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1030)
1030. Episode of EVE 24
단합회 이후. 학생회 멤버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완전히 바뀌었다.
다른거보다 내가 이 제프린에서 헛짓거리만 한게 아니라, 제프린 전도를 만들었다는게 밝혀져 좋은 인식이 박힌 듯 하다.
“그럼 어디 그려보시죠!”
“음? 뭐. 그러도록 할까.”
다른거보다 이브가 인공섬 제프린의 외곽선만 그려진 지도를 내게 던져줬고, 그 안에 펜으로 지형지물, 그리고 어떤것들이 있고 어떤 몬스터가 분포되었는지 적어내려가자 마지막 남은 의심마저 싹 사라진 듯 하다.
물론 진짜 어렵거나, 고난이도의 지도는 그리지 않았다. 가장 기본적인것만 그렸지만…. 그것만 해도 학생회 멤버들에게는 어마어마한 정보로 다가간 듯 싶었다.
“그럼 울프람 님. 여기에는 로제타의 열매가 있는 건가요?”
“그렇다. 하지만 로제타의 열매가 있는 곳에는 더티 로즈와 밤 로즈도 자생하고 있으니, 갈 생각은 말도록.”
“아…. 그렇네요. 아무튼 로제타의 열매라니….”
다른것보다 학생회 내의 엘프들이 나를 보는 시선이 싹 변했다.
그들과 찻잎, 꽃, 그리고 나무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어마어마한 교양을 가지고 있다던가.
최고급 식물들의 자생지와 그 근처 환경을 다 외우고 있는 나는, 교양이 넘치다 못해 거의 교수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 라비앙로즈의 어린 뿌리를 캐왔다.”
“세상에…. 라비앙로즈라니, 그 귀엽고 어린 장미를요?”
“그래. 전부 자라도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인 사랑스러운 장미지.”
“한 번 볼 수 있을까요?”
“음. 내일 가져오도록 하지.”
“꺄아….”
엘프 임원중 한 명은 양 손으로 볼을 가린 채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몸을 꼬았다.
위그드라실이 내게 우호적인 기사를 써내고, 이 정도 지식까지 보유하니 엘프들과의 거리감이 확 줄어들었다는 실감이 든다.
“그렇게 여자를 꼬드기고 다녔던 건가?”
내 바로 옆에 다가온 실피아는 쿵. 하고 자신의 물통을 테이블 위에 내려놨다.
“꼬드기다니, 서로 취미를 공유할 뿐이다.”
“흥. 말은 번지르르 하군. 대외적으로는 나와 사, 사귀고 있으니 적당히 하도록.”
나는 어깨를 으쓱했고, 방금 전까지 나와 담화를 나누던 임원은 어색한 미소로 물러갔다.
다른 학생들이라면 대외적인 소문을 알기에 다가오지조차 않았겠지만, 학생회 내부에서는 나와 실피아가 사귀는게 블러프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다가오는데 거리낌이 없다.
“그래서. 무슨 일이지?”
“이브님께서 임무를 내리셨다. 블랙 마켓의 시찰이다.”
“알겠다. 당장 준비하도록 하지.”
***
이제 실피아와 블랙마켓을 순회하는 것은 일상적인 일과에 가까워졌다.
에르헬과 시에스타가 없는 지금 블랙 마켓 간부들 중에서 우리를 위협할만한 녀석은 없으니까.
그러니 좀 더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마스크…. 여기는….”
“쉿. 조용히 따라와라.”
블랙 마켓의 더 깊은 곳, 안에서 더 안으로.
들어갈수록 저주에 가까운 마력이 퍼지고 숨이 턱하니 막혀온다.
여기가 진짜, 블랙마켓의 심부.
온갖 더러운 것들을 취급하는 어둠의 상점들이 분포한 곳이다.
보통 더 들어가려면 우리를 막아서는 놈들이 있어야 정상이지만, 내 가슴께에 붙인 검은 깃발 간부의 브로치에 모두가 시선을 피한다.
간부의 상징은 서로 죽여서 빼앗는 것. 내 경우에는 에르헬의 것을 그대로 가져다 쓰고 있었지만 밖에서 보기에는 내가 다른 간부를 하나 죽이고 새로 간부의 자리에 올랐거나…. 그도 아니면 기존 간부중 한 명이라고 생각되겠지.
참고로 이걸 위조할 정도로 정신이 나간 놈은 없다. 위조했다가 걸리면 그대로 오체분시되어서 광장에 버려지거든.
아무튼, 내가 원하던 아이템 구입을 위해 한 노점상 앞에 섰고, 주인은 우리를 힐끗 바라보더니 관심을 껐다.
“마스크. 여기는….”
“마도구 상점이다. 물론 제대로 된 마도구는 아니다만…. 이런 곳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도 있는 법이지.”
“마도구…?”
나는 슬쩍 수정으로 만들어진 해골을 들어올려 설명을 시작했다.
“이건 환염의 해골이다. 원하는 상대를 적으면 밤에 불타는 꿈을 꾸게 해줄 수 있지.”
“그, 그렇군…. 꽤나 끔찍한 저주네.”
“음. 그리고…. 아 여기에 있군. 이걸 사도록 하지.”
새빨갛게 빛나는 붉은 구슬 하나를 집어들었다.
주인장에게 내미니 그는 내 얼굴을 한번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백만.”
주머니에서 100만린 지폐5장을 내밀었고 어마어마한 거래에 실피아의 눈이 커졌다.
“깔끔하군. 더 필요한 건 없나?”
“없다.”
“그거 아쉽군.”
오늘 사려는 건 이게 전부였고, 그대로 가게를 빠져나와 블랙 마켓을 천천히 걸었다.
“마스크, 대체 뭘 샀길래 500만이나 쓴거지?”
“이거 말인가? 매혹의 구슬이다. 두 가지 능력을 가지고 있지. 하나는 강제성. 그리고 다른 하나는 추상성이다.”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만….”
“강제성은…. 상대의 마력을 집어넣고 계속해서 기도를 올리면 상대가 자신에게 반하게 만들어준다. 주 목적은 이거지.”
“감정의 조작…?”
실피아의 안색이 확 굳었다.
시에스타 루트에서 이브를 가지고 논 구슬이기도 하다.
이브의 마력을 집어넣고 켈터스에게 반하게 만든 후.
이브가 보는 앞에서 시에스타가 켈터스에게 키스를 한다. 그리고는 철저하게 이브를 차버린다.
절망에 빠진 이브가 오열하고…. 시에스타는 행복하게 웃고…. 아무튼 루트가 장난 아니었지.
“너도 그걸 누군가에게 쓸 생각인가…?”
“아니. 쓸 생각은 없다. 그저 회수할 생각이었다. 누가 악용하지 않게 하려고 말이지.”
“아, 아아…. 그렇군. 그러고보니 추상성은 뭐지?”
“아…. 그거 말인가. 이 구슬에 본인의 마력을 집어넣고 거울에 가져다대면 미래의 연인의 얼굴이 보인다고 하더군.”
“뭐…? 미래의 연인…? 미래 예지…?”
실피아의 얼굴이 쩍 하고 굳었다.
그 정도로 대단한건 아니고, 지금 자신이 누구를 가장 이성으로서 좋아하는지 보여주는거다.
일종의 프라이버시 침해 보석.
“자. 회수할 건 했으니 돌아가도록 할까.”
“으, 응….”
실피아는 조용히 나와 구슬을 번갈아봤다.
뭐지.
이걸 가지고 내가 장난질을 칠거라 의심하는 건가?
***
구슬을 들고 학생회로 돌아왔고, 오늘의 보고서를 작성해 이브한테 올렸다.
그리고 이내, 다른 학생들을 전원 귀가시킨 후. 이브는 나와 실피아를 회장실로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이브님.”
“거 참. 운동 할 시간이란 말이다. 자유시간 정도는 줘야하는 것 아닌가?”
나와 실피아의 상반된 반응에 이브는 잠시 침묵으로 대응했다.
“오늘 가지고 온 그 매혹의 구슬이라는 거, 정말 보고서에 적힌 그대로인가요?”
“울프람의 말에 의하면 그렇다고 합니다.”
“내가 보고서에 거짓을 작성할 이유가 있나? 500만린이나 썼는데 말이다.”
녀석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건 학생회 이름으로 압수하는게 옳은 것 같은데요.”
“그러면 구매 비용은 학생회에서 내주는 건가?”
“윽…. 500만 린이나 쓸 예산이 있을 거 같아요?”
“그러면 내버려 둬라.”
“아뇨. 상황에 따라서는…. 긴급 예산을 편성해서라도 구매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진심인가.
“상황이라면, 어떤 상황을 말하는거지?”
“정말 당신의 보고서 그대로 위험한 물건인지 확정된다면 말이죠.”
“그럼 어디 실험해볼까.”
“좋아요. 우선 마력을 집어넣고, 그 사람을 가지고 싶다고 마음을 먹으면…. 상대가 반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거죠?”
“음. 그렇다.”
“그러면….”
이브는 살짝 실피아를 바라봤고, 실피아는 두 걸음 물러섰다.
“설마 이브님…”
“실피아. 해줄 수 있나요?”
“윽…. 으으…. 아, 알겠습니다.”
실피아는 구슬에 천천히 마력을 집어넣었고, 나는 그 구슬을 들고 천천히 기도를 올렸다.
잠시 후.
구슬이 더욱 붉은 기운을 피워 올렸고, 실피아의 눈이 살짝 풀렸다.
“실피아 에버그린 그로브. 내 말이 들리나?”
“응? 아…. 잘 들리지. 안 들릴리가 없지 않나.”
“그렇군. 그래서…. 어떻지? 뭔가 변한게 있나?”
“변한 거? 그런게 있을리가 없잖나.”
이브는 게슴츠레 눈을 떴다. 의심하고 있구만….
아니 근데 얘는 왜 무사한거래? 실피아의 정신력이 그렇게 강했나?
“변한게 없다…. 정말 그런가?”
“그래.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믿어라. 아무튼…. 그래서 이 뒤에는 어쩔 거지?”
“어쩌다니?”
“그야. 이 뒤에 혼수를 보러 가기로 했잖나. 나 참….”
“…….”
“…….”
나와 이브는, 동시에 입을 닫고, 시선을 마주했다.
지금 뭘 보러 간다고?
혼수?
누가? 내가? 누구랑? 너랑?
“엘프의 혼례에는 어떤 나무 앞에서 맹세하는지가 무척이나 중요하니 말이다. 세계수는 구하지 못하더라도…. 그에 준하는 천성수나 육화련목은 구하고 싶은데…. 울프람. 어떻게…. 가능할까?”
“…….”
“아, 내, 내가 파렴치한건 알고 있다. 하지만 평생에 단 한 번 있는 식이니 말이다…. 조금 호화스럽게 가도 괜찮지 않을까…. 응? 어떻게 생각해?”
실피아는 새빨개진 얼굴로 나를 힐끗 바라봤고, 나는 그 시선을 피해 이브를 바라봤다.
“더 할까?”
“아뇨…. 그만 하죠….”
좋아.
아주 현명한 판단이야.
나는 붉은 구슬에 들어간 내 마력을 지웠고, 흐리멍텅해진 실피아의 눈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실피아. 정신이 드나?”
“으…응? 드는데. 무슨 일이 있었지?”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나요?”
“네…. 아무것도요. 저는 대체…?”
다행이다.
조금이라도 기억했으면, 죽겠다고 칼을 거꾸로 입에 물고 뒤로 넘어졌을지도 모른다.
***
아무튼 강제성은 입증되었고, 그 다음은 추상성이었다.
“하나가 입증 된 이상, 다른 하나를 입증할 필요가 있나?”
“있어요. 그래야 학생회 예산으로 구매해서 엄중히 보관할테니까요.”
나는 딱히 팔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게 말하면 ‘그걸로 누군가를 세뇌할 생각이죠. 이 쓰레기!’ 라는 취급을 받을지도 모른다.
이게 다른 녀석 손에 들어가는게 두렵고, 특히 학생회가 제대로 보관할거라는 확신이 안 서서 차라리 내가 들고 다니고 말지…. 라는 의견을 피력해봐야 믿어줄리가 없지.
아무튼 이 최면어플 비슷한 마도구의 두 번째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 우리들은 제각기 거울 앞에 섰다.
그리고 누가 먼저 결과를 확인할 지 눈치를 보던 그 때 이브가 제안했다.
“생각해보니 이건 어마어마한 프라이버시 침해잖아요? 그러니까…. 당사자만 알 수 있는게 맞지 않나요?”
“그도 그렇군. 그럼 누가 먼저 하지?”
“제가 먼저 할게요.”
호기롭군.
아니면 방금 전 실피아에게 못 볼 꼴을 시켰으니 그 죄책감 때문인가.
나는 붉은 구슬을 이브에게 건넸고, 실피아와 함께 학생회실을 나갔다.
달칵. 하고 문을 닫고, 실피아와 서로 시선을 마주했다.
“울프람. 왜 이브님도 너도, 내가 구슬을 들고 무슨 짓을 했는지 말해주지 않는 거지?”
“너의 명예를 위해서다.”
“아니 대체 내가 무슨 일을 했길래….”
“너의 명예를 위해서라고 하지 않았나.”
“으, 으으….”
그렇게 잡스러운 대화를 이어가던 중.
【꺄아아아아아아아?!】
회장실 안에서, 이브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덜컥. 하고 문을 열고 들어간 그 순간, 데구르르…. 소리를 내며 붉은 구슬이 바닥을 굴렀다.
“이브. 괜찮나?”
“아, 아아…. 그, 그럴리가 없어…. 그럴리가. 내. 내가? 내가…?”
새빨개진 얼굴로,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이브는 이내 머리를 붙잡고 몸을 웅크렸다.
“이브님. 괜찮으세요?”
“아냐. 이건 잘못된거야. 저 구슬이 나를 거짓으로 꾀어낸거야. 그러지 않고서는…. 이런 결과가 나올리가 없어. 하필이면…. 내가….”
이브는 끝없이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뭔데.
대체 누가 나온건데?
끝내 이브는 누가 나왔는지 대답해 주지 않았다.
이후 실피아도 이 실험을 거친 후. 비슷한 느낌으로 폭주했고…. 마지막은 내 차례.
구슬을 들고 거울을 바라본 그 때. 거울 안에는 익숙하게 알고 있는 얼굴이 나왔다.
“과연. 그런가.”
언제 봐도 뾰로통한 녀석의 얼굴을 보고,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