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2)
001. 울프람 인생 마지막 불꽃 (1)
옛날 이야기를 해 보자.
어린 시절 꿈은 게임 속 캐릭터였다.
생각해봐라 노력이 보답 받는 최고의 직종 아닌가.
몬스터를 잡으면 잡은만큼 착실하게 성장한다.
템을 사서 장비를 맞추고, 스킬을 찍고, 파티를 짜고 레이드를 클리어한다.
노력하면 보상받고 스스로 성장하여 자수성가하는 멋진 인생 아닌가.
그 뒤로 조금 나이 먹었을 때.
아마 중학생 때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때는 주인공이 아니어도 상관 없다고 생각했다.
영웅은 너무 꿈이 크지.
그런데 막말로 주인공 친구만 되어도 주인공 코인 달달하게 빨면서 같이 크면 노후 걱정도 없지 않은가.
성인이 되고 나니 악역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사망 플래그 다 피하면서 존버타면 살아남는다. 인생그래프 우상향 쌉가능이죠.
요컨데 게임 속으로만 들어가면 나는 내 팔자를 필 자신이 있었다.
이 얼마나 개꿀이야.
못참지 바로 떡상코인 풀매수 박아버리지.
어떤 등장인물이든 상관 없었다. 막말로 1막 보스라도 상관 없다.
나름 테크만 잘 타면 뭐든 할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와 그리고 꿈이 이루어졌어요.
편의점 사장이 되었다고 생각해서 기뻐하다 차에 치이고,
그 결과.
나는 아무래도 만 시간 플레이 한 게임에 들어 온 것 같다.
이제 인생은 내 것이다. 편의점보다 조금 큰 꿈을 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대형마트 주임정도? 와 시발 인생역전이네. 이게 가능하다고?
“피고 울프람 폰 로엔그린. 학생회장 직위를 비롯. 아카데미 내의 모든 특권을 박탈한다.”
그런데.
아니었다.
게임 속에서도, 운명은 나를 철저하게 기만했다.
삼류 악역조차 될 수 없는 프롤로그에서 퇴장하는 엑스트라.
본편에 등장하지 못하는 이벤트 캐릭터.
사망까지 5분 남은 버러지.
이건 좀 너무 가지 않았냐?
***
한 밤 중의 불꺼진 학생회장실.
십만 아카데미의 정점을 칭하는 옥좌에 앉은 내 앞에 한 명의 당차게 서 있는 한 명의 소녀.
그녀를 호위하듯 세 명의 인물이 바로 뒤에 물러서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반대로 내 주위는 아무도 없고, 나는 그저 옥좌에 앉아 그녀를 바라볼 뿐.
표표한 시선. 소녀는 그것이 못내 마음에 안 들었는지 황제의 날인이 찍힌 칙서를 내밀며 호통쳤다.
“피고 울프람 폰 로엔그린. 학생회장 직위를 비롯. 아카데미 내의 모든 특권을 박탈한다.”
증오 분노 멸시가 섞였음에도 그녀의 단아하고 아름다운 얼굴은 망가지지 않았다.
나는 저 얼굴과 목소리를 알고 있고 그렇기에 내심 깊게 감탄했다.
내가 인생걸고 했던, 플레이타임 1만시간을 찍었던 D/Z SAGA.
편의점 사장 형이 와 그 망겜을 아직도 하네 라고 말했던 그 게임.
그 중 ‘황실 루트’의 메인 히로인 ‘이브 폰 로엔그린’이 눈 앞에 있었으니까.
“···이브.”
“그 이름으로 날 부르지 마라! 울프람!!”
“울프람? 나를 말하는 건가?”
“그럼 누구겠느냐. 이 황실의 수치!”
몇 천 번을 함께 사선을 넘어온 동료의 생동감.
주인공 켈터스를 중심으로 황녀 이브. 그 외에 수 많은 동료들.
허나 이 세상은, 내가 즐겨 해온 게임임과 동시에, 끔찍할 정도의 괴리감을 느끼게 했다.
나는 켈터스가 아니라 울프람 폰 로엔그린이고
삼류 악당이다.
어느정도 삼류냐면 D/Z SAGA라는 게임의 본편에 등장하지도 못한 쓰레기 캐릭터가 되었다.
작중 설정으로는 무려 ‘만악의 근원’.
게임의 무대.
십만의 학생이 모인 학원성 제프린의 학생회장을 역임했으나, 치가 떨릴 정도의 무능함과 졸렬한 속내. 혈통주의자이며 권위주의자. 동시에 그 어떤 재능도 없는 버러지였던 울프람.
평민을 무시하고, 귀족을 깔보았으며, 교수를 매수해 성적을 조작하고, 다른학생들의 시험 점수를 깎았으며, 들킬 위험에 처하면 꼭두각시를 내세워 퇴학시키고 무마했다.
횡령? 그건 국룰이고요.
황제의 아들이라는 권위 하나만 믿고 펼쳐진 폭정.
그 결과 학원을 양분하는 마법부와 기사부는 서로를 증오하고 아카데미의 분위기는 완전히 죽어버렸다.
그리고 사치를 부렸다. 쓰지도 못하는 명검을 수집했고, 마법 의복을 사모았으며, 배울 수 없는 마도서에 집착했다.
사기를 당해도 어떻게 그렇게 당했는지. 9티어 마법서를 100만린에 산 적도있다.
돈을 쓰다 쓰다 못해 결국 황실의 비보까지 손을 댄 나는 황제의 지엄한 분노를 그대로 몸으로 받아야 했고, 학생회장 자리에서 잘린다.
그리고 원작 설정 대로라면 이 뒤의 대사는 뻔하다.
‘흥. 나를 내쫓을 수는 없을 거다. 내 발로 나갈 테니까.’
‘너는 짊어질 수 없을 것이다. 이 아카데미의 어둠을···.’
‘후회하지 말거라. 나는 반드시 돌아온다!’
여기까지가 프롤로그.
그리고 울프람은 5 분 뒤에 아주 처참한 결말을 맞이한다.
‘너, 너 때문에 너 때문에에에에에!! 믿으면 된다면서, 그러, 그러면 졸업 시켜 준다면서어어어!! 죽어! 죽어! 죽어버려!!’
-커···헉. ···너 같은 버러지···가.
죽는다.
측근으로 삼았다가 꼬리자르기 용으로 퇴학당한 녀석에게 칼 맞고 죽는다.
그런데 신기하게 약속은 지킨다.
우리의 울프람. 5막에서 다시 등장한다.
좀비로.
그어어 꾸어어 하면서 학생회실 침략전 에피소드에 등장.
황실 루트에서는 특히 이브 앞에 등장해서···.
‘케, 켈터스 나, 나는 못해.’
‘이브! 어서 성검을 휘둘러! 저건 네 오라버니가 아냐!’
‘켈터스!’
‘이브!!’
-그어어어어
‘울프람. 아니 울프람 오라버니···. 편히 쉬세요. 안녕히.’
-···고, 맙. 다.
성검에 모가지를 뎅겅.
주인공과 이브의 유대를 강화시켜주는 좀비 뚜쟁이!
그리고 거기서 일대기 진짜 끝.
여동생 혼처는 찾아줬네 대 단 하 다 울프람!
유언도 고맙다. 이지랄. 웃음이 절로 나오네. 고맙다는 야 이 씨발롬아!
그리고 나는 이제야 내 현실이 뭔지, 어떤 상황인지 정확하게 이해했다.
진짜? 이 다음 장면에 죽어?
여기서 끝이라고? 아카데미에서 쫓겨나고 칼푹찍 끝?
“울프람 폰 로엔그린. 마지막 자비다. 아카데미를 나가라 그리고 조용히 살아가라.”
“······나를 내쫓겠다?”
“그래. 다시 한 번 말해주지. 황명에 의거, 너의 학생회장 권한과 특권은 이 시간부로 전부 박탈된다.”
“하.”
나는 웃었다. 아니 웃는 척 했다. 이렇게 폼이라도 잡아둬야 생각 할 시간을 벌 수 있다.
어쩌지.
진짜 망한 거 같은데.
방법이 없나?
“박탈···. 박탈이라.”
“그래.”
“박탈이로군.”
“그렇다.”
“······.”
아니.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줄래?
아직 우리는 대화로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너무 대답을 재촉하지 말자. 응?
“어서 썩 꺼져라 울프람!”
“······.”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서 원작대로 ‘너는 짊어질 수 없을 것이다. 이 아카데미의 어둠을···.’이라는 대사를 기깔나게 치고 여길 빠져나가면 그대로 칼빵이다.
그러지 않으려면···. 내가 살아남으려면.
아. 아아. 잠깐.
이브 녀석 분명히···.
박탈. 이라고 하지 않았나?
“어서 아카데미를 나가라고 하지 않았나. 울프람!”
“아니. 그럴 수 없다. 나는 나가지 않는다.”
박탈이면 또 이야기가 다르지요.
“······뭐?”
“황명을 다시 읽어봐라. 이브 폰 로엔그린. 그 어디에 나의 퇴학이 적혀 있지?”
“············어? 하, 하지만 박탈한다고 적혀 있다!”
“그래. 울프람 폰 로엔그린의 학생회장 직위를 비롯, 모든 ‘특권’을 ‘박탈’한다. 라고 적혀있지.”
“어, 어어···. 그렇다면!”
“차기 학생회장. 제프린 아카데미 규정 1조 8항을 기억하나?”
“···어? 잠깐 1조 8항. 8,항?”
역시 이브. 성실한 찐따 장학생.
그 길고 긴 쓰레기 같은 조항을 다 외우고 있었구나.
물론 나도 다 외우고 있단다. 나도 찐따처럼 이 게임을 오래 했거든!
하이 찐따친구! 반가워!
자.
제프린 아카데미 1조 8항.
[제프린의 모든 학생은 입학한 그 순간부터 아카데미의 학생임을 기본 권리로 한다.] [아카데미 학생은 학생회장을 제외하고 전원 교칙 아래에서 대등하다.]“즉 아카데미의 학생은 특권이 아니지. 재학생의 권리이며 의무다.”
“너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나는 이제 일반 학생으로 돌아가겠다는 거다. 모든 특권? 반납하지. 대신. 너도 나의 권리와 의무를 침해할 수 없다.”
“···뭐, 라고?”
“즉 나는 신경끄고 다음 학생회나 준비하라는 것이다.”
“할 수 있을리가 없다!”
이번에 소리 친 것은 이브 옆의 한 여학생이다.
“무슨 의미지”
“모든 특권을 빼앗는다는 것은, 지금까지 네가 누린 부와 권리를 다 빼앗겠다는 것이다! 글래스트헤임 기숙사의 특실도, 매 달 지급되던 팔천만 실링의 돈도! 학생회 명의의 계좌마저! 네놈이 누리던 학점의 특별채점 은혜까지! 네놈이 아카데미에서 살아 남을리가 없다! 그게 얼마나 고된 길인지 알지도 모르면서 쉽게 입을 놀리지 마라!”
그제야 나는 놈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아마 놈의 이름이 맞다. 실피아. 이브의 수호기사며, 다음 학생회의 서기.
원작 주인공인 켈터스의 좋은 선배기도 했고 평민이다.
“황족인 내가 그걸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하나보군.”
“···당연하다!”
“하면 어쩔건데.”
“어?”
“···하면 어쩔거냐고.”
“그, 그게···.”
“자신있냐?”
“······아니 있지는 않은데.”
“그런데 왜 말을 했지.”
“아니 그게···.”
“사과해라. 나는 할 수 있다. 타인의 역량을 네 기준으로 함부로 판단하지 마라.”
“죄송합···” “사과하지 마 실피아!”
이브가 지글거리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실피아는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화내지 마라. 이브 폰 로엔그린. 황족 모독죄를 덮어씌우지도 않았잖나. 모르나? 제프린의 모든 학생은 교칙 앞에서 대등하지.”
“···울프람. 이 뱀의 혓바닥 같은 남자!”
내가 킥킥 웃자 이브가 버럭 화를 냈다. 얘 놀리는 건 이쯤 하자.
“그래. 축하한다. 이브. 네 반역은 성공했다. 이제부터 저 자리는 네 거다.”
“······!”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이브 앞에 섰다.
플레이타임 만 시간. 그 사이에 이 아이의 루트를 탄 것은 내 기억으로 사 백번이 조금 넘나?
매 회차마다 얼굴을 봐 와서 그런지 나름 정감도 간다.
하지만 이제는 가까이 하면 안 된다.
아니, 가까이 할 생각도 없다.
자. 너희는 너희 자유롭게 살아라. 스토리도 좀 깨고, 엔딩도 좀 보고, 세계도 겸사겸사 지키고, 청춘사업도 좀 하고. 알았지?
“나는, 나의 자유를 찾아서 살아가겠다.”
“···무슨 소리냐.”
“이해할 수 없다면,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
아 근데 생각해보니까 울프람 이새끼 말 한마디마다 가오 한 번 더럽게 잡네.
아마 황실, 혹은 울프람 캐릭터의 종특인 듯 싶다. 아무튼.
“이제야. 나는 자유로워 질 수 있다.”
“···울프람 폰 로엔그린. 이 학원 내에서 네 자유는 없다.”
“아니 있다. 나는 그 방법을 알지.”
“······.”
“저 의자는 무겁다. 학생회장.”
그리 말하며, 나는 학생회장의 의자에서 일어나 이브의 등 뒤를 스쳐지나갔다.
그녀의 폭력이 나를 덮치기 전에 그대로 학생회실을 빠져나갔다.
등 뒤에서 무언가가 포효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어쩔 수 없다.
본편 시작하기도 전에 사라져야 하는데 눈치없는 새끼라 미안하다 진짜.
그런데 나도 살아야지.
어쩌겠냐.
너는 열심히 이 학교를 빛내주렴.
나는 지금부터 어떻게 살 거냐면.
“못 다한 편의점 사장이나 해볼까.”
대충. 편하게. 나 살고 싶은 대로.
못 다 이룬 꿈이나 꾸면서 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