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129)
아무튼 그 차가웠던 신경전이 끝나고, 우리는 서로 나름대로의 쫑파티를 시작했다.
밀피유와 내가 요리를 하고, 아일라는 식기 세팅. 루디카와 네프티는 테이블을 꺼내고 의자를 설치했다.
“선배님. 다 됐어요.”
“음. 이쪽도 끝났다.”
밀푀유와 나는 생각보다 정확하게 합을 맞추면서 요리를 해나갔다.
편의점의 조리 공간은 꽤 좁은 편인데, 서로간에 동선이 꼬이질 않는다.
“원래라면 저 혼자서 하고 싶었는데···. 선배님은 깨어난지 얼마 안 되셨잖아요.”
“내 편의점이다. 손님에게만 시킬 수는 없지 않나.”
“후후. 네.”
내 요리 스킬 자체의 티어가 높지 않음에도, 합이 굉장히 잘 맞는건 뭐랄까···. 정말 신기한 경험이다.
“선배님도 느끼셨나요?”
“뭘 말이지.”
“후후. 저희 굉장히 합이 잘 맞잖아요?”
“······.”
그렇군, 밀푀유도 느낀건가.
이건 신뢰다. 서로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 ‘미리’알고 있는 ‘파티 플레이’의 개념이다.
그렇구나. 밀푀유는 정말···.
“물론, 나도 알고 있었다.”
“그, 그렇죠. 선배님? 후후. 역시 선배님이세요.”
“선후배간의 신뢰가 두터움은 좋은 일이지.”
“······네.”
톡.톡.톡.탁.툭.툭.투우우욱.
직후 밀푀유가 식칼을 다루는 리듬이 점차 변하기 시작한 것은 내 귀의 착각일까.
그런 와중에 재료를 정확하게 등분하는 놀림은 무척이나 깔끔한 것을 보며,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혹시 요리 할 때 스킬 쓰니? 스킬좀 알려줄래?
“······그러고보니 선배님.”
“뭐지?”
“아까 바다 이야기를 하셨는데 진짜 바다를 볼 수 있나요?”
밀푀유는 내 앞에 바짝 다가와 눈을 빛내며 물었다.
“바다를 모르나? 바다란 물이 짜고···.”
“채, 책에서는 읽었어요. 제프린 자체도 인공섬이잖아요? 하지만 바다를 볼 수는 없는걸요?”
밀푀유의 말이 맞다.
외부에서 합격한 이들이 워프포탈을 타도, 들어 오는 것은 바로 학원구. 바다는 개뿔. 바로 도시다.
공식 설정에서는 우선 임시 기숙사에서 3일간 여독을 풀고, 가지고 온 물건중 반입 할 수 없는걸 다시 집으로 보낸다고 한다.
···엄청 군대같긴 한데, 제프린은 엄밀히 말하면 ‘군대’ 같은 교육도 겸하고 있으니까, 이래 저래 전투 요원을 키우는 아카데미 아니겠나.
그럼 얘네들은 꽃 다운 나이에 사랑도 연애도 못해보고 검을 휘두르고, 마법을 외우는건가 ···슬픈 이야기다.
그런 잡생각을 하고 있다보니, 어느새 요리가 완성되었고, 우리는 아카데미 밖 테이블에 두런두런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음. 급하게 준비한 ···심지어 관객이라고는 없는 조용한 종막식이다만 그러려니하고 받아들여줬으면 좋겠군.”
“어머, 이 이상 완벽한 종막식이 어디에 있나요?”
아일라는 방긋 웃고는 자기 앞에 놓인 빈즈 셰이크를 들고는 가볍게 빙글 돌렸다.
“아일라 말이 맞다. 우리 모두가 여기에 모여있는데, 관객이 무슨 소용이며, 화려한 요리가 무슨 필요겠는가. 중요한 건···.”
“저희가 이번 기말고사에서도 이 제프린에서 살아남아서···. 여기서 웃으면서 잔을 기울인다는 거죠. 선배님.”
“후후. 네. 네프티 선배님의 말씀이 맞아요. 특히 저는, 정말 여기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거라 생각 못 했으니까요.
아일라가, 루디카가, 네프티가, 밀푀유가 이 종막식을 웃음으로 장식했다.
거 참. 다들 좋은 녀석들 뿐이라니까.
이 아저씨는 감동이에요. 착하게 자랐구나 다들.
“자. 울프람. 울프람이 건배사를 해 주세요.”
다른 아이들의 대표격인 아일라가 나에게 건배사를 넘겼다.
“이번 기말고사에서, 대부분이 정말 좋은 성적을 거뒀다. ···나와 대련했던 루디카에게는 이게 비아냥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만.”
내 말에 루디카는 눈을 동글게 떴다가 이내 방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나는 오히려 울프람에게 져서 무척이나 개운하다. 세상은 스테이터스가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리 생각해주니 고맙군.”
목례로 루디카에게 감사인사를 짧게 표하고는, 나는 말을 이어나갔다.
“밀푀유의 말마따나 이번 기말고사에 있어, 우리는 모두 살아남았다. 이 자리에는 학년 수석이 셋이나 있지. 그 뿐만이 아니라 ···적어도 스스로의 성적을 비관할 이는 아무도 없다 생각한다.”
내 말이 길어지자, 제일 먼저 아일라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어왔다.
“울프람. 잔 들고 있는 팔 안 아파요? 팔이 떨리고 있어요.”
얌마. 알고 있어요.
아파도 참는거야. 아무튼, 지금부터가 중요하니까···.
“나는 이 자리에 있는 모두와, 적어도 한 번씩은 원정을 나갔다. 네프티와 루디카는 해변을, 산맥을, 숲을, 아일라와는 산맥과 설원. 밀푀유와는 설원···. 곧 제프린을 같이 돌아 볼 거니까 그리 시무룩한 표정 짓지 말도록,”
내 말에 잠시 시무룩해진 밀푀유는 얼굴을 화끈하게 붉히고는 이내 고개를 좌우로 털었다.
“아무튼, 나는 함께 모험한 이들을 ‘동료’라 생각하고 싶다.”
내 말에, 분위기가 따듯해졌다. 서로간의 신경전도 사라지고, 모두의 시선이 내게 향한다.
그렇다.
시스템으로는 아일라밖에 없지만, 나는 이 자리에서 함께 모험 했던 모든 이를, 동료. 혹은 파티원이라 생각하고 있다.
네프티는 원작 이상으로 나에게 끝없는 신뢰를 보여주고 있다.
아일라 트라이스타는 정해진 미래에 대한 반역을 성공했다.
밀푀유는 떨어져 나갔어야 할 운명을 주먹으로 때려눕혔다.
루디카는 마음을 열고 지금에 와선 나와 대등하게 선 동료가 되었다.
그러니까. 중심은 결국 우리 다섯이다.
물론, 운명을 부수고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지만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혈통메이트가 있긴 했지만, 굳이 이 자리에서 언급하진 않겠다.
걔는 뭐···. 내가 최고의 배려심을 발휘하면 파티원 쩌리 정도로는 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동료를 결코 버리지 않는다.”
저 멀리서 네프티의 ‘그런 건 알고 있다구요.’ 라는 말에 모두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리고, 앞으로도 함께 모험을 해나가고 싶다. 닫혀있는 이 학원구가 아니라, 북쪽의 설원을 진심으로 공략하고, 사막을 횡단하고, 산맥을 넘어서고, 숲을 지나가고, 망자의 탄식이 울려퍼지는 대지를 지나고, 그 모든 곳을 공략 했을 때 나올, 진정한 하늘에 닿는 길까지.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안배를 거닐고 싶다.”
술은 들어가지 않았다.
다만, 믿을 수 있는 친구들이 ···스스로 성장한 동료들이 있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입이 멋대로 움직였다.
아 진짜. 유치하긴 한데.
그래도 2만시간 플레이어인 이영진으로서 솔직하게 본심을 말하자면.
“고작 이 제프린에서 살아남는다? 시시한 이야기다. 자. 울프람 폰 로엔그린의 이름에 걸고 선언하마. 지금것 본 적 없는 세상의 너머를 보여주마. 따라와라. 건배.”
나의 마지막 건배사에, 모두가 희열에 달뜬 숨으로 망설임 없이 잔을 내밀었다.
【3막을 클리어했습니다!】
【축하합니다!】
【보상 아이템이 지급됩니다.】
【파티 기능이 강화됩니다.】
잔이 부딪치는 상쾌한 소리 위에, 축하의 시스템이 겹쳐졌다.
좋은 하루의 마무리다.
***
다음 날.
바다로 놀러가는 일정을 언제로 잡을까. 라는 물음에 모두가 확실한 답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대표로 말을 꺼낸 것은 밀푀유였다.
[제 친구중에 연애 경험은 없는데 연애 소설만 잔뜩 읽는 아이가 있거든요.] [어머나 딱하게도.] [그 아이가 저에게도 가끔 연애 소설을 권하는데, 그 안에서 바닷가가 무대인 소설이 있어요.] [어머···. 그런가요? 신기한 소설도 있네요.] [그런건가? 루디카는 잘 모른다.] [네. 보통은 이입이나 동경을 위해서 각 왕국의 수도나 황궁을 무대로 하는데요. 바닷가 이야기라 더 기억에 남는 거 같아요. 그래서 그 소설에서는 무려 ···수영복이라는게 존재하는 것 같아요.] [···수영복? 수영할 때 입는 옷인가요?] [네, 네에. 그런데 그게, 사, 살짝 살결을 드러내는대요···.] [파, 파렴치해요! 제프린의 학생 된 자. ···아, 하지만 반역적이기도 하고···.] [아, 자맥질할 때 편하게 움직이려면 그렇기야 하겠구나.] [···루디카 선배님 중앙어 잘하시네요. 자맥질이라는 말은 대체 어디서···.] [네프티는 조용히 해라.] [넵.] [자 밀푀유. 계속 이야기해봐라. 그래서 수영복이 뭐라고?] [그러니까···. 그게 바다의 해방감을요···.] [···그, 그런게 있었군요.] [혼자서는 부끄러우니까 다 같이···.] [좋아요. 그러면 어디서 옷 의뢰를···.] [아 그거라면 제가 위그드라실에 튼튼하게 잘 만드는 곳을 알고···. 적어도 2주···.]그렇게 점차 작아지는 목소리는 이내 내 귀에 들리지 않을 정도라 결국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완전히 파악 할 수는 없었지만, 어째저째 결론은 나왔다.
바다는 적어도 2주 후에 간다. 그리고 2주간은 서로 자유행동이다.
뭐 그럴 수 있지. 종업식은 앞으로 한 달은 남았다.
결국 다음날 부터 애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얘들아, 우리 약속했잖니.
파티원이 되자고, 함께 모험하자고.
나는 믿었는데, 신뢰를 줬는데.
너희는 나를 배신하는거야···?
“누구도 믿지 않겠다. 나를 위해 살겠다.”
“하, 그런 섭섭한 소리를 하는군. 주인.”
“···파트라슈. 있었는가.”
“나는 언제나 이곳에 있다.”
그렇게, 실로 오래간만에 나는 리어카를 끌고 파트라슈와 함께 장사를 나섰다.
오래간만에 맡는 상쾌한 아침 공기.
“그런데 주인. 나 파트라슈는 실로 감탄했다.”
“무슨 소리지.”
“돈을 벌고, 건강을 챙긴다. 하나의 행동으로 두 가지 이득을 보려는 장사꾼의 지혜로군.”
얘는 뭐라는거야?
“분명 지금부터 하려는 장사는, 물품 적재를 보니 푼돈임이 분명한데, 이 새벽부터 장사를 나서다니. 주인은 훌륭한 장사꾼이다.”
“······.”
“이미 수 천 만 린의 재화를 벌었음에도, 부지런함에서는 타의추종을 불허하는군. 주인은 지식보다 그 부지런함이 진짜 무기일지도 모르겠어.”
아니.
그게 아니고···.
이번 옥좌 사용에서 마동석을 좀 꼬라박느라 자금이 펑크가 나서 ···정산서 볼래?
“그런가. 존경 받을 일도 아니다.”
“아니, 실로 존경한다. 초심을 잃지 않는 그 모습. 그대는 긍지 높은 인간이야.”
아니.
아니라고.
그런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보지 말라고.
***
한여름의 대학원 앞에서 꽤나 잘 팔릴 거 같은 물건들을 세팅했다.
장마철은 없다지만 새벽부터 푹푹 찌는 이 제프린의 언덕을 걸어서 올라오는 대학원생들.
그들에게는 차게 식힌 얼음물을 내놓고, 컵당 천 린을 받기로 했다.
“으어어···.”
“그우어어어어···.”
그 뒤에는 당연히 단것들을 판다. 대학원생들도 참 고생이 많아요.
“흐우. 흐우우 살겠다.”
“오,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우, 울프람 님.”
“음. 고생들이 많다. 도넛이나 다른 간식들도 잔뜩 있다.”
“흐 후으. 감사합니다.”
그리 말하며, 샌드위치나 민트 음료.
그 외에는 차게 식힌 스프. 즉 비시슈와즈를 어줍잖게 흉내낸 물건들도 팔려 나갔다.
재밌는 건 혹시나 팔릴까 싶어 핸디 워커로 만든 ‘구취 제거제’ ‘땀냄새 제거제’ 등이 불티나게 팔렸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랩에서 연구하고 그대로 교수가 불러서 밤새 딸랑이하던 대학원생이 어디 씻을 틈이 있겠어. 그냥 그대로 옷만 갈아입고서 바로 랩으로 출근이지.
그렇기 때문에 잘 팔리는 거라고 생각하면 쓴 웃음이 나온다.
“동정하는 미소는 아닌데, 기뻐하고 있지 않나?”
“오해다.”
한 1할정도 쓰고 나머지 9할은 웃음이긴 해.
그렇게 파트라슈가 끌고 온 리어카에 실린 물품들이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오늘도 장사가 잘 되어 빈 수레 요란하게 편의점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그 놈의 목소리가 들렸다.
“황자님. 오래간만에 봽습니다.”
“······졸프.”
1막의 보스. 내가 구해줬던 대학원생.
“성불한 것 아니었나.”
“···죽지도 않았습니다만?”
그러고보니 그랬지.
나름 루디카와 나의 대련에서, 연무장에 모습을 드러냈던 기억도 난다.
“그래서 무슨 일이지. 아쉽지만 물건은 거의 다 나갔다.”
“아뇨. 오늘은 말씀 드리고, 또 감히 부탁드릴 것이 있어 왔습니다.”
“······부탁이라.”
뭐 돈 빌려달라고? 내가 돈이 어딨냐. 나도 죽겠다.
밥 한 번 먹자고? 그래 언제 한 번 먹긴 해야 하는데 다음번에 지금 좀 바쁘네.
옥장판 사라고? 내가 추위를 안타서 하하.
수 없이 많은 사양의 멘트를 준비하고, 나는 비루하고 비참하며 비굴한 대학원생 졸프의 말이 이어지길 기다렸다.
“저를 포함한 일련의 대학원생들이 울프람 황자님의 우호 세력이 되고자 준비하고 있습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해보도록.”
갑자기 밥이 내키네, 뭐 먹으면서 이야기 할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