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1027)
1027. Episode of EVE 21
레지나와의 담화를 마치고, 학생회실로 복귀했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 마학련과의 대화 그 안에서도 레지나와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이브에게 성실하게 보고했다.
“완전히 척을 졌다고요? 왜요?”
“그야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저건 못 쓰는 패야.”
“아니, 그래도…. 레지나 시엘라라고요! 시엘라 가문의 장녀! 차기 시엘라 가주! 그녀를 편으로 만들면 얼마나 일이 편해질지 알아요?”
“너야말로 아무것도 모르고 있구나, 피카로 시엘라가 레지나에게 그렇게 순순히 가주 자리를 넘겨줄 거 같나? 그 녀석은 친딸이라고 해도 죽을 때 까지 가주직을 안 넘겨주고, 평생 권좌에 앉아 살 녀석이야.”
“잘 아네요?”
“악당은 악당을 알아보는 법이다.”
“아, 그러세요. 쯧…. 어쩔 수 없네요. 저도 사실 레지나 시엘라는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랬나?”
“네. 제 바로 뒤를 잇는 마력을 가진 주제에, 항상 저만 보면 음험하다고 해야 하나…. 비굴하다고 해야 하나. 적대는 아닌데 질시도 아니고, 대놓고 제 재능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 모를까 ‘이브님은 잘나셨으니까요. 제가 감히 어떻게 덤비겠어요. 저는 쓸모가 없는걸요.’ 하는 자존감 낮은 행동이라고 해야 하나…. 아아! 짜증나! 할 말이 있으면 대놓고 와서 하라고요! 왜 자기 비하를 하면서 주변 사람 기분을 망치는 거에요?!”
“쌓인게 많나보구나.”
“그야 많죠. 얼마나 자주 봤는데요!”
이브의 버럭은 학생회실에 크게 울려퍼졌다.
놀랄만도 하지만 나도 무척이나 공감하는 가치관이다.
그 정도 재능을 안고 태어났으면, 제대로 살아 볼 생각을 하던가, 재능이 아깝다 진짜. 대체 부족한게 뭐라고.
“맞다. 애당초 늪이라는 마법부터 기분이 나쁘지 않나. 상대를 구속하고 짓누르는 마법이라니…. 본인의 심상 세계와 완전히 똑같군. 스스로 짓눌려 있으니까 남도 짓누르고 싶다는 건가? 참 나.”
“맞아요. 저도 동의해요! 으으. 기분나빠. 그러면서 ‘이브 황녀님은 빛인데 제가 감히 어떻게 대적하겠어요. 저는 모자라고 부족한걸요.’ 하면서 자책하는데! 으아아!”
우리는 한참 레지나 험담으로 꽃을 피웠다.
정말 뜻 깊고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
레지나 시엘라가 천하에 답도 없는 모지리라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브나 내 기준이고, 일반인들이 봤을 때는 꽤나 능력있는 천재다.
이 능력이라는게 비단 마법뿐만이 아니라, 영향력이나 권위 또한 포함된다.
뭐 그래봐야 황실의 권위에는 미치지 못하고, 그 재능은 이브에 닿지 못하지만…. 그래도 이런 일을 벌일 줄은 몰랐다.
【쇄신 없는 학생회】 【언제까지 전 학생회장을 기용할 것인가】 【제 식구 감싸기】 【황녀님 부디 옳은 선택을】 등등. 이브에게 올라온 탄원서였다.
심지어 학생회 건물 밖에 누가 설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자보도 붙었다. 신문을 오려붙여 【구태의연한 정치의 산물인 울프람 폰 로엔그린을 단죄해야 한다】 라고 적혀있다.
이건 뭐 거의 괴도 뺨치네, 오늘밤 내 마음 속 보물이라도 훔치러 오겠어.
발신인 대부분은 기사학부, 혹은 일반 학생이지만 그럴리 없다. 아마도 시엘라 가문이 심어놓은 쁘락치일 것이다. 그 증거로 타도 아일라를 외칠 때 합류했던 학생들 이름이 몇 명이나 보였다.
문제는 이게 마냥 허튼 소리는 아니라는 점.
“나를 내쫓지 않으면 안된다는 여론으로 몰고 갈 생각인가. 꽤 괜찮은 복수구나.”
“여론을 등에 업으면…. 권위로 찍어누르기 힘들어지니까요. 제 정통성도 의심받을거고요.”
어차피 황손끼리 서로 식구 감싸기 하는거지. 라는 물 밑 여론이나 다들 쉬쉬하던걸 대놓고 수면 위로 꺼낸거다.
부드러운 약점을 잘 찔렀다고 해야 할까. 학생회 내부에서는 그럭저럭 받아 들여져도, 세간에 받아 들여지는건 아직 힘든거같다.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이지? 필요하다면…. 짐을 싸고 나가겠다.”
“헛소리 하지 마세요.”
이브는 그렇게 단언했다.
“좋아. 그러면 나는 여전히 여기에 있다고 치고…. 이건 틀림없이 레지나의 짓인데 어떻게 할거지?”
“증거는 있나요?”
“확실한 물증은 없다. 하지만 내 감은 항상 맞으니까, 레지나 짓이다.”
“우와 폭거…. 좋아요. 레지나 시엘라가 한 짓이라고 치고…. 그렇네요. 어떻게 할까….”
이브는 생긋 웃으면서 고민을 시작했다.
뭐. 권위로도 힘으로도 앞서니까, 오래간만에 불러서 마법 대련이나 하자고 하면서 흠씬 두들겨 패면 그만이겠지.
그건 그것대로 맡기도록 하고….
나는 나대로 대응책을 생각해야겠다.
앞으로 이런 웃기지도 않는 수작질에 당하지 않게 말이야.
***
나만의 세력을 만들려면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어둠으로, 더 깊게 파고들어 검은 깃발이라는 집단을 전부 내 휘하에 두는 것. 시에스타도 죽였고, 검은 깃발 내부 사정 정도는 얼마든지 파고 들 수 있다. 내가 빅 보스가 되는거지.
그리고 다른 하나는 빛의 세력. 그러니까 양지의 집단을 내가 온전히 흡수하는 것이다. 아니면 그들의 우상이 되거나…. 정공법이지만 가장 확실하다. 나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해 주는 녀석들을 구한다.
당연히 후자가 압도적으로 좋다.
이건 그래도 양지쪽이 활동하기 좋지 않나? 라는 보편적 인식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제프린 내에서 검은 깃발을 손에 넣어봐야 그 녀석들을 졸업도 못 하지만, 양지의 집단을 손에 넣으면 졸업 이후에도 우호를 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양지의 세력. 그것도 한 집단을 통째로 손에 넣거나 나와 우호적 관계를 쌓는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가장 써먹기 좋은 집단이 바로….
“위그드라실이라고?”
“그래 맞다. 위그드라실의 대표와 대화를 나누고 싶다.”
실피아에게 부탁해, 제프린 내 엘프 집단인 위그드라실을 내 편으로 끌어들인다.
우선 내 지지 세력이 생기면, 레지나도 저런 같잖은 장난을 못 할거다.
“으음. 그쪽에서 울프람. 너를 만날 이유가 없을 거 같은데….”
“아니, 만들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그렇지 않나?”
슬쩍 주머니에서 씨앗 하나를 꺼내들고 실피아에게 내밀자, 녀석이 아. 하고 박수를 쳤다.
그래. 맞아.
위그드라실이 나를 얼마나 미워하든 증오하든 상관 없다.
엘프인 이상 절대로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할 거니까.
***
그렇게 위그드라실의 대표측과 마주 앉았다.
실피아에게 뒷소문이 돌지 않게 하기 위해 나 혼자만 참석했다.
나 혼자만 나온 회의실.
다섯명 정도 되는 상대측의 안색은 썩 좋지 못했다.
“학생회에서 불러서 무슨 대단한 일인가 했더니…. 이브 님이 아니라 당신이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이브님은 오늘 불참이신가요.”
“아니, 공교롭게도 전제부터 틀렸다. 너희를 부른 건 바로 나. 울프람 폰 로엔그린이다.”
“저희와 당신이 할 이야기가 있었다고요?”
“뭐, 찾아보면 몇 개 정도 나오지 않겠나.”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오늘 시간은 무척이나 즐거웠습니다. 그러면 이만 일어나도록 하죠.”
“일어나는거 좋지, 그러면 선물이라도 하나씩 가져가도록.”
“당신이 주는 선물은….”
아니 그렇게 차갑게 굴지 말고 말이야.
나는 주머니에서 무언가 한 줌을 꾹 쥐고, 상 위로 던졌다.
좌르르륵, 하고 알알이 들어있던 그것이 상에 촤악 하고 펼쳐졌다.
그것이 식물의 씨앗이라는 것을 본 엘프들의 안색이 굳는다.
“이런 식으로 씨앗을 다루다니, 예의라는 것을….”
“음. 미안하군, 너무 넘쳐나는 씨앗이다 보니 말이다. 처리가 곤란해서 취급을 소흘히 했다.”
“식물 또한 하나의 생명입니다. 아무리 흔해 빠진 풀이라 해도, 그 하나하나에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 말하고, 엘프 대표는 씨앗을 주워 모아 들어 올린 후, 슬쩍 내려봤다.
직후.
그대로 멈춰섰다.
“이 씨앗들…. 설마…. 잠깐, 아니 그럴리가 없어. 하지만 이 향기…. 어째서?”
“왜 그러지? 그 씨앗들은 잡초가 아닌가?”
“아, 흐. 흐음…. 아닙니다. 굉장히 평범한 씨앗…. 이군요. 저희들이 수거해서 곱게 키우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건 상관 없다. 얼마든지 가져가라.”
“그, 그러면….”
“헌데 정말 대단하군. 엘프의 귀족쯤 되면 란자냐의 방울꽃. 이스탈시아. 러스티로즈. 칠형수국의 씨앗을 그냥 평범한 씨앗 취급 할 수 있는 건가?”
그 말에 엘프 대표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내가 씨앗의 품종까지 꿰고 있을거라 생각하지 못했나보다.
그냥 엘프들한테 뇌물로 선물좀 추려봐라고 아랫 사람한테 지시했고, 대충 받았다고 생각했겠지.
나는 힘껏 비웃으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여기서부터가 중요하다.
“엘프들은 음험하고 그 속을 모르지만, 자연을 아끼고 식물을 대할 때 만큼은 투명할거라 생각했는데…. 욕심에 사로잡혀 씨앗의 가치를 내려깎고, 그대로 가지고 돌아가려 했다…. 이거 소문이 돌면 어마어마하게 유쾌하지 않겠나?”
“누, 누가 그런 소문을 믿을 거 같습니까…?”
“이 녀석이 날라다 주지 않겠나?”
손가락을 튕기자, 회의실 안에 정령력 섞인 바람이 불었다.
이제는 중급의 단계를 완연히 벗어나 상급에 도달. 고작 제프린 학생들로는 탐지할 수 없는 라피스라줄리의 바람이었다.
“실피아…에버그린 그로브의 사역 정령…. 사, 상급의 바람…?”
“그렇게 됐다. 지금은 내게도 힘을 빌려주고 있고 말이야.”
손가락을 이어 튕기자, 라피스 라줄리의 바람 사이에 목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아닙니다. 굉장히 평범한 씨앗 이군요.’ 부터 시작해 우리의 대화 전체가 녹음되었다.
그리고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엘프들도 깨달았다.
“바람의 상급 정령사. 그것도 에버그린 그로브 가문의 장녀가 정령력으로 녹음했다면 증거로 채용되기에 충분한 공신력이 있겠지?”
“그, 그런…. 그러니까….”
“이대로 엘프 왕국에 진정서를 넣으면 너희를 전부 자격 없는 반푼이 쓰레기 취급 하고, 강제 송환이 되겠구나…. 어디보자. 죄명은 금품수수, 가치위조…. 황실기망…. 뭐 만들려면 뭐든 못 만들겠나. 하하.”
이제는 얼굴이 파들파들 떨리는 녀석.
허나 다른 엘프들의 표정은 차갑기 그지 없다. 방금의 대화에서 대장 빼고는 사고 친 녀석이 없다는 거지. 꼬리 자르기에 들어간다는 티를 팍팍 내는 군 그래.
“네 등 뒤의 친구들은, 대장의 독단으로 몰고갈 생각인가본데. 정말 멋진 우정이야. 안 그래?”
“그, 그럴리가….”
하여간.
누가 귀잽이들 아니랄까봐 음험하긴.
“자. 진퇴양난이구나, 내가 너를 크게 힐난하여 공론화 하면 네 친구들은 너를 버릴거다. 네가 살아날 방법은 이제 하나밖에 없다.”
“사, 살아날 방법….”
“지금 자리에 다시 앉아서, 내게 생을 구걸하는 것이지. 살려주십시오. 저를 중히 써주십시오. 하고 말이야.”
“그, 그런 건…. 자존심이….”
“그 잘난 자존심은 이 제프린에서 쫓겨나도 지켜지는 건가?”
“…….”
“자. 전원 착석. 회의를 계속해보도록 하지.”
녀석은 비틀거리며 자리에 앉았고, 다른 엘프들도 어쩔 수 없이 자리에 앉았다.
아주 잘 했어요. 포상을 주도록 하죠.
나는 주머니에서 다시 씨앗을 꺼내들어 상 위에 뿌렸다.
이번에는 다섯 명 전원에게 말이다.
이번엔 학습했는지 그걸 손에 쥐는 멍청한 놈은 없었지만, 눈알 굴러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누가 봐도 참 고급 씨앗이지, 생명을 가득 잉태해서 좋은 싹을 틔우고,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할 씨앗들이야. 안 그런가?”
흡사 눈에서 빛이라도 뿜어낼 것 같은 녀석들을 미소로 훑었다.
“그 씨앗을 전부 너희에게 줘도 좋다. 너희들이 내 말만 잘 듣는다면 좋은 씨앗을 제공하도록 하지. 그저 내 명령을 몇 번 듣는것 만으로도 아름다운 묘목이, 최상급 꽃들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거다.”
“저,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니 뭐. 대단한 건 아니다. 우선은…. 위그드라실과 울프람 폰 로엔그린이 서로 화해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걸 제프린 모두가 알았으면 한다. 요새 내 귀가 시끄러워서 말이다. 잘 해낸다면…. 최상급 나무인 천성육화의 묘목을 인당 하나씩 지급하도록 하지.”
“처…천성 육화….”
“참고로 나는 이미 엘프 연인이 있으니 말이다. 너희 여성진에게 선물한다 해도 그 어떤 음험한 의도는 없다. 알고 있지? 출처를 대답해도 너희의 순정이 더러워질 일은 없다.”
그 말이 쐐기였다.
녀석들은 저마다 주섬주섬 주머니에 씨앗을 넣었고.
다음날.
위그드라실을 중심으로 발매되는 정령 신문 1면에 ‘정녕 모든것이 울프람의 잘못이었나?’라는 사설이 기고되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