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206)
205. Fiat lux
그 자리에 있는 모두는 서로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고작 반 년을 알고 지냈을 뿐이지만, 이들에게는 우정이 있고 신뢰가 있고 무엇보다 사선(死線)을 함께 넘었던 인연이 있다.
특히 검은깃발과의 일전이나 함께 포영의 설원을 갔다왔던 일. 바닷가에서 하루를 보냈던 일 등. 평소 수업과 시험에만 몰두하는 제프린 학생들과는 그 궤를 달리하는 추억을 잔뜩 쌓았다.
그렇기에, 알 수 있다.
과자를 받아서 하나 집어먹으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 아일라 트라이스타를 제외하고, 모두의 눈에 깃든 감정은 당혹. 혼란. 그리고 ···조금의 불안.
울프람이 만드는 드레스의 주인이 누가 될 것인가.
그게 나였으면 좋겠다.
하지만 내가 아니라면 어쩌지.
그렇다면 ···이 안에서 내가 아닌 누가 저 드레스를 입을까.
울프람 폰 로엔그린의 마음이 ···누구를 향했는지 그 누구도 모른다.
그는 철저하게 자기 마음을 숨기니까.
차라리, 모두가 좋다거나, 모두 싫다거나 하면 어떤 방식으로라도 이해했겠지만, 그는 한 번도 마음을 드러낸 적이 없다.
그렇기에, 문득 불안해 지는 것이다.
‘울프람은 누구에게나 그렇게 다정한 거면 어쩌지’
‘나도 결국 누군가 중 한 사람이면 어쩌지’
더군다나 울프람 폰 로엔그린이 보고 있는 시야는 너무나 넓다.
이 대륙 전체를 통일하겠다. 라는 그의 야심에 연심이라는 그런 사사로운 감정이 끼어들 여지가 있을까.
지금은 모두 그 꿈에 함께 동참하고 있지만 그렇다 해도, 가끔은 자신을 돌아봐 주기를, 그것을 넘어서 ···자신만을 특별하게 봐 주기를 꿈꾸고 있다.
알고 있다.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다.
저 드레스에 사심은 없다. 오히려 대의를 위한 방어구일 확률이 높다.
허나.
울프람 폰 로엔그린이 직접 만든 첫 드레스를 처음으로 입을 수 있는 것은 단 한 명 뿐.
그 사실이 모두의 가슴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한 사람 이군요.”
“음. 한 사람이구나.”
“······네. 한사람이에요.”
의자에 몸을 기대고 하늘을 흐르는 구름을 보며 ‘와 저거 드래곤처럼 생겼다!’ 라고 외치는 아일라를 빼고는 모두가 진지했다.
“···여기 전원이 다들 ···진짜? 진심으로?”
다른 의미로 이브 폰 로엔그린 또한, 이 자리의 팽팽한 공기에 숨을 들이켰다.
***
실로 오래간만에 풀리지 않는 고민으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음.”
고민의 내용은 별 대단할게 없었다.
그냥 단 하나. 심플한 고민.
이 드레스 ···누구 주지?
일단 거의 귀속 방어구라는 느낌이 왔다.
장비는 제작시 대성공 멘트가 몇 번 뜨느냐에 따라서 이게 고급 옵션이 붙는지 안 붙는지 정해진다.
그리고 지금은 대성공 멘트만 네 번 째. 앞으로 한 번만 더 뜨면 경험상 확정적으로 전속 장비가 된다.
그리고
【최선을 다한 한 땀이 기적을 불러 일으킵니다!】
【제작 대성공!】
“···확정적이로군.”
이 드레스는 【귀속】으로 제작된다.
본디. 귀속 방어구라고 함은 첫째로 원정지가 정해져야 하고, 그 원정지가 개꿀이거나 반드시 루팅해야 하는 아이템이 있어야 하며, 거기에 내 파티원이 입기만 해도 1인분 이상을 할 수 있을 것. 이 전제된다.
예를들어 레지나 루트 4막에서 포영의설원을 열었다고 치자. 그러면 이브쪽 인물은 거의 포섭이 불가능하다. 호감도가 훅 날아간다. 반대로 이졸데 루트를 타면 반대쪽 히로인의 일행 호감도가 훅 내려간다.
마법학부생인 레지나의 특성상 기사학부랑 친해지기도 힘들고, 학생회 이권도 쓰기 힘들다.
레지나의 능력은 파티원 영입 가격과 상점의 물건 가격이 싸진다. 라는 점이기 때문에 초반에 탱커가 무척이나 부실해지고, 결국 초반 방어 귀속템은 대부분 켈터스가 입는다.
하지만 이브 하위호환 레지나는 물리 능력이 거의 없는 퓨어 메이지기 때문에 결국 포영의 설원은 냉기 저항 방어구를 구해서 걔를 입혀야 한다.
즉, 어떤 히로인 분기점인지, 어떤 맵을 돌 것인지, 거기에 앞으로 스토리 진행 상황까지 고려해서 장비를 분배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울프람 폰 로엔그린의 4막은, 스토리가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만 있을 뿐. 어떤 이야기인지, 어떤 원정지인지 나와있지 않다. 즉 앞으로의 스토리 공략법이 전무하다.
나름대로 가슴 뛰는 이야기지만, 동시에 함부로 줬다간 크게 꼬일수도 있는 셈이다. 방어구는 보통 탱커를 쥐여주지만, 이건 중갑이나 경갑도 아니고 드레스다보니 더욱 선택이 곤란하다.
어중간하게 크면 망하는 게임. D/Z SAGA.
우리는 더욱 까다로운 선택을 강요받고, 신중하게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결국 드레스의 속성 따라 달라지겠군.”
물, 마법방어, 혹은 속성저항, 물공버프, 마공버프, 혹은 민첩이나 그 외 스테이터스 증가···. 어떤 것이 붙을지 알 수가 없다.
거기에 ‘나의 4막’이 어떤 맵을 중심으로 열릴지 알 수가 없으니 원정지를 추측하는 것 또한 무의미하다.
결국 만들어지는대로 옵션 보고 대충 맞는 애한테 준 다음 원정지 로또가 맞아 떨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이 답안이겠다만···.
“그래서야 고인물의 이름이 울지 않는가.”
고인물은 1%의 확률을 100%의 확정으로 만드는 존재.
다행히 방법이 아예 없지는 않다.
굉장히 애매한 방법이긴 한데···. 어쩔 수 없는 것도 있는 법.
“원정 준비를 해야겠군.”
***
그리고 다음날.
홀로 원정지를 향하던 도중.
덜미를 붙잡혔다.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사실 전혀 궁금하지도 않거든요? 그런데 대체 무슨 생각이에요?”
“언어 중추가 고장났나. 이브 폰 로엔그린.”
“사람이 하는 말에 우선 대답하시죠? 지금 어딜 가겠다고요? 원저엉? 그것도 홀로?!”
“파트라슈가 있다. 이번에는 파트라슈를 대동하면 금방 갈 수 있는 곳이다. 무얼 한 두번도 아니지 않나.”
“아, 예. 그러시겠죠. 당신은 좀 타의 모범이 되어보는건 어때요? 명색이 황족인데 시험 기간을 앞에 두고 매일 원정이니 제작이니 진짜···. 당신이 공부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거든요?!”
“학년이 다르니 볼 수 없는것이 당연하다.”
“그렇긴 한데!”
이브는 대체 뭐가 그렇게 화가 났는지 발을 동동 구르며 나를 노려봤다.
“대체 왜 그러는 것이지? 원정을 하루 이틀 가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 문제가 있나?”
“후우. 그래요. 당신도 아예 남은 아니니까 말해두겠는데···. 검은 깃발의 준동 조짐이 있어요. 모두가 시험을 앞둔 지금이 ···아마도 가장 움직이기 좋은 상황이겠죠.”
“음.”
아마 그건 5막 이벤트일거다.
북동쪽에 있는 망자의 평원에서 좀비들을 콜 마리오네트로 준동시켜서 제프린을 침략하는···. 엄청 거대한 이벤트다.
이 이벤트를 기준으로 루트가 확 진행되는 히로인도 있었지.
그 히로인이 누구냐고?
“······뭘 그렇게 봐요?”
“아니다.”
그야. 울프람 폰 로엔그린의 머리를 성광창으로 쪼갠 후. ‘저는 앞으로 나아가겠어요. 안녕히. 오라버니.’ 같은 말을 하는 이 녀석 되시겠다···만.
그러고보니 얘가 울프람을 오라버니라고 칭하는 이벤트는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지.
뭐 아무튼, 그 이후로 정신적으로 성숙해지긴 하는데···. 나도 안 죽고 켈터스도 없으니 얘는 언제쯤 어른이 될까.
잠깐. 어른?
어른이 되세요?
흠.
그렇군. 이브 폰 로엔그린의 지금 이 작태는 희망의 집의 꼬맹이들을 떠올리게 하는군.
“너도 원정에 참여하고 싶어서 그리 말하는 건가?”
“···뭐라고요?”
“그렇게 원정지가 궁금하다면 따라오면 되는 것 아닌가?”
“전혀! 아니거든요!? 오해도 진짜 정도껏 해야지!”
그리 말하며 이브는 천천히 움직이는 내 수레 옆을 쫑알쫑알 거리면서 계속 따라왔다.
아니 관심이 없으면 대체 왜 따라오는건데.
퓨어 메이지 답게 걸으면서 화내면서 말을 한다는 것은 꽤나 많은 체력을 소모했고, 이브는 잠시 후 어깨로 숨을 쉬면서도 나를 노려봤다.
그 원정지에 이브.
아니 원래 이브 루트에서 열리는 원정지니까 ···가도 상관은 없겠군.
“이브 폰 로엔그린.”
“뭐, 뭐에요···. 후우. 진짜 길가다가 뒤통수 맞아서 누군가의 고향에 강제로 연행될지도 모르니까 기껏 따라와줬더니···.”
“그렇게 지치면 타고 가겠나?”
“······.”
내가 리어카 맞은편 자리를 턱으로 가리키자, 이브는 새빨개진 얼굴로 볼을 부풀리면서도 리어카에 올라탔다.
뭐야.
결국 따라오잖아.
***
파트라슈를 전위에 세우고 내가 중위. 이브가 후위.
나는 아직 천보중 백 걸음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원정은 생각보다 걸음이 널널하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북동부보다는 살짝 북부에 가까운, 북북동의 땅이었다.
망자의 평원과 포영의 설원 사이에 있다고 해야 할까.
추위도 물씬 풍기고 스산하지만 ···그렇기에 숨겨져 있는 장소.
“여긴 대체···.”
“그러니까, 나 혼자 와도 별 문제가 없는 땅이라고 하지 않았나.”
유적은 낡아빠진 성당 안쪽에 있었다.
차가운 숨결이 제멋대로 열을 흐트러트린 나무 의자 사이를 오가고, 깨진 스테인드 글라스는 북풍을 막아주지 못했다.
“성당.”
“그래. 성당이지.”
이 세계는 ‘종교’를 용납하지 않는다.
숭앙의 이원화를 막기 위해 종교를 탄압했다. 라고 하기에는 ···좀 속사정이 있거든 이게.
초대 황제 하르크 폰 로엔그린은 마계를 토벌했듯, 천계 역시 쳐들어갔다.
마족이 인간의 마음 속 어둠을 먹고 산다면, 천계는 인간의 신앙을 먹고 산다.
마족에게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신성을 주는 조건으로 그들은 보다 많은 신앙을 요구했다.
그러면 뭐, 마족에게서 지켜주긴 하니까 좋은 거 아닌가요. 라고 말하기엔 천계 놈들이 쳐놓은 깽판이 좀 있다.
요컨데 ···악이 창궐하기에 더더욱 강한 빛을 갈망하는 법 아니겠나.
천계는 어느정도 마계의 준동을 인정해버렸다. 절망해야 구원을 찾는거 아니냐고. 라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그새끼가 그새끼라는 의미고, 세상에 순수하게 좋은 새끼는 없다는 것을 깨달은 하르크 폰 로엔그린은 천계와 마계에 쳐들어가 마왕과 대천사장을 줘패버렸다.
그런데 대천사장네 보스가 누구다? 신이다.
하르크가 신이랑 만났다거나 맞짱을 요구했다는 이야기나 설정은 없지만, 이래저래 신이란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떨떠름한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낡은 성당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 그리고 제가 ···이런 곳에 들어올지도 몰랐고요.”
뭐. 천계랑 마계를 줘팬 놈의 후손이 성당에 발을 들여놓는게 얼마나 애매하겠어.
“하지만 여긴 용도가 다르다. 엄연히 이게 본모습이다.”
“네? ···중앙으로 이전하면서 낡은게 아니고요?”
“아니다. 여긴 옛 학생회장이 은밀하게 쓰던 창고중 하나다.”
그래. 그 이름하여 【잊혀진 로엔그린의 저장고Ⅰ】
“아니 대체···. 여기가 창고라고요?”
“이 세계에서는 신의 품 속이 돈을 숨기기 가장 좋은 법 아니겠나. 누구도 종교에 관심이 없으니 말이다.”
“···그건, 그렇지만요. 그럼 왜 폐기했지? 비자금을 만들던 창고까지 전부 목록에 있을텐데?”
“학생회장의 심복이나 회장 본인이 성당에 자주 발을 들여놓는다는게 말이나 된다고 보나? 결국 숨기기는 좋았지만, 그만큼 빼오기도 어려웠다는 이야기다.”
“······그건 또 그렇네요.”
“아무튼, 이 안에 대단한 물건은 없을거다. 나도 정보를 얻은 것 뿐이다.”
뭐 사실, 1번 저장고는 별거 없긴 하다.
들어가서 본 것은 이미 시대의 흐름을 못이겨 풍화되어버린 마법서나 검.
“···대체 몇 년 전에 폐기된거죠?”
“지금이 126기니까. 어림잡아 15기때는 폐기되었을거다.”
“최소 이 백 년 전이네요. 이건 ···보물고라기보다는 유적지로 보존해도 되겠는걸요?”
“내가 찾아낸거고, 내 원정이 끝난 이후에는 마음대로 해라.”
“······.”
“학생이 원정을 해냈다면, 원정지의 보상은 학생의 것. 교칙에 있지 않나?”
“···있죠. 누구도 원정을 안 나가지만요.”
이브가 주변을 둘러보는 동안, 나는 보물고 중앙을 향했다.
역시 있었네.
제단 위에 보석 하나.
“···크리스탈?”
“【프리즘 스톤】이다. 단일 속성의 광물이 아니라, 사용자가 속성을 최대 다섯 개 까지 지정할 수 있다. 그에 따라 이 보석은 다중 속성을 가지게 되고, 이 보석으로 연마한 장비 또한 그 특징이 연계된다.”
“···아.”
이걸로 만든 검을 장난삼아 ‘짭졸데 칼’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졸데 놀이를 해보기에 또 적합해서 말이야.
하지만 방어구에 달면 생각보다 재밌는 장난감이고, 꽤 괜찮은 장난감이기도 하다.
이걸 드레스에 장착한다면 드레스의 속성은 여러개를 동시에 챙길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옵션이 부가로 붙던, 누가 입던 간에 시너지가 완전히 박살나지는 않을거다.
자.
우선.
“아일라의 광석. 네프티와 밀푀유의 무속성. 그리고 루디카의 어둠. 필티아의 번개.”
보석의 내면이 자리를 나눠 각각 찬연한 보라빛. 은은한 흰색. 고귀한 검은색. 날뛰는 청색으로 발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하나가 남았는데. 실피아는 레귤러 멤버가 아니고 스피카는 아일라랑 속성을 공유한다. 생각해보니 대부분 속성이 겹치네. 속성 조합은 깔끔하니 다행이다.
내가 속성을 고민하는 사이, 이브가 빤히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빛 속성을 넣어도 괜찮다만?”
“······누, 누가 부탁이라도 했어요?”
“그럼 한 속성은 무시하도록 할까.”
“···윽.”
거 참.
이걸로 드레스 만든다고 이야기 안 했었나?
네가 입을려고? 뭐 너한테 맞는 옵션이 뜨면 그것도 괜찮긴 하겠다.
거기에 빛속성이라. 나쁘지 않은 선택이기도 하다.
속성으로 봤을 때 모든 속성 저항력과 치유력이 올라가니까. 조합을 안 타도 괜찮다.
“그럼 마지막은 빛으로 하지.”
“···자, 잠깐만요. 그게 무슨 의미에요? 저는 필요 없다고 했잖아요.”
“빛이 있으라.”
그러자 빛이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