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215)
214. 공략
그리고 다음날.
편의점에 상상하지도 못한 손님이 한 명 찾아왔다.
“울프람. 뭔 사람 얼굴을 그렇게 봐요?”
아니 너 말고.
이브 폰 로엔그린은 항상 보는 얼굴이라 신기할 것도 없고, 볼 때마다 신기할정도로 못생겼다.
그것보다, 이브와 함께 온 사람이다.
“더블 에이.”
“저를 기억하고 계실줄이야. 심지어 별명이네요. 저 그렇게 유명인입니까?”
“······.”
그야 기억하고 말고.
에이블리 에이테르. 통칭 더블 에이.
내가 너를 어떻게 잊겠니.
이것 참. 하하.
“뭡니까. 제 얼굴에 뭐 묻었습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나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얘한테서 존대를 듣는 건 꽤 신기한 일이다.
“저기요. 존경하는 황녀님.”
“예. 더블 에이.”
“제가 먹고 심사해야 할 ‘상품’은 이겁니까?”
“맞아요.”
얼핏 보면 무례한 반응이지만, 이브 또한 그러려니 했다.
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블리 에이테르. 더블 에이는 그럴 자격이 있으니까.
아무튼 이 오래간만에 만난 인연을 신기하게 여기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우선 잡고기를 완전히 갈아서 기름으로 고정시킨 햄.
즉 울프람 전투식량. 통칭 W-레이션에 들어갈 울팸(WOLFram’s hAM)의 심사다.
어떻게 해서든 동물성 지방과 고기 비슷한게 전투 식량에 들어가야 한다는 나의 제안에 이브와 실피아는 납득했지만, 스팸, 아니 울팸 자체에 대한 거부감은 여전했다.
그도 그럴것이 남는 자투리 고기를 갈아서 소금과 양념을 쳐서 굳힌 것이다.
귀족님들이 보기에는 꿀꿀이죽 비스무리한 무언가지만, 여기서 설득력 하나가 생겨버렸다. 도축할 때 남는 잡고기가 얼마나 많은지 생각하고, 그 부분을 갈아서 납품하는 것을 축산업체와 딜 해 본 결과 압도적인 가성비가 나왔다.
그래서 이 곳에 더블 에이를 불렀나.
꽤 괜찮은 발상이다.
“자. 더블 에이. 이게 가치가 있는지 평가해주겠어요?”
“뭐 어렵지 않습니다. 음. 향은 합격이네요. 괜찮네요.”
울팸 구이의 향을 맡고는 고개를 끄덕인 더블 에이는 한 입 먹더니 입 안에서 울팸 구이를 몇 번이고 곱씹으며 중얼거렸다.
“조금 짜긴 한데 병사들이 먹을거라면 염분 괜찮고, 열량 괜찮고, 문제점은 딱 하나 뿐인데 그거 빼면 ···좋네요. 이거.”
“좋다? 지금 더블 에이가 좋다고 한 거에요?”
“예. 이건 ‘좋아요.’”
“이, 이런 자투리 고기를 뭉친게···?”
“네. 그래서 더 좋네요. 압도적으로···. 훌륭해요. 상품으로는 좀 아쉽네 이건 ‘요리’로도 분류할 수 있겠는데요?”
“이, 이게···?”
오.
이건 나도 놀랐다.
더블 에이가 ‘좋다.’ 라고 평가하는건 진짜 괜찮은 물건이거든.
“예. 좋습니다. 저는 음···. 이 정도면 채산성도, 맛도, 기준점도 전부 통과한다고 생각해요. 다만 하나 문제점이 있다면 보존기간이 조금 걸리네요.”
당연히 아질산나트륨이었나? 그게 안 들어가고 금속 캔 안에 질소넣고 밀봉한게 아니라서 유통기한은 짧은 편이다. 그런데 그건 꼬우면 시대상을 탓하십시오 휴먼.
“···한 번 쪄내면 되지 않겠나.”
“나쁘진 않네요. 쪄낸거 먹고 죽는게 날거 먹고 죽는거보단 확률이 낮을테니까요.”
“그렇지. 거기에 염분을 좀 더 투입하고, 밀봉해서 판매하면···.”
“너무 짜지 않겠어요? 지금도 짠거 못 먹는 애들은 짜다고 할 정도인데.”
“냄비에 넣고 으깨서 스튜로 끓여먹는걸 기본으로 삼으면 어떤가.”
“좋네요. 그거 괜찮네요. 아무튼 황녀회장님. 이건 제 기준에서는 합격입니다.”
그리 말하며 에이블리 에이테르는 이브에게 보고를 마쳤고, 그녀의 의견을 들은 이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 햄을 전투 식량에 넣는 걸로 하도록 하죠. 고생 많았어요. 더블 에이.”
“뭘요. 꽤 재밌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황자 사장님. ···저 개인적으로 흥미가 좀 일어서 그런데 말입니다. 잠시 대화 좀 가능하십니까?”
“가능하다.”
“감사합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차 한잔 내주시죠.”
좀 건방지지만, 이것이 오히려 정겹게 느껴졌다. 얘는 권위가 세상에서 제일 싫은 애라서 말이야.
나도 가봐야 욕만 먹을 거 알고서 안 찾아가봤는데, 이렇게 만날줄은 몰랐네.
***
가게 안으로 들어온 더블 에이는 편의점을 슥 둘러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요.”
“그런가. 앉아라. 차를 내오도록 하지.”
“예에.”
차를 내오면서 힐끗 에이블리를 바라봤다.
역시. 내가 알던 모습 그대로다.
나른한 눈.
시선을 잡아 끄는 은색 포니테일. 그리고 흰 가운과 입에 물고 있는 막대사탕.
세상 모든 나른함을 모아놓은 듯 한 이십대 중반의 미인은 내가 내온 차를 홀짝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요. 이 차도 좋아요.”
“그런가. 더블 에이에게 음식으로 칭찬을 듣다니, 내 솜씨도 괜찮은가보군.”
“···저에 대해 잘 알고 계신가 보네요?”
“남들 정도는 알고 있다.”
아니면 남들보다 조금 더 알고 있거나.
“오···. 사장님으로 전직하신 황자님께서는 저에 대해 뭘 알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더블 에이. 재학 중 유일하게 두 명의 황손 레이놀드 폰 로엔그린과 헤카테 폰 로엔그린이 너를 스카우트 했으나 둘 다 거절한 것으로 유명.”
“그런 일도 있었죠.”
“거기서 끝이 아니다.”
“오. 더 있습니까?”
흠.
어떤 썰부터 풀어볼까.
우선 얘가 두 명의 황손에게 스카우트 받은 이유는 바로 ‘요리 실력’이다.
어느 정도냐고? 공식 설정상 【요리 스킬】 【티어 2】 보유자 되시겠다.
이오의 언니 헤카테 폰 로엔그린은 재학 중 에이블리의 요리를 먹고 이렇게 평가했다.
【미스 더블 에이의 요리에는 감동이 있다.】
온갖 산해진미는 다 쳐먹고 다닌다는 헤카테가 그리 말했으니 더 말해 뭐할까.
오죽하면 그 헤카테가 졸업식날 축사를 마치고 제프린을 떠나기 직전까지 더블 에이의 요리를 찾았으며, 언제든 자신의 휘하에 들어온다면 요리장의 위치부터 주겠다. 라고 선언했다.
그럼에도, 더블 에이는 안 가고 배를 쨌다.
오히려 졸업하고는 제프린에 다시 투신해서, 활발하게 요리 연구를 재개했다.
다만 연구의 방향이 기존의 요리와 무척이나 틀어졌다.
말 그대로 쌈마이한 요리만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이유는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았지만, 이내 천재 요리인이 아니라 괴짜 요리 연구가 취급을 받기 시작했고 헤카테 또한 그 이야기를 듣고 삼박 사일을 오열했다고 한다.
그 뒤로 3년전부터 공용학부에서 식료품 상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뭐 여기에는 몇 가지 사연이 있고, 원작을 플레이 하다 보면 그 스토리를 알 수 있다.
“그래서 연구의 진척은 좀 있었나?”
“아, 제 연구 말입니까. 아무래도 괴짜의 연구다 보니까요. 대단한 건 없습니다?”
“그런가. 그럼 공용 학부에서 장사는 잘 되나?”
“예에···. 그냥저냥 입에 풀칠할 정도는 됩니다.”
“퍼주느라 고생이 많군. 아직도 가난한 학생들한테는 외상 걸어주나?”
“······어떻게 그걸 황자님이 알고 계십니까?”
이제야 에이블리가 살짝 가늘어진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얘한테 경계 당하는것도 쉽지 않은데 말이야.
“글쎄. 어떻게 알까.”
그야 게임시절. 오지게 외상 해먹었으니까 잘 알죠.
정말 그 시절 감사했습니다. 흑흑.
***
에이블리 에이테르는 이 게임의 뉴비건 고수건 고인물 레벨이 아닌 이상 항상 찾게 되는 NPC다.
1학년 공용학부에서 상점을 운영하며 주로 취급하는 것은 질 낮은 식료품과 하급 요리 비법서. 그 외에 랭크가 낮은 요리도 판다.
이렇게만 보면 정말 극초반용 NPC같은데, 얘한테는 특수한 점이 있으니 바로 ‘외상’ 시스템이다.
【밥은 먹고 다니냐?】
【굶지 마. 어릴때는 굶는 거 아니다.】
【만들다 남은건데···. 이거라도 먹고 가라.】
【돈? 됐어. 나중에 성장하면 갚어.】
에이블리는 ···1학년 1학기 한정. 돈이 모자라도 하급 식료품과 요리를 공짜로 팔아준다.
최대 10만린까지 외상을 땡길 수 있으며, 나중에 딱히 추궁도 안 한다. 단 외상이 있을 때는 얘 호감도 작을 못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거고 말이야.
‘우리 동네 호감누나’ ‘뉴비의 구원자’ ‘하루 천원으로 켈터스가 굶지 않게 해주는 행복천사’ ‘원미동 사람들이 싫어할 올타임 레전드’ 같은 칭호를 받고 그랬다. NPC 인기투표를 하면 항상 최상단에 위치했지.
그리고 그 인기에 힘입어 나는 게임사에게 보낼 57,000자에 달하는 카페 회원 의견 추합서에 에이블리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냈으며 결국 DLC 2편에서 에이블리 스토리가 나왔는데···. 그게 또 장난이 아니었거든.
곰곰히 생각하면 그것 뿐이다.
그냥 오랜만에 보니 기쁜 정도?
밥은 먹고 다니냐?
안 먹었으면 밥이나 먹고 가라.
***
아무튼 차를 내오고 에이블리는 한 입 마시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황실의 찻잎은 다르군요.”
“그 찻잎이 특별하게 느껴지나?”
“예에. 최소한 중앙 자작가에서 주말에 한 번쯤 마실 레벨이군요.”
“그렇군. 한 잔에 백 린 정도의 찻잎이 그 정도 레벨이라, 제프린도 살기 편해졌어.”
“···예?”
“에스더. 에들린. 에르나. 이 세개의 잎은 알고있지?”
“네. 다 가지고 있는 잎입니다. 저도 연구하고 있는 잎입니다. 정수 작용이 탁월하죠. 다만 맛은···.”
“그 세개를 블렌딩 한 것이다.
”예? 그 세개로 이런 맛을 낸다고요?”
그래. 그거 2학년때 너한테 말 걸면 주는 찻잎이거든.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네가 원작자란다.
거 미안하게 됐습니다. 하하. 꼬우면 당신도 엔딩보고 게임 들어오시던가.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신 겁니까?”
“그렇다만?”
“이, 이건 연구의 맛입니다. 저도 ···주로 하진 않았어도 이 찻잎들을 8년째 조금씩 배합하고 있는데 이런 정확한 비율은 수 없이 많은 오류 위에서 밖에 쌓아올릴 수 없습니다.”
그야 그렇겠지.
세 개의 잎을 몇 개월 자란걸 따느냐, 얼마나 말리느냐, 분량이 어떻게 되느냐, 몇 도의 물에서 몇 분을 우려내느냐, 그 첫물을 버리느냐 아니냐. 그 모든것이 다도에 직결된다.
“그런 말을 한다 해서 네 앞에 있는 찻물이 맛이 없어지는것도 아니고, 사라지는 것 또한 아닐텐데 어찌하여 결과에 의문을 가지지?”
“의도를 묻는 겁니다.”
“의도. 그야 하나다. 편의(便宜).”
“···편의라고 하셨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세상은 너무나 불편하다. 그리 생각하지 않나? 서부의 인간은 평생 바다를 모르고, 남부는 눈을 본 적 없고 북부는 따스함에 감사할 수 없지.”
“······그건.”
“계급의 차이는 엄연하나, 그것이 불편함을 감수하라는 이야기는 아니지. 너라면 이해할 수 있지 않나?”
뭐.
얘가 황실의 제안을 두 번이나 거절하고 이 제프린에 틀어박혀서 가난한 학생들을 지원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해···.”
“민생(民生).”
“······그것까지 알고 계셨습니까.”
“음.”
원래 여기까지는 말하지 않을 속셈이었지만, 분위기를 좀 탔다.
그러니까.
당시 귀족과 황족 누구나 높게 평가하던 에이블리라는 이름의 촉망받는 요리사는 제프린에서 굶어 죽는 이들이 나오는 것을 봤다. 라는 이야기다.
뭐 그런 걸 견디지 못하고 황실의 제안을 거절. 그 뒤로는 모두가 균등하게 먹을 수 있는 요리를 목표하며 싼 요리 전문가 겸 뉴비 포션 지원가가 된 것이다.
결국 좋은 녀석이다.
“···아하하.”
“왜 웃지?”
“아니오. 실로 재미있는 분을 만났다 싶어서요. 제가 겪은 다른 황손분들은 안 그러셨던 것 같은데요.”
“이브 말로는 나는 이상한 녀석이라더군.”
“그렇습니까.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에이블리는 차를 다 마시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이상한 분이 맞으십니다.”
“······.”
“그럼에도 이 찻잎 하나가 그 이상한 분이 고뇌해서 나온 민생의 결과라 생각하면 최근 몇년간 마신 차 중 가장 따듯한 맛이었습니다. 황자님.”
“그 더블 에이에게 칭찬을 들을 줄이야.”
“에이블리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흠.
문득 본편이 생각났다.
【앞으로는 에이블리 누나라고 불러, 뭣하면 누나 떼고 이름으로 부르던가.】
얘가 이름을 허락해주는 호감도 단계가 몇이었더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