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1031)
1031. Episode of EVE 25
내가 이성으로 보는 인물중. 가장 호감을 가진 녀석이 이브 폰 로엔그린이라는 충격적인 내용.
허나 그것을 보고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일리있었기에 납득한 것이다.
내가 원작 기준으로 가장 좋아했던 것은 유즈나엘이고, 메인 히로인 기준으로 2위는 이브니까. 서브까지 포함하면 3위다.
그런 중에, 유즈나엘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고 착실하게 이브와 학생회 생활을 하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브의 호감도가 더 오를수밖에 없지.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정말 이브를 사랑해서 ‘어머멋. 역시 내 메인 히로인이야…! 나 오늘 밤 전설의 나무 앞에서 고백해서 영원한 사랑을 이룰거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물론 아예 편하고 친하게 지내고 싶고, 매일 농담하고 대화 나누면 재밌는걸로 끝이냐고 물으면, 그건 실피아에 가깝지.
정말, 사람의 마음이란 이토록 종잡을 수 없나.
“내 마음은 천천히 생각하도록 하고, 지금은 5막인가.”
이브 폰 로엔그린의 5막.
그것은, 검은 깃발과의 전면전의 시작이다.
원작보다 스토리 진행이 빠르긴 하지만 그건 큰 변함이 없을 터.
“블랙 마켓쪽이 아니라, 외부에 진을 치고 있는 간부의 목을 취한다. 그 간부는 마족과 연결되어 있으니, 빨리 처리하지 않으면 타락자들이 생겨날테니까.”
마족은 인간의 어두운 마음에 침투해 이를 먹고 성장한다.
지금은 철저하게 원정조를 짜 녀석들을 괴멸시켜야 할 시간.
허리춤에 메어놓은 단검을 살짝 쓰다듬었다.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순간이 왔음에도, 마음은 지나칠 정도로 평온하다.
내가 이 세계를 여전히 게임의 연장선으로 보고 있어서, 인간을 죽여도 아무런 감흥이 없는 싸이코패스가 되었냐면…. 그건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
내가 죽이지 않으면, 이브가 나서서 녀석들의 목을 취할 거다.
그건 보고 싶지 않다. 그 뿐이다.
***
내 보고를 들은 이브는 몇 번 눈을 깜빡였다.
“마족과 협력하는 검은 깃발의 간부요?”
“그래. 이를 토벌할 원정대를 꾸리고 싶다.”
“음…. 그게 누군데요?”
“사라세니아. 기사학부의 수치다.”
“아. 누군지 알겠네요. 으음…. 수치. 맞죠….”
이브는 떠뜸거리다가 이내 납득한 듯 수긍했다.
“기사학부생들에게 말해라. 자신들의 수치를 직접 씻을 수 있는 기회라고, 그러면 몇 명이든 달라붙겠지.”
“네. 처리까지 몇박 몇일정도 예상하나요?”
“빠르면 당일. 늦어도 이틀내로 끝내야겠지.”
“그게 가능해요?”
가능하지.
안 될게 뭐가 있겠어.
“아. 그리고 원정조에 반드시 포함되었으면 하는 사람이 있는데 말이다….”
이브에게 그 녀석의 이름을 말하자, 녀석은 가볍게 수긍했다.
네프테리안.
그 녀석만 있으면, 사라세니아 공략전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럼 빠르게 출진하도록 하지. 너는 보고나 기다리고 있도록.”
“아뇨. 저도 동행할게요.”
“위험하다.”
“당신이 훨씬 더 위험해요. 즉결처형도 제대로 못 쓰잖아요? 마족을 처리하는 건 황실의 의무. 저는 그 의무를 저버릴 생각은 없어요.”
“후우. 알겠다. 알겠어. 다만…. 격전이 될 거다. 최대한 몸을 사리고, 그리고….”
“그리고 뭐요?”
“내가 무슨 짓을 하던, 나를 증오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
이브는 이해하지 못한 채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
이해 못하면 못한대로 처리해야지.
***
사라세니아.
이브 스토리에서 나오는 중간보스지만, 그 악행은 중간보스로 끝내기엔 평가절하된 감이 있다.
이 사라세니아는 기사학부로서도 수치스러운 존재이기에, 그녀를 처단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이전에도 있었으나, 워낙 신출귀몰하기에 그 위치조차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이명. 【마스터 슬레이어】 사라세니아.
기사학부 학생들이 군장을 싸고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고생이 많구나.”
“앗. 울프람 폰 로엔그린 황자님이십니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음. 기대하고 있다.”
내게 경례를 올리는 녀석의 눈은 반짝 빛나고 있다. 밝고 상쾌한 목소리.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내가 항상 파티에 넣고 다니며 애지중지 키웠던 소녀. 네프테리안이다.
“저기. 정말로 사라세니아의 위치를 알고 계신가요?”
“물론이다. 바쁜 너희들을 이렇게 모으기까지 했는데, 사실 허위 정보였다…. 같은 헛소리로 끝낼 생각은 없다. 믿고 따라와다오.”
“네. 알겠습니다!”
내 부탁에 네프테리안은 순식간에 의심의 시선을 거뒀다. 우선은 믿는다. 라는 녀석의 사고방식이 아주 잘 느껴지는 대답이었다.
“자. 그럼 사라세니아 공략전을 시작한다. 우리의 지상목표는 하나. 사라세니아의 살해. 그리고 전원의 무사 귀환이다.”
“살해….”
“죽이는…건가요?”
다들 술렁인다.
잡아서 어딘가 가두는 것 아닐까. 정도만 생각했겠지 죽인다는 건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을테니 말이다.
“그래. 죽인다. 마족과 내통한 인류의 배신자는 살려둘 이유가 없다.”
“하, 하지만…. 네. 아, 알겠습니다!”
기사학부 녀석들이 덜덜 떠는 모습. 역시나 사라세니아를 죽이는데 별 도움이 될 거 같지는 않다.
뭐. 이 녀석들의 쓸모는 사라세니아와의 전면전이 아니니 말이야.
그럼 어디다 쓰냐고?
“그럼 나는 체력이 약하니, 짐을 실어 옮기는 수레에 타도록 하마.”
“아, 네….”
당연히 나 태워줘야지….
어디다 쓰겠어.
***
사라세니아.
통칭 【마스터 슬레이어】가 머무르는 곳은 제프린 남부의 밀림 안쪽이다.
길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곳을 강제로 길로 만들고 가야 하기에, 기사학부의 삽질 능력이 필요했다.
“길을 만들었던 나무판은 그대로 내버려둬라, 자. 1열은 풀을 베고 지나가고, 2열은 양 옆으로 밀며, 3열은 판자로 수레가 지나갈 길을 만든다.”
“네. 네!”
내 지시에 빠릿하게 움직이는 기사학부 녀석들.
그래. 맞다.
이 녀석들을 끌고 온 건 바로 길을 내기 위함이다. 내가 걸어다니기에는 아무래도 체력이 부족하니까 말이야.
어떤 미친 보스가 자기 앞까지 오는 길을 뚫어놓겠나. 당연히 길을 뚫고 들어가야지.
하나 둘 녹초가 되어가지만, 내가 지시한 방향으로 착실히 길이 만들어졌고, 기사학부생들끼리도 교대하며 으쌰으쌰 작업을 끝낸 결과.
“저 너머에…. 건물이 하나 보입니다!”
“정말인가!”
울프람 이새끼가 일부러 우리들 돌리는 거 아닌가, 라며 미심쩍게 이쪽을 보던 기사학부 학생들의 시선을 돌리게 만드는 보고가 들려왔다.
저 너머에 있는 4층짜리 막사.
그것은 마치, 하나의 기사학부 기숙사 같아 보였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다.
저건 또 하나의 기숙사니까.
조금의 거리를 두고, 빠르게 식사를 마쳤다.
아무리 그래도 불을 피울수는 없어 샌드위치와 음료 정도로 끝났지만 샌드위치에는 고기가 잔뜩 들어갔고, 내가 준비해온 식사에는 체력 회복과 능력 강화가 잔뜩 붙어있어 오면서 녹초가 된 학생들도 기력을 되찾을 수 있었다.
식사는 한끼 분량 뿐이었기에 짐이 많은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총원. 전투준비.”
전원이 조용히 검을 빼들었다.
지금부터, 마스터 슬레이어를 죽이러 가자.
***
사라세니아.
어째서 그 녀석이 【마스터 슬레이어】라는 어마어마한 이명으로 불리는가.
우리는 앞서서 마스터라는게 어떤 의미인지 알아야 한다.
마스터. 한 분야의 전문가.
또 다른 의미가 바로….
석사(碩士).
즉 대학원생이다.
사라세니아는 기사학부의 대학원생 출신이었다.
기사학부에서 대학원에 간다는 것은 정신이상자라는 소리를 듣기 딱 좋았고 그녀가 딱 그런 인재상이었다.
그녀가 무엇을 노리고 대학원 진학을 목표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녀의 지도교수는 아주 쓰레기 같은 인간이었다. 월급인 180만린에서 140만린을 교재비를 비롯해 여러 명목으로 떼가고 원생인 그녀는 40만린으로 생활해야만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진학해서 시간도 갈아넣었는데 포기할거냐는 식으로 가스라이팅을 하거나 그녀의 논문을 훔쳐가기도 했다. 결국 사라세니아는 교수를 찔러 죽였다.
여기까지라면 그나마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뒤로 더욱 잘못된 길로 빠져들고 만다.
그녀는 악마와 거래했다.
주변 대학원생들의 어두운 마음을 증폭시켜 악마가 먹어치우게 만들고, 먹어치운 악마는 대학원생을 조종해 교수의 책상 위에 마정석 폭탄을 놓게 만들거나, 교수의 논문을 파쇄기에 넣고 갈기갈기 찢는다거나, 학회에 따라가 지도교수 이름을 대면서 타 교수님의 죽빵을 돌려놓거나 했다.
그렇게 사고를 친 대학원생들을 감금했으나, 그들은 하나 둘 존재를 감췄고, 그 모든게 사라세니아라는 악당이 저지른 폐단이라는 걸 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사라세니아는 도망쳤지만 기사학부의 대학원 진학률은 그 뒤로 더 나락으로 떨어졌고 맛 좋은 인재를 놓친 교수들은 사라세니아를 대 악당으로 몰고가며 수배령을 내렸다.
여기까지 보면.
조금 장난이 지나친 대학원생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래 나라도 저 정도의 악행은 눈감아줬을지도 모르지만, 문제는 저 녀석에게 기력이 빨린 대학원생. 그리고 사라세니아 본인이다.
말 그대로 독포자 그 자체.
마족에게 감정을 먹혀버린 그녀도, 그녀에 의해 늘어난 피해자들도 이제 인간으로 돌아올 수 없다.
일반 마족이었으면 모를까, 그녀를 지배한 마족은 먹어버린 감정 대신 저주를 섞어 넣으니까.
그러니까, 여기는 독포자 둥지다.
“마지막으로 너희들에게 확인하겠다. 대학원에 진학하고자 하는 녀석은 한 명도 없지?”
“물론입니다!”
전원의 당찬 대답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죽이고, 돌아가자.
***
사라세니아의 기숙사.
그 안에서 튀어나온 약 오 십 명의 대학원생들은 저마다 무기를 꼬나쥐고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생기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반쯤 폐인이 된 이들의 얼굴.
“욱…. 으윽….”
“이게 저주에 중독된…. 인간의 말로인가요?”
“말도 안 돼….”
학부생들이 눈쌀을 찌푸리거나 코를 막았다.
저들의 모습은, 마치 살아있는 좀비 그 자체였으니까.
아니. 살아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하지만.
“아니. 저건 그냥 대학원생들의 모습이다.”
“네…?”
“사고를 치고 마족에게 감정을 뜯어먹힌 그 순간부터 저들의 상태는 고정되어 있다.”
“아…. 그럼 정말로….”
“그래. 대학원을 목표했던 자들의 말로이자…. 그들의 평시 모습이다. 저게…. 대학원생이다.”
“윽…. 우윽….”
“욱…!”
누군가는 눈을 돌리고, 누군가는 헛구역질을 한다.
참혹한 그 진상 속에서 무언가가 걸어나 왔다.
눈 아래는 기미가 가득하고, 얼굴은 반쯤 패여있으며, 안경테는 구석이 찌그러져있고, 머리는 떡진 상태로 대충 묶었으며, 화장도 안해서 생얼인데 피부 트러블이 일어났고, 해골처럼 말랐는데 그렇다고 신체 균형이 맞는건 아니고, 너무 앉아있어 팔은 얇은데 엉덩이와 허벅지는 두껍고 옷도 대충 껴입었는데 그 위에는 스튜 자국이 튀어 있는데다가 양말은 수면양말 같은걸 너무 오래 신어서 울이 다 죽었는데 심지어 신발은 슬리퍼인 대학원생이다.
“세상에….”
“어떻게…. 어떻게 저런 사람이….”
그래.
저게 바로 ‘마스터 슬레이어’
사라세니아다.
【여러분들은…. 제프린 학생…?】
어둡디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그보다 어두운 목소리가 울렸다.
음울한 그녀의 목소리에는 증오가, 그리고 분노가 얽혀 있다.
“그래. 그렇다. 너를 토벌하러 찾아온 마법학부의 울프람 폰 로엔그린이다.”
【그렇…군요. 대학원생…이신가요?】
“아니다.”
【그럼 학부생…? 학부생이 여기를 찾아왔다고…? 나를 잡으러…?】
“그래. 학부생이라고 얕보지 말…”
【그 젊음을 가지고, 나를 비웃으러 왔다고오오오오오오!!!】
“큭…. 뭐지. 이, 어두운 기운은….”
【내가 대학원에 갔다고! 너희보다 열 살 많다고! 나를 늙은이 취급을 해?! 용서 못해. 못해. 주, 죽일거야!】
슬픔과 저주를 노래하며, 비탄의 대학원생이 포효했다.
【너희의 젊음을 내놔아아아아아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