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1041)
1041. Episode of EVE 33
이브와의 짧은 외출이 끝난 후.
제프린에 돌아와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
생각해보면 며칠 전 녀석의 선언에 의해 황제가 되면 그 뒤에서 꿀을 빨겠다. 라는 내 인생 플랜은 처참하게 무너졌다. 당연하다. 저 인재를 물고 놓지 않는 이브가 파트너 계약을 무기한 연장하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보통 아무리 계약이 험악해도 길어봐야 5년이면 풀어주는 것에 반해 너무나 악랄하지 않나. 물론 그 계약서에 사인을 한 나도 나지만….
“플랜이 변했다면, 나 스스로가 변화에 맞춰가야겠지.”
어차피 게임 지식은 다 머릿속에 있으니 인생을 날로 먹어보세. 가 통하지 않는다. 즉 울프람 폰 로엔그린 자체의 강함이 요구되는 타이밍이다.
전투 스킬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가지고 있는 건 5의 체력. 그리고 단검술 조금이다.
어느 쪽 성장을 도모할거냐 물으면 당연히 근접 전사다. 마력은 재능이 요구되기 때문에 패스. 궁술도 나쁘지 않지만 얼마 전 활을 쥐었을 때 실피아가 나를 딱한 눈으로 바라봤으니 이것도 넘긴다.
몬스터의 패턴을 모두 외우고 있다는 큰 이점이 있으니…. 둔기 전사나 속도형 전사. 둘 중 하나가 되겠지. 그리고 여기서는 둔기 전사가 좀 더 이점이 있다. 속도형 전사도 나쁘지 않지만, 그건 상대 방어력을 너무 탄다. 내가 재주가 아무리 높아봐야 거대 골렘과 단검들고 싸울 수 있는건 아니지 않나.
재주형 전사에게 요구되는 것은 높은 재주뿐만 아니라, 상대의 떡저항과 떡방어를 무엇으로 뚫을 것인가. 하는 신화급 능력의 퍼텐셜이다. 단검 전사로 키웠는데 방무뎀이나 방관뎀이 없으면 캐삭 마렵고 말고.
정말 운이 좋아서 뭐든 먹어치우거나, 모든 방어를 뚫는 개사기 아이템을 손에 넣으면 모를까, 애당초 그걸 노리고 키운다는 건 극한의 상황일때 아니면 하고 싶지 않다.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오늘 원정으로 돈을 벌어야 하거나…. 하는 상황이 아니면, 재주캐는 초반에 반짝하다가 극후반에 템세팅에 따라 퍼텐셜이 살아나는 직업이니까.
“즉. 내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 건…. 단검이 아니라 둔기. 혹은 검방인가.”
근접극딜이냐, 아니면 방어력을 충분히 올린 브루저. 내 길은 정해졌다.
그리고 이런 캐릭터가 쉽게 크는 법은 딱 하나지.
죽을만큼 몬스터를 사냥해서 파밍하고, 또 노가다를 통해 사냥하고 또 사냥한다.
눈 앞에 몬스터 수 천 마리가 있어도 안으로 들어가 훨윈드를 돌 수 있는 각오가 있어야만 한 사람의 브루저 아니겠나. ‘저기에 들어가면 죽겠지.’ 라는 마음가짐을 가지고서 파티원들이 ‘왜들어감 왜들어감’의 백핑을 수 천 번 찍어도, 다이브를 박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좀, 아니 무척 무식한 캐릭터 육성법이지만…. 이게 정답이다.
나는 단검 두 자루를 버리고 학생회 무기고를 향했다.
현재 내 체력은 5. 그리고 근력은 4. 솔직히 둔기를 든다는 거 자체가 불가능하지만, 무기 숙련을 위해선 어쩔 수 없다.
지금 당장 둔기를 유효하게 쓰는게 아니라, 둔기를 썼다는 사실이 겹치고 겹쳐서 성장 방향으로 이어지는거니까.
다행히 무기고에는 내 손에 딱 맞는 둔기가 하나 있었다.
징이 박히고 각진 나무방망이. 9T 장비인 【육각 징 방망이】 속칭 ‘초보용 빠따’였다.
“후…. 추억이 떠오르는군….”
최원고 2학년 문과 수학 김종석 선생이 치던 빠따와 아주 동일한 무게감 아닌가.
선생님. 당신의 깊은 뜻. 제가 이어받겠습니다. 그 스냅과 회전은 제 허벅지 깊은곳까지 스며들어 있으니까요.
“그럼 가볼까.”
대대로 계승되는 빠따의 의지를 품에 안고, 전장으로 향했다.
***
물론 혼자 향할 생각이라고는 추호도 없다.
지난번 얻은 황금을 녹여, 원정용 예산을 조금 타냈거든.
그 결과 제일 처음 지원했으며, 엄격한 심사를 통해 합류한게 바로 네프테리안이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하마.”
“네, 네!”
네프테리안이라고 하면 잘 성장만 시키면 시공을 넘어서 탱킹을 할 수 있다는, 턴 개념을 밥말아먹은 개사기 캐릭터 아닌가.
거기에 AI의 레벨도 높고, 파티원으로 쓰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내가 기사학부 트리를 타면 항상 영입하던 탱커중의 탱커다.
그래.
네프테리안…. 네프티를 내 파티의 탱커로 기용하면 앞으로 무척이나 편해진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임시지만 동료…. 일명 파티네요!”
“아니. 우리는 파티가 아니다.”
“네, 네…?”
내가 말하고도 놀라울 정도로 차가운 거절. 나도 모르게 입술을 쓰다듬었다.
첫째로는 무심코 내뱉은 말의 차가움에 놀랐으며, 둘째로는 내 안에서 파티라는 단어의 무게감을 체감해서 놀랐고, 셋째로는 냉정하게 거절했음에도 조금의 후회도 없음에 놀랐다.
“미안하구나. 파티라는 말 자체가 내 안에서는 무척이나 무거운 말이라서 말이다.”
“아, 죄, 죄송합니다!”
“아니다. 그저 내 개인적인 고집이다. 우리는 파티가 아니라…. 그렇구나. 뜻을 같이 하는 임시 동료라고 하는게 맞겠군.”
“그건…. 파티랑 다른건가요?”
“다르다.”
“네, 네!”
네프티는 조금 놀란 기색이었지만, 나는 결코 정정하지 않았다.
지금 내게 파티. 혹은 파트너는 단 한 명 뿐이니 어쩔 수 없다.
우선 그 녀석의 허락을 받는다면 다음 파티원 영입을 고려해보겠지만…. 그러지 않고서는 파티원을 늘릴수도 없는 노릇이거든.
“그러면 지금부터 작전 브리핑을 하겠다. 보자. 우리가 향하는 곳은 작열의 사막 근처의 사냥터로, 외피를 둘렀으되 방어력은 높지 않은 녀석들을 중심으로 한다. 갑각류나 파충류가 되겠군. 즉 사막의 전갈이나 벌레 퇴치다.”
“아…. 네!”
네프티는 얼떨떨해 하면서도 내 지시를 충실하게 따랐다.
그 날 전투가 끝나고, 나온 아이템을 분배하고, 녀석의 강화를 봐줄 때 까지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다.
녀석은 여전히 믿을 수 있었고, 유능했으며, 말귀를 잘 알아들었고, 오더에 순순히 응했다.
그럼에도, 그 날의 사냥을 마칠 때 까지. 나는 네프티가 내 파티에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단 한순간도 하지 않았다.
그래.
단 한 순간도 말이다.
***
보고를 마치고, 응접실 소파에 앉았다. 상석에는 이브가 앉아있었고 홍차를 홀짝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보고서에 이상한 부분이 있던데…. 왜 방망이를 든 거에요? 주 무기는 단검 아니었어요?”
“평범하게 살려면 단검으로 충분하지만, 누가 평생 놔주지 않겠다 하니 앞으로 인생이 조금 피곤해 질 거 같아서 말이다. 재주만으로 먹고살기에는 팍팍하지 않겠나.”
“저 때문이라고요?”
“그럼. 누가 내 파트너 계약을 평생으로 늘린 바람에, 나이를 먹어도 최전선에 서게 생겼잖나. 아니면 뭐지? 나를 평생 사무업무로 돌릴 생각인가?”
“그럴리가 없죠. 제가 황성에서 전체적인 지휘를 한다면, 당신은 현장을 지휘하거나 각 영지를 돌아봐 줘야 하는게 제 목표인데….”
“그래. 그러면 단검보다는 둔기가 맞다.”
단검 전사는 키워봐야 재주밖에 안 오른다. 재주가 아무리 사기 능력치라고 해도…. 이브가 바라는 방향대로 가려면 체력과 근력이 필수거든.
“그게…. 그렇긴 한데요. 그게 맞는데…. 당신은 괜찮아요?”
“괜찮냐니, 무슨 의미지?”
“저 때문에 인생의 경로가 뒤틀렸다거나…. 하고 싶은걸 못 하는거 아니에요? 단검으로 끝을 보려고 했다던가…. 좀 더 빨라지고 싶었다던가, 그런 꿈은 없어요?”
“하. 이제와서 그런 것을 걱정하나? 우습구나. 그 걱정의 끝에는 계약의 파기밖에 없음을 아나?”
“아니…. 하지만….”
“전부 쓰잘데기 없는 걱정이다.”
“사람이 걱정을 하면 좀….”
“그러니까.”
나는 이브에게 시선을 고정했고, 녀석은 잠시 몸을 움츠렸다.
하여간, 별 걱정은 혼자 다해요.
“너야말로 괜찮나? 내가 이렇게 경로를 정한 이상. 너도 평생 도망칠 수 없다. 너는 황제가 되어야 하고, 이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 우리는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길을 걷는거다.”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그럼 됐다.
“그러면 아무런 문제 없지 않나. 너는 황제가 되고 나는 그 파트너로서 최선을 다한다. 그걸 위해 조금 점검을 했을 뿐. 특기할 정도로 대단한 일은 아니다.”
“후우. 그래요…. 그렇네요. 그나저나…. 곤봉술에도 조예가 있어요?”
“지금은 곤봉이지만, 점차 무겁고 둔한 둔기류로 바꿀 것이다. 장봉, 철곤, 배틀액스. 워해머. 이런 느낌으로 말이지.”
“다룰 수 있겠어요…?”
“음. 할 수 있다. 너무 걱정하지 말도록. 그것보다는 부러워하는게 좋을지도 모르겠구나.”
“네? 왜요?”
왜냐니, 그야….
“지금부터 점점 몸이 좋아질테니 말이다. 복근도 갈라질지도 모르지, 피부도 더 좋아질거다. 기사학부 녀석들이 대체적으로 몸이 좋지 않나.”
이브는 슬쩍 내 얼굴을 보고,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그래. 그 부분이다. 내 강철의 식스팩 코어가 생길 부분이다. 하하.
“그, 그렇군요. 흐음…. 그거 잘 됐네요…. 호오….”
“그래. 그러니 너무 신경쓰지 마라….”
“누가 신경쓴다고 그래요? 누가 당신의 몸 같은걸 신경 쓴다고…!”
“음? 몸? 내가 말한 건 진로에 대한 이야기다만.”
“아…. 아하. 그래요.”
이브는 머뭇거리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이 살짝 붉은 것 같기도 하고….
왜 저러지?
***
그 뒤로도 네프티와 단 둘이서 제프린 이곳저곳을 탐험했다.
때로는 실피아도 참전했고, 이브가 견학을 올 때도 있었다.
허나 중요한 건 ‘학생회가 지정한 고학생이, 제프린을 개척하는 영웅이 된다.’ 라는 캐치프레이즈기 때문에, 주역은 언제나 네프티였다.
대 방패 탱커와 둔기 전사라는 2전사 조합은 굉장히 몬스터 특성을 타지만, 그거야 뭐 내 지식으로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매일같이 네프티의 장비가 좋아지고, 스펙이 올라가고, 주변의 이목을 끌지만, 녀석을 전면에 내세운 채 나도 성장을 거듭했다.
내…. 아니 ‘우리’의 목표를 위해 무기를 휘두르고 몸을 만들어갔다.
무기가 나무빠따에서 한손 도끼로 바뀌고, 나아가 양손 외날도끼로 바뀌었을 때. 내 체력은 10. 근력은 9를 찍었으며, 지닌 바 기교를 합치면 스스로도 ‘성장했다.’ 라고 판정을 내릴 수 있었다.
“선배님. 오늘이 끝이죠?”
“그래. 그간 고생 많았다.”
“선배님께서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지도편달 감사합니다!”
네프티와의 짧은 모험이 끝났고, 그 결과 우리의 수련도 일단 막을 내렸다.
이유는 봄이 지나고,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했기 때문.
학부 수업이 전부 끝나고 기말고사까지 마쳤으니 이제 남은것은 종강 후 여름방학 뿐.
2학기는 상황이 어떻게 구를지 모르기 때문에 오늘이 사실상 마지막이다.
“저기 선배님…. 2학기에도 혹시 지도편달을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미안하구나. 확답해 줄 수 없다.”
“아…. 네! 그간 정말 감사했습니다!”
네프티의 부탁을 결국 거절했다.
지난 기간동안 정말 합이 잘 맞았고, 마음도 편해졌으며, 이 녀석이 정말 내가 게임 속에서 기억하던 네프테리안이 맞았지만, 단 한 순간도 ‘파티원으로 맞이하고 싶다.’ 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니 서로 웃을 수 있는 여기서 끝내려고 한다.
네프티는 웃으며 떠나갔고, 반대로 뾰로통한 이브가 기다리는 학생회실을 찾았다.
“오늘은 또 무슨 일로 뾰로통해져있지?”
“당신 때문은 아니에요. 이거 때문이죠.”
이브는 내 앞에 편지를 슬쩍 밀었다.
이를 집어들고 읽어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과연. 네가 삐질만도 하다.”
“삐진 적은 없어요. 불쾌할 뿐이죠.”
【울프람과 이브에게, 여름방학에는 황궁에서 봤으면 한다. 너희들의 손윗누이 이시스 폰 로엔그린】
독사가 보낸 뱀굴 초대장이었다.
허나, 거절할 명분도 마땅치 않았다.
결국 이번 여름방학은, 아무래도 이브와 둘이서 사이좋게 귀성해서 보내야 할 거 같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