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188)
187. 그런건 없어요 회장님
어린 시절.
내가 봤던 만화나 소설 속 주인공들은 굉장히 바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야, 낮에는 학교를 다니다가 적들이 쳐들어오면 날아가서 싸우기 바빴다는 이야기다.
뭐였더라, 꽤 오래 된 로봇 만화에서는, 그 동선도 아까웠는지 학교가 열리고, 운동장 바닥을 뜯어내고 수영장 물 비우면서 그 안에 로봇 숨겨놓고 그거 타고 날아가더라. 무시무시한 고효율 주의 세상 아닌가.
뭐, 아무튼 그런 아동 노동력 착취에 가까운 히어로의 이야기를 하려는게 아니다.
그 당시의 나는 ···어딘가 니힐하고 모던한 사춘기를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무슨 생각을 했냐면.
‘얘네는 대체 내신을 언제 챙기는거지?’ 였다.
작중에서 단 한 번도 지구를 구한 것이 내신 반영이 된다는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에, 얘네는 친구들이 이 무한 경쟁 사회에서 바람직하고 번듯한 직장을 가지기 위해 학원이니 자격증이니 노력할 때 로봇 타고 전장으로 날아가서 ‘세계를 어둠으로 물들이는 나쁜 네놈들을 단죄하러 왔다!’ 라는 소리나 외친다는 이야기다.
‘수행평가 할 시간은 있나 그거?’
하지만, 그 누구도 내 질문에 대답해 주지 않았다.
녀석들. 그러다가 큰일난다 진짜. 선생님이랑 면담했을 때 ‘지구 지켜준 건 고마운데 우리 철이는 왜 스스로를 못 구했을까?’ 같은 소리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 앞가림은 스스로 해야지.
아무튼 그 어린 시절 만화를 보고 들었던 의문과 그에 대한 해답은, 내 삶의 명확한 지침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나 사랑하고 좋아하고 즐겨했고 썩은 물 레벨 까지 해왔던 이 D/Z SAGA에 들어 왔음에도 나는 스스로를 우선했다.
우선 대전제가 ‘목숨을 걸지 않는 것’인 점을 보면 확실하다.
아니 솔직히 부활 마법이라도 있었으면 목숨 걸고 꼴아박아 봤는데, 그런게 없는 시점에서 어떻게 목숨걸고 게임해요.
응? 체력 2 들고서 온갖 보스를 때려잡고 원정 나간 건 말이 되냐고?
에이 고작 그런걸로 ‘목숨을 걸었다.’ 라고 말하긴 좀 그렇지. 그건 그냥 놀이다.
적어도 백스탭 – 캔슬 – 패링 – 캔슬로 ‘달리는 것 보다 빠르게 뒷걸음질 쳐서 패링으로 무적상태를 상시 유지하며 마계의 문을 맨몸 단검 한자루로 역주행하는’ 놀이는 안하지 않는가. 아깝다 체력 15만 됐어도 해볼만 한데. 그게 재밌는게 백스텝 할때 탓! 소리가 나고 단검 패링할때 쉬잇! 소리가 나서 흔히 ‘따쉬런’ 이라고 불리는 기교인데 이게 참 재밌단말이지.
아무튼.
지금의 나는 최대한 안정적으로, 깰 수 있는 맵을 중심으로, 나를 최우선적으로 그 다음은 파티원을 위해.
나 자신의 영달과 편의점의 성장을 위해. 그리고 평온함을 위해 오늘도 살아 갈 것이다.
그러니 ···파티원들의 중간고사 세팅은 얼추 끝났으니, 이제 나 자신을 세팅할 차례다.
“가자. 파트라슈.”
“꼭 가야 하는가?”
“음. 가기 싫은 이유가 있는가?”
“나는 불꽃을 근간으로 하기 때문에 별로 내키지 않는군.”
“그런가. 그렇다면 바로 앞까지만 호위하도록.”
“······알겠다.”
나 자신을 강화하기 위해 포영의 설원을 향한다.
【얼음정수의 망토】
【체력(0/1)】
중간고사가 끝날 때 즈음 실피아의 파티 버프도 끝난다.
그 전에 이 빌어쳐먹을 망토와 끝장을 보자.
***
사실 살짝 오류가 있어서, 이 빌어먹을 망토에서 스탯이 안 올랐지만, 분명 밑밥 자체는 충분히 갖춰졌었다.
극소량이지만 체력 영향도 받았다니까? 진짜 강화 좀 박으면 체력 오른다니까? D/Z SAGA 플탐 걸수있다 진짜.
사실 체력 4는 3이랑 사실 큰 차이는 없다. 요는 백스탭 캔슬로 죽느냐 사느냐 승부처라서 3은 살지만 2는 백스탭 하자마자 죽잖아.
뭐 아무튼. 곧 실피아가 빠지고 중간고사가 끝나고 다음 파티원이 누가 되던간에 버프를 돌리면 그에 맞는 원정지로 떠날 생각이다.
그러니까, 지금은 포영의 설원에 가서 어떻게 해서든 의뢰를 해결하고 망토에 체옵을 달아야한다. 이 말이다.
포영의 설원 몬스터는 나를 공격하지 않고, 거기에 라이아 다이아 프로스트는 내게 우호적이니까 혼자 휘적휘적 가도 별 문제는 없다.
이게 세력작이고 우호작이지. 얼마나 좋냐.
그러니까 파트라슈도 사실 별 필요 없다. 가서 어떤 퀘스트가 있는지 확인하고 수주하고 해결하면 케이크를 손으로 집어먹듯 쉽게 체력이 올라버리는걸?
그리 생각하며 제프린을 나서려는 그 때.
“······울프람?”
“······.”
또.
또 그놈의 이브 폰 로엔그린이 내 앞에 나타났다.
사라져. 제발 내 눈 앞에서 사라져줘. 왜 매일 내 앞에 나타나서 사사건건 개입하는거지?
오늘도 아무렇지 않게 나한테 트집이나 잡으면서 중지나 치켜올릴거잖아? 우리 서로 갈길 가면서 씨유네버에버어게인하면 안 될까?
“또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는거에요? 중간고사인 거 잊었어요?”
“일이 있어서 말이다. 잠시 원정을 나가고 있다.”
나는 일이 있으니 너는 너의 일을 보러 가렴. 우리 서로 만나도 모른척 몰라도 못 본 척하자.
“아 그러세요.”
“그렇다.”
이브는 눈이 퀭한 상태로 이쪽을 보다가 한숨을 내쉬고는 그대로 터덜터덜 걸어가기 시작했다.
상태가 안 좋은 듯 하고, 나에게 신경 쓸 여력도 없나보다.
개꿀.
어서 가도록.
그러다 우뚝. 하고 멈춰서서는 이브는 무언가 떠올랐는지 나를 돌아봤다.
“잠깐만요. 곧 밖인데 호위는요?”
“파트라슈가 중간까지 동행할 것이다.”
“···이 앞이 어딘지 알고서 그래요?”
“포영의 설원 아닌가?”
“그걸 아는데, 호위 하나 없이 간다고요!?”
“한 두번 가는것도 아닌데, 무얼 그리 걱정하지.”
“······으. 으으. 다른 곳이면 모를까 포영의 설원은 진짜 금역인데···. 진짜 미쳤어요?”
아. 얘는 아직 모르겠구나.
내가 라이아 다이아 프로스트랑 무슨 계약을 했는지.
“내 신경은 쓰지 말고 가던 길 가도록. 내 앞가림은 알아서 할 수 있다. 피곤해 보이는데 신경 쓸 여력이나 있나?”
“누구 때문인데요···!”
“그게 왜 나 때문이지?”
“잊었어요!? 며칠 전에 실피아가 찾아와서는 ‘죄송합니다. 주군 ···저는 더 이상 순수한 종복이 아닙니다.’ 하면서 울었다고요!”
“그런가?”
“예! 당신한테 간다는 보고를 하고 돌아와서 금빛 늑대 문양이 새겨진 새로운 갑주를 입고 울었다고요! 제가 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 거 같아요. 이 쓰레기!”
“······.”
아니 억울하다.
그게 내 탓이 되나? 선택한 건 실피아잖아.
물론 이브 진영에서 실피아는 필수 불가결한 존재기 때문에 심각한 전력이탈이긴 하다.
거기에 ···갑옷에 새겨진 앰블램은 뭐 보통 소속을 나타내지.
그렇군. 이브 입장에서는 가슴 앓이를 할만한 일이긴 하다.
“진짜 물어봐도 울먹이면서 죄송하다고만 하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요!? 나중에 이야기를 제대로 들었기에 망정이지···!”
거기까지 분노를 쏟아낸 이브는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음.
그렇구나.
“그렇군. 그 부분은 실례했다. 사과하도록 하지.”
내 말에 이브는 경악하며 나를 바라봤다.
뭐야. 바퀴벌레가 사람 말을 해도 그거보단 안 놀라겠다.
“당신이 ···사과를? 저한테? 미쳤어요? 울프람 어디 아파요? 힘들면 가서 쉬는게 어때요?”
“······쯧.”
이 녀석 진짜···.
“실피아는 엄연히 네 진영의 사람. 잠시간의 공투로 공동 소속을 가졌지만, 갑옷의 앰블럼은 독립 소속을 뜻하기도 하니 말이다. ‘오해의 소지가 있을만한 행위로 판단할 수 있는 실수를 저질렀으나 결코 고의는 아니었으며 당사자와 원만하게 합의하여 끝내겠다.’ 라는 사과를 받아주겠는가?”
“지난 대 처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재상이 했던 변명이랑 비슷하게 들리는데 제 착각인가요?”
“착각이다.”
“······후. 알겠어요. 아무튼 좋은 갑주인 건 맞고, 당신도 홍보용으로만 쓴다고 못을 박았으니 넘어가드리죠. ···하지만 가뜩이나 검은깃발이 준동하느니 마느니 하고 시끄러운데, 더 피곤하게 만들지 마세요.”
“주의하도록 하마.”
“······그러면 됐어요.”
그리 말하고 이브는 자리에서 물러나 갈 길을 가려다가 다시 나를 돌아봤다.
“잠깐. 원정지가 어디라고 했었죠?”
“벌써 잊었나? 포영의 설원이다.”
“···아뇨. 잠깐. 파트라슈는 중간부터 호위를 안 한다고 했죠?”
“그렇다.”
“······그럼 혼자 가는거에요?”
“몇 번을 말해야 알아 듣겠나. 그렇다고 하지 않았나.”
“바로 방금 전에 더 피곤하게 만들지 말라고 했잖아요!?”
아 진짜.
시끄럽네 이 녀석.
“그럼 따라오면 될 일 아닌가.”
“···윽.”
***
결국 이브와 함께 포영의 설원에 진입했고, 파트라슈와는 그 즈음에서 찢어지기로 했다.
“나는 이 쯤 가도록 하지. 내가 없어도 괜찮겠나?”
“무얼. 너는 여기가 나에게 이제 어떤 곳인지 알지 않나.”
“그야 그렇지.”
얼음정수의 망토도 있겠다. 심지어 포영의 설원 몬스터들은 나를 공격하지 않는다.
그냥 일반맵이지 뭐. 다들 우호적인 걸 생각하면 거주구보다 안전하다.
문제는 이브인데, 파티라고 하면 딱히 공격할 일도 없다.
우호도가 친애까지 오르면 그 일행한테도 영향력이 퍼지니까.
지금은 그것보다.
“파트라슈 가기전에 부탁 하나만 하지.”
“뭐지?”
“저 멍청이 녀석에게 화염의 가호좀 내려주도록.”
“···알겠다.”
지금 문제는 이브가 그냥 교복에 망토만 입고 왔다는 거고, 학생회장의 망토가 어느정도 보온 기능은 있다고 해도 포영의 설원의 추위를 막아줄정도는 아니다.
성광창은 힐은 돼도 속성저항이 뛰어난 건 아니니까 또 추운건 추운거지.
아무튼 이브의 이빨 부딪치는 소리가 165bmp의 유로비트보다 빠른건 들어주기 괴롭다.
“···아. 따듯해. 고마워요. 파트라슈.”
“감사는 주인에게 하도록.”
“···고마워요. 파트라슈.”
“거 참. ···뭐 알아서 해라. 그럼 나는 가도록 하지.”
그리 말하며 파트라슈는 돌아섰다.
***
그 뒤로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포영의 설원을 걸었다.
주변 얼음 정령이나 눈 괴물. 설녀. 빙인. 아이스 드레이크까지 우리를 꿈뻑꿈뻑 바라봤지만, 역시나 공격할 의사는 전혀 없었다.
“다들 공격을 안 해오네요. ···어라?”
주위에 【성광창:연사:자동요격:멸살:필중】까지 장전해 놓은 이브는 앞을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다가 이쪽을 슥 바라보는 눈토끼와 눈을 마주치고는 나를 툭툭 건드렸다.
하지 마라. 아프다.
“어떻게 된 거에요. 울프람? ···포영의 설원은 그 아케아 화산이랑 같이 이 제프린의 양대 지옥이라 불리는데? 마치 포근한 설원···. 어라?”
“그건 안에 들어가서 설명하도록 하지.”
나는 이브를 무시한 채 다음 ‘포영’을 지나 들어갔고 직후 우리 앞에는 얼음으로 된 궁전이 나타났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그저 걷기만 했는데 나타나는 궁전에 이브는 입을 떡 벌렸지만, 나는 딱히 놀라진 않았다.
그냥 게임에서 보던거 그대로구나, 싶은 수준?
처음 봤을때 엄청 예쁘다 장난 아니다. 그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 세력 우호작을 한참 하다보니까 그냥 퀘스트 수주하는 길드 사무소같다.
“라이아 다이아 프로스트. 너의 대등한 협력자가 찾아왔다. 문을 열어다오.”
“들어오세요.”
바람과 얼음이 부딪치는 소리가 하나의 목소리가 된다.
끔찍하고 두렵기보단 아름답고 고고한 목소리. 틀림없이 라이아의 목소리다.
“들어가지.”
“···어, 어? 잠깐만요. 울프람!”
성문이 열리고, 한 걸음 내딛는 순간 우리 둘은 여왕의 알현실에 도착했다.
이것도 게임이랑 똑같네. 실로 마음이 편하군.
“울프람 폰 로엔그린. 우리의 대등한 벗. 또한 같은 꿈을 꾸고 같은 미래를 보는 자. 천년 빙정 세계를 함께 만들어갈 맹약자.”
【아 울프! 오래간만!】
라이아와 릴리아가 함께 있는 이 알현실.
대체 왜 중급 얼음정령이랑 여왕이 같은 곳에 있는지 의문을 던지기도 했지만, 뭐 원래 NPC 배치할때는 대충 같은 곳에 밀어 넣는 것 아니겠나.
“어머, 그쪽 분은···.”
“나와 같은 혈통을 잇는 자다. 내 손 아랫 존재지.”
“···그러니까 인간들의 말로는 후예? 인가요?”
“같은 세대에서 손 아랫 존재라는 의미다.”
“아···. 그렇군요. 동생이군요.”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분위기를 못 읽은 이브는, 뒤에서 검지로 나를 쿡쿡 찔렀다.
하지 말라고 진짜 아프다고.
“울프람, 울프람···. 설명 좀 해줘요. 뭐가 어떻게 된 거에요?”
“뭐 별거 아니다. 나와 라이아 다이아 프로스트는 같은 뜻으로 뭉친 동맹이다. 라는 것이지. 이 포영의 설원에서 나를 적대할 사람은 없다.”
“예에. 맞아요. 천년 빙정 왕국을 만들기 위해 서로 협력하고 있죠. 이 세상 어디에서나 얼음의 노래가 울려 퍼질 그 날 까지 말이죠.”
“음.”
“······그, 그렇군요. 아무튼 동맹이라는 이야기죠?”
“네. 울프람의 동생인 당신도 손님 자격이 충분하답니다.”
“와···.”
이브는 눈을 살짝 빛내며 나를 바라봤다.
부담스럽게 또 왜이래.
“할 말이 있다면 확실히 말로만 해라.”
“아뇨. 당신은 매일 분쟁을 불러일으키고 사고만 치는 로엔그린 최악의 존재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동맹도 만들고 ···나름 그 평화와 화합을 신경쓰긴 하는군요?”
음?
무슨 소리야 그게.
“무슨 허튼 소리지?”
“예? 이렇게 동맹 세력이 생겼다는 건 싸울 일이 없다는거 아닌가요?”
“후후. 동맹의 동생분. 그건 아니랍니다.”
“······무슨 소리죠?”
“우리는 힘을 합쳐 아케아 협곡에 사는 불쟁이 계집의 목을 얼려 이 성 꼭대기에 매달 예정이에요.”
“아케아 협곡에 사는 ···그, 그러니까
이브는 그 자리에서 주저 앉았다.
“두 세력이 전쟁 직전이잖아 왜 내 깃수에 대체··· 삼백 년간 조용했는데···. 울프람 이 쓰레기···.”
그리 말하며 나를 노려본다.
아니.
이것도 내 잘못이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