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1025)
1025. Episode of EVE 19
실피아가 덜덜 떠는 그 모습에 나와 이브는 동시에 침묵을 지켰다.
“뭔가 문제가 있나?”
“실피아?”
여전히 붉은 얼굴.
어디 아픈가 싶어 다가가니 녀석은 휙 하고 뒤로 물러서서는 회장실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왜 저럴까요?”
“네 가신의 상태를 왜 나한테 묻나.”
“말을 해도 진짜.”
눈을 가늘게 뜨는 녀석.
아니 나도 진짜 모르니까 그러지.
#어느 조직이나 그렇지만, 승인된 계획은 차질없이 진행되어야 한다.
승인까지 몇 번이고 재검토 될지언정, 허가가 난 이상 물적, 인적 자원을 계획 그대로 소모하여 성과를 내야 한다는 말이다.
즉.
이브는 에버그린 그로브 가문에 일종의 뇌물을 바치는 이 계획을 허락했고, 나와 실피아는 그 뇌물을 구하기 위해 발품을 팔아야 한다는 이야기.
우리 잘나신 학생회장님께서는 다른 일이 있다고 하니 결국 나와 실피아만 극성의 숲을 향하기로 했으나….
같은 장소에 한 두번이면 모를까, 티어도 낮은 아이템을 파밍하려고 몇 번이고 가는건 내 성미에 안 맞는다, 그게 게임이야? 오토지.
차라리 오토가 낫다. 그건 돌려놓고 자고 일어나면 아이템창만 확인하면 되니까.
하지만 이건 현실이고, 나는 직접 움직여야 하며, 그 끝에는 이미 봤던 풍경에 이미 얻었던 아이템을 재 획들 할 뿐이다. 아무런 가치도 없는 비생산적인 활동이잖아.
그러니까.
바꾸자.
“생각해보니 극성의 숲으로는 조금 부족할수도 있겠구나.”
“뭐, 무슨 소리야?”
“채집처를 바꾸자는 거다. 따라와라.”
“어, 으…. 응.”
내 뒤를 쫄래쫄래 따라오는 녀석.
오늘 가려는 곳은 극성의 숲과는 조금 다른 루트를 타는 곳이다.
제프린 전도를 보면, 동부숲과 북부 망자의 평원 사이에 자그맣게 오솔길이 하나 나 있다.
여기서 한쪽으로 틀면 엘피라네 오웬이 기거하는 요정의 낙원이 있고, 중간에 방향을 틀면 작은 숲이 하나 나온다.
요정과 정령은 종으로서 완전히 다르지만, 얘네가 묶을때는 그런 개념이 없었는지 요정의 낙원 옆에 정령력이 충만한 숲이 있다.
들어서자마자 우리의 볼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분다. 자연적이지만 의도가 들어있다.
“라피스라줄리가 기뻐하고 있어….”
“멋진 곳이지 않나.”
“응….”
이 세계는 노력을 긍정하고 날먹을 배제하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날로 먹을 수 있는 땅이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엑스트라 시스템의 일부다. 예를들어 스토리를 10막까지 진행했다고 치면 캐릭터의 강함은 10막 수준이겠지만, 숨겨진 던전은 1막 위치에서 오픈이 되는 방식이다. 더 쉽게 말하자면 ‘최종 던전은 튜토리얼 맵에 있는게 가슴 떨린다.’ 같은 느낌이다.
아무튼, 여기에 있는 것들은 전부 특별한 씨앗이고 하나같이 정령력을 품에 담았다.
“우, 울프람 이건….”
“불라 볼칸의 씨앗. 화려하고 붉은 꽃을 피우지. 주변의 화염 정령 친화력을 올려준다. 아름다운 꽃이 핀다고 하더군.”
“어…. 아, 알고 있다. 알고 있는데…. 그 꽃이 혹시…. 꽃말이….”
“꽃말?”
그건 나도 모르는데.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 알겠다…. 이, 일단 다 채집하도록 할까.”
“음. 그래.”
그렇게 우리는 여러 씨앗과 묘목을 채집했다.
“이건 슈트름팔켄의 씨앗.”
“아아…. 응. 알고 있다. 그건…. 응. 꽃말도….”
“꽃말이 뭐지?”
“그, 그건 말 못한다.”
“그리고 이건 아스타르테의 꽃이군 이것도 꽃말이 있나?”
“그걸 내 입으로 어떻게 말해 이 쓰레기야!”
갑작스럽게 화를 내네…. 이 나이또래 여자애들의 마음은 모르겠어.
“그럼 이걸 전부 너희 집에 부친 다음…. 네 편지로 ‘울프람이 이렇게 쓸모가 있습니다.’ 정도만 적으면 되겠군.”
“응? 아…. 그, 그렇군. 그렇게 되나…. 응.”
“실피아. 대체 왜 그러지? 뭐 문제가 있으면 확실히 말해라.”
“울프람…. 너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건…. 그러니까 말이다….”
“실피아 에버그린 그로브. 나는 이 일에 사력을 다하고 싶다. 알겠나. 그 어떤 이유가 있어도, 어떤 결과가 나와도 받아들이겠다. 그리 결심했다.”
“…….”
“이브 폰 로엔그린을 황제로 만든다. 그 대의는 너도 함께하는 것 아니었나.”
“윽…. 그렇게 말하면…. 맞다. 나도 그 꿈을 위해, 그 모습을 보고 싶어 전력을 다하고 있다.”
실피아는 몇 번 숨을 고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어리광은 부리지 않겠다. 어떤 결과와 소문이 돌더라도, 꿈이 있으니까….”
“음. 그 각오면 됐다.”
이후 우리는 씨앗을 하나 둘 주섬주섬 주워 모았고, 이내 실피아에게 전부 넘겼다.
“생각보다 씨앗이 많다만….”
“그 중 정말 좋은걸 추렸다. 수고비로 생각하고 받아가라.”
“으, 응? 응…. 알겠다.”
실피아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씨앗을 품에 넣었다.
오늘 업무는 이쯤에서 종료.
자. 그럼 돌아갈까.
#
이브는 책상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실피아의 반응이 이상하다. 친가에 뇌물을 보내는게 꺼려져서 그런걸까, 라고 하기엔 그런 부분에서는 또 당찬 면이 있어서 그러진 않을거라 생각한다.
그러면 저 당황은 대체 어디서 나온걸까.
학생회 임원들 중에는 엘프도 있고, 전부 다는 불가능해도 상담이 가능한 학생도 있었다.
그래서. 했다.
“엘프들 사이에 씨앗이나, 묘목 거래 혹은 선물이 특별한 의미를 지니나요?”
“서로 우호나 친애의 표시로 선물하기도 하죠. 무척 좋아한답니다. 특히 고급 묘목이나 종자는 어마어마한 가격이 붙기도 해요.”
“그렇군요. 부모님께 선물하면 효행이 되겠죠?”
“물론이죠. 묘목을 싫어하는 부모님은 없어요.”
“그렇군요.”
더더욱 이해가 안 된다.
아, 혹시 이제와서 뇌물이 아니라, 부모님께 보내는 화해 신호처럼 보일까봐 그런건가. 그렇다면 어떻게든 이해가 되는데 말이야.
“그 외에 어떤 의미가 있나요?”
“네? 그게 전부인데요. 아….”
“뭔가 걸리는게 있나보군요. 말해줄 수 있나요?”
“그게, 조금 파렴치해서….”
“어서. 전부 말하세요.”
“네, 네!”
이브가 내뿜는 위압에 짓눌린 임원은 떠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연인들끼리 영원한 사랑을 맹세할 때. 엘프는 서로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묘목을 구해서 같이 심거든요. 그게 저희의 혼수…. 같은거에요.”
“그렇군요.”
빠직.
하고 이브의 손에 쥐어져 있던 펜대에 금이 갔다.
“저, 힉…. 저, 저기….”
“더 말하세요. 다 말하세요.”
“그, 그래서…. 그러니까. 아 마, 맞다…. 연인이 되기 전에…. 저는 상대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라는 의미거든요.”
후욱…. 후욱.
이브의 눈꺼풀이 떨리고, 필사적으로 웃고 있지만 살기가 흩날리며, 펜촉에 빛의 마력이 모이고 어깨로 숨을 몰아쉰다.
“회, 회장님…?”
“그러면…. 어느 한 쪽이 그 사실을 모르고서, 그냥 선물하면요?”
“아, 그러면 괜찮아요. 이게 엘프 고유의 풍습이라 한쪽이 모르면 이종간의 우호의 선물이 되니까요.”
“그래요. 그러면 뭐.”
순식간에 몇 도쯤 낮아졌던 회장실의 온도가 천천히 올라갔다.
서로 모를경우 별 일 아니라고 하지 않나. 실피아는…. 아마 알고 있던거 같고 울프람은 모르고 있었다. 그러면 뭐 신경 쓸 일은 없다.
자신이 무엇을 신경쓰고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았지만, 아무튼 신경 쓸 거리가 사라진 이브는 조용히 웃었다.
끝으로 확인만 하자.
이브는 실로 가벼운 마음으로 물음을 던졌다.
“그러면 남녀가…. 여성 집에 고급 묘목을 선물하고…. 여성이 그 남성을 칭찬하는 편지를 쓰는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결혼을 허락받고 싶다는 의미밖에 없는데요?”
“뭐?”
#
얼마 후 이브의 호출이 있어 실피아와 함께 학생회실을 찾았다.
“이야기를 전부 들었어요. 남녀가 하, 함께 부모님께 묘목을 보내는 건…. 그러니까….”
이브는 몇 번이고 손을 떨었고, 입도 떨었고, 팔도 떨었으며, 끝내 마력까지 떨렸다.
“이, 이브님…. 그러니까….”
아.
겸사겸사 실피아도 떨었다.
나만 가만히 있으니 좀 그렇네. 나도 떨어야 하나.
“나는 잘 이해가 안 간다만…. 무슨 일이지?”
“그러니까…!”
이후 이브는 떠듬거리며 설명했다.
그러니까 묘목이나 씨앗을 선물한다는게 엘프 사이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그게 부모에게 간다는게 어떤 뜻인지.
그걸 전부 들었고, 납득했다.
“그러니 내가 실피아와 함께 씨앗을 찾고, 그것을 녀석의 집에 보낸다는 건…. 연인을 집에 소개하는것과 같다는 건가.”
“그, 그렇게 된다는 거에요…. 그렇죠. 실피아?”
“네, 네…. 맞습니다.”
실피아는 무언가 죄인이 된 것 마냥 고개를 푹 숙였다.
“나쁘지 않군.”
“울프람?”
“무, 무슨 소리를 하는거냐! 너, 너랑 나랑…. 그러니까….”
아니 그렇게 흥분하지 말고 잘 들어보라고.
“상황적으로 나는 아일라 트라이스타와 파혼했고, 이브 폰 로엔그린의 가신과 눈이 맞았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이브의 휘하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렇게 고급 묘목을 보내어 능력을 증명하니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 라는 사인이 되지 않나. 앞뒤 잴 거 없이 깔끔하게 맞아 떨어지잖나. 굳이 꺼릴 것 있나?”
“하, 하지만 소문이….”
“이런 소문은 전에도 한 번 나지 않았나. 그냥 식게 내버려두면 된다.”
“그…. 으으….”
이브는 손을 파르르 떨었다.
“문제가 있나?”
“없어요. 나가요. 쓰레기.”
갑자기 왜 그렇게 욕을 하고 그러세요.
#
내 뒤를 좇아 종종걸음으로 나온 실피아.
“실피아. 너무 신경쓰지 마라. 결국 우리가 흔들리지 않고 소문을 위장용 장막으로 쓰면 그만이다.”
“맞아…. 그렇지. 중요한 건 이브님을 황위에 올리는 것. 그를 위해서라면 친가와도 협력하고, 어떤 굴욕도 인내해야지.”
“그래.”
이 녀석은 충으로서 이브를 따른다면, 나는 나중에 꿀 빨려고 하는 거지만, 목표는 같으니 얼마든지 힘을 합칠 수 있다.
“가문에 편지는 보냈나?”
“어제부로 보냈다. 정령특송을 썼으니 얼마 안가 답장을 받아 볼 수 있을거다.”
그거 다행이네.
아무튼 이 일이 해결돼야 본편을 진행하든, 애들을 키우려고 원정을 돌리든 할테니까.
“그러면 다음 업무를 생각해볼까.”
이브의 4막이라…. 원래는 아일라 트라이스타와 한번 크게 싸우는거였는데 말이지.
그러고보니 레지나 시엘라도 안 만나봤네, 이브-레지나 연합으로 아일라 트라이스타를 타도하는 일이었는데 말이야.
나중에 얼굴이라도 비칠까…. 친하지도 않고 친해질 마음도 없어도…. 그래도 마력 자체는 쓸모가 있으니까….
잏의 전개를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기는 사이. 어느새 나를 따라오던 발소리가 멎었다.
뒤돌아보니 실피아가 자리에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러지?”
“울프람. 한 가지 묻고 싶은게 있는데 말이다. 정말…. 이번 일. 그러니까 본가에 선물을 보내는 것에 그 어떤 사적인 감정도 없나?”
“없다.”
이 녀석은 좋은 녀석이지만….
내가 실피아한테 그런 감정을 품는것도 좀 그렇고, 다른것보다 임무를 위장해서 마음을 농락할 생각도 없다.
“그런가. 그러면 됐다.”
“음.”
기분탓인가, 녀석의 목소리가 조금 떨린 것 같다.
뭐, 안심한거겠지.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에버그린 그로브 본가에서 답신이 왔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선물은 잘 받았다.’
‘제프린에서 급히 귀가하지 않아도 된다. 졸업 후 차분히 이야기를 나누자.’
그리고
‘두 사람의 미래를 조심스레 응원하마.’
이상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