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114)
다음 날.
나는 다시 제 7 마법동의 도서관으로 향했다.
건물 전체를 감싸는 용의 마력은 한 걸음 걸을 때 마다 깊은 늪에 빠져나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앞으로 나아갈 때는 전혀 발동하지 않았고, 뒤로 물러설까 할 때만 강하게 나를 짓누른다.
뱀의 눈이 응시하고, 뱀의 아가리 속으로 걸어 어가는 착각.
그렇게 도서관 안으로 돌아가면 푸른 여인이 있었다.
“동생 왔니?”
“음.”
“후후. 뭐 하니? 어서 앉으렴. 누나가 듣고 싶은 이야기가 무척 많단다.”
“······알겠다.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지.”
“응. 응.”
그리 말하며 필티아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고개를 갸웃하니 반대편 의자로 가서 앉았고, 나는 필티아가 방금 전 까지 앉았던 의자에 안내되었다.
의자에 앉으니 체온으로 데워져 있어 따듯했다.
이런 배려는 필티아의 특기다.
거 참 게임 시절 생각이 나네.
“어머, 왜 그래? 누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아니. 예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앗.
나도 모르게 게임 시절 전용 대사를.
“······으, 으읏. 그, 그렇니? 후, 흐음. 우리 동생이 사람 보는 눈이 있네.”
전에도 말했지만, 필티아는 ‘기습 공격’이나 ‘지속되는 공세’ 약하다.
하지만 또 대비 가능한 공세에는 엄청나게 튼튼해서, 이렇게 퉁명스럽게 공세를 해버리면 엄청 허둥지둥거린다.
뭐 그런 점이 재밌는 히로인이긴 했지.
나도 모르게 고인물 시절의 패턴 놀이를 해버리고 만 점은 미안하지만.
“으, 으흠. 그래서 오늘 누나를 왜 찾아 왔니?”
“어제 필티아 누···나가 찾아오라고 하지 않았나.”
“···아. 그랬었지. 후후. 그럼 이야기를 할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나에게서 듣고 싶은게 있나? 질문에는 최대한 성의껏 대답하도록 하지.”
“어머, 착한 아이네. 으음. 그렇구나···. 그럼 누나의 가장 중요한 질문.”
“음.”
대부분의 질문에 대한 답은 갖췄다.
제프린의 바깥 이야기나, 하르크 폰 로엔그린에 대한 이야기.
필티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같은 질문에 대한 답도 다 준비해놨다.
“동생은 여자친구 있니?”
“······.”
【황실 혈통이 발동됩니다!】
【혈통에 걸맞는 행동만 취할 수 있습니다.】
질문 한 번에 평정심이 깨질 뻔 했다.
고마워 황실혈통. 정말로 ···정말로. 이 말 밖에 할 말이 없어.
“누나의 질문에는 솔직하게 대답하세요.”
“여자친구···. 없다.”
“그렇구나!”
“약혼녀는 있다.”
“·········그렇구나?”
뭔데. 왜 갑자기 말이 늘어지는데.
거기에 그 눈 뭔데, 왜 용안(龍眼)을 켜는데.
“황손이니 당연한 것이다.”
“···아, 그렇겠구나. 종족 보전의 의무는 중요한 법이니까.”
“음.”
필티아가 그렇게 말하면 가슴이 쿡쿡 쑤신다.
이 세계에 열 마리 밖에 남지 않은 드래곤은 필연적으로 소멸한다.
그리고 필티아는 모든 드래곤 중 가장 어리고, 이 제프린 외의 세상으로 나가 본 적도 없으며, 다른 드래곤을 만나 본 적도 없다.
이 곳에서 여덟 문을 지키고 있을 뿐.
“그 외에 다른 질문은 없나?”
“응? 있단다. 예를 들면 ···다른 동생들은 어디에 있니?”
“다른 동생이라···.”
“응! 파파의 아들 딸 부터 해서 삼백 년간 전부 누나에게 알려주렴?”
“······.”
그건 너무 길지 않나?
그, 집에서 호적 좀 가져와도 될까요?
“그건 너무 길군 그리고 필티아.”
“누나. 반말은 용서해도 누나라고 부르지 않으면 혼내줄거란다?”
“···누나. 우선 죽은 사람을 제외해야 하지 않겠나.”
“죽었어? 왜?”
“수명이다. 인간에게 삼백 년은 길어.”
“···누나는 아직도 만 년을 더 살아야 하는데?”
“아무튼, 누나는 이 제프린을 나가지 못하니, 결국 이 제프린이라는 세계에 있는 로엔그린만 알면 되는 일 아닌가?”
“그렇구나. 동생은 똑똑하네. 누나 감탄했어.”
그리 말하며 필티아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지금 제프린에는 두 명의 로엔그린이 있다. 하나는 나 울프람 폰 로엔그린 ···그리고 하나는 당대 로엔그린의 막내. 이브 폰 로엔그린.”
“···막내? 막내가 있니?”
“음. 현직 학생회장을 맡고 있다.”
“그렇구나, 후후. 동생이 하나도 아니고···. 우후후.”
직후 몸이 붕 하고 떴다.
“···뭐 하는거지.”
“뭐라니? 어서 안내하렴.”
“안내?”
“가족 상봉의 시간이잖니, 누나는 지금 바로 막내를 만나보고 싶어요!”
“······.”
그렇군.
내가 필티아를 손윗누이라고 했으니, 이브에게는 당연히 언니가 되는 건가.
이브라고 해도 필티아의 사연을 들어보면 분명 가족으로 받아 줄 것이 틀림 없다.
“알겠다. 가도록 하지.”
***
티아는 내 뒤 세 발자국을 떨어져 걸었고 학생회실을 향해 가며 주변의 시선을 힐끔힐끔 받았다.
‘울프람님이 또 다른 여자를 학생회실로···.’
‘대체 몇 명 째야?’
‘내가 알기로 신념. 심연의단검. 흑수정. 마도상인. 거기에 1학년의 철권도 들어간 걸로 아는데? 거기에 하이멜로디의 공주님.’
‘전에는 보석검도 수하로 부리지 않으셨나?’
‘아니 아카데미가 뷔페야? 대체 뭔···.’
‘사람은 좋은데···.’
‘쉿. 눈 마주치지 마!’
주변에서 무언가 엄청나게 중얼거린다.
무슨 소리인지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내 험담일거다.
악역은 익숙하기 때문에 무시하고서 학생회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나다.”
“들어오세요.”
방 안에 들어가니 아무도 없이 이브 혼자 서류와 씨름하고 있었다.
이브는 힐끗 이쪽을 보다가 다시 서류로 눈을 돌렸다.
“곤란해요. 여기는 외부인 출입 금지입니다. 같은 혈통인 당신이라면 어떻게든 무마 할 수 있지만···.”
“알고 있다.”
“그러면 나중에 다시 찾아오세요.”
“아니 남이 아니다.”
“······네?”
마법의 깃펜을 바삐 움직이던 손이 뚝 하고 멈췄고, 이브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흠.
뭐라고 소개해야 할까.
아.
아주 적절한 단어가 있군.
어디보자 이럴 때는···.
“네 새 언니가 될 사람이다.”
“··················네?”
음.
완벽한 설명이다.
하지만 불쌍하게도 어려서부터 귀가 먹어버린 이브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나보다.
나는 으흠. 하고 목을 풀고는 다시 큰 소리로 말해줬다.
“네 새 언니가 될 사람···.”
“이 미친놈이 드디어 내 언젠가 이럴 줄 알았지. 그래도 그 쪽으로는 사고를 안 쳐서 믿고 있었는데!”
“음?”
“황실의 혈통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죠!? 【광창:비살상:단발:스피드스펠:절대적중:기절】”
순식간에 광창이 장전되고, 그대로 내 미간을 향해 쏘아졌다.
데미지 없이 반드시 기절시키겠다는 의미만을 내포한 육소절 마법.
그렇게 나의 정수리를 향해 쏘아진 광창은 섬광처럼 내질러졌으나.
“···으,에?”
“어머. 우리집 가풍이 인사 대신 마법을 쏘는거였니?”
등 뒤에 있는 마법의 조종(祖宗)의 손짓 하나에, 그대로 막혔다.
“···말해두지만 필티아 누나. 그런 가풍은 없다.”
“누, 누나!?”
“그래? 그렇구나. 누나는 아쉽단다. 그게 이렇게나 멋진 마법을 쓰는 막내인걸?”
“막내···?”
필티아는 내 뒤에서 걸어나와 이브 앞으로 걸어갔다.
이브는 아무리 노력해도 움직이지 않는 광창을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마력 지배가···.”
“후후. 안 돼요. 잠도 푹 안 자놓고 언니의 지배를 이겨버리면, 언니의 체면이 무너져 버리지 않겠니? 여기서는 언니가 좀 더 힘을 쓸게. 이해해 줄 거지?”
“······네, 네에?”
음. 그야 그렇지.
아마 순수 마력치는 서로 비슷 하거나 이브쪽이 더 높겠지만, 이브는 과로로 인해 소울 체인지를 상시 발동하고 있으니까, 지금 총 동원 가능한 마력은 아마 필티아보다 낮을 거다.
지배력을 순식간에 빼앗겼고···그리고.
“우븝!”
“응. 막내도 파파랑 똑같은 마력 파장을 하고 있구나. 하르크 파파처럼 빛나는 마력이야.”
“······누, 구요? 그 이름은.”
“응. 언니는 동생도, 막내도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단다.”
이브 앞으로 다가가, 이브를 품 안에 폭 하고 안고서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양 손을 허리쪽으로 내려서 신나게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어서 제어권을 빼앗을 생각을 버리고, 언니한테 항복하렴. 에잇. 에잇.”
“잠깐만요. 아하, 아핫! 아하하핫! 우, 울프람 이분은 꺄핫!”
이브가 이렇게 망가지는 모습을 본 적 있었나.
아니 없다.
원작에는 없는 전개군.
이 또한 맛이고 풍류겠지. D/Z SAGA의 고인물로서 이런 전개에 초를 칠 수는 없다.
“에잇! 어서 항복하렴!”
“꺄하, 우, 울프라아아암! 좀 도와, 도와줘요!”
뭐.
사람 보자마자 광창을 갈기던 너를 내가 왜 도와주냐.
“평화롭군.”
“에잇.”
“꺄, 꺄하하 우, 울프라아암!”
알아서 잘 하세요.
***
결국 이브는 광창의 지배를 포기하고 항복을 선언했고, 그와 동시에 지옥의 간지럽힘이 끝났다.
이후 우리는 대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이야기를 대충 들은 이브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러니까 ···위대하신 선조님이 직접 거두신 수양딸. 이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렇단다.”
“지금은 이 제프린에서 선조님이 명령하신 일을 이행하고 계시고요?”
“그러니까 어서 언니라고 불러보렴. 자.”
“가, 감히 그럴 수는···.”
“그럼 언니가 또 간지럽 힐 수 밖에 없는데?”
“필티아 언니.”
“잘 했어요.”
이브는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필티아의 손길을 움찔거리며 받아들였다.
본편에서 이런 전개는 ‘아예 불가능’하니까, 이 둘의 조합을 보는건 꽤 신기하다.
“그, 그럼 필티아 언니.”
“응? 왜 그러니 우리 막내?”
“그 ···위대한 선조님께서 내린 명령이 뭔지, 알 수 있을까요?”
“으응? 막내는 모르니? 그렇구나 ···파파는 전하지 않았구나.”
“······.”
필티아의 얼굴이 지나치게 어두워진다.
나는 혀를 쯧. 하고 찼다. 이게 그렇게 맞춰지는건가.
필티아는 히든 히로인.
그리고 그 위치에 걸맞게 2회차 이후부터 공략 가능한 히로인이다.
당연히 1회차의 내용을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 공략이 성립되기 때문에 추가 설정이 잔뜩 들어가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1회차 2회차가 어디있는가, 필티아는 현실이 된 이 세계에서는 【하르크가 미래에 전하지 않고 잊혀질 운명】을 타고 난 히로인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아니. 그건 아니다. 하르크 폰 로엔그린님께서는 확실히 전했다.”
“응? 그, 그렇니?”
“내가 필티아 누···나를 찾아 낸 것. 그게 증거다.”
“그렇구나. 파파는 누나를 잊지 않았구나.”
“음. 그러니 너무 심란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후후. 동생은 의젓하네.”
필티아는 한결 나아진 표정으로 웃었다.
“동생은 누나가 왜 제프린에 있는지 알고 있니?”
“대강은 알고 있다. 여덟. 맞지?”
“진짜 거의 전부 알고 있구나. 누나는 놀랐어요. 후후. 그래도 막내에게는 말해주기 어려운 걸?”
“네에?”
“그만큼 무겁고 위험한 이야기에요. 알겠죠?”
“······윽. 알겠습니다.”
“그보다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을래?”
“다른 이야기라 하심은?”
“제프린의 이야기. 언니는 일이 바빠서 자주 못 다니거든.”
“······.”
“막내. 아버지가 인류의 풍요와 미래를 위해 만든 이 요람은 어떤 곳이니? 멋진 곳이니?”
눈을 빛내며 이브를 바라보는 필티아.
그 물음에 이브는 자상한 미소를 지었다.
학생회장으로서, 입학을 꿈꾸는 신입생에게 짓는 미소였다.
“네. 이 제프린은 무척 멋진 곳이에요.”
“그렇구나 후후···. 어떻게 멋진지 설명해 주시겠어요. 학생회장님?”
“물론이죠. 언니.”
그리 설명하면서 이브는 나를 빤히 바라봤다.
나중에 다 털어 놓으세요. 라는 시선.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중지를 치켜올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방금 전 광창의 원한을 잊을 소냐.
***
그 뒤의 담화는 생각보다 화기애애하게 흘러갔고, 일이 남은 이브를 내버려두고 나와 필티아는 다시 7 도서관을 향했다.
석양 지는 길. 필티아는 뒷짐 진 채 내 앞을 걷다가 빙글 돌고는 이쪽을 바라보며 웃었다.
“막내는 참 좋은 아이구나, 때묻지 않고 신념을 위한 눈을 하고 있지 뭐니? 정말 놀려주고 싶은 아이야.”
“동의한다.”
“하지만 그 신념이 진짜라서 더 놀랐단다. 막내는 ···이 요람을 정말 사랑하고 있구나.”
“신념이라고 하면, 필티아 누나를 이길 자는 없지 않나.”
무려 삼백 년간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살아가고 있으니까.
“동생은 어디까지 알고 있니?”
“【마계 팔문】을 지키는 수호자. 가장 어린 용. 필티아 블루브리즈.”
“그리고 더 아는 건?”
“덧붙여 맹약에 묶여 이 제프린을 나갈 수 없다. 방법은 【마계 팔문】을 완전히 폐쇄하는 것 뿐.”
“정말 거의 다 알고 있구나. 누나가 착한 어린이 도장이라도 찍어주고 싶을 정도인데?”
거의 다 라고?
이것 참. 나를 뭘로 보고.
사나이 이영진.
이 D/Z SAGA의 설정 하나만큼은 다 외우고 있는 사람이다.
2만시간동안 얘 루트에서 수 천, 수 만 번을 죽었다.
당연히 【마계 팔문】의 공략 방법 또한 알고 있다.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마음은 있나.”
“물론···. 물론 있단다. 창공을 나는 꿈, 세상을 돌아다니는 꿈, 다른 드래곤을 만나는 꿈. 누나는 매일 꿈을 꿔요. 하지만 꿈에 지나지 않는걸?”
“그렇군. 그 꿈을 이뤄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다면 ···누나는 모든걸 줄 수 있을 거란다. 정말 모든걸. 누나의 전부를.”
“거기까진 필요 없다만.”
그냥 팔문 하나당 비늘이나 아이템 몇개만 주면 안 될까?
내가 필티아에게서 받을 보상을 생각하던 와중.
“·········흐에?”
기묘한 소리가 들려서 옆을 바라보니 석양과 동화된 얼굴의 필티아가 보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석양보다 붉은 드래곤이 있었다.
필티아는 잠시 침묵하다 이브에게 했듯, 손가락으로 내 허리를 콕콕 찔렀다.
“욘석. 욘석.”
아. 지건 뭔데!
진짜 아프다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