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181)
180. 브라우니
아일라는 반짝거리는 눈으로 바를 바라보고는 두근거림을 참지 못했다.
두근거림이 음표가 되어 하늘을 나는 착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 다 했지.
일말의 죄악감이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본디 쉬이 이길 수 있는 레지나 시엘라가 더 너를 경계하기 시작했다만 괜찮은가?”
허나 아일라는 반짝임 진행형인 눈동자로 나를 응시하고는 웃었다.
“울프람도 참 이상한 이야기를 하네요?”
“이상하다?”
“예. 상대가 전력이 아닌데 어떻게 제 승리가 빛나겠어요?”
“음.”
그리 말하며 아일라는 팔짱을 끼고는 눈을 감은 채 미소를 짓고 콧김을 흥! 하고 내뿜었다.
실로 아일라 다운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나왔다.
그래.
이게 아일라 트라이스타.
“레지나 시엘라와는 제프린을 나서서도 십 년, 이십 년. 아니 평생을 싸워야 할 호적수. 그녀는 더욱 더 강해지겠죠. 그런데 고작 이 제프린에서 진심인 레지나를 못 꺾는다? 그렇다면 ···제 반역은 실패에요!”
언제 어느때나 정정당당하게, 오직 앞만을 보고 걷는 자세야 말로, 아일라 트라이스타가 빛나는 이유.
“알겠다. 그렇다면 나도 전력을 다해 돕도록 하지.”
“고마워요.”
돕겠다고 한 이상. 목표는 완전한 승리.
얘가 마력은 얼추 비빌 수 있으니까, 이제는 템을 좀 세팅해줘야겠군.
어디보자.
어디부터 돌아볼까?
***
음.
아일라는 배틀메이지다. 혹은 워록이라고도 하는데, 아무튼 중거리 마법사다.
마력치 20에 17의 재주.
물론 한 번도 파티에서 써 본 적 없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일라는 독특한 포지션을 선점할 수 있다.
이졸데 크루엘처럼 말 그대로 이 게임에서 후반까지 쓸 수 있는 만능캐로 전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일라에게 맞는 아이템을 세팅해 줘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다.
아이템을 한 슬롯에 하나밖에 끼지 않는 것은, 두 개 이상 끼면 그 아이템의 마력이 상충할 위험이 있다. 라고 공식적으로는 설명하고 있다.
물론 여러개 찰 수 있으면 그게 짱이긴 한데, 이 세계에서 어디 좋은 장비 구하기가 쉽던가.
더군다나 거기에 민첩 근접계열 광석 마법사.
···아니 뭐 보스로서 가장 대응하기 까다로운 속성을 다 가지고 있는데, 이게 파티원이 되면 막상 그래서 ‘뭔 템을 껴주지?’ 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근캐냐, 원거리냐 아니면 금단의 올라운더냐.
고정 파티를 생각 해 봤을 때. 아일라의 포지셔닝은 당연히 ‘원거리 포격’을 중심으로 해야 한다. 하지만 레지나 시엘라는 그 세팅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
그래서 ···크게 도움이 될 물건을 찾아야 한다.
그러니까 원정! 크게 따서 갚는다!
이번 원정은 아무래도 꽤 귀찮은 지역이 될 듯 했기 때문에, 우선 이브를 찾아가기로 했다.
금기구역 진입 허가는 받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번에 갈 곳은 좀 독특하니까 말이야.
학생회실 앞에 가니 실피아가 몸을 풀고 있었다.
“울프람? 오랜만이군.”
“실피아인가. 뭘 하고 있었지?”
“운동이다. 곧 그 가증스러운 이졸데와 대련해야 하니 말이다. 네가 가르쳐 준 대로 하고 있다만···. 주군을 만나러 왔나?”
“음. 이브는 안에 있나?”
실피아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그녀를 뒤로 하고는 학생회장실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안에 들어갔을 때. 내가 본 것은 책상에 얼굴을 쳐박고 있는 이브였다.
“···우으······. 흐이······.”
이브는 입에서 기묘한 소리를 내뿜으며 자고 있었다.
***
갑작스러운 이브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어 제프린을 도망치는 결말이 아니라 실로 다행이었지만, 이브는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시이······슈으······히.”
실로 기묘한 숨소리다.
황실의 위엄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지만 뭐, 황실 사람이라고 잠꼬대나 숨소리까지 위엄 넘칠수는 없지.
물론 나는 위엄 넘친다. 정말 미친 스킬이야 이거.
이브와 나의 【황실 혈통】을 대조 해 봤을 때.
같은 황실의 피를 이었다고 해도, 발현하는 방향이 다르다. 나는 아마 권위나 위엄쪽으로 발현한 거겠지. 만약 그게 아니라면 뭐 ···모르겠다.
흠.
아니야. 만약 이게 이브 폰 로엔그린의 저열하고 더러운 술수라면?
내가 원정 가겠다는 말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자는 척을 하고 있는 거라면?
···가능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브가 자고 있는지 아닌지 실험해 봐야겠지.
건드려서 깨운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자고 있을 때 얘 몸에는 배리어가 쳐져 있어서 바로 요격태세로 돌아선다.
마력을 밀어넣어서 깨우는 방법이 있긴 한데, 그 방법을 씹고서도 자는 척 하면 그만이다. ···그렇다면 확실하게 깨우는 마법의 주문을 외우는 수 밖에 없는가.
그러니까 아주 조금만 놀리면 이브가 발끈해서 번쩍 일어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아주 살짝, 적당히 놀리자.
“야. 뱃살.”
저질러버렸다!
이건 죽는다!
적당히 놀리려고 했는데, 이놈의 주둥아리가 한계를 가볍게 넘어버리고 말았다.
공포에 질려 이브의 대응을 보고 선모션에 맞춰서 백스탭을 밟으려고 했는데···. 이브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푸슈으우.”
음.
진짜로 자고있나보다.
다행이다.
아무튼, 보통은 이렇게 뻗어있는 녀석이 아닌데, 어지간히 피곤했나보다.
이유라고 하면 뭐 지난번 원정의 뒷수습이나 최근 다이어트까지 생각하면 마음 놓을 일이 없겠지.
그래서 얘는 그냥 자고 있다. 아주 그냥 퍼져있다.
다음번에 찾아오면 그만이겠지만, 나도 최근 여러 일이 있어서인지 손님용으로 준비된 소파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책이라도 한 권 있으면 좋겠다만, 없는것이 천추의 한이로군.
기묘한 이브의 숨소리와 함께 얘가 깨어나면 대충 보고나 하고 원정 떠날 준비나 해야지 하고 있는 그 순간, 똑똑. 작은 소리와 함께 학생회장실의 문이 열렸다.
“주군 보고 안건입니다. ···울프람? 주군께서는···. 아.”
“음. 자고 있다.”
“그렇군. 으음···.”
“즉시 해결해야 할 보고가 있나보군.”
내 말에 실피아는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아주 작은 목소리로, 내 귀에만 들리게 말했다.
“···뭐. 최근에는 주군께서도 너를 신뢰하고 계시니 이 정도는 말 해도 되겠지. ···그렇다. 음. 곤란하군. 오늘 당장 결산해야 할 서류가 산더미인데 말이다.”
“쯧.”
저걸 했다간 아마 내 업무가 뒤로 밀리겠지.
그건 곤란한 일이다.
“그럼 일단 이건 내일···.”
“아니. 가져와라. 내가 보도록 하지.”
“심각한 월권행위라는 사실을 아나?”
“흥. 결재 도장을 찍는다고는 안 했다. 그저 분류를 할 뿐이다.”
“······그거라면야 뭐.”
그리 말하며 실피아는 내 앞에 서류 더미를 쌓아 올렸다.
꽤 되는 양이구만 그래.
“···흠. 우선은 마법학부에서 고등급 마법서의 회수를 바란다. 대금은 차후 지불···. 하. 들을 가치도 없군.”
나는 그렇게 이건 괜찮겠다. 싶은 것. 그리고 애매하다 싶은 것. 완전히 개소리다 싶은 것. 세 가지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너무 거침없이 분류하는 군. 찬성도 그렇지만, 반대쪽 분류는 분류 그 자체가 월권 아닌가?”
“내가 납득하지 못 한 걸, 이브가 납득할리 없지 않나.”
“뭐라?”
“흥. 저 녀석은 유능하다.”
“······음. 그 또한 그런가.”
“거기에 이렇게 처리하면 그만이지.”
모든 서류 위에 판정 사유를 적은 메모를 적은 뒤. 전부 분류를 마치고 실피아에게 넘겼다.
“뭐지?”
“분류한 근거를 우선 네가 판단해봐라. 너는 장차 이브의 로열 가드가 될 몸이니, 이 정도 업무는 보조할 수 있어야겠지.”
“네프티는 ···그렇게 하는가?”
“글쎄.”
네프티에게 그런 일을 맡깉 상황이 일어나지도 않겠지만, 맡긴다고 해서 할까 그 녀석이···?
아무튼 내 말에 실피아는 진지하게 내가 분류한 파일을 검토했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군.”
“뭐가 말이지?”
“한 때. 주군께서는 너에게 목줄을 채운다는 이유로 학생회 재 가입을 목표하신 적이 있다. 알고 있나?”
“···알고 있다. 당사자니 말이다.”
“음. 그때는 우리가 너의 족쇄가 되어 너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면 관리가 편해질 거 같다. 라는 이유만으로 찬성했지만 ···이 분류표를 보니, 딱히 그게 아니어도 찬성할 만 하겠어.”
잘은 모르겠지만 실피아는 내 분류에 납득하고, 나름대로의 칭찬도 남긴 뒤 학생회장실을 나섰다.
그리고 얼마 후.
“···우으으, 흐잉.”
실로 기묘한 소리와 함께 학생회장님께서 기침하셨다.
“깨어났는가?”
“울프람···?”
“그래. 울프람이다. 울프람 폰 로엔그린.”
이브는 기지를 쭉 펴더니 양 어깨를 빙글빙글 돌렸다. 근육을 푸는건가.
“얼마나 잔 거죠?”
“내가 왔을 때 부터 잤으니, 세 시간은 족히 잔 듯 하군.”
“···기왕 온 거 좀 깨우지 그랬어요. 오늘 일이 산더미인데 ···후. 진짜. 사람이 얼마나 바쁜지 알면 좀 도와주면 안 되나요? 그게 인정과 미덕이라는 거잖아요?”
“쫑알거리지 마라.”
“흥.”
“하.”
그리 말하며 나는 이브에게 중지를 치켜올렸고, 이브는 멍한 눈을 가늘게 뜨더니 맞대응했다.
잠시 그러고 있다가, 이내 이브는 내 앞에 놓인 서류를 마력으로 들어올려 자기 앞으로 슥, 가져다 놨다.
“실피아가 놓고 간 서류는 어디보자···. 응? 분류가 되어있네? ······어라? 울프람. 이거 누가 분류했나요?”
“글쎄다.”
“이 필체는 실피아가 아닌데···. 잠깐 이거···.”
이브는 그리 말하며 눈을 가늘게 뜨고는 나를 노려봤다.
“울프람.”
“뭐지?”
“이 분류를 한 사람. 누군지 모른다고 했죠?”
“물론이다. 학생회장실의 주인이 잠든 사이에 요정이 다녀가서 일을 처리해 뒀을지도 모르지.”
“브라우니는 요정이 아니라 야근한 관료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쯧. 아니에요. 설마 이제와서 이런 뻔한 1차원적인 수로 월권을 하겠어요?”
“흥.”
“그런가 싶으면서도 그 사람이라면 그런 유치한 짓을 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요.”
“무슨 소리인지 정말 모르겠군.”
뭐.
뻔한 거짓말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이브가 내 필체를 모를리가 없고, 필체는 내 몸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내 메모를 본 순간, 누가 작업한 것인지 아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인정하기 싫은 건 싫은거다.
이브는 빤히, 내가 분류한 서류와 그 메모를 읽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누가 분류했는지 모르겠지만 ···성향이 딱 느껴지네요.”
“그렇군. 누가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예에. 굉장히 강경한 분류네요. 일체의 월권도 용납하지 않는 방식이에요. 자신만이 옳다라고 확신하는 폭군이 저지를만한 분류법이에요.”
“그렇군. 제프린에 그런 빛나는 이가 있었나. 놀라울 일이다.”
“······쯧. 뭐, 제 분류법과도 크게 어긋나지는 않으니까. 이건 이대로 진행하면 되겠군요.”
이브는 쫑알거리면서도 내가 분류한 그대로 도장을 찍었다.
그냥 도장만 찍는 일이 뭐 얼마나 걸리겠어. 서류작업은 오 분도 안되어 끝났다.
“음···. 서류 작업이 끝난 바람에 시간이 많이 남네요. 잠도 푹 자서 할 일도 없고···.”
그리 말하며 이브는 스윽 일어나서, 찬장을 열고는 그 안에서 다기 세트를 꺼내고는 이내 차를 타기 시작했다.
차는 총 두 잔.
“······말 해 두겠는데요.”
“뭐지.”
“이건 비싼 차에요. 그리고 한 잔은 평소 전임 학생회장이 터트린 사고를 수습한 저를 위한거거든요?”
“그렇군.”
“그리고 남은 한 잔은 ···제가 자고 있는 사이에 충직하게도 제 업무를 도운 브라우니를 위한거에요.”
“그렇군.”
“그런데 그 브라우니는 요정이라서 자고 있을 때 아니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니까. 잠이 안 오는 이상 이 차는 식어버릴 수 밖에 없단 말이죠.”
“······.”
아까 브라우니는 야근에 찌는 관료니 뭐니 하지 않았냐?
“하지만 버리기도 아까우니까···.”
“아까우니까?”
“그쪽이 알아서 처리해요.”
그리 말하며 이브는 찻잔을 내쪽으로 내밀었다.
땅거미가 지는 학생회실. 들려오는 것은 조용한 바람소리.
기묘한 분위기는 멋쩍은 평화를 연주했고, 함께 곁들인 차 맛은 썩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 후.
“그러고보니 오늘은 무슨 일로 온 건가요? 용무가 있어서 찾아온 거 아니에요?”
“음. 황실 전용 숲을 다음 원정지로 삼을 수 있는데, 훼손 될 가능성이 있어서 말이다. 괜찮겠나? 나는 금기구역 출입증이 있으니 그 정도 쯤은 상관 없겠지?”
이브는 웃는 그대로 나한테 중지를 치켜들었다.
“나가 죽어요.”
아니.
일도 도왔는데 이러기 있기냐
아니지. 내가 도운건 아닌데, 아무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