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186)
185. 20 vs 22
사람과 사람의 관계란 어찌 이리도 어려운가.
이브 폰 로엔그린은 최근 그것을 실감하고 있었다.
상명하복의 관계는 실로 익숙했다.
자신은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갖춰 그 위에 합리적인 명령을 내리고, 자신의 수하는 그 명령을 수행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스스로 다부진 삶을 살아야만 한다. 라고 맹세하고 그 길을 걸었으나 ···안타깝게도 이브 폰 로엔그린에게 ‘대등한’ 사람은 없었다.
손 윗 남매. 손 아랫 남매.
대부분이 옥좌라는 이 대륙의 정점을 놓고 경쟁하는 관계였다.
물론 스스로 옥좌를 포기한 황손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들을 더 가까이 하기 어려웠다.
그들 자신도 옥좌를 포기하고 이브 세력에 붙는다는 소문이 날 까봐 그녀를 멀리 한 것도 있었고, 애당초 이브는 야심 없는 이를 크게 써먹지 않는다는 점도 한 몫 했다.
그렇기 때문에 울프람 폰 로엔그린은 실로 특이한 케이스였다.
스스로 옥좌를 포기한 상태에서, 야심을 버리지 않고 이브 폰 로엔그린의 수하도, 그녀를 장악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저 스스로의 길을 정하고, 묵묵히 걸어나갈 뿐.
고작 체력2.
체력 12의 자신도 때때로 체력의 부침을 느끼지만 그는 그런 것 따위 코웃음 치며 걸어간다.
그의 앞길에는 스테이터스 또한 그저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숫자로만 판단했던 이브 폰 로엔그린은 ···실로 인정하기 싫지만 울프람 폰 로엔그린의 행복을 어느 정도, 아니 아주 쬐금, 아니 그보다 더 쬐금 인정하고 있었다.
허나 지금 이브 폰 로엔그린이 만나는 사람은, 만날 때 마다 서로의 뒤통수를 어떻게든 치려고 노력하며 우애 대신 중지를 치켜올리는 자신의 혈통 윗줄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어머.”
“···안녕하세요.”
정말.
실로 정말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가 문제였다.
“······.”
“······.”
아일라 트라이스타.
이브 폰 로엔그린이 어떻게 대해야 할 지 모르는 사람중에서는, 분명 최고봉을 꼽을 사람이 편의점 앞에 앉아 있었다.
***
아일라 트라이스타.
이브 폰 로엔그린에게 있어서 그녀는 미지의 존재였다.
애당초 여정의 동반자로 쓴 가문이 시엘라 가문인 시점에서, 트라이스타와는 불편한 관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하물며 각 가문의 장녀는 서로 죽이겠답시고 싸우는 관계.
중앙의 우아하고 고귀한 금융계의 대부 시엘라 가문과 서부의 개척의 화신 트라이스타는 결코 서로 융화 될 수 없다.
심지어 아일라는 울프람의 약혼자 아닌가.
아무리 상호 이용 관계라는, 정치적 약속이 깔려있고 황족의 약혼이라는게 황족측이 원한다면 밥먹듯이 깨진다고 해도 이 묘한 관계가 수습되는 건 아니다.
물론 울프람과 함께 원정을 나간 적도 있고, 같이 바다를 본 적도 있고, ···뭐 아예 면식이 없는건 아닌데, 그건 결국 중간에 울프람을 두고 대화를 나눈 것 아닌가.
그러고보니 실피아가 한 말이 떠오른다. 중심이 되는 친구가 있다면 모두 하하호호 이야기 할 수 있지만, 둘만 남으면 진짜 어색한 사람이 있다고 ···말이다.
자신과는 관계 없는 일일 줄 알았지만, 확실히. 울프람이 없을 때의 아일라와는 이야기 하기까다롭다.
편의점 밖 테이블에 앉아서 느긋하게 독서를 하고 있는 아일라에게 이브는 과감하게 물음을 던졌다.
“음. 울프람은···.”
“지금 일이 있어서 잠깐 나갔어요. 저기 자물쇠 보이죠?”
“아···. 그렇군요.”
편의점 정문을 보니, 쇠사슬이 매어져있고 자물쇠가 차여져 있었다.
저 멍청이는 진짜 제프린 학생들이 저거 하나 못 딸거라 생각하고 잠근걸까?
그래. 울프람은 자리를 비웠다는 건가.
“밀푀유는···.”
“삐약이는 오늘부터 중간고사 강화기간이라는 이유로 출근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아···.”
거기까지 말하고 아일라는 읽던 책에 다시 집중했다.
음.
이대로 돌아가기도 애매한데, 이브는 잠시 이 뒤에 어ᄍᅠᆯ지 고민하고, 그 사이에 아일라가 읽던 책을 덮고는 자신을 바라봤다.
“앉는게 어때요?”
“네. 그러죠.”
그렇게. 울프람 없는 기묘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
아일라 트라이스타는 옆에 앉아있는 이브 폰 로엔그린을 바라봤다.
언젠가 진짜 ‘가족’ 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이나, 그렇게 치면 이브 폰 로엔그린을 위시한 모든 황족이 가족의 카테고리에 들어간다.
더군다나 아일라는 1학기 초. 이브 폰 로엔그린이 울프람의 권좌를 찬탈했다 생각했고, 묘한 적개심도 가지고 있었다.
허나 그건 결과적으로 아일라의 시야가 좁았던 것 뿐이다.
울프람은 애당초 황위는 그저 지나가는 길 정도로 보고 있을 것이다.
역대 황제는 그 숫자가 열을 넘지만, 결국 위대한 하르크 폰 로엔그린의 핏줄이라는 이유만으로 황제가 된 이들도 적지 않다.
어디 하르크 폰 로엔그린 초대 황제님은 처음부터 위대했는가, 그 분께서 중간계의 독립을 위해 처음 일어섰을 때. 그 곁에는 미래의 황후님 단 한 분 밖에 없었다.
허나 대의를 위해 걸으며 스스로를 위대하게 만드셨다.
울프람이 걸으려는 길은 대륙 전도를 잇는 어찌 보면 그 이상으로 다난한 길.
오히려 자신의 시야가 얼마나 좁았는지 깨달을 뿐이었다.
뭐 그렇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아일라는 이브를 적대할 이유를 잃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묘한 껄끄러움이 사라지는 건 또 아니었다.
하지만 울프람과 그럭저럭 친하게 지내는 것 같기도 하고,
음.
하지만 바꾸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
아일라는 그리 생각하며 말을 걸었다.
“저기.”
“저기.”
말이 겹친다.
······.
“먼저 말하세요.”
“아뇨. 아일라 양께서 먼저.”
그렇게 잠시간의 침묵이 흐르고 결국 참다 못해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아일라였다.
“이브 폰 로엔그린 학생회장?”
“네. 아일라 트라이스타 선배님.”
“···사실 저희 둘이서 대화 한 일은 거의 없었잖아요? 관계로 치면 그리 먼 관계도 아닌데요.”
“그렇네요.”
“솔직히 지금까지 이것저것 감정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서로의 입장. 위치를 생각하면 말이죠.”
“네.”
이브도 멍청이는 아니다. 특히 정치적 관점이 뛰어나다.
즉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왜 접근했는지 다 이해 했을 것이다.
자신은 울프람 폰 로엔그린의 약혼녀이며 우방이고, 이브 폰 로엔그린은 ···울프람과 평행 선상을 걷는다고 해도 그를 딱히 적대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음···. 그렇다고 해도 할 이야기가 애매하긴 하네요.”
“···아.”
아일라가 고개를 갸웃하자, 이브 쪽에서 살짝 움찔했다.
할 이야기가 있다는 것인가?
“뭔가 할 말씀이라도 있나요?”
“저, 저기 외람된 이야기인데 혹시 스피카는 잘 지내고 있나요?”
“어머?”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럼요. 최근에도 집에서 편지를 자주 쓰고 있답니다. 이브 폰 로엔그린 학생회장님께도 보내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네 정말 착한 아이라서요.”
“스피카에게 관심을 가져주셔서 고마워요.”
“스피카는 재능도 뛰어나고, 자신이 가려는 길에 망설임이 없어요. 내년에는 학생회에 강하게 추천 할 생각이에요. 그 아이도 학생회에서 배울 것이 많을거라 생각해요.”
자신의 여동생을 ···그러니까, 적대인지 아군인지 알 수 없는 파벌의 수장이 헤드헌팅 하겠다는 말을 들은거지 지금?
“외람되지만 그건 스피카가 정해야 할 일 같아요. 저도 충분히 대화를 나눠볼게요.”
“네?”
“제프린에 들어오자마자 파벌을 정하는 건, 든든한 길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위태로운 길을 걸을 수도 있잖아요?”
아일라의 말에 이브의 미간이 꿈틀했다.
“그건, 학생회가 위험하다는 이야기인가요?”
“설마요. 이상한 오해 말아요. 전 학생회를 믿어요. 다만 스피카는 제 동생. 제 입장이 ···‘현 학생회장에게 자리를 찬탈당한 전 학생회장의 약혼자’ 라는 점에서 스피카에게 쏟아질 시선이 두렵다는 거죠.”
“저 자신에 대한 불신이라고 생각해요. 저 이브 폰 로엔그린은 현 학생회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고, 그 어떤 괴롭힘도 스피카에게 닿지 못할 거에요. 스스로의 가치관으로 세상 모든걸 재단해 여동생의 미래까지 막아 서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렇군요.”
“···예. 그렇죠.”
서로 한 대씩 주고 받았다. 이거지?
재밌네.
즐거워요. 아주.
“애당초 울프람의 자리를 찬탈하지 않고, 그의 집권이 이어졌다면, 스피카를 안심하고 학생회에 보냈겠지만요.”
“그 당시 울프람의 집권. 그가 저지른 수 많은 악행을 잊지 마세요. 오죽하면 황실에서 공문으로 울프람의 파면을 명했겠어요. 아니면 폐하의 칙령에 의문을 품으시는 건가요? 제국의 귀족이?”
“어머. 설마요. 황실은 언제나 지고하고 위대하죠. 하지만 그 휘하는 모두 무결한가요? 보고하는 사람의 포장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 보고서인데 말이죠.”
서로 빤히 마주봤다.
‘울프람이 학생회장이면 스피카를 보내줬을건데?’ ‘걔가 회장이면 아카데미 말아먹었다. 황실 하는 일에 토다는 거냐?’ ‘네가 가라쳐서 부풀려 보고한 거 아니냐’ 의 대화가 오가고 두 사람은 그저 마주보며 웃었다.
물론 마력치 20의 아일라가 이브를 이길 수는 없지만, 소울 체인지로 인하여 평상시 마력이 깎여있는 이브와 만전 상태의 아일라. 심지어 지금의 ‘거리’는 아일라에게 압도적으로 유리.
승부를 낸다면 아마 확률은 반반!
허나 제국의 지배자 된 이들. 여기서 성광창이나 흑수정을 꺼내는 것은 3류다.
어디까지나 대화로.
우아하게.
선공은 아일라였다.
“울프람의 행보에 오해의 여지가 있음은 이해해요. 하지만 이제 와서 대부분의 오해는 풀리지 않았나요?”
“······.”
“그는 외부를 개척하고, 세계를 개혁하려고 했죠. 결과적으로 보면 울프람이 어떤 길을 걸으려 했는지, 이제 일목요연하잖아요?”
“허나 그 과정에서 괴로워 한 이들이 얼마나 있는지 알아요?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 시켜주지 않아요.”
“그 때문에 수혜를 본 사람이 누군지 아시죠? 그 깊고 깊은 자애를 무시할 셈인가요?”
“······.”
이브는 입을 다물었다.
수혜자의 이름은 이브 폰 로엔그린이었기 때문이다.
울프람이 악행을 저질렀기에, 이브가 정의를 외칠 수 있었고, 울프람이 양쪽 학부의 보물을 빼앗아 학생회의 힘을 강화시켰기 때문에 현 학생회가 빠르게 자리잡을 수 있었다.
그게 전부 계산된 것이라면, 무시할 수 없다.
그렇게 이번 설전. 아니 고귀한 담화는 이브의 패배로 끝났다.
하지만 아일라는 여기서 완전히 숨통을 끊어놓을 생각은 없었다.
언젠가 ···언젠가 진짜 가족이 된다면, 적어도 이브랑 사이가 나쁠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 너무 심했네요. 미안해요.”
“······아뇨.”
“하지만 울프람을 조금이나마 이해해 줘요. 그는 어릴 때 부터, 철 없는 꿈을 입에 담을 때 부터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요. 아뇨. 지금은 오히려 그 꿈을 이루려 하고 있죠.”
“···울프람 폰 로엔그린의 꿈.”
“예. 그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요.”
이브 역시 그의 꿈이 뭔지 알고 있다.
그가 무능 황자라고 불린 것도, 황족 내에서 쓰레기 취급 받은 것도, 그가 어린 시절에 내건 기치가 너무나 허황되었기 때문이다.
어린 울프람이 황실 주최 연회때 자신만만하게 항상 입에 담았던 그 말.
“···세계정복.”
“푸후. ···역시 아시네요.”
대체 이미 정복한 황족이 어떤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이야기인가.
아무것도 모를 때는, 그것이 멋지다 생각한 적도 있다. 그를 따랐던 적도 있다.
숫기 없고 소심한 어린 시절의 자신이 그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던 적도 있다.
그가 주는 복숭아 맛 사탕 하나와 그의 뻔뻔한 말에 낚여서···!
거기까지 생각하고 이브는 고개를 저었다. 그 생각만 하면 수치스러워서 성광창을 자기에게 꽂아버리고 싶으니까.
허나.
곰곰히 생각하면 그 울프람은 지금도 바뀌지 않았다.
“울프람은 실로 세계를 정복하려 하고 있어요. 미지의 땅을 개척하고, 세상 모든것을 이어 나가는 꿈을 꾸고 있죠. 그의 반역은 이제 시작이에요.”
“······.”
이브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웃을 수 없었다.
아일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은은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자 그럼. 일어서죠.”
“네···네?”
“주인이 왔으니 가게 문을 열겠죠?”
아일라가 손짓하자 저 멀리서 울프람이 파트라슈가 끄는 리어카를 타고 오고 있었다.
울프람은 테이블 앞에 앉아있는 둘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브. 아일라. 왔었군. 실례했다. 조금 늦었군.”
“아뇨. 괜찮아요.”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브는 그리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는데, 울프람이 잡아 세웠다.
“뭐야. 이브. 가는건가?”
“······뭐에요. 할 말 있어요?”
“아니. 새로운 사탕을 몇 개 만들었는데, 맛에 대한 평가를 듣고싶어서 말이다.”
······
뭐야 사탕 주면 따라 갈 거 같아?
하. 누구 때문에 다이어트를 해야 했는데. 건방지기 짝이 없지!
이브는 그리 생각하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
거절해야 한다. 그리 말하며 고개를 저으려는 순간···.
“복숭아 맛 사탕을 만들었는데.”
“···복숭아 맛?”
“그래. 네가 좋아하는 맛 아니었나. 어릴 때 부터 좋아했던 그런 맛 아니었나?”
“그걸 기억하고 있었어요?”
“당연한 일이다.”
“······흥. ···그 뭐야. 아주 잠깐은 낼 수 있어요.”
사탕에 진 건 아니다.
그저, 음.
복숭아 맛은 ···그러니까.
아무튼 사탕에 진 건 아니다!
이브는 그리 생각하고, 울프람의 뒤를 따라 쫄래쫄래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