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12)
011. 전야제 (1)
D/Z SAGA는 주인공인 켈터스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엔딩이 크게 차이가 난다.
켈터스는 1학년간 공통 과목을 공부하고, 우정을 쌓고 플래그를 세운다. 그리고 2학년으로 넘어가면서 자신의 전공을 정한다.
검술. 마법.
각각의 과에서 두 명씩 히로인이 있고, 히든 히로인을 포함해 메인 히로인은 총 다섯명.
켈터스가 히로인과 어떤 인연을 맺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결말부는 확 바뀐다.
예를들어 마법부를 선택하고, 이브를 히로인으로 정한다고 치자.
마법부임에도 근력과 체력을 중심으로 키우면 결국에는 마법검사 직업을 얻는다.
결과적으로 이브의 곁을 지키는 한 자루의 검이 되고, 학생회를 함께 졸업하는 선택지까지 가면 미래에도 함께 하며 음으로 양으로 이브를 지키는 가장 평범한 해피엔딩 ‘황녀의 기사’엔딩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파멸 엔딩도 있다. 중간에 죽으면 무조건 게임오버기도 하다.
특히 모든 배드엔딩이 모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 히로인은 생각만해도 아찔하다.
그러니까, 켈터스가 어떤 길을 걷는지는 나한테도 꽤 중요한 일이다.
내가 플레이했던 작품의 주인공이라 애착이 가서?
아니. 그건 전혀 상관 없다. 문제는 아카데미 전체에 닥쳐오는 위협을 해결할 놈이 없다는 거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나는 체력 2의 울프람이니까.
아이템을 만들어서 지원해 줄 수도 있긴 하지만, 딱히 그럴 생각은 없다.
내 코가 석자고 앞가림도 못하는데 누굴 뭘 어째?
켈터스는 재능충이고 빛의 화신이다. 뭘 하든 해 먹을 놈이다.
“그러니까. 힘내라 켈터스.”
나는 멀리서 지켜보마.
스토리는 너희끼리 진행해라.
나는 편의점이나 하련다.
오늘은 팔굽혀펴기 다섯개를 하고 자야겠다.
근육통이 생기지 않으면 좋겠는데.
***
이튿날, 아일라가 찾아왔다.
표정이 언짢아 보였기에 조용히 셰이크를 만들어다 줬다.
얘는 농담으로라도 지옥같은 보스 중 한 명이기 때문에 잘못했다간 흑수정창에 배때지가 찔릴 수 있다.
생각해보면 주위에 창 계열 마법을 쓰는 애들이 많구나. 조심해야지
아무튼 얼려 먹는 법을 가르쳐주니 그제야 표정이 풀렸다.
“무슨 일이지?”
“이번 ‘교육’담당으로 제가 정해졌어요.”
“교육 담당···. 아. 그렇군.”
“후우. 정말 악습이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반역에 성공하면 이것부터 갈아 치워야겠어요. 그렇죠?”
교육.
지금시기에 교육이라는 단어를 특정하면 조금 다른 의미가 튀어나온다.
교수가 학생에게 베푸는 것이 아니라, 선배가 후배에게 행하는 것.
제프린에 들어온 신입생 수석에게 한 수 가르쳐준다는 의미로, 3학년 전체 차석이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모의 대련을 펼친다.
들어온지 고작 2년만에 이 정도로 성장했단다. 너희들도 우리를 보고 배우렴. 이라는 느낌으로 선배가 후배에게 제프린의 위대함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왜 3학년 차석이 상대하냐면, 압도적으로 이기기 위해.
왜 3학년 수석이 상대하지 않냐면, 만에 하나라도 1학년이 이기면 제프린의 명예가 실추되니까.
여러모로 훌륭한 방침이 아닐 수 없다.
올해 신입생 수석은 ‘켈터스’
그리고 3학년 차석은 바로 ‘아일라 트라이스타’
원작에서는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켈터스가 아일라에게 한 방 먹이면서 1학년의 체면을 살려줬고, 이브를 포함해 많은 이들이 ‘저 차석 아일라 트라이스타’에게 한 방 먹인 평민 켈터스의 귀추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반드시 패배하는 이벤트지만, 으레 그렇듯 버그성 플레이를 이용하면 아일라를 이길 수도 있었다. 스토리가 변하는 건 없었지만 말이야.
“울프람.”
원작 이벤트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자 아일라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울프람. 울프람 듣고 있나요?”
“음? ···듣고 있다.”
“그러니까, 필이 선납입 했던 월세는 다음 달 까지에요. 다다음 달 부터는 월세를 내야 한다는 점 잊지 마세요.”
아니 어쩌다 그런 흉흉한 이야기가 튀어나오셨나요?
“······그런가.”
“한 달에 100만린. 알고 있죠?”
“············.”
이런 입지에서 장사를 하면서 보증 8천에 월 100? 이거 사기 아니냐?
편의점 이전할까.
아냐. 여기서 나간다고 해도 받아 줄 이도 없다. 들어올 때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생각해봐라. 월 100만린이면 싼 거다.
“어렵지 않다.”
“네. 솔직히 비싼 감도 있어요.”
“그럼···.”
“하지만 받을거에요. 후후.”
놀리냐?
“반역의 날개를 펼친 당신이라면, 고작 백 만 린이라고 생각하겠죠. 사실 안 받아도 그만이지만, 이건 언젠가 당신의 날개를 치장할 검은 깃털 하나가 될거에요.”
그러니까 그게 뭔데.
“흐흥. 기대되네요. 당신이 어디까지 은밀하고, 위대하고, 성대하고, 아름답게 반역의 뿔피리를 불지.”
안 불어 그런거.
“이거 ···스트로베리 셰이크라고 했나요? 이런 달콤한 음료 속에 숨겨진 당신의 어두운 그림자. 하지만 누구나 이 음료의 맛과 향에 취할 거에요. 후후.”
이미 네가 취한 거 같은데.
“그러고보니. 곧 신입생 환영회네요. 울프람.”
“그 이야기는 아까 하지 않았나?”
“했나요? 아무틈. 흠흠. 울프람?”
“뭐지.”
“환영회때 뭘 할 생각이죠?”
“노점을 열 거다.”
“노점은 독과점 금지로 하루 여덟시간밖에 못 하는거 알죠? 그거 끝나면요?”
“글쎄다.”
신입생 환영회라.
지금 내 신경을 쓸 때가 아니라는 걸 말해줄까 말까.
잠시 망설였다. 거기서 켈터스를 증오하게 될 아일라가 맞는 걸까. 아니면 완벽하게 이기는게 맞는 걸까.
여기서는 본편이 아니라, 울프람을 중심으로 생각해야 한다.
나에게 유리하게. 나만을 위해.
보자. 켈터스에게 한 방 먹는 아일라는 이기긴 하지만 빈정이 크게 상해서 매 순간 켈터스를 괴롭히러 나선다.
그리고 그게 안 먹혀드니까 완전히 훼까닥 돌아서 3막에서 반역이니 뭐니 난리를 치고···.
음···.
그러면 아일라가 완벽하게 이기는 쪽이 내게 유리하지 않을까.
만약 켈터스에게 져서 삔또가 나가버리면 제 배때지에 창이 꽂힐 확률이 올라 갈 수가 있어요.
보자. 켈터스에게 완벽하게 이기라고 내가 조언한다고 치고···.
어떻게 해야 이 조언이 이상하지 않을지 나는 생각하기 시작했다.
정보와 생각은 내 무기니까.
“아일라 트라이스타.”
“네?”
“네가 그랬지. 나의 날개가 보고 싶다고.”
“그랬죠. 기대하고 있어요.”
“글쎄. 내 날개를 과연 볼 수 있을까.”
“무슨 의미죠?”
“너에게 그럴 자격이 있느냐, 라는 말이다.”
“제 자격을 묻는 건가요? 저는 3학년 차석이에요. 마법부의 흑수정이라고 불리는 아일라 트라이스타라고요.”
“삼 백 년의 제프린의 역사에, 3학년 차석은 300명이나 존재했다.”
“윽.”
“염가형 최고급 사탕. 크림 흑빵. 이 스트로베리 셰이크. 이것들은 지금껏 제프린에 없었던 고급품들이지. 자. 나는 삼백년만의 유일함을 증명했다. 안 그런가?”
“윽···!”
인정할 수 밖에 없겠지.
아일라는 자존심이 강해서 이렇게 살살 긁어주면 바로 넘어온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거죠.”
“내 날개를 운운하기 전에 네 앞에 있는 것들을 깔끔하게 치워내라는 이야기다.”
“앞에 있는 것?”
“이번 1학년 수석은, 꽤 독특하다 들었다. 평민이면서도 엄청난 재능을 보인다더군.”
“······그래서요? 제가 질 거라고 생각하나요?”
“아니 설마. 하지만 완벽하게 이기지 못하면, 그 또한 트라이스타의 수치로 기록되겠지.”
내 말에 아일라는 이를 악 물었다.
그리고는 쾅! 하고 책상을 내려쳤고, 주먹 속에 있던 한 장의 작은 티켓이 놓여졌다.
【제프린 아카데미 신입생 환영회 양일 입장권 (2인용)】
내가 그걸 멀뚱 보고있자 아일라는 팔짱을 끼고는 흥 하고 이쪽을 비웃었다.
“좋아요. 그따위 평민, 일 격에 날려 버리는 걸 멀리서 잘 보고 있어요. 알았죠?”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아일라는 쪼로록 셰이크를 다 먹고는 흥 소리를 크게 내고는 편의점을 나갔다.
셰이크 값 안 내냐?
거기에.
“···입장권은 왜 2인용이지.”
모를 일 투성이다.
***
아일라가 돌아간 뒤로 나는 재빠르게 움직였다.
이번 신입생 환영회는 일년에 몇 번 없는 제프린 전체의 축제다.
노점상은 신청하면 자유롭게 영업할 수 있고, 여기서 단골을 만드는 가게들도 적지 않다.
제프린에 간식이 부족하다고요? 그렇다면 저 울프람! 준비된 편의점 사장! 언제든지 찾아주십시오! 라고 말 하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했다.
“···빈즈 셰이크. 크림빵. 사탕. 다 괜찮긴 한데, 주력 상품이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하군.”
필살기로 할 만한 것이 부족하지 않나.
우리 편의점은 월세를 백이나 쳐먹고 보증이 팔천이나 걸려 있는 곳이며, 위치는 저 어디 구석에 짱박혀 있는 곳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손님이 찾아오게 만들려면 필살기가 있어야 한다.
아이콘, 아이덴티티, 그리고 시그니처.
여기는 이걸 만드는 곳이야! 이건 여기서만 먹어 볼 수 있지! 라고 말 할 수 있는 메뉴거나, 먹을게 아니더라도 공예품이나 사무용품이 쩔어주게 있다거나, 뭐 그런 것들.
하지만 사탕도 크림빵도 애매하다. 스무디가 괜찮긴 한데 빈즈는 채집에 한계
가 있다.
“그렇다면 빵을 구워볼까. 빵집 알바를 해 본 적이 있으니, 어느정도 만들 수 있겠지.”
좋은 빵 위에 크림을 올린다면 충분히 시그니처가 될 수 있으니까.
하지만.
“크, 크윽. 네놈. 네놈 네놈 네놈!!”
고작 반죽을 하는 것 만으로도 팔에 쥐가 날 정도로 힘들었고.
“이게···. 나의 한계란 말인가? 나는, 나는 약하구나. 웃음이 나올 정도로.”
만든 메뉴를 몇 번 시식하는 것 만으로도 위장이 가득 차 버렸다.
나 자신의 무능함에 절망하며 나는 그대로 구석에 쳐박혔다.
하지만, 나는 쳐박히는 것 조차 허락받지 못했다.
“우윽.”
속이 더부룩해서, 이대로 있다가는 큰일 날 거 같았다.
어떻게든 움직여서 소화를 시켜야 한다.
그리 생각하며 벌떡 일어나 편의점 밖으로 걸어 나갔다.
살기 위해서는, 소화시켜야 했다.
그렇게 오래간만에 아카데미 내부를 거닐었다.
기분전환 삼아 걷는 것이었기에 오래간만에 마법부가 아니라 기사부 쪽을 향했다.
“···하지만, 내가 팔 수 있을까. 이 체력으로.”
스스로 조리하고 내다 팔면 지쳐서 쓰러지지 않을까. 두 시간은 버틸 수 있을까.
이 빌어먹을 체력을 어떻게든 해야 하는데 당장 뾰족한 수가 없으니 환장할 지경이었다.
“···후우.”
지금도 아카데미 내부를 삼 십 분 걸었다고 지쳐서 공원 벤치에 앉았다.
“이건 활동이 아니라 재활이라고 봐도 무방하군.”
몇 년 만에 병상에서 일어난 환자냐고.
멍하니 벤치에 기대 하늘을 올려봤다. 눈부시게 푸른 하늘과 태양이 괜시리 원망스러웠다.
“···으, 으으으으·········.”
그렇게 잠시 숨을 고르고 있자니 어디선가 숨이 끊어지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한 것인가 싶어 입을 가렸지만, 아니었다. 불꽃남자 울프람, 아직 다 타오르지 않았다. 다행이다.
그럼 어디서?
“으······. 으으······.”
그리 멀지 않은 곳. 잔디밭의 중앙에 ‘그것’이 쓰러져 있었다.
그런데 저 녀석, 뭐 하고 있는거지.
“그런 걸 먹어버리면···. 대 자연의 조합이 그런 거라고 알아버리면···. 잔디를···. 송진에···. 먹을 수 없어···.”
네프테리안.
네프티가 잔디에 머리를 박고서는 무언가 괴로워하며 중얼거리고 있는 모습.
“뭐 하고 있지?”
내 물음에 그녀는 흐릿한 눈동자로 이쪽을 올려봤다. 초점이 맞지 않고 헬쓱한 것이 며 칠은 굶었나보다.
“또, 또 입니다. 그 때 먹은게 기억에 남아 이제 환영까지 보이는군요. 상대는 아카데미 최악의 악인이라 불린 인물. 이 또한 나에게 주어진 시련인가···.”
“무엇을 하고 있냐고 물었다. 네프티.”
“······제가 진심으로 미쳤나 봅니다. 이제 환영하고 대화가 가능하다니. 저리 가십시오. 삿된 울프람의 환영. 저는 절대 유혹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환영이 아니다.”
“······어?”
그 말에 네프티의 눈이 점차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완전히 나라는 상(像)을 눈에 담았다.
“진짜, 울프람 황자님입니까?”
“그래. 삿된 울프람 본인이다.”
“죄, 죄송합니다.”
“그래서 무얼 하고 있었지?”
“···명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닥에 머리를 박고 괴로워하며 말인가?”
“···예. 예에.”
“그렇게 며칠 굶은 얼굴을 하고서 말인가?”
“그, 그렇습니다. 모두 악한으로 떨어지지 않고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그런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뭐 수고해라.
그리 말하며 돌아서려는 그 순간 작은 목소리가 나를 불러 세웠다.
“···저, 저기.”
“뭐냐.”
“전에 먹었던 그 빵···. 말입니다만.”
“음?”
“혹시, 구한다면 얼마에 살 수 있습니까?”
“그리 비싸진 않지만 살 돈은 있나?”
“윽···. 아픈 말이지만, 실로 맞는 말씀이십니다. 맞습니다. 집에 돈을 송금하느라 다 써서, 지금은···. 잔디 송진을···. 으윽···.”
네프티는 괴로워하고, 나는 픽 웃었다.
이거, 잘만하면 서로 윈-윈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혹시 모르지. 내 일을 또 도우면 그 빵이 나갈지도.”
“무슨 일입니까? ···저는 나쁜 일에는 결코 손을 내밀지 않습니다.”
“별거 아니다. 신입생 환영회 때 팔 물건의 개발과 판매의 지원이다.”
“···당신이 축재하는것을 도우라는 말입니까? 아카데미 최악의 횡령꾼인 당신
을···?”
네프티는 고민했다.
그래. 내가 돈을 다시 벌면 어떤 악행을 저지를지 모르니까.
그녀는 3학년이고, 작년 울프람의 폭정을 아주 잘 알고 있다.
후우. 어쩔 수 없나.
나는 큰 결심을 하고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시급 1만린. 연장근무시 1.5배. 식사로는 최소 크림빵을 내어주지.”
“멸사봉공. 충의를 다하겠습니다.”
정의의 기사가 타락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