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1020)
1020. Episode of EVE 14
마치 좀비처럼, 세상 살 의욕을 잃은 인간처럼 이쪽을 바라보는 이브.
저 얼굴은 2막에서 이브가 저주에 걸린 상태로 절망했을 때의 얼굴이다.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과 쓰러질 것 같은 몸.
저렇게 잘난 녀석이 대체 뭐에 절망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이브 폰 로엔그린.”
“울프람…? 뭐에요. 당신도 저를 비웃으러 왔어요?”
“비웃다니?”
“촌년이라고…. 재능만 있지 아무것도 못하는 머저리라고….”
“…….”
굉장한 자기객관화인걸. 조금 놀랐다.
어떻게 알았지?
는 무슨.
내가 이브를 그런 눈으로 볼리가 없지 않나.
이 녀석은 노력가에 성실하고, 가끔 꽉 막혔지만 그 점이 또 귀엽다.
내가 좋아했던 캐릭터를 나쁘게 말하는 건, 본인이라 해도 용서할 수 없다.
“대체 누가 그러지? 내가 너를 비웃는다고? 대체 왜?”
“시골에서 자라서…. 마력이 있다는 이유 만으로 수도에 와서…. 황성에 실망하고…. 바꾸려면 어떻게든 나를 증명해야 했는데…. 그럴려면 당신이라는 악당을 토벌해서 학생회장이 되고…. 하지만 당신은 노력가에 나쁜 사람이 아니었고…. 그러면 저는…. 저는 어떻게 해야 하죠.”
이브는 비맞은 생쥐마냥 축 늘어져서 무언가를 중얼거린다.
거 참. 할 말이 있으면 사람의 눈을 보고 똑바로 하라고 못 배웠나. 어쩔 수 없지.
“뭐. 그럴수도 있지.”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요? 그렇게 태연하게, 잘난듯이 말하지 마세요. 제가 얼마나, 마음 고생을 하는데….”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지. 알고 싶지도 않다.”
“뭐라고요…?”
이브는 큰 충격을 받은 듯 나를 올려봤다.
원작 기준 스크립트는 이렇지 않았다.
절망한 이브를 켈터스가 구할때 이렇게 말한다.
‘저도 아무것도 없어요! 하지만 회장님께서 제게 무언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해주셨어요. 그러니까 이번에는 제가 그 말을 돌려드리겠습니다. 당신은 텅 비지 않았어요!’
였던가.
그럭저럭 멋진 대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켈터스가 없다. 있는것이라고는 울프람이 되다만 이영진 뿐이다.
그러니까.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도 켈터스의 말도 아니고, 울프람의 말도 아니다.
이영진의 말 만이, 오직 진실된 내 목소리다.
“이브. 네 질풍노도의 시기. 한참 사춘기인 네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음을 안다.”
“뭐라고요?”
“주변인. 하위문화. 감수성 풍부하고 2차성징이 일어나는 그 시기. 풍부한 상상력으로 많은 꿈을 키워가야 하는 시기지. 물론 가끔 외롭고 힘들고, 세상 모든게 나를 엉망으로 만들것 같다는 불안감에 휩싸일때도 있다. 안다. 알고말고.”
“뭐라는…거에요? 닥쳐요…. 당신이 제 뭘 알아요…?”
“그런 고민과 고뇌를 털어버릴 수 있는 아주 쉬운 방법이 있다. 들어보겠나.”
이브는 더 퀭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래.
질풍노도의 시기에 자신을 지키는 확실한 방법.
“바로 운동이다.”
“뭐…?”
“열심히 운동해서 땀을 흘리고, 서로 가슴속에 남아있던 앙금까지 털어버리고, 음료 한 병에 슬픔까지 날려버리면 잡스러운 고민따위 다 날아갈거다.”
“무, 슨 소리를…. 하는…거야?”
“너는 너무 의자에만 앉아서 고민하는 버릇이 있다. 지금부터 그런 잡스러운 버릇을 고쳐주마. 이 오라버니가 특별히, 함께 운동해주도록 하지.”
“오라…버니? 하…. 당신이…. 이제 와서요?”
“음. 이제 와서다. 세상에 마냥 늦은건 없으니 말이다.”
허리춤에서 두 자루의 단검을 뽑아들었다. 칼에 베인 손바닥이 아직 얼얼하긴 한데 많이 괜찮아졌다.
“하, 그런 의미에요? 저를 베어버리겠다?”
“과대해석은 좋지 않다. 네가 질릴 때 까지 함께 놀아준다는 의미니까. 전력으로 덤벼라.”
“하하…. 그래요. 힘이 정의라는거죠? 알았어요. 한 번 해보죠.”
그렇게, 이번 생에서 처음으로 이브와 격돌했다.
***
성광창이나 브라이트 레인을 쓰지 않는, 극초기 이브의 전법은 무척이나 깔끔하고 단순하다.
압도적인 마력으로 그저 빠를 뿐이다.
문제는 그 빠름이 범상치 않아 내 재주로는 따라잡기 힘들며, 내 근력으로는 쳐내는것도 마땅치 않고, 내 체력으로는 버티기 힘들다는 거다.
그렇다고 해서 근접전으로 어마어마한 속도로 파고들어 베어낸다. 속전속결의 방법을 쓰면 이브가 제정신으로 안 돌아올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죽을 거 같아도 빡세게 가야한다는 거다.
성창 다섯발이 내게 날아온다. 딱히 어딘가를 노리고 날아오는게 아니라, 대충 울프람을 맞추겠다. 수준의 조준이다.
2차 승급 이후의 이브라면, 저 다섯발이 성광창으로, 이마, 명치, 양 다리. 심장을 노리고 들어왔을거다. 거기에 엇박도 섞었겠지.
지금은 조준이 어설퍼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하지만….
나도 허접하다.
끼긱. 소리가 들린다. 손바닥이 찢어져 다시 피가 흐른다. 쥐고 있는 단검에 핏물이 묻어 미끄러진다.
반대편 손으로 쳐내고, 두 번 뒤로 물러섰다. 이브의 성창은 다시 이쪽을 노린다.
그것보다 빠르게 몇 번 굴렀다. 구를 때 마다 단검으로 바닥을 한 번 긁어, 슬라이딩 평타 캔슬로 체력을 온존한다.
다시, 다시 쏘아지고 다시 흘려낸다. 뚝. 뚝. 손바닥 끝에서 흘러나온 핏물이 하나의 선을 만든다. 라피스라줄리가 내 손을 지혈하려 들지만, 빛의 마력에 가로막혀 움직일 수 없다.
체력이 급속도로 빠져나간다. 머리가 어지럽다.
“이익…. 움직이지 말라고요…!”
허나 이브도 정상은 아니다.
이미 절망에 빠져든 상황에서, 내가 시선을 빼앗고 여기저기 움직이다보니, 이브도 한 발, 두 발씩 따라 움직인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숨을 헐떡인다. 너 운동부족이야.
“운동한다고 하지 않았나.”
“후우…. 으아아! 【성광창】”
다시 열 발의 성광창이 내게 날아든다. 이번에는 이브의 사거리 밖으로 조금 빠져나갔다. 그 결과 이브는 다시 달려야 했으며, 얼굴에 피로감이 조금 늘었다.
“그렇게 달리니 얼마나 보기 좋나.”
“후우…. 하아. 하앗! 성차아앙!”
시에스타의 정신세뇌는 실피아와 다르게 이브를 완전히 지배할 수 없다.
그야 황실 혈통을 가지고 있는 이브를 고작 반마족 마녀 따위가 완전히 지배할 수 있으면 쓰나.
대신 시에스타는 이브의 절망과 심리적 약점. 즉 찐따력을 극한으로 증폭시키는 수단을 썼다.
그리고 찐따력을 극복하는 방법은, 역시 농구 한 판 조지고 액티비티 하는거 아니겠나.
“왜 그러지! 그 정도로 나는 쓰러지지 않는다!”
“으아아아아!”
시야 밖으로 최대한 무빙을 치며 이브의 움직임을 유도한다. 이브는 휘청거리면서도 나를 죽이러 달려든다.
재주도 체력도 내가 낮은데, 한 밤중이라 그런가. 아니면 영 달려본적이 없어서 그런가 심각한 운동부족인 이브는 당장이라도 넘어질 거 같다.
“자. 더 달려라. 좀 더 뛸 수 있다. 어서 땀을 흘리고 개운해져라.”
“후우…. 하아…. 학! 그래요. 그렇게, 나, 오시게엤다아! 성…”
또 성창인가. 그건 안 통한다니까.
“광차아아아앙!”
아니 여기서 성광창을?
증오와 분노로 강해졌나?
성광창과 성창의 차이, 당연하지만 위력뿐만 아니라 사거리도 차이가 있고, 이건 나도 예측하지 못했다.
결국 오른손으로 튕겨내는게 전부. 카가가각 소리를 내며 손에 쥔 단검이 녹아흘렀다.
촤악! 그 기세를 몰아 내 손목도 꺾였다. 손바닥에서 흐르는 피는 이제 분수처럼 솟구친다.
훌륭한 일격이다.
그걸로 힘을 다 썼는지 이브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마법이란 마력으로 사용하는 것이지만, 한계를 넘은 계산식은 뇌에 부담을 준다. 지금 이브에게 성광창은 꽤 급이 높은 마법. 거기에 컨디션 난조를 호소하고 있다.
이 녀석이 진짜 마력을 쓰면, 성광창으로 비를 내려도 부족함이 없지만, 지금은 술먹은 상태에서 전력질주를 하고, 그 상황에서 웨이트를 쳤다고 해야 할까, 마법을 쓰려고 해도 몸이 말을 안 들을거다.
스펙은 높지만 멘탈이 약한 마법사는 응당 이렇게 되기 마련이다.
“후우…. 하아…. 뭐, 뭐야…. 마법이….”
“마력 운용조차 힘들지. 마법사는 항상 마음을 강하게 먹고, 자신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자. 그럼 끝을 낼까.
천천히, 나는 이브를 향해 걸었다.
“왜, 왜 다가오는거에요.”
“음? 그야 다가가야지.”
“오, 오지 마세요.”
아니. 다가가지 않으면 대화를 할 수 없지 않나.
천천히. 허나 멈추지 않고 녀석에게 다가갔다.
“이제 지쳤나? 더 움직일 힘도 없나?”
“윽…. 으윽. 하아…. 윽.”
이브가 내게 검지를 내민다. 그 끝에 빛의 기운이 뭉친다. 성광창은 커녕 성창도 되지 못한 빛의 뭉치. 확실하게 나를 겨누고 있지만 그것 뿐이다. 다시 한 발 걸어가, 녀석의 바로 앞에 섰다.
푹! 하고 빛의 탄환이 내 팔을 꿰뚫는다. 촤악! 하고 꿰뚫려 피가 흐른다. 아프다.
그 충격으로 튀어오른 피가 이브의 얼굴에 묻었다.
“아…? 울프…람? 왜 안 피하고….”
“기분은 좀 풀렸나?”
“네…?”
“신나게 운동도 했겠다. 스트레스 해소도 됐겠다. 기분은 좀 나아졌나?”
“어…. 아…? 저, 저 당신한테…. 마법을…. 피. 피가…. 우, 울프람 피가…!”
“지금은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피야 사람 몸에 다 들어있는건데, 구멍 뚫리면 새어나오는게 당연한 거 아닌가.”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잖아요! 제, 제가 당신을…. 아. 아아….”
“그런 말을 할 때다. 지금은 잘잘못이나 치료보다, 하나의 매듭을 짓고 가는게 더 중요하다.”
“매듭…?”
나는 이브 앞에서 쪼그려 앉아 녀석과 시선을 마주했다.
“눈은 원래대로 돌아왔군. 정신 장악은 풀렸다. 다행이군.”
“정신 장악…?”
“시에스타 위치 크래프트가 네게 쓴 정신 장악은 너의 불안함과 마음 속 상처를 억지로 끄집어냈다. 악랄하지만 가슴에 품고 있던 진심인 것 또한 사실이지.”
“진심….”
“그래. 네가 입으로 한 말을 기억하나? 나보고 노력가에 나쁜 사람이 아니라 했지.”
“아….”
그 표정을 보니 기억하나보네.
“그래. 그랬다고 치자. 내가 노력가에 실은 선인이라고 치고…. 그러면 너는 반정을 꾀한것을, 지금 학생회장이 된 것을 후회하나? 내게 돌려주고 싶나?”
녀석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눈을 한 번 감고, 다시 떴다.
그리고 떠진 눈에는 망설임 따윈 없었다.
“아뇨. 돌려주지 않을 거에요. 저는…. 이 학생회장이라는 자리를 시작으로 더 높게…. 제가 옳다고 생각한 길을 걸을 거에요. 황제가 되어서, 이 세상을 바꿀거에요. 당신한테는 미안하지만…. 그러니까…. 정말 미안하다고 생각하지만…. 이 빚은 어떻게 해서도 못 갚는걸 알지만….”
“그러면 됐다.”
“네?”
“만약 네가 꿈을 포기하고 흔들렸다면, 딱밤이라도 먹여주려고 했는데 말이다. 후회하지 않는다니 다행이구나.”
쪼그려 앉은 상태에서, 피가 묻지 않은 손으로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뭐…. 뭐 하는 거에요.”
“장하다.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을텐데도, 잘 말했다.”
“이게…. 이게 뭐가 중요해요. 제가 고집을 부리는 건데. 당신을 공격한거나, 시에스타에게 당한 거나, 아니 그 전에 어서 병원부터 가요. 피가….”
얘가 아직도 모르네.
“네가 죄책감이나 미숙함에 좌절하기 전에 반드시 들었어야 하는 말이다. 분명 시에스타한테 당하는 미숙함도 있고, 반정을 했다는 죄책감도 있겠지. 하지만 그것 때문에 대의를 포기해선 안 된다. 되돌릴 수 없는 것도 있는 법이다.”
이 녀석이 답을 내리지 않고 죄책감이나 미숙함에 좌절 했다면, 학생회장의 자리를 돌려주네, 나는 쓸모가 없네 하고 2차로 땅을 팔 수도 있다.
그걸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이브 폰 로엔그린은 학생회장의 자리를 포기하지 않는다.’라는 확언을 듣는것이 중요했다.
“그러면, 스트레스도 다 풀었고, 우울함도 날렸으니. 전부 해결 됐군.”
시에스타의 저주도 느껴지지 않는다. 독을 해독했을리도 없고 아마 그녀의 최후의 발악이겠지.
덕분에 이브는 목표를 재확인 했고, 불안감도 날려보낼 수 있었다. 나와 그럭저럭 흉금을 터놓는 시간도 가졌고 말이야.
다 잘 됐다.
그러니까. 이제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자.
예를들면.
내가 곧 기절할거라는 이야기.
“이브. 한 가지 부탁이 있다.”
“네, 네…? 울프람? 왜 그렇게 흔들리는….”
“마력이 돌아왔다면…. 쾌속치유로 지혈을 부탁한다. 그리고 병원…에.”
“울프람? 울프람?! 정신 차려요. 울프라아암!”
미안.
아무리 그래도 그건 못 하겠다.
나는 눈을 감았고, 다시 깨어났을 때는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