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1032)
1032. Episode of EVE 26
사라세니아는 학부생 시절 그렇게 두각을 나타내는 학생이 아니었다.
성적은 중상위. 하지만 당시 기사학부가 으레 그렇듯 실전성은 형편없다.
그런 그녀가 어째서 5막의 보스로 선정되었는가, 그건 이야기의 2부를 여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1부 4막 보스가 저주를 사용하는 인간들이라면 2부는 마족과의 싸움.
추측컨데 그 시작을 열기에 너무 강한 마족을 쓰는 것 보다는 ‘위험한 마족’을 보여주는게 합리적이라고 판단한거겠지.
사람을 대학원으로 보내거나, 대학원생을 타락시키는 무시무시한 저주를 쓰게 만들자. 라는 제작진의 의도는 정확하게 먹혀들었다.
결국 사라세니아의 클리어 난이도는 켈터스가 얼마나 강해졌는지가 아니다.
파티원 내에 얼마나 ‘어둠의 기운’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가 없느냐, 그리고 켈터스와 이브의 정신력이 얼마나 올곧느냐가 기준점이 된다.
그래서 이브의 트루 엔딩 루트를 타고, 신념의 기사 네프티를 채용하면 난이도는 급락.
허나 이건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기에, 다른 기사학부 학생들도 어느정도 채비를 갖출 필요가 있었고, 이브에게 특별히 엄선해서 받아달라 한 것이다.
그 결과가 이것.
“밀어붙여라!”
“싸워라! 밀리지 마라!”
“선배들의 수치를 우리 손으로 씻어라!”
【그어어어어!】
【어딜 졸업장도 못받은 학부생 따위가아아아!】
【우리가 여기서 쓰러질 성 싶으냐아아아아!】
말 그대로 백중세.
학부생들이 마족에게 침식당한 학원생들과 대등하게 싸우고 있는 것이다.
【너희들도 우리처럼 절망할 것이다! 대학원에 진학해서! 교수의 노예로 살 것이다!】
“우리의 운명을 함부로 결정짓지 마라!”
“그래! 우리는, 그런 잘못된 길을 걷지 않아!”
【잘못된 선택?! 아니! 우리야 말로 옳은 선택을 했다!】
“뭐라고?!”
【사회는 두렵고 무섭다! 애송이들아! 기사의 자리는 한정되어있지 졸업해봐야 어중간한 성적으로는 잘 해봐야 용병대의 신입이다! 그런 결과를 얻기 위해 제프린에 온게 아닐 터!】
【좀 더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대학원에 온 것을 잘못이라 말하나! 그건 너희가 현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 지옥같은 취업 문턱을 넘어서기 위한 재능이 없어, 대학원이라는 답에 도달한 우리를 틀렸다 말하는가아아!!】
“크윽….”
“이, 이게…. 원생 선배들의 절망….”
“어떻게…. 이길 수 있나…? 우리가, 이 절망을 이길 수 있을까…?”
【흐하하하! 현실에 절망해라!】
【너희도 대학원에 오는 거다! 자! 어서!】
“싫어…. 가고 싶지 않아….”
“나, 나는 청춘을 사회에서 보내고 싶어….”
【하하! 절망에 빠져들어라! 어서!】
아니.
아니었다.
백중세가 아니라, 마음에서 학부생들이 패배하고 있었다.
대학원생들의 절망이 학부생들의 나약한 마음을 좀먹기 시작하고, 하나 둘 무릎을 꿇는다.
아무리 꿈과 이상을 논한다 한들, 가혹한 현실에 눈을 돌릴 수 없다.
나는 사라세니아와 1:1로 대치를 하고 있는 상황. 후열의 전투까지는 신경 써 줄 수 없는 모양새….
여기서 어떻게 해야….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혀를 차고 싸움의 속도를 올려, 어떻게 해서는 사라세니아를 ‘처리’ 하려고 할 때. 열기에 가득 찬 목소리가, 신념을 체현하는 포효가 내질러졌다.
목소리의 주인은 네프테리안.
그녀가 전장의 중심에 섰다.
【뭐가 아니라는 거냐! 너희들도 어서 대학원이라는 절망에 물들어라!】
“대학원이 정말 선배님들 말처럼 옳다면! 어째서 절망이라는 말을 쓰는 겁니까!”
【뭐라…고?】
“더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대학원을 선택했다면, 절망이 아니라 기회라는 말을! 파멸이 아니라 도약이라는 말을 썼을 겁니다! 선배님들은 이미 대학원을 절망이라고 말하고 있잖아요!”
【크, 크으으윽! 이 어린 계집이! 무엇을 안다고 조동아리를 나불나불!】
“선배님들은 자신들의 선택을 후회하지만 되돌릴 수 없어서, 또 다른 피해자를 늘리려고 할 뿐이에요!”
네프테리안의 강렬한 일갈에 대학원생들이 물러서는게 느껴진다.
【이, 이 조막만한게…!】
“정말 저를 부정하고 싶으시거든! 소리쳐보세요! 아! 대학원 와서 정말 다행이다! 하고요!”
【크아아아아아악!】
그렇게, 등 뒤의 싸움은 정말 백중세로 돌아섰다.
“이게 무슨 싸움인지 참.”
【캬아아아악!】
어깨를 으쓱하면서도 나는 사라세니아의 검격을 흘려냈다.
그럼.
뒤쪽은 믿을만한 후배에게 맡기고, 나는 내 싸움을 해볼까.
***
사라세니아의 공격 패턴은 지극히 단순하나, 그 공격에는 전부 저주가 실려 있다.
즉 평타가 저주속성이라는 의미.
이건 황손이라 해도 안심할 수 없다. 스치기만 해도 치명타거든.
물론 내게는 이 녀석의 공격을 한 대도 안 맞을 자신감이 있다.
그리고 이 녀석을 죽일 각오도 있다.
【크아아아! 젊어서! 젊어서 재빠르구나! 나도 십 년만 더 젊었어도!】
“그래도 나보다 늙지 않았나?”
【닥쳐어어어어!】
검격이 서로 난잡하게 얽힌다.
아무리 약하다 한들 상대는 학부 졸업생. 검과 검으로 마주하는건 지금 내 체력에서는 무리가 따른다.
그럼에도 상관 없다.
상대의 검은 기사학부의 검. 그렇다면 기사검에 지나지 않는다.
심지어 마음이 제압당해 있는 상황.
자유는 없고 생각은 사라져 몸에 질리게 익힌 것만 체현할 뿐.
기사검을 상대로 정면으로 붙는다면, 내 암살검쪽이 압도적으로 강하다.
오른쪽 허리를 크게 베고 들어오는 검에 맞춰 한 발 앞으로 걸으며, 검을 맞부딪쳤다.
상대가 원한 작용점보다 이른곳, 힘이 시작되는 지점에 맞춰서 파고들어간 패링.
근력이 부족해도, 기교와 타이밍으로 한 순간 호흡을 빼앗았다. 단검을 살짝 꺾어 장검을 막아낸 상태에서, 반대편 손을 들어 그녀의 경동맥을 쑤시고 들어간다.
이걸로 끝이다. 아무리 마족에 씌었어도, 죽을때는 죽는다. 사라세니아의 눈이 절망으로 물들고, 내 검이 하나의 생명을 단절하려는 그 순간.
뚝.
하고 나도 모르게 손을 멈췄다.
【어…. 어…?】
“흐음….”
죽음을 안겨주는건 쉽다. 지나치게 쉽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여기서 사라세니아를 조종하는 마족째 처리하지 못하면, 나중에 귀찮아 질 거 같단 말이지.
즉. 단말기에 지나지 않는 이 여자를 죽이는거보다, 좀 더 괴롭혀서 마족을 불러오는게 낫지 않겠나.
자. 그럼 그 마족을 어떻게 부르는가인데…. 그것도 다 방법이 있지.
손아귀에 빠득. 힘을 더 넣어 황실혈통 특유의 즉결처형을 싣는다.
내 즉결처형은 불완전하고 불균형해서 조금 움직이는 것 만으로도 손이 비명을 지르지만 상관 없다.
내지른 단검이 저주를 가르고, 갈라진 저주는 까가가가각! 소리를 내며 흩어졌다. 귀금속의 마찰음과 괴성, 그리고 비명과 포효를 섞은 신음성이다.
【뭐, 뭘 하는거야! 그만둬! 내, 내 힘이! 내 힘이이이!! 내 젊음이!!】
“그만 둘리가 있나.”
한 번 더, 단검을 휘둘렀다.
주위에서 보기에는 허공에 흐느적거리는 것 처럼 보이겠지만, 정확하게 저주가 갈무리 된 곳을 베어나갔다.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뒤를 이어 열 번을 지나 스물에 도달했다.
사라세니아의 눈은 충혈되고, 입에서는 침이 줄줄 흐른다. 고개를 숙인 그 모습
【크, 흐…. 흐으….】
“자. 이 정도 베었으면 진짜가 나올 시간 아닌가. 말단은 집어 넣고, 얼굴이나 한 번 봤으면 좋겠구나.”
【………….】
길게 침묵하던 사라세니아의 얼굴이 불현듯 치솟았다, 그리고는 눈을 까뒤집고 입에 호선을 그렸다.
나오셨나.
“마족이로군.”
【너, 대단하구나. 뭐 하는 인간이야?】
“너를 죽일 인간이다.”
【어머, 어머나. 내가 살면서 인간에게 그런 말을 들을 줄이야…. 이건 처음인걸? 썩 유쾌하네.】
“불가능하다 생각하나?”
【아쉽지만…. 그렇단다. 나는 인간의 정신과 정신 사이를 오다니는 마족. 실체라곤 존재하지 않지. 그런 나를 네가 어떻게 죽인다는 거야?】
“쯧.”
혀를 차자 사라세니아…. 아니 마족은 방긋 웃었다.
【그보다 나를 이렇게까지 불쾌하게 만든 책임을 져 줘야 겠는데?】
“책임이라니…?”
【내가 어렵게 모은 저주와 절망을 네가 전부 베어버렸잖아. 그걸 모으는데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 아니? 정말…. 이쪽은 피해가 막심하단다.】
“멋대로 인간을 조종하고 먹어치우려고 한 대가다. 난 지금 당장이라도 널 죽이고 싶다.”
【그러니까 그건 불가능하다니까. 내가 너를 죽이거나 인형으로 삼으면 모를까, 너는 나를 죽일 수도, 포착할수도 없어.】
“…….”
【아직 납득 못한 모양이네. 그럼 보여줄게. 넌 향후 대악마가 될 드림 이터님의 제물이 되는 거란다. 자. 기뻐하고 받아들이렴!】
그리 말하고, 사라세니아의 입에서 튀어나온 흑빛 연기가 내쪽으로 달려들었다.
양 손으로 코를 막을 틈도, 입을 닫을 틈도 없었고, 내 몸으로 파고든 연기는 이윽고 내 뇌를 파고들었다.
“선…님!!”
등 뒤에서 네프테리안의 비명이 들렸으나, 나는 숨을 들이키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멈출 생각도 없었다.
***
눈을 뜨니, 아주 새하얀 공간이다.
왜 있지 않은가, 공포 게임이나 호러 영화에서 시작할때 보여주는 순백의 병실. 그것과 아주 닮아 있었다.
“흠…. 이렇게 되어 있었나.”
방금 전까지 밀림에서 전투 중이었는데, 어디론가 소환된 건 아닐거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정신만 여기로 끌려 온 거겠지.
그리고 여기가 어딘가 하면…. 뭐, 뻔하지.
내 심상세계 비슷한거겠지. 이런 건 게임에서 몇 번이나 봤다.
그럼 밖에 있는 육체는 무방비할텐데, 그것도 괜찮다. 네프티가 나를 향해 소리쳤으니 뭐, 내 몸의 안전 정도는 지켜주겠지.
그러면.
사람의 정신에 멋대로 침투해, 정신을 조종하려고 든 범인이 요 어딘가에 있을텐데.
“드림 이터라고 했나? 남의 집에 쳐들어와서 모습도 드러내지 않다니, 어떻게 되어먹은 예의냐.”
병실…. 아니 내 심상세계 전체에 울리는 목소리. 하지만 녀석의 반응은 없다.
한 번 더 심호흡을 하고, 녀석을 불렀다.
“거 참. 이 곳에는 청년의 부끄럽고도 애처로운 마음 속 숨기고 싶은 비밀이 몇 개나 있단 말이다. 내 화단을 어지럽히지 마라.”
이번에는 농담을 던졌으나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돌아오는데 조금 걸렸다.
“개소리…하지마.”
“거기에 숨어 있었나? 남의 마음을 함부로 엿보면 안 돼지.”
“엿보기는…. 너 뭐야? 어떻게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마음을 닫을 수 있어? 어떻게 마음 안에 하나도 없을수가 있어? 세상을 살았다면, 마음 안에 뭐 하나라도 있어야 정상인데 너는….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다고!”
“닫았다? 없다?”
“그래. 파고들 여지가 하나도 없어. 마음 안에 아무것도 두고 있지 않아. 이음새라고는 없이 만들어진 금속 구슬처럼 뚫고 들어갈수가 없다고! 이 미친 공간이 네 마음 그 자체라고!”
“그거 잘 됐군. 너 같은 삼류 쓰레기 악마한테 속내를 들켜봐라. 십만 시간동안 플레이 한 내 자존심이 어떻게 되겠나.”
“뭐…? 플레이…? 십만…? 뭔 소리야?”
“뭐 자세히 알 것은 없다. 너는 내 심리 상담사가 아니고, 나는 네 환자가 아니니 말이야.”
병실을 걸어 더 안쪽으로, 드림 이터가 있을 법 한 곳으로 다가가 허공을 움켜쥐었다. 구름을 쥐는 것과 같은 행동이나, 여기는 내 마음속 세상이고, 내가 주인이다. 즉 녀석을 쥐는 것 정도는 쉽다.
“커…억. 어떻게 나를…. 나를 잡았어?!”
“분명 죽일수도 포착할수도 없다고 했나?”
“시, 싫어…. 웃기지 마. 도망, 도망쳐야돼. 도망….”
드림 이터는 천천히 내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려고 했으나, 그렇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손아귀에 힘을 더 주자, 녀석이 괴로운 듯 몸을 비틀었다.
“이렇게 포착하는데는 성공했으니, 네 말의 반은 틀렸구나…. 그럼 어디. 죽일수도 없는지 남은 반도 실험해볼까. 네가 살아나갈 수 있다면 살려주마.”
잠시 후.
한 마리 악마가 새된 비명을 끝으로 사라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