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103)
레지나 시엘라의 루트.
그것은 실로 끔찍하고, 두렵고, 무섭다.
D/Z SAGA는 이전에도 말했듯 히로인을 정해서 스토리를 진행하고, 제프린을 위협하는 적들을 물리치고, 히로인의 소원을 들어주고, 함께 행복해지는 스토리다.
대표적으로 이브는 자신의 위치를 벗어나 한 단계 위. 옥좌를 향하는 이야기다.
꽉 막혀있는 이브 폰 로엔그린의 시야를 빛의 용사 켈터스가 개안시켜주고, 성장한 이브는 켈터스와 함께 미래를 향해 걸어가는 왕도 서사.
뭐 가장 왕도적이고, 깔끔하게 끝난다. 그래서 이브의 인기투표도 3위였다.
메인 화면에 걸리는 히로인 치고는 미묘한 순위지만, 애당초 메인 히로인의 인기순위가 3위라는 거 자체가 얼마나 무난한 스토리인지를 보여준다.
다음으로 레지나 시엘라의 루트.
얘야 말로 진짜 구원 서사다.
레지나 시엘라는 이브 폰 로엔그린과 그리 사이가 좋지 않다.
이브는 그녀를 마력만 봐줄 만 한 삼류라고 생각하고, 레지나는 이브라는 한 학년 아래의 괴물에게 절망하고 좌절하고, 자신의 마력치도, 가문의 권세도 통하지 않는 진짜 괴물에게 잔뜩 겁먹는다.
고도의 인간불신. 자기혐오.
뭐든 할 수 있지만 언제든 살해당할 수 있다는 압박감.
엘프들에게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외톨이. 고슴도치.
그런 레지나의 손을 잡아서 함께 미래로 나아가는 것.
졸업하기 직전, 이브와 대립한 레지나가 마지막 대련에서 이브 폰 로엔그린을 쓰러트리는 것.
그리고 켈터스와 함께 세계를 여행하면서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는 것.
그게 바로 레지나 시엘라 루트의 골자다.
그리고 나는 ···놀랍게도 이 루트에 단 하나도 이입 할 수 없었다.
애당초 대륙 제일의 상인 가문이라면서, 거기에 마력치도 21이잖아.
그런데 뭔 살해 당하느나 나 자신이 누군지 모르겠다느니, 자아 찾기 엔딩은 또 뭐냐고.
장난하냐. 네 제산의 억 분의 일만 있어도 나는 그렇게 안 살았어!
이영진 입장에서, 이 레지나 루트는 정말, 단 하나도 이입 할 수 없었기에, 실제 게임을 하면서도 이 루트는 열 번 정도 왔던 것 같다.
그것도 1회차 빼고는 스토리를 전부 스킵했다.
업적 따려고 한 거지 얘가 좋아서 한 게 아니다.
···그러니까 이제 와서 루트가 열렸다고 해도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애당초 안 열렸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미 열렸다는 전제 하에 플레이 한다고 쳐 보자고.”
벌써부터 속이 시큰거리지만, 어떻게 해서든 참아낸다.
최대한 레지나 시엘라의 호감도를 올리지 않는다.
문제는 얘 호감도 오르는 공식을 잘 모른다. 레지나단 단톡방도 그냥 들어가 놓기만 했지 채팅 친 적도 없다.
그리 생각하고 있자니, 어느새 인가 레지나가 스윽 다가와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울프람 황자전하. 안녕하신가요.”
“시엘라 가의 영애인가. 물론 안녕하다만 더 안녕하기 위해선 네가 내 눈 앞에서 사라지면 더 좋겠군.”
“어머 ···후후. 그렇게 할게요. 그럼 또 찾아뵙겠습니다.”
그리 말하며 물러나는 레지나.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나는 이 게임 최고의 고인물이지만, 나에게도 엄연한 약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솔직히.
솔직히 말하자.
지금 이 대화가 쟤 호감도가 올라갔는지 내려갔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다.
···살려줘.
***
레지나 시엘라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리며 이 가슴의 두근거림은 비단 호감 뿐 만 아니라 공포와 절규 또한 상징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 한 그 무렵 편의점에 한 손님이 찾아왔다.
“선배님! 저 왔습니다!”
“···네프티인가. 무슨 일이지.”
“시원한 거 마시러 왔습니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 네프티였다.
“운동이라도 하고 온 것인가?”
“···아. 로열 가드 실전 수업이 있었습니다. 괴한으로부터 황족을 보호하기 위해 몸을 날리는 수업을 했습니다.”
“그런 수업이···. 있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켈터스도 로열 가드 수업을 받았기 때문에 어떤 수업인지 안다.
요컨데 버피다. 플랭크부터 점프까지 하는 그 운동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 버피를 엄청나게 빠르게 해야 한다.
로열 가드는 솔직히 말해 그냥 호위가 아니다.
켈터스가 이브 엔딩을 볼 때. 로열 가드의 상위직인 로열 나이트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시피.
로열 가드쯤 되면 황족과 맺어져도 그럴 수 있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다.
중앙의 백작에 준하는 지위. 사회적 인정. 황족이 선택한 자.
그 수 없이 많은 타이틀을 손에 넣었기 때문에, 일생의 동반자로 살아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놀랍게도 진짜 친밀도가 높은 로열 가드는, 황족의 비서나 보좌를 겸하여 식사도 동석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까 앉아서 함께 식사하다가 괴한의 습격에 즉시 몸을 날리는 훈련을 하는거다.
솔직히 조금 죄책감이 없잖아 있다.
“잠시만 기다려라.”
“완전히 시원한 게 좋습니다!”
그리 말하며 네프티는 자리에 앉았다.
언젠가, 이 아카데미를 나섰을 때 네프티가 내 로열가드가 된다.
그건 엄청 든든한 일이다.
네프티는 작중에서 단 한 번도 동료를 배신하지 않는다. 켈터스를 끝까지 믿어준다.
심지어 기사학부 루트에서 네프티가 전투 불능에 빠지며 퇴장하는 그 순간에도 동료의 걱정을 하며 쓰러진다.
즉 나에게 있어서 얘는, 믿음과 신뢰의 상징이다.
삼류 악역 울프람이 최초로 호위로 지정할 정도의 인물이다.
실제로 만나본 결과 ···조금 돈을 좋아한다는 설정이 붙긴 했지만 내가 알던 네프티와 똑같았다.
나는 릴리아가 건네준 재료를 빤히 바라봤다.
【눈요정의 가호가 담긴 눈덩이를 사용합니다.】
【샤이닝 파티시엘 발동!】
【블레싱 스노우 샤베트를 만듭니다.】
【제작 성공률이 희박합니다.】
희박.
이 문구가 드디어 떴나.
재주가 13이상 올라가면, 아이템 제작을 돌릴 때 성공율 표기가 뜬다.
나중가면 정확한 퍼센티지로 뜬다.
허나 재주가 낮은 지금은 희박하다느니 어중간하다느니 묘하게 문과 감성으로 이야기한다.
망치면 또 만들지 뭐.
눈덩이는 많다.
【제조에 성공합니다!】
오.
경험상 희박이면 성공 확률이 10 퍼센트 언저리.
물론 아일라의 파티 효과가 있었기에 실제 확률은 좀 더 높겠지만 그럼에도 한 방에 이게 성공했다는 건 생각보다 운이 좋은 편이다.
위에 스트로베리 빈즈로 만든 시럽을 뿌리고, 크림 빈즈로 만든 시럽도 넣고, 셔벗이라기보다는 빙수에 가깝군.
네프티에게 셔벗을 내밀자 이내 반짝이는 눈으로 스푼으로 푹 떠서 입에 물었다.
그리고 뚝, 하고 네프티의 몸이 멈췄다.
그러고 보니, 샤이닝 파티시엘부터는 먹는 순간 감상평이 입으로 나온다.
네프티는 어떤 감상평을 내뱉을지 조금 기대되는데.
“선배님.”
“음.”
“저, 사실 로열 가드가 주는 신분 상승에는 별 흥미가 없습니다.”
“······?”
“연 2억린의 연봉. 중앙의 저택. 사회적 지위 상승. 분명 엄청나게 매력적인 제안입니다. 하지만 ···로열 가드라는 단어가 저에게 주는 의미는 고작 그런 ‘신분 상승’이 아니었습니다.”
아니
감상평을 이야기하라니까 갑자기 여기서 드리프트를?
“로열 가드는 저에게 꿈을 줬습니다. 연봉은 전부 고향의 용병을 고용하는데 들어가도 됩니다.”
그 야망은 아직 못 버렸나.
“그렇군. 그래서?
“누군가를 지키며 동시에 못 보던 세계를 볼 수 있다는 꿈이었습니다.”
“그렇군. 그래서?”
“제가 선배님을 지키겠습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 간식을 전 세계에 파는 여행을 같이 하면! 저희는 분명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뭐야.
결국에는 셔벗의 감상평이었구만 그래.
“좋은 감상평이군···.”
“아, 아아······. 저, 저도 모르게 입을 막 놀렸습니다.”
그리 말하며 네프티는 에헿 하고는 얼굴을 붉히며 웃었다.
“그런 말을 잘도 하는군.”
“저도 놀랐습니다. 이렇게나 부끄러운 말인데 말입니다. 에헤···.”
그러게나 말이야.
샤이닝 파티시엘의 효과를 몰랐다면 꽤 두근거릴 말이었다.
하지만 샤이닝 파티시엘의 효과라고 생각하면 두근거림도 개뿔도 없다.
“내 스킬의 효과다. 간식을 먹으면 마음에도 없는 감상을 내뱉게 만들지. 이해 하도록.”
“아···. 스킬 효과군요. 으음 하지만 마음에도 없는 말?”
네프티는 계속해서 고개를 갸웃했다.
***
게임이 현실이 되었다.
나름 현실에 적응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이 정말 게임처럼 느끼는 부분도 있다.
그리고 최근 정말 게임같다. 라고 느끼는 부분이 하나 늘었는데 그게 바로 자정 넘자마자 하는 이것이다.
“여기 크림빵이다.”
【와아! 울프! 너는 정말 좋은 녀석이다! 선물이다!】
바로 릴리아에게 요리를 건네고 재료를 받는 것.
말 그대로 일일 퀘스트 아닌가.
그리고 원래 일퀘는 리셋 되자마자 하는 게 국룰인 법.
오늘도 릴리아에게 빵을 건네고 재료를 받았다.
다섯 개 중 네 개가 눈덩이. 이미 마동석 냉동실은 눈덩이로 가득 찰 지경이니 이걸로 아이스크림이나 만들어서 팔까 고민할 정도였다.
“어떻게든 재고 처리를 해야겠군.”
그리 생각하며 어깨를 으쓱하고 있는데, 편의점 문을 누군가가 두드렸다.
“울프람. 있나?”
“···있다.”
내가 대답하자 끼익 문을 열고 들어온 건 회색 머리의 작은 사신.
암살자 루디카 핫산 샤도우 교수님이셨습니다.
“미안하군. 늦은 시간에.”
“그런가.”
한 손에 단검을 들고, 혈향을 풍긴다. 옷을 자세히 보면 순백의 신발 부근에 핏방울이 몇 개 튀어 있다.
그렇군. 아 완전히 이해했어.
울프람 폰 로엔그린은 여기서 죽는구나.
지금 내 상황에서 루디카를 이길 방법? 단 하나도 없다. 아니 진짜로.
대비 안 된 상황에서는 저 이브도 일격에 슥삭 할 수 있는 암살의 신이라니까?
말 했잖나. 저 거대한 설산마저도 옮길 수 있는게 초대 황제고, 그 초대 황제에 준하는게 이브인데 그 이브도 죽는다고.
그런데 내가 뭘 어떻게 하라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다
“비밀 기지는 북쪽에 있다. 목숨만은 살려다오. 내가 알고 있는 정보는 전부 밝히겠다.”
살려주세요.
“······?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음?”
루디카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아하 하고 단검을 수납했다. 그리고는 평소처럼 밝게 웃었다.
“루디카가 울프람을 죽일 리가 없지 않나. 울프람은 좋은 녀석이다.”
“······.”
“미안하다. 한 밤 중에 암살자가 찾아오면 그야 누구나 경계 할 법 하지 ···루디카는 돌아가겠다.”
“아니. 앉아라.”
“응?”
“원래 편의점은 24시간 하는 법이다. 가벼운 간식이라도 내어주지.”
오해 한 내 잘못도 있고 ···또.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루디카 녀석. 저렇게 쬐그맸나?
루디카는 전신의 감각이 없기 때문에 가장 강한 감각인 통각 빼고는 거의 느끼지 못한다.
그 때문에 크리티컬과 정신력을 나타내는 의지가 20이다.
그 상황에서 핫산류 최종기를 쓸 때. 평소 20으로 유지하던 재주가 22로 맞춰진다.
아무튼, 그런 루디카에게 다른 음식은 그냥 고형 물체, 씹고 넘기는게 전부지만 ···매운맛 만큼은 제대로 맛으로 느낄 수 있다.
그러니까 루디카를 위해 만드는 것은···.
“자. 그레이트 핫 스파이시 셔벗이다.”
“······?”
매운 빙수였다.
정확히 말하면 매운 맛을 내는 소스를 요정의 눈덩이랑 같이 얼려서 갈아 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미안.
솔직히 나도 괴식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샤이닝 파티시엘로 만들었으니 목으로 넘길 수는 있을 거야.
“그레이트 핫 스파이시···. 매운 간식인가?”
“본디 간식은 달콤해야 하지만 ···너에게는 맞지 않는다 싶어 만든 것이다. 어떤 맛이 날지는 나도 잘 모르겠군.”
“아하···. 재미있는 발상이다. 루디카는 울프람의 요리를 좋아한다.”
그리 말하며 루디카는 한 입. 괴이하기 그지 없는 빙수를 입에 넣고는 아···.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이런 걸 만들다니 악인. 너를 죽이겠다. 같은 소리는 안 하겠지?
“응. 재미있는 맛이네. 정말···. 진짜 재미있는 맛이야. 후후. 아하. 뭐야 이거 하지만 배려심이 느껴지는 맛···. 응. 꽤 좋은걸?”
“······.”
“이 배려심의 보답으로 너는 내가 지킬게.”
“······.”
아니.
그···.
진짜로 언어중추가 고장이 났는데요?
컨셉 어디로 가셨어요?
“원래는 그런 말투로 이야기 하는가.”
“······아? 아, 윽. 읏. ···아, 아니다. 으. 으으으으! 으!!”
루디카는 나를 보고 얼굴을 붉히다 이내 발을 동동 굴렀다.
재밌네 이거.
“뭐. 재미있는 추억으로 삼도록 하지.”
“······그래다오. 가급적 잊어주면 더 좋겠군. ‘울프람’. ‘루디카’의 부탁을 들어주겠나?”
“노력하마.”
“부탁하겠다.”
미안.
솔직히 못 잊을 거 같다.
“그래서, 이 늦은 시간에 여길 찾아 온 이유는 뭐지?”
“···아. 오늘은 업무가 좀 길어졌다. 그래서 집까지 가기 전에 ···루디카도 모르게 발걸음이 여기로 향했다.”
“그렇군.”
최고의 암살자가 업무가 길어졌다. 라는 건 상대 쪽에 상태이상 전문 마법사가 있거나 일정이 틀어졌다는 건데.
대체 이 시점에서 누가 루디카를 맥일 수 있더라?
“그렇다면 빨리 귀가하는 게 좋겠군. 이미 늦은 밤이다.”
“으음···. 그게 맞지만 내일은 아침부터 또 일이 있어서 말이다. 울프람 미안한데 부탁 하나 해도 되겠나?”
“부탁?”
“침낭 하나만 빌려주면, 구석에서 자다가 아침에 나가보도록 하겠다.”
······어. 그러니까.
“그 말인 즉슥.”
“오늘 밤만, 여기서 머물러도 되겠나?”
후우.
또 이런 부탁이야?
“우리 편의점은 수면실이 아니다.”
“···아하하. 돈은 내겠다. 백 만 린.”
아니.
진짜. 야.
“수건하고 칫솔도 필요한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