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126)
【승자! 아일라 트라이스타!】
결계가 해제되고, 연무장 전체에 승자의 이름이 드높게 울려퍼졌음에도, 누구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 만큼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누구나 알고 있다.
마력이란 절대적인 수치다.
마력 19는 21을 이길 수 없다.
마력 21은 영원히 22를 꺾을 수 없다.
법칙이다. 세상은 법칙으로 돌아가고 있다.
마력을 집어넣고, 회로를 돌려서, 보조술식을 입히고, 현현한다.라는 당연한 법칙이 존재하듯,
마력이 떨어지는 이는 높은 이를 넘어설 수 없다는 법칙이 있다.
물론.
마력 8이 9를 넘어서는 일은 있을 수 있다. 10이 11을 넘어설수도 있겠지.
허나 17. 인간의 한계라 불리는 이들은, 18이라 불리는 천재를 넘어설 수 없다.
천재는 괴물을 이길 수 없고, 괴물이라 한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써낼 대마도사를 넘어설 수 없으며, 역사는 이 세계 전체를 아우르는 신화 위에 존재할 수 없다.
허나 해냈다.
아일라 트라이스타는 역천(逆天)에 성공하였다.
눈 앞에 벌어진 위대한 반역에, 청중들이 감히 숨을 죽일 때.
오직 단 한 명만이 그 침묵에서 자유로웠다.
짝. 짝. 짝.
모두가 시선을 돌려 그를 바라봤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오직 그 만이, 이 침묵을 깰 자격이 있었으니 말이다.
세상 누구보다 오만할 자격이 있는 이.
아마도,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아일라 트라이스타의 승리를 확신했을 이.
울프람 폰 로엔그린만이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승자를 박수로 축복했다.
***
“울프람!”
쓰러져서 들것에 실려간 레지나를 뒤로 하고, 아일라가 내 앞으로 달려왔다.
전신에 흙이 잔뜩 묻고, 곱던 머릿결에 먼지가 가득했지만, 그 미소에 흐림은 없었다.
“봤나요? 봤나요. 제 반역! 우후, 우후후!”
양 손으로 입가를 가리고 발을 동동 구르며 웃는 아일라를 보며, 평소라면 얘가 또 난리를 치는구나 싶은 마음이 조금이나마 들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이 아이는, 내가 보지 못한 것을 보여줬다.
밀푀유 폰 사브레가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했듯. 아일라 트라이스타도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 앞에 놓여져 있는 운명을 때려 눕혔다.
스스로의 말버릇인 반역을 완수해 낸 것이다.
2만시간의 플레이타임을 가지고 있는 나 조차도 단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결말.
스스로의 운명을 거머쥔 아일라의 미소는, 나도 똑같이 마주 웃을 정도로 화려했다.
은밀하게 준비해 화려하게 날아오른 그 반역.
“뭐라고 말 좀 해줘요.”
“······.”
“뭐! 말 안해도 그 미소만 봐도 알 수 있지만요. 울프람이 웃어주다니 놀랄···.”
“수고했다. 아일라. 네가 자랑스럽다.”
“······에.”
내 칭찬에 아일라의 표정이 굳었다.
알아. 안다고.
울프람 폰 로엔그린의 칭찬은 무뚝뚝하고 애정이 느껴지지 않는거 아는데, 그냥 순수하게 칭찬해 주고 싶은걸 어쩌겠냐.
“미안하군, 말재주가 서툴러서 말이다.”
“아, 아뇨. 아뇨오···. 고, 고마워요.
“음. 그리 말해주니 고맙군.”
“흐, 흐음. 아무리 제가 잘 했다지만 울프람이 칭찬을 다 하고···. 이것도 전부 다 울프람의 계산에 있지 않았나요?”
“계산은 했다. 허나 이뤄낸 건 너다. 아일라 트라이스타.”
그래.
2만시간의 플레이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미래.
밀푀유와는 또 다르다.
그녀는 사라져갈 엑스트라였기에 솔직히 몰입할 수 없었다.
하지만.
원작에서의,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 차갑기 그지 없는 눈을 한 아일라 트라이스타는 몇 번이고 봐 왔다.
【나를 파멸시키겠다고요? 당신들이!? 하!】
【레지나 시엘라아아아!!】
【흑수정:마지막일격:절멸:죽음:광폭화:난사】
【나는, 나는 무너지고 싶지 않아.】
【반역을, 완수해서 언젠가······.】
【그와의 약속···을.】
그렇게 켈터스와 레지나. 그리고 이브의 연합군에 패배한 아일라의 찢어지는 비명이 떠올랐다.
2만시간. 그 길고 긴 플탐동안 대체 몇 번이나 이 아이가 스러져가는 모습을 봐 왔는가.
그때마다, 아일라는 세상을 저주했고, 한탄했고, 그리고 무너졌다.
“에헤. 칭찬받았다···.”
“······.”
결코 이렇게 순하게 웃지 못했다.
이 아이 역시, 밀푀유와 같이 이 게임의 전부를 알고 있다 생각한 나를 넘어선 모습을 보여 준 것이다.
“고맙다. 아일라.”
“······뭐가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이래서, 이 세계가 좋다.
미칠 정도로 좋다.
***
아일라 트라이스타는 날아 갈 것 같은 걸음으로 의무실을 향했다.
제프린의 의료 시스템은 저 제국의 황실의 황족 전용 병원에도 비견 될 정도로 뛰어나다.
그렇다고 뜯겨진 사지를 붙일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웬만한 상처는 없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이 학원구 안에서 ‘치료 스킬’은 수없이 많은 보정을 받기 때문이다.
이 또한 초대 황제의 안배라 해야 할까. 역시 로엔그린. 아일라는 그리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해! 그리고 그런 분의 따님을 누나로 둔 울프람도 대단해!
어째서 그런 의식의 흐름을 가지는지 모르겠지만, 아일라는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목적지를 향했다.
그녀가 쓰러져 있을 의무실로 말이다.
“들어갈게요.”
“······.”
문을 열고 들어가면,
레지나 시엘라가 나라 잃은 표정으로 멍하니 천장을 올려 보고 있었다.
저 퀭한 눈 좀 보라지. 어머. 어머. 지금 당장 고정 스킬로 포착한다음 인화 스킬로 뽑아서 벽에 걸어두고 싶네.
“들어오라고, 말 한 적 없습니다. 트라이스타.”
“어머. 승자로서 이 정도는 당연한 권리 아닌가요? 아니면 패배자가 권리를 요구할 셈?”
“······그렇네요. 제가 졌죠.”
“네. 이 아일라 트라이스타의 승리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퇴학인가요?”
“······.”
“그렇겠죠. 울프람 폰 로엔그린 황자 전하께 무례를 끼쳤고, 그 뒤를 이어 당신에게도 패배했어요. 정치적으로 생각하면 트라이스타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올라갔고 마력치 21인 저는 언제든 교체될 수 있는 패로 바뀐거죠. 축하해요. 반역의 흑수정. 당신의 승리에요.”
“······.”
아일라는 끄덕끄덕하면서 이야기를 들었다.
태연하기 그지 없는 표정.
승자의 여유로도 보이는 그 모습에 레지나 시엘라 내면에 있는 무언가를 건드렸는지, 레지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당신은 좋겠어요. 트라이스타 가문의 약진은 들었어요. 엄청난 기세로 서부를 통합하고 있다면서요? 거기에 황손과의 결혼. 이제 중앙 진출에 진출도 꿈이 아니겠네요. 반대로 ···저는 글쎄요. 마력치 ‘21’은 쓸모가 있겠지만 당신의 ‘20’에 패배했죠. 어떻게 마력을 올렸는지도 의문이지만, 그 또한 당신의 손패. 당신이 제 무능함을 주장하면서 회장님과 울프람 황자님께 말씀드려 퇴학을 요구한다면 ···황손에 대한 무례와 저 자신의 무능. 이 두 가지 요인으로 아마 제 퇴학은 확정. 거기에 제 파벌은 당신의 것이 되겠죠. 후후···. 축하해요. 새로운 지배자.”
“와. 대단하네요.”
“대단할 건 없어요. 이 정도의 추론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니까요. ···저는 이제 쓸모 없는 패. 이대로 죽고 싶어요. 될 수 있다면 꽃밭에서 눈 감고 웃으며 목이 졸려서···.”
“와. 말 진짜 많이하네요. 진짜 대단하네요.”
“······뭐라고요?”
그제야 멍하니 천장을 보면서 한 줄기 눈물을 또르르 흘렸던 레지나 시엘라는 아일라를 노려봤다. 말이 많다고? 그게 지금 꼭 해야 할 말인가?
하지만 아일라는 정말, 오직 그것만이 놀랍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목 안 아파요?”
“당신 진짜···!”
“으흠. 조용히 들으세요. 패배자. 승자의 권리입니다.”
“···으, 으극. 주, 죽일거야···.”
“네. 실력이 되면 나중에 해보세요. 그건. 아···. 뭐. 시엘라 가문이 정치적으로 복잡한 위치에 서있다는 건 저도 알아요. 그런데요?”
“···네?”
“아카데미에서도 꼭 그렇게 지내야 하나요? 정말 팍팍하게 사네요. 생활 자체는 즐겨야죠. 중앙은 다들 그렇게 살아요? 저는 졸업하면 모래바람 맞으면서 광산 시찰 다녀야해서 이 제프린에서는 최대한 가문 일은 신경 안 쓰려고 하는데 말이죠.”
“······.”
“아니. 그것도 울프람이 해결해 주지 않았다면 ···엄청 신경 썼을테니, 허세려나. 응. 허세겠네요. 그렇구나···.”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가요. 아일라 트라이스타? 자기는 자유롭다고 자랑하고 싶은 건가요?”
“아···. 당신이랑 대화하면 숨이 턱턱 막히네요. 입으로 늪을 쓰는건가···. 으음. 저게 마력 21의 경지?”
“아일라 트라이스타!”
“네. 패배자 레지나 시엘라.”
“윽.”
“뭐, 확실한 단언 하나. 당신은 퇴학 당하지 않아요.”
“······네?”
“이제 제가 명실상부 학년 1위. 하지만 그 1위가 빛나는 것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저보다 마력이 높은 당신을 뛰어 넘었기 때문이에요. 자. 당신이 퇴학당하면 제 1위가 빛이 바라잖아요?”
“······고작 그런 이유로, 정적(政敵)인 저를 안 치우겠다고요? ···진심이에요?”
“귀찮은 정치 이야기는 졸업하고 나서 해요. 벌써부터 그럴 필요도, 이유도 없잖아요?”
그리 말하는 아일라의 눈은 실로 밝게 빛나고 있었다.
“···제가 당신 입장이었다면, 당신을 치웠을 거에요. 아일라 트라이스타.”
“하지만 그런 【결말】은 태어나지 않았어요. 망상을 상상해서 현실로 끌고오지 마세요. 명백한 진실은 단 하나. 제가 당신을 이겼다는 것 뿐.”
“······.”
그 말에 레지나의 눈에 아주 조금 총기가 돌아왔다. 이윽고 깊은 한숨이 이어졌다.
“제가 졌어요. 진짜로, 졌네요.”
“그럼요. 당신은 진짜로 제게 졌어요.”
“···아뇨. 그런 의미가 아니긴 한데. 뭐 아무튼 ···정말로”
“그리고 한 번 졌다고 끝도 아니고요.”
“네?”
“2학기 기말고사가 있잖아요? 그 때는 마력이 낮은 강자를 때려눕히러 와 보세요.”
“······하.”
레지나의 입가에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걸렸다.
멍청한 일이다.
시엘라 가문에서 패배자가 웃는 일은 있어선 안 된다.
그런데···.
자신의 미소를 인지하지 못한 채, 웃음기를 숨기지 못하고 레지나는 아일라를 빤히 바라봤다.
아일라는 그 미소를 마주하며 양 손을 허리에 대고는 자신만만하게 소리쳤다.
“덤벼요. 2위. 저는 정점에서 기다리고 있을테니까요.”
“···좋아요. 그 때 이기면, 당신의 모든걸 받아 갈 거에요.”
“거만하네요.”
“대신 퇴학은 면제 시켜 드리죠.”
“어머 자비롭네요.”
아일라는 입을 가리고 쿡쿡 웃었고. 레지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좋아요. 당신의 자비에 기대도록 하죠. 퇴학은 안 당하는걸로 알겠어요.”
“허튼 소리. 자비롭지만은 않답니다.”
“······?”
“내일부터 제 가방은 당신이 들어주는거죠? 점심도 대신 사오고, 강의에 못 나갈 거 같으면 대리 출석도 좀 해주고.”
“······네?”
“잘 부탁해요. 패배자?”
“······당신은 언젠가 제 손으로 목 졸라서 죽일거에요.”
아일라는 방긋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보건실을 나섰다.
나서기 직전 레지나에게 엄지를 치켜들고 한 마디를 남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굿 럭. 루저.”
“······진짜 죽일거야.”
***
다음 날.
아일라와 레지나가 싸웠던 그 연무장에 나와 루디카가 섰다.
군데군데 패인 구석이 보인다.
원래라면 강당에서 붙어야 할 우리 둘이었지만, 나의 강력한 요청으로 이 연무장을 빌린 것이다.
“···울프람. 진짜 싸울 건가?”
“물론이다.”
“하지만 울프람의 스테이터스로는 루디카를 이길 수 없다. 알고 있지 않나?”
“어제 아일라는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레지나와 싸웠나?”
내 말에 루디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객석을 힐끗 보니, 제일 앞에 아일라도 밀푀유도 네프티도 이브도 보인다. 거기에 에밀리와 ···졸프? 졸프 너는 거기 왜 있냐?
뭐 아무튼 모두가 기대하는 눈으로 이쪽을 본다.
그 뿐만이 아니라 객석도 만석이다.
“지금부터 루디카 핫산 샤도우와 울프람 폰 로엔그린의 대련이 시작됩니다!”
자.
아일라는 내 예상을 뛰어넘는 미래를 보여줬다.
그럼 고인물인 내가 보여줄 시간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