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1014)
1014. Episode of EVE 8
자.
그래서 왜 아일라 트라이스타가, 하필 여기에 쓰러져있는가.
아일라는 내 약혼녀고, 4막의 보스.
아무리 그래도 캐릭터 하나가 나락으로 떨어진다는데, 어떻게든 해주고 싶어서 켈터스랑 내가 대신 맞짱을 깐 부분도 없잖아 있다.
그런데, 이 녀석이 비뚤어지게 되는 계기가 켈터스전 대패가 아니었나?
“뀨으으….”
기묘한 소리를 내며 쓰러진 녀석의 얼굴을 잠깐 봤다.
상 위에는 저주의 구슬. 쓰러진 에르헬과 아일라.
유추하긴 어렵지 않다.
4막 아일라 트라이스타의 마력에는 부패와 중독의 저주가 섞여 있었으니까.
그 저주를 어디서 얻었나 했더니 에르헬과의 거래였나.
“우선 이 둘을 완전히 포박해라. 이브한테 가져간다.”
“일이 커지겠네.”
“음. 그렇겠지.”
“후우….”
실피아도 피곤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 나도 피곤하기 그지 없다.
***
우리의 보고를 들은 이브는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몇 번이고 되물었다.
“그러니까 에르헬은 붙잡았고…. 또 누가 있었다고요?”
“아일라 트라이스타가 있었다.”
“어째서…? 트라이스타가 문이 마족과 거래를? 아니 그럴리가 없는데….”
“우선 둘 다 저항하는 기색은 없다. 실피아가 감시중이다. 직접 만나보겠나.”
“네. 우선…. 목표였던 에르헬부터 만나보죠. 안내해주세요.”
“음.”
이브를 지하의 심문실로 안내했고, 의자에 앉아서 뚱하니 이쪽을 보고 있는 에르헬과 마주했다.
“검은 깃발의 간부. 에르헬 맞나요?”
“보면 알잖아? 학생회장님.”
“네. 보니까 아주 잘 알겠네요.”
이브는 슬쩍 오른손을 들어올렸고, 손 안에 무형의 기운이 맺혔다.
보통 쓰던 빛의 마력이 아니라…. 그보다 더 본질적인 순수한 폭력이다.
이브가 갑자기 강기를 깨달아 권성이 될리는 없고, 저 힘이 뭔지는 대충 알 것 같다.
삼계협정에 의거, 중간계에 들어온 마족을 반드시 죽일 수 있는 힘. 황실에 의한 즉결처형.
그렇군. 여기서 문답무용으로 그냥 죽여놓고 생각하겠다는건가. 패도를 걸으려 하십니까. 이브 폰 로엔그린.
에르헬도 장난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는지,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자, 잠깐…. 잠깐만.”
“뭐죠?”
“뭐든 다 말해줄게 그러니까 목숨만은 살려줘. 비밀기지도, 키메라 제작법도 다 주겠어.”
“그래야 할 이유가 있나요? 벌레는 찍어 눌러 죽이면 되는데….”
“아, 아으…. 으으으. 진짜, 전부 말해줄게!”
에르헬은 그 자리에서 머리를 박았고, 녀석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이브 녀석이 웃는 것을 보았다.
그렇군. 블러프인가.
이 녀석이 가볍게 살생을 입에 담는 녀석은 아니니까 말이야.
“그거 알고 있나요? 즉결처형이 아니라, 처형유예라는 기술도 있답니다.”
“뭐, 뭐…?”
이브는 빛의 구를 만들어내서 그 안에 무형의 힘을 담았다. 그리고 손가락을 튕겨 에르헬의 이마 안에 빛의 구슬을 천천히 심어 넣었다.
“황손 된 입장에서 마족을 보고 넘어갈 수는 없거든요. 이해해줄거죠?”
“어, 윽…. 들어와…. 뭔가…. 뭐야 이거….”
“몸에 아주 좋은거랍니다. 빛의 마력은 기본적으로 혈액순환과 체질개선 등 아주 좋은 능력이거든요.”
“헛…소리 하지, 마…. 그럼 그 안에 심은 힘은….”
“검은 깃발의 간부를 믿을 수 있을리 없잖아요. 당신이 도망치거나 비협조적이면…. 마력의 구가 깨지고, 그 안에서 내용물이 흘러나올지도 모르겠네요.”
“…….”
그렇군.
빛의 구 안에 즉결처형을 담아서, 몸에 박아넣은 후. 수틀리면 원격폭발로 ‘펑’ 이라는 건가.
“자. 그럼 길게 상담을 해볼까요.”
“뭐, 뭘 듣고 싶으세요?”
“우선 아일라 트라이스타와 어떤 관계인지 전부 말해주세요.”
“네, 네에…. 알겠습니다….”
에르헬은 급격히 쪼그라들어, 뭐든 대답하기 시작했다.
***
한 차례의 신문이 끝난 후, 그 정보를 들고 옆방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일라를 찾아갔다.
아일라는 이브를 보고 인상을 찌푸리다가, 나를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신이 왜 여기에 있죠? 저랑 같이 심문이라도 당하는 건가요?”
“아쉽게 됐지만, 나는 심문하는 역이다.”
“어머나. 당신이 저를요? 이브 폰 로엔그린의 아래로 들어간건가요?”
“상호 협조적인 관계다.”
“아, 그래요.”
아일라는 흥미를 잃었다는 듯 시선을 이브에게 돌렸고, 이브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아일라 트라이스타. 에르헬과 무엇을 거래하려고 했죠?”
“거래라뇨?”
“발뺌할 생각이네요. 에르헬이 전부 불었답니다.”
“…….”
그 말에 까득, 하고 아일라의 어금니가 맞물리는 소리가 들렸다.
“자. 대답하세요. 무엇을 거래하려고 했죠?”
“그걸…. 제가 대답해야 할 이유는 없어요.”
“당신.”
“아니면 서부의 맹주. 차기 가주인 저를 퇴학시킬건가요? 그 정치적 파장을 당신이 감당할 수 있어요?”
“…….”
아일라는 대놓고 당당하게 나왔고, 이브는 이를 악 물었다.
지지기반이 약한 이브 폰 로엔그린이 옥좌를 노리기 위해선, 아군을 만드는게 중요하다.
그리고 그건 반대로 말하면, 최대한 적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브의 이름으로 아일라의 퇴학을 명하는건 쉽지 않다.
그러면 뭐, 여기서는 내가 나서야지.
몇 가지 단서도 얻었고 말이야. 이브의 어깨를 톡톡 치고는 내가 나서겠다는 의사표명을 하니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일라 트라이스타. 하나 물어보마.”
“뭔가요. 이번에는 당신이에요? 제가 대답 할 이유는….”
“트라이스타 가문이 현재 위험한 상황인가?”
내 말에 녀석의 얼굴이 크게 구겨졌다.
그렇군. 그랬나.
눈치챈 단서는, 내년에 입학할 스피카 트라이스타 덕분이다. 그 녀석은 ‘가문이 망했으며’ ‘그 때문에 감정이 메말라버린’ ‘범죄자 가문의 딸’ 컨셉이었으니 말이야.
하지만 트라이스타 가문은, 올해는 멀쩡한 듯 싶다. 아일라가 뻘짓을 하면서 그대로 가세가 무너진 것 같다. 방금 전 서부의 맹주 운운 또한 최대한의 블러프겠지.
어떤 일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직 망하지는 않았으나 망해가는 도중인건가.
“다, 당신이 어떻게 그걸….”
“몰랐지. 그냥 추측했을 뿐이다.”
“뭣.”
“자. 그럼 어떻게 망해가고 있는지, 왜 네가 에르헬이라는 쓰레기와 거래까지 해야했는지 말해줄 수 있나?”
“그러니까 말 할 이유는….”
“아일라. 이 추문이 퍼지고, 네 가문이 멸망하면 이런 교섭의 기회조차 없다. 내년에는 네 여동생도 입학하지 않나.”
그 말에 녀석이 뚝 굳었다.
“그럼, 어서 말해봐라.”
“윽…. 으윽…. 알,겠어요. 서부는 지금…. 몬스터의 대량 증식으로 앓고 있어요. 그러니까….”
아일라의 말은 이랬다. 서부에 광산 슬라임이라는 몬스터가 증식했다. 그 때문에 폐광이 된 곳도 많아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다.
몇 번이고 신청했지만 중앙은 지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원래 심심하면 서부를 꺾어놓고 지갑으로 쓰는게 중앙이라고 한다.
“그래서…. 저는 그 몬스터를 처리하기 위해서….”
“옳지 못한 일이지만…. 그만큼 몰려 있었다는 거겠죠.”
이브마저 인상을 찌푸리고는 아일라를 동정했다.
“제가 할 말은 다 했어요. 자. 어떻게 할 거죠? 소문을 내고 퇴학을 시킬건가요?”
“그건….”
하여간 잔정은 많아서는….
이 녀석은 여기서 모질게 나가는 타입은 못 된다.
“아일라. 너는 아직 거래는 하지 않은 거지?”
“네? 뭐…. 그렇죠. 거래 직전에….”
“그러면 이건 없던 일로 만들 수 있겠군. 좋아. 블랙 마켓에는 안 간거다. 너는 거래를 하지 않은거고.”
“그래도 되나요?”
“여기서부터 본론이다. 광산 슬라임이라고 했나? 나는 그 녀석의 완벽한 퇴치법을 알고 있다.”
“네?!”
이브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뭐라고 말하려고 하는 사이, 손으로 녀석의 입을 가렸다. 으븝! 소리를 내는 녀석.
“대신 거래 조건이 있다.”
“그, 그게 진짜라면…. 뭐죠? 이, 일단 다 들어보도록 하죠.”
“첫째. 향후 네가 트라이스타 가문을 이어받았을 때. 이브 폰 로엔그린에게 무조건적으로 협력할것.”
“무조건적으로…? 설마.”
“그 설마다. 이 녀석은 끝까지 올라갈 생각이니 말이야.”
“그런 반역적인 무브를…. 조, 좋아요. 받아들이죠. 두 번째는요?”
두 번째.
이건 더 쉽지.
“나와 파혼했으면 좋겠다.”
“갑작스럽네요.”
“이름 뿐인 관계다. 서로 얽매일 필요 없지 않나.”
“그야 그렇죠. 알겠어요.”
반마족이랑 거래하려는 여자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될 거 같지도 않고, 앞으로 어떤 트러블에 말려들지 모른다.
이 녀석과 함께 잘 지내는 미래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공상으로서의 이야기. 지금은 현실을 살아가야 한다. 망상은 잘라내고 현실을 보자.
“그럼 이 두 개의 조건을 가지고…. 광산 슬라임을 퇴치하는 법을 가르쳐주마.”
퇴치법이 적힌 종이를 아일라에게 건넸고, 녀석은 이를 갈무리했다.
***
신문이 끝나고, 이브는 나를 쏘아봤다.
“독단적인 선택을 했네요. 당신이 결정권자에요?”
“최선의 판단을 내렸을뿐이다. 네가 망설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후우…. 그래요. 최선이긴 했어요. 제가 한 일이 전부 쓸모 없어 졌지만요.”
“음?”
“에르헬을 먼저 협박해서 생사여탈권을 쥐어두고, 아일라를 압박해서 여차하면 당신한테 불똥이 안 튀게끔 하려고 했는데…. 이제 와서 의미 없는 이야기네요.”
“그건…. 내 입장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했다는 건가?”
내 말에 녀석이 입을 꾹 닫았다.
그런가.
그렇게 되나.
에르헬을 제거하고 이 사건을 전부 어둠으로 묻는 한이 있더라도, 내 입장을 우선 고려해준건가.
“고맙구나.”
“네?”
“제일 먼저 내 입장을 생각해 줘 고맙다.”
“다, 당신 때문이 아니라…. 제, 제가 관리하는 당신이 구설수에 오르면 저한테도 피해가….”
횡설수설하는 녀석.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고, 녀석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렸다.
“먹고 싶은 것 있나? 내가 사거나, 만들어주도록 하지.”
“갑자기 뭐에요?”
“둘이서 밥이나 먹으러 가자는 제안이다. 싫은가?”
“하. 제가 당신이랑 둘이서요?”
“그래. 오늘 무사히 일도 하나 처리했고, 검은 깃발에 스파이도 하나 심어놨고, 향후 네가 황위 레이스를 펼칠 때 쓸만한 아군도 하나 만들지 않았나.”
“맞다. 제가 차기 황제를 목표한다는 걸 말 한 적 있나요?”
“말해야만 아나?”
“무, 무슨 의미에요?”
“아무튼, 그래서 밥을 먹을건가 아닌가. 그것부터 듣고 싶은데.”
“흥. 당신과 제가 뭐라고…. 둘이서….”
“싫은가?”
“메뉴는 제가 정할거에요. 알았죠?”
그렇게 나와야지.
“좋아. 얼마든지 정하도록.”
“흥.”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제프린 학생회 건물을 나섰다.
역시. 이 녀석하고 같이 있으면 지루하지 않아서 참 좋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잡담을 떠들고, 아무렇지 않은 하루가 지나갔다.
그 날 이후로 이브 녀석이 내게 투덜대는 경향이 늘어났다.
원작 기준으로는 ‘믿을 수 있으며 공명정대한 누님 캐릭터’ 취급을 받았던 이브는 사실 꽤나 어리광쟁이이며 제멋대로일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나날이 지나가고, 약 일주일 후.
제프린, 정확히는 내 앞에 서류가 하나 도착했다.
【아일라 트라이스타. 울프람 폰 로엔그린의 혼약 관계에 대하여 갱신된…】
트라이스타의 날인이 찍힌 그 서류를 받아들고 한 번 읽고는 서랍에 넣었다.
“무슨 서류에요?”
이브가 의문을 표했고, 숨길 이유도 없기에 대답했다.
“별거 아니다. 지난번에 트라이스타에 부탁했던 그 건이 정상적으로 처리되어서 말이다.”
“아. 파혼 건 말이군요.”
우리 둘 다 시큰둥하게 넘겼다.
아일라와 조금 더 가까워지는 길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허나 그 길은 지금 내 손으로 닫았고.
그 어떤 후회도, 작은 감상도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