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180)
179. 환상의 여섯번째 멤버
그러니까 나.
엄밀히 말하면 울프람 폰 로엔그린이 되고 난 이후의 내가 아니라, 그 이영진 시절의 내 이야기.
D/Z SAGA 카페 마스터. 슈퍼 영진이었을 때. 사람들은 내게 참 많은 질문을 던졌다.
‘응애 D/Z늒네 네프티 루트 보고십어 늒네 이러다 죽어’ 같은 도저히 도와줄 수 없는 눈물이 절로 흘러내리는 질문이 있었는가 하면 ‘아 이졸데랑 대학원 가고 싶다. D/Z SAGA 들어가는 방법 구함’ 같은 글도 있었다.
나는 ···음. 대부분의 정보는 다 공유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버그 플레이는 예외다. 세간에 풀린 습캔같은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었지만 진짜 나만 알고 있는 버그 플레이는 절대 공개하지 않았다. 그게 이 D/Z SAGA에 내가 보낼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답변에 최대한 성실하게 대답했다. 내가 봐도 정말 훌륭한 마스터였다고 생각한다.
공략 공유해. 실전 영상 보여줘. 꿀팁 보여줘. 과도한 친목질 차단해. 나 자신도 딱히 친목에 관심이 없고, 카페에 상주하면서 분탕도 쳐냈다.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댓글에 ‘지금부터 종신 완장 찬양을 시작하겠습니다.’ 라거나 ‘평생 완장 ’해야겠지?’’ 같은 댓글이 달렸으니까 말이지. ···칭찬 맞지?
아무튼.
내 플레이 타임은 2만 시간을 훌쩍 넘었고, 흔히 게임 켜놓고 잠드는 ···그러니까 석상 플레이가 아니라 대부분이 플레이 타임이었다는 점에서 내가 이 게임에 얼마나 시간을 투자했는지, 얼마나 썩었는지 뭐 말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런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이 게임에서 이해를 거부하게 만드는 것.
“어머, 황자님. 후후···.”
“음.”
“지난번 식사는 실로 감명 깊었습니다.”
이전에는 완전히 시체같았다면, 지금은 그저 좀 창백한 수준의 얼굴로 이쪽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는 붉은 눈의 금발 엘프.
레지나 시엘라.
“이번 중간고사 대비는 잘 되어 계신가요?”
“······.”
2만시간동안,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 않은 캐릭터였다.
***
뭐, 실제로 만나본 레지나 시엘라에 대한 감상은 ···겉으로는 대화가 통한다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겉으로.
분명 아주 조금이라도 스토리에 진입한 다음 선택지 몇 개 조지면 바로 눈 까뒤집고 늪으로 속박해서 칼들고 ‘아아···. 나만의 켈터스. 보여요? 우리는 이제 영원히 하나에요.’ 라면서 마력을 융화시켜서 늪과 빛의 마력이 한데 뒤엉키고 그리고는···.
후우. 뭐 아무튼.
완전히 대화가 안 통한다고 생각했던 때 보다는 낫지 않나.
얘한테 마법전으로 세 번 이겨야 한다는 루트 돌입 조건도 다 못 갖췄으니, 지금의 레지나 시엘라와 나는 완전한 평행선. 서로가 서로에게 깊게 엮일 이유가 전혀 없다.
물론 마냥 그렇다기엔 ···‘호감도 미약 상승’ 버프가 걸렸을 때는 마력으로 나를 윽박지르기도 했고, 입에 밥이 잘 안 들어갔을 때는 내 도시락으로 배를 채우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음.
그래도 별 일 없겠지? 없을거야. 이 게임이 훼까닥 돌지 않고서는 내가 레지나 루트를 열었을리가 있겠어?
그나저나, 얘는 또 뭔 일로 여기에 왔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평일 오전 10시. 그 누구도 출근하지 않고, 손님은 없고, 파트라슈는 흑왕호를 몰러 나갔다.
그 와중에, 어째서인가 레지나 시엘라가 이 편의점을 찾았다.
흠.
그렇군.
나를 죽일셈인가? 하. 가장 완벽한 타이밍에 찌르러 오셨구만 그래.
살려준다면 뭐든 하겠다. 우리 비밀기지는 북쪽에 있다!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지금 여기서 레지나 시엘라가 마력21로 후려치면···. 단 한 방이라도 카운터가 가능할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완전히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치명적인 일격은 각오 해야겠지.
“퍽이나 이른 시간에 찾아왔군. 무슨 용무지?”
“···삯을 치르러 왔습니다.”
“삯?”
“예에. 지금까지 세 번이나 황자님의 식사를 얻어 먹었으니까요. 후후. 그 뒤로 혈색이 조금 좋아진 것 같지 않나요?”
“그야 그렇다만···. 삯이라니. 돈은 충분히 받았다만.”
“아니오. 이 레지나 시엘라의 생명을 이어주신 것, 그리고 ···후후. 살아갈 의미를 주신것. 결코 그깟 몇 푼으로 갚을 수 없는 빚이니까요.”
뭐야.
존나 무서워.
그러지마.
으흠. 그러니까.
“내가 만든 요리에 어떤 가치를 매기든, 그건 네가 멋대로 매긴 것 뿐이다. 나 역시 한 업체의 주인으로서 철저한 가이드라인에 의거하여 장사하고 있으니, 이 이상 침범하지 마라. 재료비 2800린에 내 노동력을 포함해 6500린이다.”
“···후후. 정말 철벽같은 분이시네요.”
“내 신념을 준수 할 뿐이다.”
거기에 얘한테 뭐 받아먹으면, 그걸 빌미로 뭔가 더 귀찮은 일이 벌어질 거 같다.
“그러면 돈으로 거래하는 것은 그만 두도록 하죠. 대신 제가 황자님의 호의 덕분에 살았다는 것 또한 진실이니, 저도 물러설 수 없는 부분이 있음을 알아주세요. 세 번이나 ···황자님의 요리로 제 영혼과 육신이 채워지고, 제 몸을 이루는 구성이 바뀌었는걸요?”
“음.”
겉으로는 음. 그렇군. 그런가. 그럴 거 같았다. 같은 표시를 했지만, 내 손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만둬.
그런 단어선택 옳지 않아.
뭔 도시락 하나에 영혼과 육신이 채워지고 구성이 바뀌었다고 그래.
그냥, 그래 그냥 평범하게 맛있게 먹었습니다. 한 마디만 해주면 안 될까? 응?
“거기에 황자님같은 분께 고작 돈으로 거래를 내걸다니요. 후후. 이미 돈 같은건 옛저녁에 초탈하신 분이신데 말이죠.”
아냐. 나 돈 좋아해.
하지만 그렇게 말했다간, 어머 황자님 그렇게 돈을 좋아하시면 그 위장에도 금화를 넣고 다니는게 어떠실까요? 하면서 인간 보따리가 될 거 같은 두려움에 차마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 도시락의 가격은 너무나 싸다고 황자님께 감히 조언드리는 바입니다.”
“뭐라? 철저한 계산 속에 나온 결과다만.”
“황자님의 설계는 일반 식당이라면 맞는 말이지만 실제로 판매량을 생각 해 봤을 때. 유통기한이 지난 재료들의 폐기율까지 포함한다면 조금 더 가격을 올리시는게 맞다고 봅니다.”
“······.”
어.
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레지나를 바라보니, 레지나는 잠시 놀라 손으로 입술을 매만지다가 눈을 내리깔고는 처연한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이 가게 또한 황자님의 카모플라쥬. 저 레지나 시엘라의 조언 따위 귀에 담을 가치조차 없으니 부디 패도의 대업을 이루소서.”
“아니.”
“······네?”
“아니다. 더 말해봐라. 이거 꽤나 흥미롭지 않은가.”
“어, 어찌하여. 돈에는 흥미가 없으시다고···.”
음.
뭐라고 말하지.
아닌데 돈 진짜 좋아하는데? 라고 하는 순간 용광로에 금이랑 같이 들어가서 어느날 갑자기 밤마다 울프람~ 울프람~ 울어재끼는 ‘저주받은 신 금화’가 될 거 같다고 할 수는 없잖아?
음 여기서는···
“돈은 필요 없다. 허나 ···너의 뜻이 갸륵하구나.”
“······네?”
“너의 그 말은, 나를 위한 충언이 아니던가. 아니면 결과적으로 내 사업을 말아먹기 위한 포석이었나?”
“···아닙니다. 이 레지나 시엘라. 가문의 명예와 저 자신의 신념에 걸고 그럴 의도는 없습니다.”
“허면, 같은 학년의 학우에게 진로에 대해 상담 한다. 정도의 가벼운 취지로 대화를 나눌 수도 있는 법 아닌가.”
레지나 시엘라는 작중 최고의 상인이다.
괜히 대마도상인이라는 직업으로 승격하는게 아니고, 그 결과 【대마도상인의 축복】이라는 모든 상점 할인율 50%의 돌아버린 스킬을 인연 스킬로 주는게 아니다.
작중에서 얘는 진짜 돈에 진심이니까.
대충 레지나를 칭찬하면서 컨설턴트좀 받아보자.
“···학우. 제가, 황자님과 학······우. 실로 저를 학우라 불러 주시는 것입니까?”
“무얼. 당연한 것 아닌가. 대마도상인. 레지나 시엘라. 그대가 대륙 제일 거상의 장녀라 자부한다면 잡담을 하더라도 그 지혜는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을 터. 아닌가?”
“···저는 아직 마도상인에 지나지 않습니다. 앞에 대(大)를 붙일 수 있는 것은, 저희 업계에서는 정점에 선 이 한 명 뿐입니다.”
“그랬군. 실례했다.”
“허나 황자님께서, 그 칭호를 입에 담으셨다면 저는 반드시 그 길을 걷고, 그 길을 이뤄내겠지요.”
“음. 그렇겠지. 다난한 일이나 걸을거라 생각한다.”
뭐, 아예 멘탈이 으스러지지 않으면 알아서 잘 할 애니까.
“그리고, 그 이야기는 이 순간부터 시작 될 것입니다.”
“뭐라 했는가?”
“아니오. 그저 ···스스로를 다잡았을 뿐입니다.”
그리 말하며 레지나 시엘라는 가벼이 웃었다.
“그럼 보자. 방금 이윤 이야기를 했는데, 그렇다면 너는 어느정도 비율이 괜찮다고 생각하지?”
“그렇군요. 이는···.”
그 뒤로 레지나에게 있어서 편의점 운영이나 기타 사업에 대하여 가벼운 토의를 나눴다.
생각보다 괜찮은 시간이었다.
그리 대화를 마치고, 음료 몇 잔이 들어가고 레지나가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그녀의 눈은 다시 반짝이고 있었다.
괜찮네, 완전히 정화된건가.
얘는 루트를 진행하면 점점 눈이 맛이 가는데 그걸로 단계를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신기한게.
맛이 가다가 눈이 다시 반짝일 때는 맛이 완전히 갔던가, 아니면 원래대로 돌아왔던가 둘 중 하나다.
지금 이 대화에서 맛이 갈 일은 없으니까 뭐, 원상복귀 했겠지?
“그러고보니 마법학부에서 신기한 소문이 하나 돌고 있다고 합니다.”
“뭐지?”
“울프람 폰 로엔그린 황자님의 소속을 의미하는 배지가, 시장에 나돌고 있다는 소문이···.”
“그거 말인가? 내가 내놓은 것이 맞다만.”
“연유를 여쭐 수 있을까요. 사람을 재단하는 능력은 황자님에 비해 일천하나, 그런 제가 봐도 쓸 수 없는 이들이 그 배지를 취득했다는 정보를 얻었습니다.”
“그저 뿌린 것이다.”
“···네?”
“재고 처리를 위해 뿌린 것이다. 큰 의미는 없다.”
“아. 과연. 인지도를 늘리고 그 결과 여론전에서 밀려도 언제든 방패로 쓸 수 있도록 입니까. 공통된 상징은 소속감을 나타내니까요. 후후···. 역시. 잔혹하신 분.”
레지나는 큰 깨달음을 얻은 듯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무슨 깨달음인지 모르겠는데, 궁금하지도 않으니까 딱히 물어보지 말아야지.
그리고.
제가 만든건 맞지만 그런 스킬 레벨업용 싸구려 아이템을 공식 앰블럼으로 착각하면 곤란하다.
“내가 동료로 삼은 이들은 그런 싸구려 배지를 차고 다니지 않는다.”
“네? 그렇다 하심은···? 다른 상징이 있다는 말씀이신지.”
“물론이다.”
나는 그리 말하며, 망토 안쪽에 달아놓은 배지를 꺼내들었다.
내 푸른 눈동자로 빛나는 금빛 늑대의 문양.
“···이것이. 울프람 폰 로엔그린 황자전하님을 상징하는 군기(軍旗).”
“군기(軍旗)는 거창하군. 허나 앰블럼은 맞다. 이 황금 갈기의 늑대가. 내가 지키고, 나를 지켜줄 일행의 상징이다.”
내 말에 레지나는 스스로의 몸을 끌어안고 부르르 떨었다.
왜 그래. 무섭게. 하지마.
“···아아 듣기만 해도 전신이···. 후후. 실로 고귀한 물건. 허나 그 안에 저를 위한 자리는 없겠지요. 저는 지불할 수단조차 없으니 말입니다.”
“흠.”
레지나 시엘라를 파티에 넣는다. 라.
곰곰히 생각해보자. 얘를 넣으면 어떤 이점이 있을까.
일단 마력 성질 자체가 ‘무속성’이라 네프티랑 시너지가 난다. 거기에 마법사니까 아일라랑 시너지도 난다. 파티 시너지만 놓고 보면 생각보다 괜찮다.
무서운 건 단 하나. 갑자기 훼까닥 돌아서 다른애들 찢어버리고 아하, 아하하! 같은 소리만 안 하면 되는데···.
“내 동료들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는 맹세는?”
“할 수 있습니다. 제 영혼과 육신. 모든것을 걸고.”
내 물음에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그럼 그게 해결됐다고 치자.
어차피 실피아가 빠지면 파티 버프는 쿨타임이 돈다. 당장 다음달에 무조건 빼야 하는건 아니지만, 원정지가 문제다.
무형 시너지를 받으면 편한 원정지가 있고, 마법사 버프를 받으면 편한 원정지도 있으니 말이다.
음···. 그래서 레지나 시엘라를 파티에······. 흠.
“여섯번째 자리는 원정지에 따라 교체가 가능하지.”
“그렇다 하심은.”
“네가 나에게 해가 되지 않고, 네 쓸모를 입증한다면 ···뭐 고려해 볼 여지 정도는 있겠군.”
그 말에, 레지나의 눈이 빛났다.
“제 쓸모를 입증 하면 ···된다 하셨습니까. 황자님께서 하신 말씀. 거짓은 없겠네요.”
“그렇다.”
“···후후. 알겠나이다. 이 레지나 시엘라. 다시 한 번 제 자리를 찾아가도록 해보겠습니다.”
“자리라.”
“예에. 학년 최고의 자리. 수석의 자리 흥미를 잃었으나, 실로 확실한 목표가 생겼습니다.”
“그거 재밌군. 네 상대가 누군지 잊었는가?”
“······제 호적수. 아일라 트라이스타입니다. 쉬운 상대는 아니지요.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전혀 잘못 짚고 있다.”
“예?”
어허. 어딜 착각을.
“이 나다.”
“···예?”
“말하지 않았나. 내가 지키고, 나를 지킬 일행이라고 말이다. 네가 아까 이 앰블럼이 군기(軍旗)라 말했지. 그렇다면 나는 군문에 들어온 자를 절대 버리지 않는다. 즉. 아일라를 꺾겠다는 것은 이 울프람 폰 로엔그린을 꺾겠다는 것과 진배없음을 이해하도록.”
“······아.”
감히 우리 파티원을 괴롭히는 사람은 용서하지 않아요.
그래도 뭐.
“허나, 그럼에도 네가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다면 그래. 여섯 번 째의 공석은 한 번 쯤. 너를 위해 준비 될 수 있겠군.”
“······반드시. 기대에 부응해 보겠습니다.”
레지나는 눈에 열의가 깃든 채 떠나갔다.
뭐. 아일라도 레지나가 시들시들하면 재미 없다고 했으니까, 이 정도 도발에 나한테 뭐라 하진 않을거다. ‘강자에게 반역을 당하지 않는 것 또한 반역이에요!’ 같은 소리를 내뱉으면 좋아하면 좋아 할 성격이지.
***
그날 저녁.
중간고사 대비로 놀러온 아일라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강자에게 반역을 당하지 않는 것 또한 반역이에요! 고마워요 울프람! 최고의 중간고사에요!”
진짜 그러셨다.
얘는 참 한결같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