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21)
020. 날개를 달아줘요
아일라가 스스로의 한계를 이십분이나 부쉈다.
나도 커피를 마셔봤지만, 생각만큼 효과가 없었다.
“굉장히 묽게 커피를 타면, 보리차와 맛이 비슷하지.”
그냥 차갑게 식혀서 보리차 대용으로 마시는 것이 나을 수도 있겠다 싶은 수준의 각성 효과.
“···아니, 내 몸에 덜 듣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럼 다른 방법을 찾아 봐야겠구
나.”
요컨대. 나와 아일라만으로는 표본이 부족할 수 있으니까. 임상실험을 해보자.
그리고 그 임상 실험 대상은 정해져 있었다.
누구보다 실험에 익숙하고, 변수를 싫어하는 이들
대학원생이었다.
***
신입생 환영회 이후로 내 일과 중 하나는, 일주일에 몇 번 정도 대학원동 앞에서 장사를 하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매일은 못 하지만, 틈나면 가서 하고 있고, 대학원생들 중 안면을 튼 몇 명은 나에게 인사를 해오거나 잡담을 나누기도 한다.
이른 새벽.
도넛을 튀기고, 온수기에 생선 육수와 무를 썰어 넣고 북어국을 만들 준비를 마친 후 리어카에 싣는다.
그리고 털털 끌어서 대학원동 앞으로 간다. 그러면 거기서 대학원생들이 마중을 나온다.
“으어 ···그어어 그으으으.”
“음. 1만린 잘 받았네. 마음껏 들게.”
“그으으윽. 예에에에.”
상태가 끔찍한, ···그러니까 지극히 ‘평범한’ 대학원생들은 적당히 따듯한 북어국으로 목을 축인다.
“으, 으오오오오. 사, 살아났다. 살아갈 수 있는 힘! 나의 삶! 인생!”
그리고 그들의 몸에 생기가 돌아온 뒤. 사람의 말을 다시 깨치고 사탕을 집어 랩으로 돌아간다.
저건 사람이라 칭할 수 있을까. 뭐 아무튼, 저들은 불쌍하니까 그만 언급하자. 대학원생을 괴롭히는 건 나쁜 아이란다 울프람. 그들은 잘못된 선택을 했을 뿐이야.
아무튼 그보다 상태가 좋은, ···그러니까 눈 아래가 퀭하고 손을 덜덜 떨며 입으로 뭔가를 중얼거리는 수준으로 끝난 대학원생들. 그들은 나를 보며 또 다른 물건을 찾는다.
“그거 있습니까?”
“그거라. 흠. 가격은 알고 있겠지?”
“물론 돈은 있습니다.”
나는 은근슬쩍 놈을 바라봤고, 놈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지폐를 꺼내 들었다.
“좋다. 물론 있다.”
“흐. 흐흐흐. 역시 황자님. 믿고 있었습니다. 이래야 우리 황자님이시죠.”
“끈 떨어진 황자다. 아부해도 아무것도 안 나온다.”
“아뇨. 아뇨. 저희에게는 여동생분보다 훨씬 더 위대한 구세주이십니다.”
“······쯧. 마음에도 없는 말 하지 마라. 원하는 물건만 사서 돌아가.”
“예. 그래야지요. 흐흐.”
그리 말하며 그가 바라는 것은, 아직 따듯함이 살짝 남아있는 도넛.
안에 크림 빈즈를 잔뜩 넣어서 혈당치를 우주까지 날려 보내 줄 그 음식.
대학원생은 그것을 받아들고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흐, 흐흐. 이겁니다. 이거. 한 세트 오만 린 맞습니까?”
“맞다.”
“흐히, 흐 흐헤헤헤헤헥!! 샀어! 오늘 내가 사버렸다고! 완전히, 와, 와완전히내가도넛을사버렸다고!! 오늘은 내가 승리자다히, 히힉!!”
도넛 다섯 개 들이 한 세트를 집어들고 광소하는 대학원생은 공포스럽기까지 했지만, 황실 혈통 스킬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함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봐. 내 물을 것이 있다.”
“네. 황자님. 흐흐. 하문하시지요. 뭐든, 뭐든 말씀드리겠습니다. 연구 결과라도 원하십니까?”
“최근 부쩍 도넛을 찾는 이들이 많은데 어디서 퍼져 나간거지? 대놓고 장사할 정도로 물량이 많지는 않아서 너무 몰리면 곤란한데 말이야.”
빈즈는 연구용으로도 써야 하니까, 적당히 라는 것이 중요하다.
“그게 말입니다. 랩 동기 한 놈이 신입생 환영회 때 도망쳤습니다.”
“······?”
그게 갑자기 왜 나오는데?
“멍청한 녀석이 7년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신입생들과 부대끼며 환영회를 즐기겠다고 랩에서 도주했죠.”
앗 그렇게나 슬픈 사연이.
“잠깐 그러면 설마 그때 손님 중 한 명이.”
“예에. 황자님의 도넛을 맛 본 학원생이 한 명 있었던 거죠. 그런데 이 도넛이 천상의 맛이라고 하더군요. 저희들끼리 은밀하게 정보를 공유하고 있고, 최대한 퍼져나가지 않게끔 하고 있습니다. 오늘 다른 놈들은 교수님께 붙잡혔지만, 저는 빠져나와서 살 수 있었죠. 흐흐, 흐히힉!!”
“그렇군. 그러면 되었다.”
“사실 운이 좋았습니다. 황자님께서 최근 여기서 장사하시는 날이 드무니까요. 하늘이 계시하고, 땅이 이끌어야 인간인 저희가 살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건 내가 체력이 없어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좋은 정보 고맙다. 학원생들은 나를 ···긍정적으로 봐주는 모양이군.”
“저희는 학부생들의 정치에 끼어 들 정도로 어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혼자서 독립 할 정도로 어른도 아니죠.”
“흠.”
괜히 감동하게 그런 말을 하고 그러냐
“그러니까, 자립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이 당분과 ···튀긴 빵과! 그리고 뇌까지 행복해지는 도넛을 마구 입에 쑤셔 넣고 논문을 쓸 겁니다 히, 히힉!”
감동 돌려내 새끼야.
아무튼 이 대학원생에게 이렇게 말을 건 것은, 신상품을 아일라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감평을 듣기 위해서다.
“···아무튼 그럼 이거 가져가서 도넛이랑 먹고 내일까지 감상을 들려줬으면
좋겠군.”
“뭡니까?”
“커피라고 부르는 물건이다. 새로운 음료지. 살짝 각성 효과가 있고 밤에 잠들기 어려워 질 수도 있다만···. 각성 효과는 확실하다. 쓴 맛이 나니 설탕을 타도 좋고, 도넛의 단맛에 의지해도 좋다.”
“음, 알겠습니다. 황자님께서 주신다는 데, 뭐든 먹어봐야지요!”
그리 말하며 원생은 도넛을 받아들고 그대로 사라졌다.
“···대학원이라. 나는 평생 갈 일이 없겠지.”
그들은 대체 어째서 그런 선택을 한 것일까.
잘 모를 일이다.
***
커피 비슷한 무언가에 대한 감평은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다.
“쓰더군요. 풍미라도 진했다면 먹을 만 했겠지만 각성 효과도 별로 없었습니다.”
“역시 그런가.”
태생이 커피콩이 아니고, 지금 가지고 있는 빈즈로는 ‘쓴 맛’ 비슷한 것을 낼뿐이었다.
동부 숲 초입에서 좀 더 들어가면 쓴 맛 나는 빈즈가 나오긴 하는데, 그걸 구하기 전 까지는 일단 커피를 패스해야 할지도 모른다.
“빈즈는 정말 각양각색이니.”
내 기억으로 빈즈의 종류만 가볍게 수 백 종. 그리고 생김새가 각각 다르다.
나야 그 전부를 외워 두었기에 망정이지, 이 세계에서 어째서 빈즈에 대한 연구가 없는지 알만도 하다.
“쓴 맛이 나는 설명이 붙은 빈즈는 대부분 중증 상태이상 치료용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9티어 빈즈는 하급 상태이상 치료. 8티어는 체력회복이나 중급 상태이상 치료. 7티어부터는 버프. 6티어 이상은 또 마법적 효과나 심지어 공격으로도 쓸수 있다.
물론 그 안에서 또 분류하고 볶고 하려면 꽤 피곤할 듯 했으니, 커피에 대한 욕망은 잠시 접어두자.
그리 생각하며, 전체적으로 단 맛이 나는 빈즈들과 버블, 혹은 아쿠아 빈즈와 에너지 빈즈를 어떻게 섞을까 고민하며, 마법동을 걸었다.
그리고 그렇게 복도를 걸으며 다음 수업의 준비와 빈즈의 효과를 계산하던 도중.
수 많은 수행원을 이끌며 걸음 당당히 걷는 그것과 마주했다.
“쯧.”
“씁.”
서로 눈을 마주치자마자 혀를 차는 것을 보니 우리가 실로 남매라는 사실을 잘 알겠구나
안 그러니 이브?
“사람 얼굴을 보면서 혀를 차는 것은 학생회장으로서 도량이 좁은게 아닌가 생각한다만.”
“정말 일반 학생이라면 말이죠.”
“그럼 일반 학생이고말고 회장님의 배려 덕분에 말이지.”
“배려라고 알면 제대로 좀 사세요. 쯧.”
“나만큼 제대로 사는 인간이 어디 있다고 생각하지? 씁.”
우리는 서로 한 대씩 주고 받고는 누가 먼저라고 할 거 없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우리 둘의 대화에 이브의 수행원들은 최대한 눈을 깔고 모른 척 했다. 그래, 제프린에서 황가끼리 대화를 나누는데 어떤 애들이 고개를 빳빳하게 들겠니.
“그래서 어디 가는 거죠? 일반 학생?”
“일반 학생의 행보를 물을 정도로 아카데미에 관심이 많으니 이브는 대학원에 진학한 뒤 칠 년간 학생회장을 연임할 재목이로군.”
“아니 진짜 사람이 뭔 말을 그렇게 해요?! 어, 어떻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학생들이 보고 있다. 체통을 지켜라.”
“으···!”
등 뒤의 고개 푹 숙인 학생들 입에서 ‘와 지금 대학원가서도 학생회장 하라고 한 거야?’ ‘말 심하게 하네 진짜’ 같은 소리가 들려온 것 같지만 착각이다
착각일거다.
아무튼. 양심에 조금 찔리지만 한 번 딜을 꽂기로 결심했으면 끝장을 봐야지.
“후우. 아무튼 여기저기 싸돌아다닐 시간 있으면 열심히 공부나 하세요. 좀. 일반 학생이 대체 왜 잠든 산맥으로 향했다는 보고가 들어와요?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그렇게 놀랄 일인가?”
잠든 산맥이 위험한 곳이긴 하지.
그래도 가족이라고 걱정 해 주는 건가.
녀석, 하고는···.
“만에 하나라도 거기에 당신이 어둠의 결사 같은걸 조직해놨으면, 토벌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력이 들어갈지···.”
“······.”
녀석 하고는 언젠가 끝장을 봐야 할 거 같군.
“알고 있어요. 아무튼 이제 진짜 일반 학생이니까 시험 성적도 전부 일반 학생처럼 대우 할 거예요. 특권은 없다는 거 알죠?”
“알고 있다.”
“그러면 됐어요. 이번 미니 테스트부터 정식 평가에 들어가는 건 알고 계시죠?”
“알고 있다.”
“좋아요. 그러면 확실하게 공부하세요. 이만.”
그리 말하며 이브는 흥 하고는 그대로 나를 지나쳐 걸어갔다.
그 뒷모습을 보다가, 마지막으로 한 말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거 설마.
“저 녀석 나를 걱정한 건가?”
아니, 설마.
진짜?
***
수업을 마치고 편의점에 돌아와 앉아 생각에 잠겼다.
이브 말마따나, 미니 테스트부터 정규 시험에 들어가고 나중에 성적에 반영이 된다.
원작인 D/Z SAGA에도 시험이 있었다. 사실 시험이라기보다는 미니게임 수준이었지만, 나름대로 게임에서 슬쩍 스쳐지나갔던 정보들을 모아서 시험 문제로 냈다. 예를 들면 ‘파이어 빈즈와 윈드 빈즈를 믹스 빈즈로 만들 때 어떤 배합식이 블루 고블린에게 가장 큰 데미지를 입히는가?’ 같은 질문들.
사실상 미니게임이지 뭐.
허나 지금의 제프린은 엄연한 내 현실이며 수업 내용도 꽤 많이 다르다.
그러니까 공부를 더욱 철저히 해야 하기도 하고 말이야.
하지만 이 쓰레기 같은 체력이 받쳐주질 않고, 커피라고 만든 것은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수확은 있었지.”
고심의 끝에 커피 비스무리한 무언가 효과가 없는 이유를 깨달았다.
“에너지 빈즈는 하급 상태이상인 격분을 걸지만, 다른 빈즈는 저항을 올려버린다. 두 효과가 상충하는 셈.”
어떤 방법이 좋을까. 한참을 고민하고 있자니 편의점 문을 열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울프람 바쁜가요?”
아일라였다.
“아니 바쁘지는 않다. 너야 말로 공부하느라 바쁜 것 아니었나?”
“예에. 그래서 어제 저의 한계를 넘어서게 해준 음료를 또 받을 수 있을까 싶어서요.”
“···고작 삼십분의 시간을 더 얻겠다고?”
“고작 삼십분도 쌓이면 어마어마한 효과를 낳는 법이죠.”
“···미니 테스트는 고작 일 주일 후다. 두 시간 조금 넘는 시간을 벌겠군.”
“윽···. 아 맞다. 그럼 삽십 분마다 마시는 거예요!”
“뭐라?”
“그렇게 하루 스무 잔을 마시면 6시간이나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와요. 일주일이면 무려 사십 시간을 벌 수 있죠!”
“하지 마라.”
“왜죠?”
왜긴.
6시간 더 벌려고 60년 일찍 가는 수가 있어요.
커피는 아직 미완의 음료다.
내 설명을 듣고 아일라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네요. 그럼 여기에 온 김에 같이 공부라도 하죠.”
“갑자기?”
“네. 멍하니 걸어서 돌아가는 것 보다, 기왕 온 김에 함께 공부하죠. 그 말로만 듣던, 스터디 그룹이에요!”
“말로만 듣던?”
“······.”
“혹시 같이 스터디 그룹을 짤 친구가 없었나?”
“·········읏.”
그렇구나, 아일라는 친구가 없어서 스터디 그룹을 짜본 적이 없구나.
생각해보면 3막에서도 부하들이나 신하는 많았지만, 친구라고 부를 존재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드높은 자존심이 문제인 건가.
“치, 친구 많아요. 어, 엄청. 많거든요?”
“그래 알았다.”
“잠깐 여기 앉으세요. 제가 얼마나 친구가 많은지 지금부터 설명해 드릴 테니까요.”
“마실 거라도 내오지. 달달한 거면 되나?”
“······윽. 이번만 넘어가 드리죠. 대신 많이 달아야 할 거에요!”
픽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 보자.”
달달한 음료라. 슈가 빈즈거나 스트로베리 빈즈를 베이스로 삼아볼까. 오렌지 빈즈도 괜찮겠다.
그리고 오늘은 스터디 그룹을 한다고 했으니까, 에너지 빈즈를 넣어보자. 그리고 그냥 달기만 하면 조금 아쉬우니까 버블 빈즈를 섞어서···.
“어?”
거기서, 묘한 조합식이 떠올랐다.
나는 바로 장갑을 손에 끼고, 재주를 10으로 맞춘 뒤 믹스 빈즈 조합을 시작했다.
【최초로 빈즈 네 개를 조합합니다.】
【에너지 빈즈, 아쿠아 빈즈, 버블 빈즈, 오렌지 빈즈.】
【조합 성공!】
에너지 빈즈로 ‘격분’을 걸고 ‘집중력 향상’을 발동시킨다.
아쿠아 빈즈로 음료로 만들 준비를 마친다.
버블 빈즈를 섞어서 탄산수의 효과를 더하고
오렌지 빈즈를 섞어서 색과 맛과 향을 더하면···.
나는 그것을 한 모금 마시고 짜릿하게 차오르는 오렌지의 향과 조금씩 올라가는 집중력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그거다.
“에너지 드링크인가?”
커피보다 더 효과가 확실하고, 더 나쁜 녀석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