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1035)
1035. Episode of EVE 29
실피아와 내 관계를 의심한다는 것은 나에 대한 모욕으로 간주하며…. 등등. 이오를 입닥치게 하려고 여러모로 수를 쓴 결과 결국 먼저 나가떨어진것은 이오였다.
“알았다. 알았어. 그러면 연인 둘이서 오붓하게 보내도록. 이브. 너와는 좀 더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시간 괜찮니.”
“네. 괜찮아요. 언니. 눈꼴시려운 연인은 내쫓고 둘이서 이야기 하죠.”
“네가 그렇게 말해주니 한결 마음이 편하구나.”
그리 말하며 이오와 이브는 우리에게 눈짓했고, 나는 그대로 굳어있는 실피아를 잡아끌고 학생회실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사람 드문 곳에 도착했을 때. 그제야 푸하! 소리를 내며 실피아는 숨을 내쉬었다. 뭐야. 지금까지 숨 참고 있었어?
“너, 너!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딴 소리를 한 거냐!”
“그딴 소리라니 말이 심하구나. 다 이유가 있어 한 행동이다.”
“이, 이유라니… 너, 너는 나한테 관심이 없다고 했잖아!”
“딱히 없다. 그건 거짓말이 아니다. 믿어다오.”
내가 진지하게 말하자 실피아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아니 갑자기 왜 그러세요.
“그, 그럼 대체 왜 그런 파렴치한…. 헛소리를….”
“아무래도 이오가, 나와 네 관계를 의심하고 있는 듯 하다.”
“뭐?”
“아니면 다짜고짜 저런 물음을 던질 이유가 없지. 황손이라는 건 그렇게나 시간이 넘쳐나는 존재가 아냐.”
“의심…. 의심이라. 어째서?”
“글쎄. 이오 본인이 왜 그랬는지, 어디서 의문을 느꼈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이오가 우리를 의심한다는 것.”
우리가 맺어지면 이오의 계획이 망가질수도 있다. 혹은 내가 양지로 나오는게 마뜩찮다. 이브의 손패가 늘어나는게 싫다. 여러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아무튼 중요한건 의심했다는 사실 그 자체다.
보통 의심은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고, 나와 실피아의 관계가 거짓이어야 이오의 속이 편하다는 건 쉽게 추론할 수 있다.
그럼 더 꼽게 만들어줘야지.
“실피아. 우리는 서로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다. 그렇지?”
“어? 그, 그렇다.”
“그러면 좀 더 연인답게 굴도록 하지. 이오의 의심을 완전히 씻어버릴 수 있게 말이다.”
“의심을 씻는다니…. 연인답게?!”
“그래. 이거 꽤 재밌겠구나.”
“전부 다 네 억측 아닌가? 만약 이오님이 우리를 의심하는게 아니라면….”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구나. 우선은 염두에 두고 있도록.”
“아, 알겠다…. 염두…. 그러니까 만약 진실로 밝혀지면….”
“이오가 돌아갈 때 까지는, 원치 않아도 진짜 연인 행세를 하고 다녀야겠지.”
내 말에 실피아가 다시 뚝 굳었다.
***
이브는 눈 앞의 언니. 이오 폰 로엔그린이 까다로웠다.
형제끼리 서로 증오하고 저주하게 만드는 이 핏줄 때문일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이 이오라는 사람이 꺼려지는 걸수도 있다.
전형적인 속이 꽉 막힌 원리원칙 주의자. 하지만 신념을 가지고 원리원칙을 세우는게 아니라, 황실 혈통이라는 핏줄만을 긍지로 살아왔기에 다른 삶을 모르는 골수 혈통주의자다. 그런 주제에 본인은 딱히 유능하진 않다.
무능하면서 고지식하고, 그런데 신념을 가지고 고지식한게 아니라 선민의식 덩어리. 같은 혈통을 가지고 있다는게 놀라운 인간. 그게 이오 폰 로엔그린이다.
“그래서. 요새 제프린은 좀 어떻니.”
“어떻냐고 물으셔도…. 뭐가 말인가요?”
“최근에 검은 깃발의 간부를 처단했다거나, 여러 소문을 들었단다. 힘든 일은 없니?”
“괜찮아요. 주변 모두가 잘 도와주고 있거든요.”
“그렇구나. 그 모두에는 혹시…. 울프람도 들어가니?”
왜 이오가 콕 울프람을 콕 짚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브는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정말? 그 녀석은 워낙 불량하고 무능해서…. 혹여나 약점을 잡혀 협박당하고 있다면 언제든 언니에게 말해주렴.”
“그런 일은 추호도 없답니다.”
“그래? 그러면…. 정말 네 가신인 실피아와 연애중인거니? 그것도 사실이야?”
“그건….”
이브는 가슴 한 켠이 콱 조여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렇지 않게 긍정하면 된다. 울프람은 실피아와 사귀고 있고, 자신은 두 사람의 관계를 축복한다. 자신의 공증이 있다면 이오도 물러날 것이다.
허나 그럴 수 없었다.
더욱 혼란을 가속시키는 것은 이브 내면의 가치관이었다.
실피아를 울프람에게 빼앗기는게 싫은건가.
아니면, 혹시나 그 반대일까. 이브는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진실이 아닌 거니?”
후우. 하고 심호흡을 한 후, 마음을 안정시킨 이브는 천천히 입을 열어 답했다.
“남의 연애사에 입을 놀리는 취미는 없어요. 둘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언니.”
“그래. 그렇구나….”
“그래서. 정말 무슨 일로 오신거죠.”
“음. 언니로서는 제프린 걱정도 되고 요새 울프람 소문도 돌고 하니 그저 궁금해서….”
“이오 언니.”
“언니를 빤히 바라볼 수 있게 되었구나. 아무리 그래도 나는 네 언니란다?”
“그래요. 제 언니죠. 틀림없이 제 언니에요. 지금 이 순간에도 언니도, 저도 서로 미워서 참을 수 없잖아요? 의좋은 자매 흉내는 그만 두죠.”
“이브….”
“언니가 제프린 재학 시절 사고를 쳤던 사라세니아는 저희의 손으로 처단했습니다. 즉 언니의 과를 저희가 덮은거죠. 그게 신경쓰여서 오셨나요? 언니를 지지하는 기사학부생들의 이목이 제게 쏠릴까봐요?”
“그런 건….”
“아니라고 말씀 못하시는 걸 보니, 정말인가보네요.”
이브는 자신의 심박수가 터져나갈 듯 올라가는 걸 느꼈다. 동시에 머리가 차가워짐도 깨달았다.
자신이 그 이오 폰 로엔그린에게 따지고 들다니, 그리고 그 이오가 이렇게나 나약해보이다니.
시골에서 올라와 마법적 재능 외에는 인정받지 못했던 자신이 손윗 형제에게…. 이렇게나 강하게 반항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이 기념비적인 행보에, 심박수가 올라간다.
허나 머리 뒷편 깊은 곳에서는…. 울프람 폰 로엔그린의 비웃음이 떠오르며 ‘고작 이오에게 휘둘려서야 쓰나. 좀 더 냉정해져라. 옥좌를 목표한다면 고작 이오가 아니라 이시스. 이넬디아마저 넘어서야 하지 않나.’ 라고 냉정하게 지적하고 있었다.
“많이 변했구나.”
“네. 저는 재능만 있는게 아니라…. 전전대 학생회장의 수치를 씻을 정도의 실적도 생겼거든요.”
“그래. 그렇구나. 그러면 그건…. 언니를 포함. 네 형제들에게 당당하게 네 이름을 천명하겠다. 라는 각오로 봐도 되겠니?”
“…….”
즉.
이브 폰 로엔그린은 차기 황위 레이스에 참여할 건가 라는 물음이다.
손아귀에 땀이 흠뻑 젖었다.
울프람은 뭐라고 했는가.
지금 이 제프린에서 가급적 많은 세력을 끌어모아 황실의 눈길이 닿지 않는 동안 몸집을 키운다. 라고 했다.
허나 여기서 이브가 스스로의 깃발을 내걸고 천명하면 그 계획 전부가 비틀어진다.
울프람과 상의 없이. 여기서 강하게 나가도 될까.
이브는 말을 아꼈다.
“저는….”
“미안하구나. 언니가 조금 짓궂었어. 이 말은 잊어주렴.”
“…….”
이오는 가볍게 양 손을 들고 고개를 저었다. 그 쓴웃음에 이브의 안에서도 긴장이 풀렸다.
“그럼 언니는 조금만 더 이 제프린에 체류할게. 괜찮지?”
“편할대로 하세요.”
“그럼 나중에 또, 자매끼리 대화하자.”
이오는 방을 나섰고, 이브는 소파에 늘어졌다.
실수했다. 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이미 저질러 버린 일은 어쩔 수 없다.
빠르게 실피아와 울프람을 호출한 이브의 눈에는 절망보다는 조금의 안도감이 깃들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이 둘이나 있다는 건, 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새삼 깨달았다.
***
이브 녀석이 저질렀다.
우리를 부른 녀석은 이오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떠들었고, 나는 최대한 빠르게 상황을 정리해야 했다.
그래서 한 번 더 말하겠다. 이브 녀석이 크게 저질렀다.
“즉. 네 자존심을 채우기 위해 이오를 압박했으나, 마지막 부분에서는 결국 서로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거 참. 아예 밀고 나가던가 처음부터 숙이던가 하지 그랬나. 이 어정쩡함은 대체 뭐냐. 그러고도 네가 일국의 수장을 목표하는건가.”
“으….”
“울프람. 너무 말이 과하지 않나….”
“실피아. 너는 입을 다물고 있도록. 네 무인으로서의 돌파력은 크게 인정하지만, 책사로서의 면모는 인정한 적 없다.”
“윽.”
“아무튼 상황을 정리하자. 이오는 대놓고 속이 좁아 자신의 오명이 퍼질까봐 우리를 견제하기 위해 제프린에 찾아왔고, 이브 너를 아주 살짝 긁었는데 너는 아예 발작을 했다. 맞나.”
“맞…아요.”
“황위 레이스에 참가하겠냐는 그 물음에 너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즉. 견제를 당해도 할 말이 없다.”
“으…. 맞아요.”
아예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면 모를까. 여기서는 머뭇거린 거 자체가 문제다.
“이오는 이시스쪽 파벌이었지. 그 뱀 같은 여자가 한 번 의심을 했다면 견제가 들어온다고 봐야할테고…. 견제는 여러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겠구나.”
“견제…?”
“제일 쉬운 건 결혼이나 약혼이다. 이브. 네가 어째서 자유로운지 알고 있나? 어느 한 쪽의 파벌에 붙지 않은 정치적 순수성과 더불어 압도적인 재능 때문이다. 굳이 건드릴 필요가 없었던 거지. 가만히 있는 벌집을 쑤실 이유는 없지만…. 그 벌이 자신을 공격하려 든다면 벌집째로 태우거나, 어디 따로 격리해야 하지 않겠나.”
“…….”
“아니면 양봉장에 팔아넘겨 꿀만 채취할 수도 있지.”
여기까지 말하니 이브도 슬슬 깨달은 듯 하다.
앞으로 이브에게는 수 없이 많은 약혼 제안이 들어올거다.
전부 이시스의 입김이 닿은 녀석들일거고, 이브가 거절하면 황손이 책임감이 부족하다고 물어 뜯겠지. 여론을 움직이고 민심을 움직여 압박하면 이브는 책임감 때문에라도 행동에 나설 수 밖에 없다.
만에 하나라도 이브가 약혼을 하는 순간 바로 족쇄가 채워진다. 졸업하자마자 결혼식장으로 끌려가겠지.
끝까지 거절해도 상관 없다. 수 없이 많은 맞선 자리를 준비해 이브가 무언가를 획책할수도 없게 만들면 그만이다.
“그건…. 너무하지 않나…?”
실피아가 손을 덜덜 떨었으나, 반대로 이브는 눈을 질끈 감을 뿐이었다. 이 녀석도 현실을 깨달은거다.
“어디까지나 최악의 사태지만, 그렇게 나오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기서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아예 대의명분을 이쪽에서 잡는거다. 제국의 미래를 위해 싸우고 있는데 결혼이 대수겠냐, 라면서 말이지.”
“대의 명분?”
“이미 마족들과 신나게 싸우고 있지 않나. 이 제프린에 마족들이 음모를 꾸미고 있고, 이브 폰 로엔그린 회장은 이들과 싸우고 있다. 라면서 판을 키우는 거지.”
“그런 방법이…. 그리고 두 번째는요?”
“아예 네가 황위 레이스에 참전하겠다고 선언하는거다.”
“어느쪽이나 보통 일이 아니네요….”
“선택은 네 몫이다.”
이브는 고민해보겠다며 혼자 있을 시간을 요구했고, 나와 실피아는 학생회실을 나왔다.
그리고 얼마 후.
이오 폰 로엔그린의 주도 하의 첫 공격이 들어왔다.
그 공격은, 공교롭게도 우리가 예측한것과 무척이나 비슷했으나….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울프람 황자님. 황궁에서의 서신입니다. 확인 부탁드리겠습니다.”
내 앞으로 보내진 편지.
그 위에 적혀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울프람 폰 로엔그린 황자와 아일라 트라이스타 백작 영애의 파혼은 인정하는 바, 허나 장성한 로엔그린의 황자가 독신의 몸으로 있는 것 또한 제국민의 심적 안정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이 우려스럽다.】
【이에 나 이시스 폰 로엔그린은 내 동생 울프람 폰 로엔그린 황자와 크루엘 후작 영애 이졸데의 만남을 주선하고자 한다.】
【부디 시간을 내어 제국의 안녕에 기여할 수 있도록.】
이건 진짜 예상 왼데.
좌표가 찍힌게 이브가 아니라 나였다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