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1040)
1040. EVE EAT EVERYTHING 2
다섯째 날.
소문은 사실이었다. 나는 이브에게 식사를 만들어줬다. 오래간만에 내 식사를 맛본 이브는 처음에는 무척이나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녀석이 파스타 일곱 그릇을 먹어치우고, 내 신작 사탕 열 두가지 맛을 제각기 세 봉지씩 먹어 치운 이후. 이제 재고가 없다고 하니 만족한 표정에서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 이상 먹으면 안 되지 않냐는 물음에 ‘소녀의 꿈’안에는 ‘제한 없이 먹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고 말했다. 생각해보면 아무리 먹어도 변하지 않는 체형은, 반대로 말하면 체형만 변하지 않으면 무한정으로 먹겠다는 의미 아닌가. 나는 이를 듣고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녀석의 체형은 변화가 없었다. 여전히 아름다웠다.
여섯째 날.
그저 폭식 능력이 추가된 학생회장.
그렇게 받아들이고 넘기려고 했으나, 소문은 하나 더 늘어났다.
이브의 곁에 가면, 기력이 빨린다는 것이다. 남녀 상관없이 말이다.
설마 모든 소녀가 인간의 에너지를 드레인하는 꿈을 꿀리가 없다. 이건 정말 소문 아닐까. 솔직히 내 옆에서 이브가 저렇게 먹는다고 하면, 나도 기력이 빠지고 식욕이 사라져 도망칠 자신이 있다.
허나.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 소문을 뜬 소문 취급해선 안 됐다.
일곱째 날.
이브 폰 로엔그린의 두 번째 소문 또한 뜬소문이 아니었다. 저 녀석의 근처에 가면 정말로 기력이 빨린다. 어떻게 아냐고? 내가 다가가봐서 안다.
어마어마한 마나 드레인. 서큐버스는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능력이다. 신화 포식자로 그 힘 전체를 베어버렸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만성적으로 마력이 부족한 나는 진짜 위험할 뻔 했다.
어떻게 된거냐고 물으니, 이브가 말했다.
배가 고파요. 너무나 배가 고파요. 라고 말이다.
그렇게 먹었음에도 배가 고프다고? 되묻자 이브는 고개를 저었다.
모든 소녀의 꿈으로 인해 육신은 완벽하다.
갈증을 느끼는 쪽은 마력이다.
마력이 끝없이 모든것을 흡수하라 말하고 있다. 소녀의 꿈에 그런 기능이 있었나? 하고 물으니 이브가 멍하니 나를 보다, 이내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실수했어요.
무슨 실수인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축객령을 들었고, 나는 학생회실에서 쫓겨났다.
열째 날.
이브는 여전히 학생회실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
나는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을 찾아갔다.
이 이야기를 전부 들은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그가 인상을 찌푸릴만한 일이 세상에 있을 거라 생각한 적 없었다.
하르크는 미간을 좁힌 채 빠르게 안내를 부탁했다.
무언가가, 많은 것들이 잘못되고 있었다.
***
이제 학생회실 반경 수백미터 밖에서도 마력이 흡수되고 있다.
근처에 있는 학생들은 저마다 초췌해진 얼굴로 비틀거린다.
“영진. 마력은 어때?”
“괜찮다. 신화포식자로 어떻게든 베어내면 된다.”
“그거 다행이네. 참고로 나는 실시간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다. 이거 큰일인데.”
“네 마법 저항력으로도 안 된다고?”
“이브와 내 재능은 대등해. 저 아이가 전력을 다해 흡수하기 시작하면, 나는 움직이지 않고 모든 걸 방어에만 돌려야 해. 하지만 지금은 움직이고 있고, 다음 수도 생각해야 하니까 아무래도 방어가 부실해질 수 밖에 없지.”
“그렇다는 건 즉….”
“그래. 진짜 정말, 큰일날 정도로 위험한 사건이야. 이거.”
하르크는 웃었지만, 녀석의 콧잔등에 식은땀이 한 방울 흘러내린 것을 봤고, 나는 차마 따라 웃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학생회실 건물을 타고 올라갔다.
신화포식자로도 전부 베어내기 힘든 마력 흡수다. 이미 주변 대기를 비롯해 자연물의 마력도 전부 빨려들어가, 계단은 당장이라도 으스러질 것 같고 벽은 너덜해졌으며, 천장에서 돌가루가 흩날렸다.
“하르크. 이건….”
“마력은 비단 생명에만 있는게 아니니까. 이 세상 모든 것에 마력은 깃들어있거든…. 이브는 지금 주변 모든걸 먹어치우고 있어. 건물도, 대기도, 마력도, 심지어 세상 전체를 말이야.”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소녀의 꿈은 일반인들의 꿈을 뭉쳐 신화의 단계로 끌어올린거야. 즉. 한 사람의 꿈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그 안에 깃든 모든 사람의 꿈을 이루어주지 않으면 결코 해소되지 않아.”
“뭐라고…. 그런게 가능할리가 없지 않나.”
“그래. 가능할리가 없지. 그런데 더 까다로운건 수 천 명이 나눠서 먹으면 어떻게 될수도 있지만, 이브 혼자서 먹어치웠지. 즉 지금 이브의 몸에는 꿈이 중첩된 상태야.”
“꿈이 중첩…. 녀석의 몸에 부담이 간다는 건가?”
“그것도 있지만 진짜 문제는 그게 아냐. 평생 이브가 마법을 쓰지 않고 이를 막기만 하면 어떻게든 될 거야. 이브도 최선을 다하고 있을거야. 문제는 ‘소원을 이룬 좌표가 중첩되어 있다.’ 라는 거야.”
“좌표가 중첩?”
“그래. 예를 들어 앉은 자리에서 파르페 세 개를 먹었다고 치자. 그럼 원래 위장에는 고스란히 파르페 세 개가 들어있어야 하지? 하지만 이브는 어떻지? 파르페를 먹었음에도 위장에는 존재하지 않아. 먹은 좌표값은 중첩되었는데 실제 오브젝트는 존재하지 않아. 여기서 문제가 생겨. 이브가 먹은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꿈이 이루어진게 아니라고 소녀의 꿈이 판단할거야.”
“미…친….”
그렇다면 지금부터 이브는 수 억. 수 백 억. 아니 조를 넘어서 경. 해. 자. 이 세상 모든걸 먹어치워도, 영원히 굶은 상태라는 건가?
정말, 우주 전체를 먹을 수 있는 위장이라고?
“그게, 【소녀의 꿈】을 내가 인게임 내에서 ‘사용 불가’ 물품으로 지정한 이유야. 이런 치명적인 버그를 일으킬 수 있으니까….”
“어떻게…. 해야 하지? 이브를 구하려면 내가 뭘 해야 하지?”
“구할 거야?”
“당연하지 않나. 네가 당장 이브를 죽이려고 하지 않은 것 부터…. 구할 방법이 있다는 거 아닌가?”
“하…. 이래서 고인물은 진짜…. 그래. 맞아. 있어. 이브를 구할 방법이 있지.”
“뭐지?”
“버그를 고치는 방법은, 버그가 일어난 부분을 지우는게 빠르고 쉽지.”
“너….”
“죽인다는게 아냐. 이브를 다른 시간선으로 날리는거야. 예를들어 1억년 후로 날린 후. 그 곳에서 이브가 이 행성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먹어버리게 내버려두는거야. 그 때 시간선을 재 조율해서 지금보다 과거로, 이브가 저 약을 얻기 전으로 되돌리는거야. 그러면 모든게 원상복귀되는거지.”
“바로 과거로는 못 가나?”
“지금은 이브의 힘이 너무 강해서 바로 과거로 돌릴수는 없어. 그러니까 일단 격리해서 안정시킨 후 되돌리는거야. 이 세상 모든 소녀가 사라지면 소녀의 꿈도 멈출테니까. 이론상 확실해.”
어렴풋이 이해는 했다.
그런데…. 그러면 이브는 지금부터 몇 억 년 후로 날아가서, 우주 전체를 먹어야 하는 건가?
“그럼 저 녀석은…. 멋대로 다른 시간선으로 날아가, 모든 소녀의 꿈을 먹어 치울 때까지 혼자 남아야 하는 건가?”
“그렇게 되겠지.”
“…….”
그건 좀 너무 하지 않나.
그저 체형이 조금 이쁘길 바랐을 녀석에게 이런 끔찍한 결말이 찾아와도 되는가.
“하르크. 부탁이 있다.”
“뭔데? 빠르게 말해. 슬슬 시간선을 비트는 마법을 쓸 체력도 없어지거든.”
“모든 게 되돌아 올 수 있다면 말이다. 사람 한 명 정도 더 추가해도 되나?”
“뭐…? 하…. 진심이냐? 네가 책임을 질 필요는….”
“아니. 져야지. 나는 이브를 말리지 못했으니 말이다.”
“힘들거다. 이브는 어마어마하게 배고프다고 할 거고, 끝내 너도 먹어치울지도 모른다. 이 행성 전체를 먹는 사이에 너도 빨려 들어갈지도 모른다.”
“괜찮다. 모든게 원래대로 돌아온다면서? 그러면…. 끝까지 말벗 하나 정도는 있어도 되겠지.”
“…….”
“그럼 나는 녀석에게 가보마. 잘 부탁한다.”
신화 포식자를 들고, 학생회실의 문을 베고선 이브를 향해 다가갔다.
“이브.”
녀석은 눈을 꾹 감고, 소녀의 꿈이 내뱉는 마력을 최대한 억눌렀다. 아마 모든걸 제어하느라 아무것도 안 들릴거다.
촤아아악! 녀석의 마력이 나를 공격하려 달려든다.
신화포식자로 이를 베었지만, 다가갈수록 한계는 명확하여 마력에 짓눌리고, 잡아 뜯겼다.
그리고, 내 마력을 먹어치운 그 순간, 녀석의 눈에 조금 생기가 돌아왔다.
“이 마력…. 빛의 마력…. 울프람. 울프람이에요?!”
“그래.”
“왜 여기에 왔어요! 도망쳐요! 여기에 있으면 당신도 말려들어요!”
“하하. 그럴수는 없지.”
녀석의 바로 옆으로 다가갔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녀석의 힘이 무자비하게 나를 물어뜯는다.
“이 멍청아! 도망치라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그러기 싫다고 말했잖나.”
끝내 목표를 이뤘다.
녀석의 바로 옆에 주저앉았다. 그러자 이브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아, 아아…. 이미 늦었어….”
“뭐가 늦었다는 거지?”
“멍청이…. 이제 고정돼서, 도망칠 수 없다고요. 신화포식자로도 제 흡수를 밀어낼 수 없단 말이에요.”
“그거 다행이구나.”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에요?”
무슨 생각이라.
글쎄. 무슨 생각일까.
속죄? 그럴수도 있겠다.
이브를 강하게 뜯어말리지 못했던 나 자신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 한 것일수도 있지만….
제일 큰 이유는 그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글쎄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미운정도 다 들었는데…. 혼자 보낼수야 없지.”
“뭐…?”
이런 상황에서야, 억눌렀던 마음을 겨우 솔직하게 말 할 수 있었다.
“여동생이 위험하다는데, 오빠 된 몸으로 그냥 보낼수야 있나.”
“아…. 아아…. 이, 이…. 멍청이….”
방금 전까지 화내던 이브가 우뚝 멈춰서고는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이 오라비의 대해같은 은혜를 느꼈나? 울 거 없다.”
“조용히…하세요. 누가 그런걸 바랐다고…. 진짜아….”
뭐, 하르크의 말에 따르면, 조금 아프고 나면 별 문제 없이 원래대로 돌아올거라고 한다.
“내 어깨에 기대라. 조금만 아프면 모두 원래대로 돌아올거다.”
“윽…. 으윽….”
이브는 울면서 조용히 내 어깨에 기댔고, 기분 좋은 무게감에 웃어버렸다.
“이브.”
“뭐…에요.”
“나는 솔직히. 애들은 조금 포동한 편이 어울리고 귀엽다고 생각한다.”
“뭐어…?”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말.
이 세상에서 가장 부끄러운 고백을 입에 담은 직후.
세상이 암전했다.
***
눈을 떴을 때. 나는 꿈에 취해 있었다.
뭐였더라…. 어마어마하게 슬프고, 괴로운 꿈을 꿨던 거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꿈이라는게 으레 그런거지만 말이야.
“잠깐만요. 사람을 앞에 두고 대체 뭘 하는 거에요?”
내 앞에는 조금 이브가 이쪽을 노려보고 있다.
얘는 왜 화나있지?
조금 되짚어보자. 그러니까…. 나와 아일라는 어마어마한 보물을 발견했고, 그걸 제프린에 봉인하기 위해 졸업 후 반년만에 제프린에 돌아왔다.
그런데 우리를 반긴 것은 네프티와 밀푀유. 그리고 토실토실해진 이브였다. 그리고 내가 살 쪘냐고 물어보니까 어마어마하게 화를 냈지.
“누가 운동 하기 싫어서 안 하는 줄 알아요?! 시간이 없다고요!”
“그런가. 그거 참…. 운동이란 시간을 내서 하는건데 말이다.”
“시, 시끄러워요! 울프람. 먹는 것 만으로도 살이 빠지는 약 같은거 없어요?”
“…….”
주머니 속에서 찰랑거리는 물약이 떠올랐다. 이걸 먹으면 무조건 살이 빠지겠지.
이브는 슬쩍 나를 바라봤다. 이크. 들키면 안 된다.
“뭐 됐어요. 그런거 없어도 돼요.”
“뭐?”
상상도 못 한 이브의 반응에 넋이 나가버렸다.
녀석의 말을 되짚어 이해하기도 전에, 녀석은 말을 이어갔다.
“흥. 아주 잘 알고 있거든요? 당신이 말 안해도 스스로 뺄 거에요. 그러니까. 좀 도우세요.”
“어떻게 도우라는 거지?”
“ 곧 제프린에서 나갈거죠? 그 전에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이라도 몇 개 알려주고 가요.”
“어, 음…. 그러마. 그런데…. 실내 운동이라는게 아무래도 건강에는 좋아도, 다이어트에는 조금 시간이 걸리는 편이라…. 괜찮겠나?”
내 말에 녀석은 눈을 동그랗게 뜨다, 픽 웃어버렸다.
“네. 괜찮아요. 누가 그랬거든요. 제 나이 또래 애들은 조금 포동한게 귀엽다고요!”
“누가 그런 말을 했지?”
“그야 아주 신뢰가 가고 믿을 수 있는…. 옆에 있으면 마음이 편한…. 누구지? 으, 으음…?”
이브는 몇 번이고 고개를 갸웃했으나, 끝내 누가 한 말인지는 떠올리지 못했다.
“하. 허상의 인물을 만들어서 그의 말에 의지하는건 좀 그렇지 않나.”
“다, 닥쳐요. 진짜 있는 사람이에요. 제가 끝끝내, 마지막에는 의지할 수 있는…. 그러니까….”
“하하. 그래. 그런 사람이 있으면 좋겠구나.”
“아 진짜!”
나는 그 뒤로도 이브를 놀렸으나, 내심 놀란 속내를 감출 수 없었다.
이브가 허상으로 만들어낸 친구의 사고방식은 놀라울 정도로 나와 의견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물론.
부끄러우니 절대로 이브 앞에서 말 할 일은 없겠지만 말이야.
[만우절 기념 단편 끝, 이후 다시 이브편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