것 같다만, 명령이 갑작스러운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공기도 영 안 좋고, 냄새도 매캐한 것이, 병사들도 빨리 나가는 게 싫지는 않았다.
“어이, 맨 뒤부터 다시 나가자고!”
“나가? 진짜?”
“명령이다! 어서어서, 움직여!”
병사들은 그대로 왔던 길을 돌아나갔고, 이안은 전사와 함께 더욱 깊숙이 들어섰다.
쿵쿵.
이안은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긴장으로 인한 신체적 반응이 아니라, 강한 마력으로부터 느껴지는 일종의 외부자극이었다.
‘말도 안 돼. 왜 여기서 이런 기운이…….’
채앵! 챙!
“아오! 씨이바!”
“검 부러지겠다. 베릭.”
“오? 이안!”
베릭이 검을 휘두르고 있는 것은 반투명하게 빛나는 보랏빛 무언가였다. 안쪽에 기포가 있는 것으로 보아 액체성을 띄고 있는 것 같지만, 검은 그것에 흠집 하나 낼 수 없었다.
“이안. 이거 뭔데?”
“너는 내가 뭐든지 알 거라고 생각하는구나.”
“그래서, 몰라?”
“알지.”
푸울루라 하였던가. 메렐로프의 삼기사 중 대장이었던 자의 하반신이 그 안으로 들어가 반쯤 먹혀있는 상태였다. 자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사망 원인은 저 기이한 ‘광석’에 있는 게 분명했다.
“마력석의 일종으로 보이는데.”
베릭은 마력의 기운을 느끼지 못하는 건가? 이안은 랜턴을 들어 그의 안색을 살폈으나, 불그스름한 두 뺨이 검을 휘두른 탓에 그런 건지 아닌지 분간할 수 없었다.
“마력석?”
“일전에 브라츠에서 썼던 브로치 있지 않느냐. 그런 것과 비슷하게, 마력에 감응하여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된 광석을 말한다.”
“근데 이건 돌멩이가 아니야. 안쪽에 기포가 들어서 있다고.”
“보이는 게 다는 아니지. 잘라봐야 자세히 알겠지만, 아무튼 마력석이 확실하다.”
마력석에도 많은 종류가 있다. 황제 이안의 힘을 봉인했던 봉인석부터 시작해 음성기록이나 위치추적 따위가 가능한 것, 이공간을 만들어내 배낭 역할을 하는 것, 소지함으로 마력의 파장을 넓혀주는 것 등등. 마법의 끝을 알 수가 없듯 마력석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사는 어쩌다 저렇게 된 거지?”
이안은 그만하고 물러서라는 뜻으로 손짓했다. 검의 날이 다 빠지도록 마력석을 내려쳤나 보다. 베릭은 송골송골한 땀을 훔쳐내며 대답했다.
“추격하다 여기까지 왔지, 뭐. 확실히 매가 먹잇감 찾는 건 잘하더라고. 중간에 흔적이 끊어져서 혹시 여기로 숨었나 했더니 역시나더라.”
“발견했을 당시에는 숨이 붙어있었고?”
“응. 처음엔 기절하나 싶었는데, 금방 죽더라고.”
“어쩌다 끼었는지도 모르는 거군.”
“아래쪽 보니까 뭐가 흐른 흔적이 있긴 해. 아마 저거 액체였다가 무슨 자극으로 인해 딱딱하게 굳은 것 같단 말이지.”
베릭이 쭈그려 앉으며 중얼거리자, 이안은 그의 목덜미를 끌어 뒤로 잡아챘다. 그리고 가볍게 꿀밤을 쥐어 깠다.
따악!
“아악!”
“아픈 척하지 마라. 다들 겁도 없이, 혹여 저놈처럼 먹혀들어 갔으면 어쩔 뻔했나?”
“설마. 저렇게 딱딱한데?”
“갑자기 녹아서 덮치거나, 아니면 어디선가 계속 나올 수 있다. 쯧쯧. 하여간에…….”
이안이 휙 돌아보자, 전사들이 어색하게 시선을 피했다. 성정들이 어찌 이리 똑같은지 모르겠다.
단순하며 겁도 없고!
“자네들은 네르사른 님께 보고할 것이다.”
“아, 이안 님. 저희는 분명 돌아가자고 했거든요. 베릭 저놈이 꽂혀서는 꿈쩍도 안 하는 걸 어쩝니까.”
베릭은 이마를 슥슥 문지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데, 저게 마력석이면 많이 비싼 거지?”
“값을 매길 수가 없다.”
“계속 나오면 여기 대박인 거?”
“조사를 해봐야…….”
대꾸하던 이안의 대답이 흐려졌다. 마력석의 매장 정도와 확률 따위를 조사하기 위해서는 마법부의 도움이 필수적이었다.
그 말인즉, 마법부만이 마력석의 매립지를 짐작할 수 있다는 것과 같다.
“이안?”
이안은 기사의 시체가 박혀있는 마력석을 보며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 어쩐지.”
“뭐가? 뭐가아?”
“당장 저택으로 돌아간다. 광산은 폐쇄해. 아무도 들이지 말고 아예 입구에다 못을 박아버려라.”
“시체는 어떡해?”
“지금으로는 수가 없다. 일단 돌아간다.”
이안은 서두르라는 듯이 몸을 돌렸고, 쭈그려 앉아있던 베릭은 이안과 기사의 시체만 번갈아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전사들과 함께 이안이 가는 길을 밝혀줬다.
“갑자기 그러면 나 무섭다?”
“게일 황자의 주축 중 하나가 웨슬리 마법부 장관이지 않나. 어쩐지, 어쩐지! 수많은 변경 중 이곳에 혈안이 되어있나 싶었는데, 어쩐지!”
타닥타닥!
그들은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니, 확신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보고서 브라츠 영지를 노린 것이다. 인근에 마력석이 매립되어 있음을 짐작하였으니, 더더욱 놓칠 수 없었겠지.
‘그러니까 모든 게 이해되는군.’
그들에게 이만큼 완벽한 조건이 없었다. 접경한 야만족으로 인해 계속 쌓아 올라왔던 병력, 화친으로 황궁의 개입이 마침 필요한 상황, 데르가의 탈세. 게다가 인근에 매장된 마력석!
어째서 그렇게 기를 쓰고 몰린을 살리려 했는지도 알 것 같았다. 브라츠의 값어치가 이리도 컸으니, 이곳을 담당하던 몰린 역시 잃을 수 없는 말이었던 것이다.
“저택으로 돌아간다! 이곳은 당장 폐쇄하고, 일부는 남아 인근의 광부들에게 사안을 전해라.”
이안이 갱도를 나서며 소리쳤다. 마을에서 떨어져, 광부들만 모여 사는 임시거주지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떠들어대던 호위병들이 화들짝 놀라서 제자리를 찾았다.
“네. 알겠습니다!”
“어두워 힘든 건 알지만, 빠르게 좀 가지.”
“아, 네네. 어서 타십시오.”
조용했던 숲이 단숨에 소란스러워졌다. 한데 모여있던 랜턴 빛이 이곳저곳으로 흩어졌으며, 이안은 복잡해지는 생각에 이마를 짚었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베릭이 은근슬쩍 그를 돌아봤다.
“그렇게 골 때렸나?”
“뭐가?”
“칼질한 거.”
“…됐다. 그런데 마력이 느껴지지 않았던가? 나는 안으로 들어서면서 바로 감응되었는데.”
“응? 아니. 난 괜찮았어.”
마검사라 한들 어쨌거나 본질은 전사였다. 게다가 아직 미숙한 부분이 있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끼이익.
왔던 것만큼 달려, 다시 저택에 도착했다. 잠들지 않고 있던 해나가 이안을 맞이했고, 웃옷을 챙겨주며 물었다.
“욕실로 가십니까? 아직 로만드로 님은 집무실에 계시긴 합니다만, 아까 수프 먹고 계속 조셨거든요.”
“아니. 지하로 간다.”
“지하요?”
실로 오랜만에 하는 발걸음이었다. 이안은 망설임 없이 지하 계단을 밟았고, 이내 복도 끝 감옥 앞에 섰다.
“열어라.”
달칵.
창문이 없어 언제나 랜턴 불이 들어와 있는 감옥.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자고 있던 맥과 드고르가 벌떡 일어났다. 몰린은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무, 무슨 일인가?”
맥이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퍼졌다. 그들이 이제껏 방치되듯 살아있었던 건 이안이 결정을 못 내려서 그런 것이었다. 몰린과 일행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하여.
“몰린 경. 황궁에서 서신이 왔습니다.”
“선생님께는 손대지 말거라! 이놈!”
“몰린 경의 처분에 관한 내용이었지요.”
이안은 그를 빤히 쳐다보며 거짓말을 던져보았다. 희끄무레한 노인의 눈동자가 유독 잿빛으로 빛나는 것 같았다.
“그래. 무어라 하던가?”
“이제 곧 중앙으로 올라가야 하니, 정리를 하라 하시더군요.”
몰린은 담담하게 책을 매만졌다. 뭔가를 생각하는 듯싶었다. 사람 속마음이야 어떻게 알겠느냐만은, 이안은 어쩐지 그의 표정을 읽어내릴 수 있었다.
‘그럴 리가.’
도저히 못 믿겠다는 저 태도.
이안은 확신했다.
몰린이 마력석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