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1037)
1037. Episode of EVE 31
이오를 쫓아내고, 소파에 앉은 이브는 손등으로 눈을 가렸다.
마음을 정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심장이 터질 거 같을까.
그래.
울프람을 처음 알아본것도 나고, 그를 중용하겠다고 한것도 나다.
울프람이 파트너라고 공언한것도 자신이다.
그러니까 그는 자신의 것이다. 누구에게도 줄 수 없다.
“후우…. 그럼요. 그러고 말고요.”
지금 주변에 아무도 없어 다행이다.
누구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시끄러운 심박음이 들켰을테니까.
***
이브와 만났을 때. 짧은 보고를 들었다.
이오는 쫓아냈고, 앞으로 이시스나 이오가 이쪽으로 더러운 수를 쓰지는 않을거라고 말이다.
이쪽으로 라는 건, 결혼이나 약혼쪽으로 협박해오는 걸 말하는거겠지. 어떤 수를 썼는지는 끝까지 말해주지 않았다. 나도 더 캐묻진 않았다.
“아무튼, 그래서 이졸데 크루얼이 달라붙을 일은 없을 거에요.”
“그런가. 그거 잘 됐군.”
“그러고보니 이졸데와 무슨 이야기를 했나요?”
“별거 아니다. 나는 너에게 관심이 없고, 이건 악질적인 장난이니 밥이나 먹고 치우자고 했지.”
“당신 치고는 꽤나 깔끔한 처리네요.”
이브는 드물게 미소를 지으며 나를 칭찬했다. 웬일이래.
“아무튼 오늘은 이 뒤에도 약속이 있다. 길게 어울려주지 못해 미안하군.”
“그래요? 어쩔 수 없죠. 그런데 무슨 약속이에요?”
“이졸데 크루얼과 만나기로 했다.”
“네?”
“몇가지 조언을 했는데, 그 뒷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고 보채서 말이다.”
“…….”
방금 전 미소는 어디갔는지, 회장실 안에는 빛속성 마력의 기류가 넘실거린다.
“뭐, 대단한 일은 없을거다. 걱정하지 말도록.”
“당신은 제가! 왜 그런 고생을 하면서 이졸데를 떼어냈는지 알고는 있는거에요?!”
알지. 알지. 알다마다.
그런데 어쩌겠냐.
“녀석은 좋은 거래상대가 될 수 있다. 크루얼 가의 여식이라고 하면 가까이 둬서 실보다는 득이 많을테니….”
“나가요!”
불호령과 축객령이 동시에 떨어졌고, 조용히 학생회실 문을 열고 나왔다.
이게 그렇게나 화를 낼 일인가?
***
이후 이졸데와 만나 자취 생활에 대한 팁들을 풀어줬다.
대학원 생활은 해본 적 없지만, 내가 숙노부터 시작해 자취까지. 아니 희망의집에서도 어느정도 자립심을 요구했던 걸 생각하면 거진 20년간 혼자 살아온 자취의 달인이다.
“식재료는 너무 많이 사지 마라. 애당초 혼자 살 때는 요리를 해먹을 시간 자체가 없다. 물론 건강과 비용절감이라는 측면에서는 좋지만, 보관하기도 어렵지 않나.”
“그렇군요.”
“허나 한 번에 간을 진하게 할 수 있는 향신료들은 구비해두는게 좋다. 일단 간이 강하면 맛있다고 느껴지는 법이다.”
이졸데는 내 주옥같은 팁을 하나하나 메모해 나아갔다.
이 녀석이 루트 초반에 얼마나 생활력 없이 막 사는지 알기에 더더욱, 내 조언은 피와 살이 되겠지.
“숙소는 찾아가봤나?”
“네. 정말 최악이더군요. 물이 새서 벽에 곰팡이가 슬고, 천장은 삐걱거리고…. 벌레도 나오고 식품 보관고도 구멍이 뚫려 있었습니다.”
“중계업자는 고발했나?”
“고, 고발이요?”
“그래. 그런 하자 물품을 소개한 것 만으로도 고발 사유가 된다.”
“그렇게까지…. 저는 사전에 피할 수 있었으니까요….”
“너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업자가 다른 피해자를 낳을 수 있으니 즉각 고발하도록.”
“아, 네!”
“그럼 다음은 청소와 세탁에 대한 거다만….”
그렇게 몇 시간을 자취 생활에 대해 떠들고, 해가 늬엿 질 때 쯤 기본적인 전수가 끝났다.
“이 정도다. 다 메모했나.”
“네. 전부 메모했습니다.”
“그럼 오늘은 이쯤 하고….”
“황자님. 저녁에 혹시 일정이 비셨다면 식사는 어떠신가요.”
이졸데의 갑작스러운 제안.
식사. 식사라….
“그러고보니 전에, 너와 몇 번 더 식사를 하면서 이시스의 눈을 가리기로 했었지.”
“네. 맞습니다. 그러니 오늘도….”
“그건 어떻게든 해결했다. 그러니 전면 백지로 돌려도 좋다. 즉 없던 이야기가 되는 셈이지.”
“네…? 그게 무슨….”
“나와 같이 있어 불편했을 터. 잘 됐구나.”
“아, 아뇨. 황자님 그게….”
“앞으로 그런 이유로 귀찮게 하는 일은 없을거다.”
“그러니까….”
“그럼에도 가능하다면 우호적인 관계는 계속해서 쌓아갔으면 하는군…. 아무튼 내 무리한 부탁을 들어주느라 고생했다. 조심히 들어가도록.”
멍하니 이쪽을 보기만 하는 이졸데를 뒤로 하고 떠났다.
음. 이걸로 깔끔하게 다 정리된 셈이다.
빨리 돌아가자.
***
회장실에 돌아오니, 나갔을때 그대로 뚱한 표정의 이브가 있었다.
“저녁은?”
“…….”
“흠. 탕비실이 깨끗한 걸 보니 안먹었나보군. 뭐 먹겠나?”
“됐어요.”
“그런가. 나는 점심부터 굶어서 말이다. 뭐라도 먹으려고 하는데, 정말 안 먹을건가?”
“굶었다고요? 이졸데를 만나러 간거 아니었나요?”
“만났지. 하지만 밥은 안 먹었다.”
“네? 그럼 만나서 뭘 했길래….”
“녀석이 대학원 생활에 불안감을 느껴서 말이다. 좋은 집 구하는 방법이나, 생활의 지혜를 조언해주고 왔다.”
“으, 으음…?”
이브는 내 말에 고개를 계속해 갸웃거렸다.
“아무튼, 나는 정말 쫄쫄 굶은 상태다. 너는 어떻게 할 거지?”
“…….”
방금전까지 화가 잔뜩 나 있던 이브의 분노가 누그러지고, 내 귓가에 작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먹을게요.’ 라니…. 든든하게 1.5인분을 만들면 되겠군.
그렇게 샐러드와 스튜.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저녁으로 먹기에는 충분하고 넘치는 양이다.
“가볍게라고 했는데….”
“그래. 그래. 남기면 내가 먹을테니 편한만큼 먹도록.”
“그럼 뭐….”
이브는 그리 말하고 쉬지 않고 손을 움직였다.
평소보다 조금 빠른 그 속도에 이상함을 느껴 물었다.
“점심부터 굶었나?”
“일이 바빠서요.”
“거 참. 서로 일 때문에 바빠서 쉴 틈도 하나 없군 그래.”
“그러게요. 정말 조금이라도 쉬었으면 좋겠어요.”
깊게 한숨을 내쉬는 녀석.
그러고보니 이브는 특히 스트레스에 취약해서, 공략하려면 쉬는시간도 충분히 벌어줘야 하고 선물로 호감 관리도 해야한다. 안그러면 애가 비뚤어져서 마법 효율도 안나오고 노멀 엔딩으로 빠질 확률도 올라가거든.
“주말에 하루정도 시간을 내서 쉬는건 어떻지?”
“그게 그렇게 쉬울 거 같아요? 제가 해야하는 일이 몇갠데….”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일을 하면서 쉬는거지.”
“그게 또 무슨 웃기지도 않는 소리에요?”
“지난번 극성의 숲처럼 말이다. 원정을 간다고 해놓고 실제로는 가서 쉬는거지.”
“읏…. 그건 조작이잖아요.”
“아니. 정말로 원정과 탐사를 하긴 할거다. 다만 가는길에 풍경을 즐기거나 도시락을 먹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눈에 들어오는것을 탓하거나, 먹는것을 줄일수는 없는 노릇이잖나.”
“그야…, 그렇지만….”
우물쭈물거리는 녀석.
거의 넘어왔다.
“아주 괜찮은 곳이 있다. 너도 분명 마음에 들거다.”
“그, 그래요? 그러면 가볼까…. 아 맞다. 실피아는….”
“미안하지만 이번에는 둘이서만 가야 한다.”
“두, 둘이서요?”
“그래. 단 둘이서.”
“으, 으흐음…. 그렇구나. 둘이서…. 이유가 있나요?”
“빛의 마력 소유자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다른 마력의 보유자가 들어가면 사달이 난다.”
“아…. 그러면 뭐 어쩔 수 없나….”
이브는 꼼지락거리다 이내 으흠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일정은 언제로 잡는게 좋을지 정해보도록.”
“네. 최대한 비는 날 잡도록 하죠. 자. 잡담은 여기까지. 식사도 했으니 다시 일이나 할까요.”
빠르게 사무 폼으로 돌아간 이브는 방금 전까지의 잡담이 거짓말인 것 마냥 무표정하게 서류를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건 이브가 기대감이나 즐거움이 일정 선을 넘어서면, 강제로 자신을 다잡는 행동 패턴이다.
그 증거로, 서류 업무를 보던 중 몇 번이고 콧노래를 흥얼거리지 않나.
녀석의 자작 멜로디를 모른척 한 채로, 나도 서류 업무에 들어갔다.
***
그 주의 주말.
실피아를 비롯한 임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우리는 제프린 밖을 향했다.
이제는 익숙해진 외각 대로를 걸으며 기지개를 편 이브는 슬쩍 내 품을 바라봤다.
“그래도 이번에는 짐이 좀 없네요. 그냥 마실 수준인가봐요?”
“음? 아니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꽤 길어질 수 있다.”
“네? 그러면 야영도구는요?”
“뭐, 와보면 안다.”
우리는 이윽고 공터에 도착했고, 자리에 멈춰서자 이브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여기 맞아요?”
“마력 감지를 키워보면 느껴질거다.”
“네? 음…. 네. 어라? 문? 문이 하나 있는데요?”
“그래. 오직 빛의 마력에만 반응하는 곳이지. 문을 열어봐라. 여는 법은 알겠지?”
“네. 자연스럽게 알 수 있는데…. 일단 열게요. 그럼….”
허공에서 마력이 노닐다가 이내 고정되고, 공간을 비틀었다.
촤르르르륵 황금빛 불꽃이 원을 그리고 이내 원은 점점 커져서 하나의 포탈이 되었다.
“자. 들어가자.”
“잠깐만요. 어딘지 설명은 하고 들어가야죠! 울프람? 혼자 들어가면 어떡해요! 야!”
***
【로엔그린의 숲】이라는 지역이 있다.
황손만 출입할 수 있으며 숲 안에는 보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수호성수로 거대 포메라니안이 존재한다. 난이도는 그럭저럭 있는 편이다.
그 숲은 역대 부임한 황손들이 축재를 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곳. 하필 그런 곳에 마력 과포화가 일어나서 던전이 되었다.
이곳도 그 숲과 큰 차이점은 없다. 있다고 한다면….
“여기가 바로 로엔그린의 쉼터다.”
“쉼터?”
내부는 황금의 실내였다.
벽도 황금, 바닥도 황금. 붉은 카펫이 깔려있고 금박이 된 도자기에 황금기둥까지, 말 그대로 금색의 세계다.
참고로, 이거 전부 다 금이다.
돈을 얼마나 쳐발랐는지 놀랄 정도다.
“300년에 이르는 역대 학생회장 중. 몇몇이 부정축재를 하다하다 넘쳐나서 이런 생각을 했다. 린을 녹여서 실내를 장식해보자. 오직 금빛만으로 실내를 꾸며보자.”
“잠깐만요. 린은 지폐도 있고 은화도, 동화도 있는데….”
“그들에게는 금화가 아니면 화폐가 아니었다.”
“세상에….”
“여기는 황손들이 쓰던 쉼터였으나, 너무 저렴해보인다는 것을 이유로 소리소문없이 사라졌지.”
“저도 이런 곳은 좀 부담스러워요….”
이브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머리를 감싸쥐었다.
아주 작은 빛 만으로도 금색에 반사되어 눈이 아플 정도다.
물론 소파를 시작으로 가재도구들까지 금은 아니었다. 조금 많이 귀티가 날 뿐이다. 이브는 침대를 툭툭 쳐보고는 마력을 한 번 흘리고,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심지어 영속화와 청결화까지 걸려 있어…. 정말 쉼터네요.”
“그래. 꽤 괜찮은 곳 아닌가?”
“아니…. 여기가 어떻게 괜찮은데요. 저는 당신이 초대해서 믿고 왔더니 이런 번쩍 거리는 곳….”
“참고로 이 쉼터가 지어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백 년 전이다. 당사자들은 모두 죽고 없다. 말 그대로 소유권이 공중에 붕 뜬 셈이지.”
“네…?”
“즉 전부 뜯어가면 자금으로 쓸 수 있지 않겠나.”
“…….”
이브는 주변을 둘러보고, 나를 보고, 다시 황금의 실내를 바라봤다.
“어떻지?”
“정말…. 아름답고 풍요로운 곳이에요. 세상에나, 이런 사랑스러운 곳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마음에 든다니 그거 다행이군.”
“자. 그러면 어서 뜯어가죠. 이럴 시간이 없어요!”
“그리 급하게 굴거 없지 않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 또한 유적과 유산이다.”
“이런 돈으로 떡칠한 싸구려 공간이요?”
“백 년 전 황손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공간 아닌가.”
“으, 음….”
청결화와 영속화도 걸려 있는 곳이니 위생도 문제 없고 말이야.
“지금부터 일할 생각일랑 말고, 오늘은 순수하게 쉬어라.”
“그래요. 그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서류상으로는 제프린에 분포된 문화 유적 탐사라고 적었으니, 그에 맞는 보고서도 써야 하고요.”
“어제도 철야로 업무했지. 조금 쉬는게 어떻지?”
“쉰다…. 쉰다라. 잘 쉴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흐음. 백 년전 선조님들은 이런 침대를 썼구나….”
이브는 그리 말하고 침대를 슬쩍 바라봤다.
당장이라도 누워서 한숨 자고 싶다는 눈빛.
내가 고개를 슬쩍 돌려 독서를 시작하자, 녀석은 방긋 웃고는 침대로 올라가 이불을 덮었다.
잠시 후.
새근새근한 숨소리가 들렸고, 책에서 눈을 뗐다.
너무 밝아 읽기 어렵다.
“후우….”
이것 참.
눈 앞에서 평온하게 쿨쿨 자고 있는 녀석을 보니, 경계가 풀린 것 같아 마음은 편하다만….
“나는 어디서 쉬어야 하지?”
애석하게도, 침대는 하나 뿐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