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185)
184. 고구마 에피소드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면, 세상은 총천연색으로 물든다.
높아진 하늘, 코 끝을 스치는 서늘한 바람.
가을 특유의 청량한 향기.
그리고 낙엽.
“음.”
현실과는 정 반대의 사계절 뚜렷한 이 제프린이기에 더더욱 가을은 찬연하게 빛났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내 가슴속은 까맣게 썩어들어갔다.
봄도, 여름도, 그리고 가을까지 이 편의점에는 일반 손님은 한 명도 찾아 온 적이 없다.
솔직히.
이제 솔직히 인정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 편의점의 입지는 완전 쓰레기고, 매점에는 그 누구도 찾아오지 않으며, 나는 원정 나가듯 리어카나 끌면서 노점상이나 해야 할 운명이라는 사실 말이다.
편의점에 물건을 아무리 쌓아놓고 팔려고 해도, 그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이 곳은, 나와 그럭저럭 친한 사람들의 아지트가 되어가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중앙구에 편의점을 구하려면 억 단위의 린이 필요하다.
그럴 돈이 없는건 아니지만, 만약 내가 졸업하고 외부에 가게를 차리게 된다면 고작 2년도 운영 못 한 편의점이라는게 문제다.
어떻게 해야, 이 편의점을 살릴 수 있을까.
그리 생각하며 편의점의 미래를 고민하는 그 때. 오늘도 아르바이트생이 출근했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음. 그런데 그건 뭐지?”
활기차고 건강하게 웃는 밀푀유는 품 안에 종이 봉투 하나를 끌어 안고 있었다.
“아, 고향에서 온 선물이에요. 보내주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선배님도 보실래요?”
“고향? 분명 우유가 특산품이라고 했던가.”
“그거 말고도 야채나 곡류도 취급한답니다? 그런데 올해는 조금 풍년이었나봐요.”
“그렇군.”
네프티와 같은 동부의 깡촌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만은 않은가보다.
아니면 글루코 이상의 인프라가 갖춰져 있다던가. 아니 글루코 미만의 인프라는 존재하지 않겠군.
뭐. 아무튼.
“그래서 뭘 가지고 온 거지?
“후후. 일단 보여드릴게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거랍니다.”
그리 말하며 밀푀유는 테이블 위에 봉지를 내려놨고, 그 안에 들어있는 물건을 볼 수 있었다.
자색의 길쭉한 식품.
“고구마.”
“네.”
그렇군.
완연한 가을이다.
***
고구마.
D/Z SAGA에서는 꽤 괜찮은 회복 아이템이었다.
이게 초반에는 최하급 체력 회복제보다 값도 싼데 효율도 괜찮아서 인벤에 고구마를 넣고서 포션 대신 먹고 다니던 경우도 있으니까 말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두 개만 먹어도 목 막혀 죽겠지만 말이야.
아무튼.
밀푀유는 고구마를 슥 꺼내놓고는 진지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선배님 저기 ···저희 편의점에서 이걸 팔면 어떨까요?”
“음. 저희 편의점?”
“···너, 너무 건방졌나요? 죄송합니다.”
“아니 조금 놀랐을 뿐이다. 그보다 아르바이트생이라고는 하나, 너도 어엿한 이 편의점의 일원이다. 주인 의식을 가져도 괜찮다.”
“네, 네에. 언젠가 반드시 ···진짜 주인이.”
밀푀유는 그리 말하며 고개를 몇 번이고 끄덕였다.
“그래서 이걸 팔자고?”
“네. 저희 영지 특산품 중 하나랍니다. 맛은 보장해요.”
가을의 군고구마.
이건 못참지.
본디 원래 세계에서는 ···조금 부정적인 의미로 쓰였지만, 꼭 그렇지 않다.
고구마와 우유를 같이 먹으면 환상적이다. 내 가을을 책임진 간식이었다.
“어려우실까요···?”
내가 생각에 잠긴 것을 고민이라 생각했는지 밀푀유가 조심스레 물어왔고, 고개를 저어 대답했다.
“아니다. 가을 특산품이라 단가도 싸고, 거기에 ···편의점도 계절 한정 메뉴가 필요하니 말이다. 나쁘지 않은 선이다.”
그래. 계절 한정 메뉴는 못참지.
여름에는 슬러시. 겨울에는 호빵과 붕어빵. 그렇다면 역시 가을은 고구마 아니겠는가.
“그, 그렇다면···.”
“좋다. 고구마를 가지고 장사를 해보도록 하지. 발주서를 적을테니 조금만 기다리도록”
“가, 감사합니다.”
“지나치게 기뻐하는군, 혹시 영지에 재고가 많이 남은건가?”
“후후. 그것도 있긴 한데요. 선배님의 편의점에 사브레 영지의 물건이 들어온다는게 기뻐서요.”
그런가.
얘도 아직 어린아이.
언제나 집 밥과 그리울 나이다.
“선배님의 편의점이 조금씩 사브레의 색으로 채워진다는 느낌이 드니까 정말 좋네요.”
그리 말하며 가벼이 웃는 밀푀유를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고향이 그리운게 틀림없어.
***
고구마 장사를 하기로 했다면, 제일 먼저 고구마를 어떻게 팔 것인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
물론 그 점은 구상해두긴 했다.
편의점 알바를 하다보면 맥반석 군고구마를 팔 때도 있다.
다만 그 기계의 정확한 원리까지는 알아보지 않았으니, 지금 쓰려는 방법은, 거대한 캔을 옆으로 뉘여 리어카 위에 대충 설치해 굽는, 원통형 군고구마 기계다.
“이런 물건을 척척 구상해 내시다니, 역시 선배님이세요···.”
밀푀유는 즉석에서 만들어진 군고구마 기계를 보며 감탄을 거듭했다. 물론 설계도만 그리고 금속을 잘라내는 건 파트라슈가 했다.
“【금속 가공】도 배워보고 싶긴 하군.”
“꽤나 고급 스킬 아닌가요 선배님?”
그런가?
그럴수도 있겠다.
“그나저나 이렇게 굽는다면, 장작이 꽤 많이 들겠네요. 장작 무게도 계산하면···.”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네?”
나는 파트라슈에게 눈짓했고, 파트라슈는 고개를 갸웃하다. 이내 내 진의를 깨닫고 앞발을 들어 스스로를 가리켰다. 개과가 앞발로 어떻게 저런 묘기를 부릴 수 있는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 의문은 잠시 접어두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친환경 연료부담 없는 불 뿜는 개가 있지 않나.”
“···아. 파트라슈. 그런데 파트라슈도 지치지 않을까요?”
“항상 흘러 나오는 마력의 성질만 바꿔도, 이 원통 한 두개는 가볍게 돌릴 것이다. 그렇지 파트라슈?”
파트라슈는 깊게 한숨을 내쉬고는 고정된 원통 아래에 몸을 뉘였고, 그 위로 불길이 이글이글 타오르기 시작했다.
“불 조절이 생명이다. 좀 더 화력을 줄여라.”
“···마스터. 나가 죽어라.”
“무얼. 너에게도 고구마를 주도록 하지.”
“···맛이 없으면 진짜 죽여버릴지도 모르겠군.”
글쎄다.
“자 그럼 시식회를 열어야겠지.”
“네, 네에! 그런데 저희 둘만 하는 건가요?”
밀푀유의 물음에 파트라슈가 앞발로 바닥을 쿵쿵 때렸다. 자기는 왜 빼놓냐는 건가.
“아, 미안 파트라슈. ···저희 셋이서 하는건가요?”
“그렇겠지.”
그리 말하며 몇 번 원통을 꺼내보고 고구마가 적당히 익었을 때 즈음 꺼내들었다.
따끈하게 익은 고구마를 꺼내 후후 불면서 반으로 뚝 꺾어서, 껍질을 살짝 벗기면 황금색 속살이 드러난다.
이 달콤한 황금을 입 안에 넣으면 그 열기가 입 전체에 퍼지면서 혀 끝에 달콤함이 감돈다.
“···와아.”
“호오.”
밀푀유와 파트라슈는 실로 마음에 드는지 한 입 먹고는 눈을 반짝였다.
“거기에 역시 고구마에는 우유지.”
“아···. 저희 고향에서도 자주 먹어요! 정말 좋죠.”
“그런가? 흠. 어디···. 호. 이건 꽤 진미로구만 그래. 흠. 나를 이런 식으로 이용한 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 정도의 보상이면 흐으으음. 음음.”
파트라슈는 자기 앞에 준비된 우유 그릇과 고구마 그릇을 번갈아가면서 우걱우걱 먹기 시작했다.
역시
인터넷에서 슬쩍 본 글에 가을만 되면 고구마를 먹고 살찐 개들이 동물병원을 그렇게 찾는다고 한다.
“선배님은 마음에 들지 않으시나요?”
“음. 장작으로 굽지 않아서 그런가, 맛이 조금 아쉽군.”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역시 고구마는 장작이 필요하니까요.”
“여기서 더 맛있어 질 수 있단 말인가. 허어···. 인간들의 탐욕은 끝이 없구나.”
파트라슈는 컬처 쇼크를 접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나를 올려봤다.
“장작이 없어도, 또 다른 풍미가 있다.”
“그렇다면 ···바로 목재를 구하러 가도록 하지. 주인.”
“아니. 그럴 필요는 없다. 여기에는 이미 장작을 대신할 것이 얼마든지 있지 않나.”
“제프린 내, 내부의 벌목은 금지 아닌가요. 선배님?”
“아니. 그거 말고 바닥을 봐라.”
“아.”
“호오.”
그리 말하며, 나는 주위를 가리켰고 그 곳에는 충분할 정도의 장작을 대신할 것이 쌓여 있었다.
그래.
낙엽이다.
***
낙엽을 잔뜩 모아 불을 붙이고, 그 안에 고구마를 집어 넣는다.
알루미늄 호일로 감싸면 더 좋겠지만, 아무래도 그 정도 물건은 없다.
그렇다고 아예 안에 밀어넣고 무턱대고 굽다보면 익기 전에 타버릴게 뻔했다.
“그러니 파트라슈. 한 번 더 고생해줬으면 좋겠다.”
“무슨 고생 말이지?”
“염동력과 불길을 다룰 줄 아니 고구마를 ‘적절하게’ 익힐 수 있게 컨트롤 해보도록.”
“······미쳤나 주인? 저 불길 속에서 고구마의 내부 상태를 점검하면서 불길이 닿되 닿지 않으며 익되 타지 않게끔 나보고 조절하란 이야기인가?”
“할 수 없나? 삼 백 년 전 초대 황제님과 함께 전장을 거닐었던 홍염랑(紅焰狼)이 할 수 없다는 건가?”
“하, 나를 뭐로 보고 하는 말인가. 하지만 수지타산이···.”
“더 맛있는 고구마를 먹고 싶지 않은건가?”
내 그 말에 파트라슈는 그 자리에 앉아서 불을 지피고 고구마를 밀어넣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호들갑을 떠는 것은 밀푀유였다.
“서, 선배님 파트라슈의 정체가···. 정말인가요? 그 위대하신 로엔그린 건국의 초대 황제님과···.”
“아, 모르고 있었나?”
“파, 파트라슈 님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음.”
파트라슈의 말은 들리지 않아도, 내가 한 말로 그 정체를 알았나보다.
일반 하급 귀족과 파트라슈를 비교하면, 뭐 파트라슈는 거의 개국공신이다. 필티아도 그렇고 말이지.
하지만···
“으음. 좀 더 확실하게 익히기 위해서는 불길의 조절이···. 흠. 이 정도 삼 백 년 전 전장에 비교하면···!”
“그럴 필요는 없다.”
“그, 그렇군요.”
그냥 지금은 고구마가 좋아 미친 살찐 개 한마리가 있을 뿐이다.
***
그 뒤로 우리는 한참동안 어떻게 고구마를 가져다 팔지 그에 따른 연구를 계속했다.
라고 말하면 거창할 뿐이고, 그냥 새로운 장작을 시험해 본다던가.
그도 아니면 쪄보기도 하고, 튀겨 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배가 빵빵해진 파트라슈와 만족한 나. 그리고 밀푀유가 있을 뿐이었다.
완전한 사리사욕 그 자체.
“결과적으로는 파트라슈가 알아서 다 구워줘야겠네요. 보온도 해줘야 하고요.”
“거기에 찬 우유가 같이 곁들여져야겠군. 고구가 두 개와 우유 한 컵 세트로 가격은···.”
“사 천 린? 아니면 오 천 린 정도가 어떨까요?”
“너무 비싸지 않은가?”
“파트라슈의 노동력도 생각해야 하고요. 장작을 구해오는 비용도 그렇고요.”
“그래도 오 천 린은 고려해 봐야 할 부분이 있다.”
“무엇보다 선배님의 노동력도 있으니까요. 가끔 느끼는 거지만, 선배님께서는 스스로의 노동력과 시급을 너무 낮게 책정하는 경향이 있으세요.”
“그런가.”
밀푀유의 말을 듣고 있으면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래. 시급 중요하지.
오늘 또 밀푀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내일부터 장사를 시작해요. 선배님.”
“음?”
“내일 몇 시 까지 찾아봬면 될까요?”
?
그건 왜 물어봐?
***
그리고 다음날 새벽.
공용 학부에 가판대를 설치하고 파트라슈도 설치하고, 낙엽도 담고 장작도 준비했다.
그리고 고구마를 굽기 시작하는데···.
“새벽 공기는 좋네요. 선배님.”
“이 새벽부터 도와도 괜찮겠나?”
밀푀유가 옆에 서 있었다.
“물론이죠. 언제든 제게 부탁해주세요.”
“···그런가.”
그리 말하며 밀푀유는 가판대 앞에 드나드는 손님들을 보며 확실하게 계절 상품 어필을 하고 있었다.
“···수, 수석? 밀푀유 양? 왜 여기에···.”
“라르앙 양. 안녕하세요. 후후. ‘저와 선배님’의 가판대에 제가 있는게 그리 놀랄 일은 아니죠?”
“아, ···네, 네!”
“그래요. 라르앙 양. 오늘은 날씨도 좀 추우니 이 따듯한 고구마와 우유 세트는 어떨까요?”
“어, 음···.”
“여기 시식 코너도 있답니다. 한 번 드셔보세요.”
“아, 아하···.”
“이 고구마는 ‘제 고향인 사브레 영지’에서 직접 ‘울프람 선배님의 편의점’에 납품해서 ‘저와 선배님의 가판대’ 에서 팔고 있답니다?”
“······아, 네. 그럼 한 세트 주세요.”
“네. 고마워요.”
밀푀유는 항상 미소를 잊지 않고서 장사를 시작했다.
“자. ‘울프람 선배님’께서 ‘사브레 영지’에 ‘직접 발주한’ 특산품이에요.”
“어머 맛있네요···.”
“그렇죠? ‘서로 궁합이 잘 맞기’ 때문이랍니다?”
“···아, 아하···.”
생각보다 엄청 도움이 된다.
그건 그렇고.
엄청 사브레 영지를 강조하네.
“그럼 선배님. 등교 하러 가볼게요. 뒷정리를 다 못 도와드려서 죄송해요.”
“아니다. 고생이 많았다.”
“후후. 다 저 자신을 위한 건데요.”
그리 말하며 밀푀유는 만면의 미소로 돌아섰다.
“다들 약혼녀. 수호기사. 비수. 이런 소리를 듣는데···. 저만 뒤쳐져 있을 수 없죠. 가장 뒤에서 가장 멀리 보는 역전의 주자가 되겠어요.”
마지막 말은 들리지 않았지만,
뭐, 곧게 펴진 채 흔들림 없는 걸음. 실로 결의가 느껴지는 등이었다.
“좋은 아르바이트생을 뒀군. 그리 생각하지 않나 파트라슈? 나는 좋은 친구들을 뒀어.”
“나는 주인이 몇 토막 나던 별 상관 없다만 ···뭐. 그런 부분도 하르크를 닮긴 했군.”
응?
갑자기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