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209)
208. Exchange
체력 2는 생각보다 …역 체감이 장난이 아니다.
물론, 물론 말이다.
이 역 체감 덕분에 느낀 게 있다.
나는 살아있다. 가슴이 뛴다.
살아있다는 실감에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은 몸이 나를 웃게 만든다.
이 D/Z SAGA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죽음’이라는 공포와 마주해보는 것이 대체 언제였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무선 마우스를 사서 바닥에 내려놓고 발로 쥔 채 고정시켜놓은 폰으로 찍던 그 시절.
즉 발컨으로 에르헬을 잡았던 기억에 덧씌워졌다.
이 세계는, 나를 두려움에 떨지 못하게 한다. 그렇기에, 나는 살아있다는 실감을 느낀 적이 없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스릴이 오히려 살아가고 있다는 실감을 내게 안겨주는 것이다.
“그러다 진짜 죽는다 주인.”
“…….”
파트라슈는 체력 2가 되어 오히려 희열 띈 미소를 짓는 나를 보며, 앞발로 머리를 짚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늑대 발관절이 이마 짚게 되어있냐 싶지만 저 녀석은 애당초 정령이니까 그럴 수 있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다.
살아있다는 실감이 있을지언정, 그것에 매몰되면 끝이다.
게임에서 한 번 또라이 짓을 하고 그대로 좋은 추억이었어, ‘젊을 때는 그럴 수 있지’로 끝나면 모를까 거기에 맛들리는 순간 그 뒤를 이어 더 큰 또라이 짓을 하게 되는 법.
그렇게 무한한 또라이짓을 반복하다 보면 태어나는 것은 이 세상 다시 없을 또라이다.
그럼 그 놈은 뭐가 되겠냐. 잘 해봐야 카페 운영자 같은 거나 하겠지.
내 이야기 아니다.
뭐 아무튼.
또라이 짓은 적당히 해야 한다. 맛들리면 더 큰 광기가 찾아올 뿐이다.
이 세계에 들어오고 나서 내가 했던 모든 정상적인 플레이가 그것을 대변한다.
지금까지 나 혼자였다면, 수틀린 김에 아주 조금씩 광기에 물들어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파티원 들이 있으니까 그럴 수는 없다.
이 안정된 정상인의 삶.
결코 포기할 수 없다.
그리고 안정적인 삶을 위해서는 보다 많은 파티 버프가 필요합니다. 아시겠어요?
“파티를 다시 짜야겠군.”
뭐, 내가 많은 거 바라는 것도 아니고. 이전이랑 똑같이 가자고.
나. 아일라. 네프티. 루디카. 밀푀유. 그리고 실피아.
버프도 쏠쏠하니 괜찮더만.
***
우선 다른 애들은 조우 확률이 꽤 높은 관계로, 서브 멤버인 실피아 에버그린 그로브를 영입하기 위해 제일 먼저 학생회실을 찾았다.
다른 애들을 파티에 넣어서 추가 버프를 얻어보고 싶긴 한데, 당장 버프가 필요한 원정을 갈것도 아니니, 한 턴 정도는 실피아를 파티에 넣고 써도 될 거 같다.
그렇게 생각하며 실피아를 찾아갔다.
“…또 뭐에요. 진짜.”
“너한테는 용무가 없다. 실피아 에버그린 그로브는 있는가?”
“실피아는 왜요?”
“내 동료로 영입시키면서 생겼던 이로운 효과의 지속시간이 끝났다.”
“아하. 그것참 합리적이긴 한 이유네요. 당신이 당당하게 제 로열 가드를 영입할 권리를 주장하는 것 만 빼면 말이죠.”
“본인 합의하에 이루어진 일이다.”
“네. 저도 주군이라고는 하나, 웬만하면 그 아이의 자유의지를 존중해 주고 싶어요.”
“그렇다면 실피아 에버그린 그로브가 올 때 까지….”
“하지만 실피아는 지금 제프린에 없어요.”
“…뭐라?”
“곧 있을 이졸데 크루엘과의 싸움을 대비해 가문에서 보검을 가지고 오겠다면서, 잠시 집으로 돌아갔어요.”
“…….”
“애당초 4학년 2학기 중간고사는 성적에 반영이 안 되니까, 굳이 당신의 일행일 필요도 없죠? 안 됐네요. 울프람.”
그리 말하며 이브는 오른손으로 입을 가리고는 풉. 하고 웃었다. 가늘게 뜬 그 눈이 무척이나 얄밉다.
하지만 그렇다고 화를 낼 수는 없는 노릇. 거기에 논리상 틀린 말도 없다.
실피아 에버그린 그로브는 임시직. 거기에 그녀가 초기 목적으로 우리 파티에 들어왔던 이유…. 즉 이졸데 크루얼과의 싸움은 가을 대축제때 이벤트 매치가 될 거니까, 넉넉 잡아도 한 달 이상 남았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곤란하군.”
“뭐가 말이에요?”
“내 동료는 네 명이 고정이고, 한 자리가 유동적으로 바뀐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
“예. 뭐.”
“내 동료 …귀찮군. 앞으로 파티라고 하겠다. 내 파티는 마지막 한 자리에 누가 자리하느냐에 따라 그 특색이 변한다.”
“그런데요?”
“실피아 에버그린 그로브가 합류하게 된다면 전체에 체력 상승이 붙는다.”
“꽤 중요하네요?”
그래서 실피아가 필요했다만….
“그럼 실피아가 없을 때는 체력 상승효과는 없는 거군요.”
“그렇다. 기본적으로는 집중력 상승. 체력 미량 상승. 체력 회복 상승. 그 외에 이것저것 잡다한 부가 효과가 있지만 말이다. …음.”
“왜요?”
나는 눈앞에 있는 이 녀석을 빤히 바라봤다.
마법사에 빛.
파티로 치면 나하고 속성이 같고, 아일라하고 직업군이 같다.
……음.
“이브 폰 로엔그린.”
“안 해요.”
“사람 이야기는 끝까지 듣고 나서 대답해도 늦지 않다.”
“안 한다니까요.”
“내 편의점에 새로운 사탕이 있다.”
“그런 걸로 넘어갈 거 같아요?”
“그리고 …그 사탕을 녹여서 차갑게 만든 음료가 있다. 무척이나 시원하고 달콤하며 목 넘김이 좋지.”
“…….”
내 말에 이브는 주먹을 꽉 쥐고는 자리에서 휙 일어섰다. 시뻘개진 얼굴.
이대로 거절인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른 애를 찾아봐야지.
“이야기만….”
“뭐라?”
“이야기만 들어볼게요.”
…….
얘는 진짜 모르는 아저씨가 사탕 주면 그대로 따라가는 거 아닐까.
***
이브 폰 로엔그린.
이 약아 빠진 정의의 학생회장님께서는 편의점에서 사탕과 음료를 받고 세상 행복하게 먹고 마신 뒤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가려고 했다.
나는 아직 아무 말도 안 꺼냈는데 실로 건방지기 그지없다.
“그럼 저는 가볼게요.”
“음. 그러도록.”
물론 나도 잡지 않았다.
이브가 파티에 들어오면 어떤 버프가 들어올지, 그리고 그게 생각보다 큰 이득으로 다가올 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딱히 잡을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우리 둘이 서로를 노려보고 중지를 치켜 들려던 그 순간.
“울프람! 갑작스럽게 소집을 걸었다고 들었어요!”
“선배님! 저 왔습니다!”
“울프람! 적이 나타난 건가! 루디카도 왔다!”
“아, 아하하…. 선배님. 말씀하신 대로 전원 모셔 왔어요.”
내 파티의 레귤러 4인이 편의점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정말, 언제 봐도 떠들썩한 녀석들이다.
파티 시너지고 뭐고 간에, 이 녀석들의 대화 시너지가 제일 높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우선 앉아라. 너희들과도 무관한 이야기가 아니니 말이다.”
“……저는 가 보겠다고 했으니 그만….”
“어머, 이브. 바쁘지 않으면 조금 있다가 가요.”
“네헤?”
아일라의 제안에 이브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이브 님! 조금 쉬다 가세요!”
“이브 폰 로엔그린. 바쁜 일이 없다면 엄청 매운 요리 실험은 어떤가?”
“…후후. 이브 선배님. 이번에 새로 만든 과자는 어떠세요?”
파티 시너지는 없어도, 대화 시너지. 그리고 시끌벅적 시너지는 있는 녀석들의 제안에, 이브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를 제외한 네 명 모두 어딘가 나사가 두어 개 쯤 풀려서 매일 방실방실 웃고다니기 때문에, 저 미소에 걸리면 솔직히 벗어나기 힘들다.
“……좋아요. 아주 잠깐만 있다가 가죠.”
뭐. 이렇게 되겠지.
***
아무튼 이브도 들을 준비가 되어 있기에, 나는 천천히 지금 상황에 대해 이야기 했다.
파티가 해체되었다는 것. 그로 인해 버프가 다 풀렸다는 것.
그리고 재결성을 해야 한다는 것.
“아 그래서 루디카의 집중력이 어제오늘 상간에 아주 조금 더뎌졌던 것인가.”
“그렇다. 나도 한 달이라는 시간제한은 알고 있었으나….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게임에서는 파티 버프가 끝나기도 전에 새로 짜고, 부수고 하는 경우가 엄청나게 많았으니까 …버프가 시간제한이라는 건 설정만 그렇지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부분이다.
그나마 나 정도 되니까 파티 버프에 시간제한이 있다는 걸 눈치채는 수준이지.
“지난번에는 실피아 에버그린 그로브가 있지 않았나요?”
“그 녀석은 잠시 집에 돌아갔다고 한다.”
“…어머. 그렇군요. 그러면 한 자리가 비는데.”
“그러게요. 그럼 …아. 설마.”
아일라는 고개를 갸웃했고, 이내 모두의 시선이 이브를 향했고, 이내 아하. 하는 묘한 김빠진 소리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이브 폰 로엔그린. 환영해요!”
“…이브 님이라면 뭐, 경쟁할 이유도 없고….”
“음. 루디카도 그렇게 생각한다.”
“…아, 아하하….”
다들 이브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 본인은 인상을 팍 찌푸릴 뿐이다.
“말해두지만…. 저는 파티에 안 들어갑니다.”
“음. 왜요? 울프람의 동료가 되면 무척이나 재밌는 일이 많아요!”
“저 울프람의 동료가 되라고요? 저 보고요? 하! 제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 거라 생각하죠?”
“…이브 님. 같이 원정도 가고, 모험도 떠나고, 사건도 해결했습니다. 그건 동료가 아닌 겁니까?”
“그, 그건 공무상 상호 간의 협력이 필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결코 제가 울프람의 편이 된게 아닙니다! 거기에 제가 울프람의 배지를 달고 다니면 다들 뭐라고 생각하겠어요!?”
“아, 그건 걱정하지 마라. 루디카는 업무중에는 안 달고 다닌다. 암살자가 그런 금빛 배지 달고 다니면 달빛의 반사광 때문에 큰일이다.”
“…으, 으윽. 악당 울프람의 동료가 된다는 것은 그 악행에 가담한다는 뜻이니까 제가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아하하…. 저는 딱히 악행에 가담한 기억은 없는데요….”
“우…으으.”
아일라, 네프티, 루디카, 밀푀유의 쿼드라 어택에 이브가 궁지에 몰렸다.
“이브 폰 로엔그린.”
“뭐에요.”
“네 자유의지를 침해할 생각은 없다. 들어오고 싶지 않다면 들어오지 않아도 된다.”
“…자유의지.”
“그래. 네가 실피아 에버그린 그로브의 의지를 존중했듯, 나도 네 의지를 …뭐 그나마 존중 비슷한 것 까진 해주겠다.”
“…….”
“네가 나를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나도 네가 정말 싫으니 말이다.”
“알면 됐어요.”
“그러니 이게 마지막 제안이다. 감정을 제거하고 네가 말했던 대로 상호 간의 협력만을 목적으로 하는 마지막 모집 제안.”
“…마지막.”
“그래. 지금 들어온다면 격무에 지친 네게 ‘집중력 향상’ ‘체력 회복’등의 자잘한 효과가 붙는다.”
“그 정도는 포션으로 해결할 수 있거든요?”
그래. 그렇겠지.
하지만 이브 폰 로엔그린이 이 파티에 들어오면서 완성되는 버프는 어떨까?
빛 속성의 울프람. 그리고 이브.
마법사인 이브. 그리고 아일라.
파티에 빛과 마법사 둘이 있으면 생기는 버프.
“장담하지. 네가 들어오면서 완성되는 특색은 고작 포션 따위로 대체할 수 없음을.”
“…정말요?”
“내 말이 오만할지언정 허언이었던 적이 있나?”
나는 양손을 펼쳐 들었고, 이브는 주먹을 꾹 쥐었다.
“당신은 재수 없고, 기분 나쁘고, 스테이터스도 낮은 주제에 건방지지만 …최소한 거짓말은 안 했죠.”
그리 말하며 이브는 내게 손을 슥 내밀었다.
무언가를 달라는 제스처.
“뭐지?”
“내놔요. 그 멋대가리 없는 배지.”
【새로운 앰블럼 배지를 작성하시겠습니까?】
나는 손을 꾹 쥐었고, 이내 내 손 안에서 하나의 배지가 태어났다.
【이브 폰 로엔그린을 파티원으로 받아들였습니다.】
【6인 전원의 파티가 모였습니다!】
【파티 시너지를 재계산합니다.】
【파티 내에 빛 속성이 두 명입니다.】
0
【파티 내에 빛 속성이 두 명입니다.】
【빛으로 빚었습니다(7T)】
【모든 회복 효과가 상승합니다.
체력을 소모하는 행동 이후, 체력 회복량이 일시적으로 소량 상승합니다.】
【파티 내에 마법사가 두 명입니다.】
【마법 소녀 전우조. (8T)】
【사용하는 마법의 마력 소모량이 소량 감소합니다.】
이브를 제외한 레귤러 네 명은 빛 속성 둘이 가져다주는 버프나 마법사 둘이 가져다주는 버프에 대해서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지만, 반대로 이브는 완전히 체감 중이었다.
“으, 흐으으으…. 히오오오….”
이브는 학생회 업무 때문에 ‘상시 체력을 소모하고 있으며’ 동시에 소울 체인지의 극악한 효율 때문에 ‘상시 마력을 퍼다 쓰고’ 있다.
그 두 개를 동시에 완화시켜주니, 이브의 표정이 기분 나쁘게 녹아내리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마음에 들었나? 이 효과의 지속 시간은 한 달이다.”
“한 달….”
“한 달 동안 좋은 꿈 꾸도록.”
“…윽, 아, 알고 있어요. 한 달 뒤에는 제 발로 걸어서 나갈 거에요. …히오오.”
기묘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는 이브를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이브만 좋은 일을 시켰냐면, 그건 아니다.
재봉 역시 집중력을 갉아먹으며 바느질을 더욱 더 정확하게 하려면 체력의 소모까지 생각해야 한다.
허나, 이브 폰 로엔그린이 파티에 들어옴으로서, 그런 문제는 대부분 완화되었다.
즉. 요컨데.
드레스의 완성이 생각보다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이야기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