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223)
222. 결정타는 어퍼컷
레지나 시엘라.
솔직히 말하자면, 2만 시간 넘는 플레이 타임동안 그녀를 한 번도 이해한 적이 없었다.
대체 저렇게 돈 많고 스펙 좋은 애가, 고작 이브 폰 로엔그린 한 명 못 넘는다고 멘탈이 나가는 게 말이나 되나 싶었다.
재벌 가문의 따님에 루트에 들어가면 상점 모든 물품이 싸지질 않나, 퓨어 메이지로도 이브급은 아니지만 충분히 활용할 여지가 넘쳐난다. 이브? 그건 이브가 개사기인 거고 말이야.
음···. 물론 그건 있다. ‘레지나 시엘라’는 모든 면에서 이브 폰 로엔그린을 넘을 수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전투와 파티플레이에 있어서 능가하는 영역이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마법이 무속성이라는게 그나마 차별점인데, 빛속성이 더 희귀하다. 광역마법도 이브 쪽이 압도적으로 세다. 포지션도 퓨어 메이지로 겹친다. 착용 장비에 변주가 있다면 ···그래 그나마 레지나 시엘라가 근접 무기를 세 종류 정도 더 착용할 수 있다. 이브는 단검밖에 못 차니까. 그런데 그걸로 재미를 보긴 좀···.
사실 그래서 레지나 루트는 열 번 정도밖에 클리어 안 했다. 스토리도 노잼이고, 캐릭터도 이해가 안 되고, 분기점은 지옥이고, 난이도는 높다. 그게 또 고인 물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요소냐고 물으면 분기점이나 난이도로 놀 거면 맨땅 필티아 루트를 깨거나 단검 이브 엔딩이 훨씬 더 높으니까 말이야.
그래서. 레지나단이 무서웠다.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른 히로인을 배척하고 레지나만을 파고드는 이유가 대체 뭘까.
레지나 시엘라는 대체 왜 맛이 가 있는 걸까. 레지나단은 왜 같이 맛이 가버린걸까.
심연 속으로 끌려간 친구가 다음날 얼굴만 불쑥 내밀고는 튀어나올 거 같은 눈으로 ‘나는 어제 천국을 봤다네 친구. 자네에게도 소개하지.’ 라고 말하는 듯한 공포영화 도입부마냥. 레지나단에게는 형언할 수 없는 불쾌감과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만나서 대화해보니···.
괜찮은 녀석 이다. ···아니 취소. 역시 맛이 가 있긴 한 거 같다.
음 예 대화가 안 통하냐고 물으면 글쎄 대화는 통한다. ···아니 그것도 취소. 눈이 실시간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게 보이는 건 여전하다. 이게 대화가 통하는 건지 아닌지 모르겠다.
으음···.
그렇다고 해서 막상 서로 죽이려 드는 것도 아니고, 내가 얘 루트 해방조건을 연 것도 아니니까 ···친구가 되자면 언젠가는 되지 않을까.
이 세상 모두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기준이라면 ···분명 레지나도 언젠가 친구가 되겠지.
아님 말고.
***
그러고 보니, 요 며칠간 그 녀석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며칠이라고 해도, 고작 사흘정도밖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 편의점의 데시벨과 소음을 책임지는 두 명 중 한 명.
반역의 스페셜리스트. 아일라 트라이스타의 이야기다.
흠.
항상 편의점에 와서 ‘반역의 시간이에요!’ 같은 소리를 외치는 녀석이 안 보이니 묘하게 조용한 것이···. 작업하기에 안성맞춤이로군.
자 그럼 오늘도 느긋하게 더블 에이한테 팔아먹을 메뉴를 개발하자.
그리 생각한 순간.
편의점 문이 확! 하고 열리며 익숙한 목소리가 가게 내부에 울렸다.
“울프람! 저 왔어요!”
“왔는가.”
그래 뭐.
네가 왜 안 오나 했다.
들려오는 아일라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 쪽으로 시선을 돌린 그 순간.
나는 숨이 멎어옴을 느꼈다.
“······아일라.”
“네! 울프람!”
방긋방긋 웃는 아일라는 언제나 보던 모습 그대로였다. 깔끔하게 다려진 교복. 허리 아래까지 내려오는 긴 흑발. 자수정빛 눈동자. 얼굴 전체에 걸쳐진 환하고 밝은 미소.
그러니까.
내 숨을 멎게 만든 것은, 그 아일라의 등 뒤에 있는 것.
편의점 안으로 들어올 수 없어서 밖에 툭 하고 던져져 있는 그것.
분명. 이 거주구에서는 볼 수도. 보여서도 안 되는 거대한···.
“곰?”
“네! 잡았어요!”
“······.”
그래.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지.
이제 와서 놀라기도 그렇고···. 그 뭐냐.
“어디서 잡았지?”
“울프람이 자주 데려가던 천혜의 고도에 다녀왔어요.”
“······.”
내 죄다.
그래.
내 죄가 참으로 깊구나······.
***
밖으로 나가 거대한 곰의 사체를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머리가 아파왔다.
전신의 털은 붉기 그지없는 게, 천혜의 고도에서 스폰(spwan)되는 개체중 하나. 4막 이후의 숲 계열 사냥터에서 보이는 ‘레드 그리즐리 베어’다.
그러고 보니 요 며칠 강의도, 편의점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싶었더니, 천혜의 고도에 갔던 건가?
나는 가문 일로 알고 있었는데?
물음을 던지자 아일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문 일도 있었죠. 그런데 그건 꽤 빨리 처리했어요. 내년 스피카 입학건으로 조율 할 게 있어서요.”
“그렇군. ···그래서?”
“그리고 제프린에 돌아오면서 이것저것 점검하다 보니 ···저 곰이 필요할 거 같아서요.”
“···그렇군.”
대체 어떤 사고방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일라의 생각이 그러면 그런거겠지.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것이···.
“혼자서 잡았나?”
“네! 물론이죠!”
“어떻게 잡았지? 놈은 마법 저항력이 무척이나 뛰어나다만.”
“아···. 아하하. 그게 말이죠. 그···. 으흠.”
그리 말하며 아일라는 손바닥을 쫙 펼쳤고, 이내 손가락 마디마디. 손등. 손바닥 가릴 것 없이 흑수정이 감겼다.
평소 쓰던 흑수정 글러브와 체술로 곰을 잡았다? 아니 그렇지 않았다. 글러브는 오른 손목 너머까지 이어졌고, 팔꿈치 아래에서 멈췄다. 그리고 그 모습은···.
“카트리지 장전식 건틀릿.”
“네. 삐약 펀치에요. 그걸 이렇게···. 흑수정으로 짜올려서 트라이스타 체술로 정정당당하게 정면에서 싸웠죠.”
아니 뭔 격투가도 아니고, 중거리 마법사라지만 ···아니 저게 배틀 메이지라고 하면 또 배틀 메이지긴 하다.
아무튼 때려잡은 방법도 알았다. 그럼 마지막 질문인데.
“왜 그런 짓을 했지?”
“아···. 솔직히 삐약이의 전투 스타일을 따라 한 거 같아 부끄러워요. 다음부터는 아일라 트라이스타만 할 수 있는 반역적 전투 방식을···.”
“아니. 그게 아니다. 왜 천혜의 고도에 혼자 가서, 곰과 싸웠는지 묻는 것이다.”
“아···. 그거 말인가요?”
내 말에 아일라는 으흠. 하고 헛기침을 하더니, 내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더할나위 없이 진지한 표정.
이런 표정으로 ‘반역’이니 뭐니 헛소리를 하는 게 아일라 다운 짓이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울프람.”
“음.”
“얼마 전. 레지나 시엘라와 대련했던 일은 알고 있죠? ···부끄럽지만, 양패구상으로 끝났죠.”
“그랬지.”
그게 양패구상인가?
아일라는 며칠 만에 나아서 편의점에 찾아왔지만 들리는 소문으로는 레지나는 아직도 골병을 앓고 있다던데?
“지난 학기에는 ‘제가 이겼죠.’ 하지만 지금은 ‘무승부’로 끝났어요. 이게 뭘 의미하는지 아나요?”
“모르겠다만.”
“···그건. 제가 따라 잡혔다는 이야기에요. 반역가가 반역의 여지를 줬다는 이야기죠. 정말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어요.”
“······.”
그게 그렇게 되나?
음. 논리적이긴 한데. 이걸 납득해도 되나?
“그래서?”
“그래서 곰과 싸웠어요.”
그렇구나.
“논리의 비약이 너무 심하지 않나.”
“으, 음? ···그렇네요. 그럼 처음부터 다시 이야기 해 볼게요. 저는 레지나 시엘라에게 따라잡혔어요. 왜 따라 잡혀는가 하면 ···그건 울프람이 준 이 지팡이에 너무 크게 의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리 말하며 아일라는 【황혼에 물든 수레국화 지팡이】를 슥 하고 꺼내 들었다.
지팡이를 살짝 쓰다듬은 아일라는 쓰게 웃었다.
“이건···. 엄청난 마도구에요. 상대의 마력이 높다고 해도 ‘마법 발동 저해’가 걸리지 않죠. 간단하게 말해서 마력치가 레지나 시엘라보다 낮은 저도 ‘발동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에요.”
“그렇다. 상대가 절대방어를 구축하지 않는 이상. 빈틈을 한 번은 찌를 수 있고 ···이에 따라 일발 역전을 노려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래서 그날. 저는 ···레지나 시엘라와 마법전으로 싸웠어요. 순수한 마법전. 힘과 힘의 싸움이었고, 결과는 양패였죠.”
“그렇군.”
마력치 1 차이가 나는데 마법전에서 양패로 끝났다고? 실화야?
그 정도면 사실상 승리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전술을 가다듬어야 했고, 저는 깨달을 수 있었어요. 장비 하나에 취해서 제 이점을 손에서 놓은 것 아닐까.”
“그래서?”
“반역은 낮은 곳에서 위를 향하기 때문에 반역가는 항상 ‘가진 패 모두를 점검하며 적재적소에 쓸 수 있어야 한다.’ 이게 제 반역 철칙 27조에요. 저는 그걸 무시한 셈이죠. 그래서···.”
“그래서?”
“마법 저항력이 높은 몬스터와 근거리에서 인파이트로 치고받으면서 체술을 점검하기로 한 거에요.”
“······그런가. 그래서 천혜의 고도에 틀어박혀 곰을 쓰러트렸다.”
“네! 레지나 시엘라와의 전투에서도 문제 없어요! 이제는 근접전과 원거리 언제든 조율할 수 있답니다.”
아일라는 방실방실 웃었다.
논리적이고 사유도 있고 이해도 되는데 도저히 납득이 안 간다.
“아 그리고 ···이유는 이게 전부가 아니랍니다!”
“또 다른 이유가 있나?”
“네! 그 전에 울프람 ···혹시 곰 해체할 줄 아나요?”
“모른다.”
“그렇군요. 울프람이라면 알 거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그걸 알겠냐고 진짜.
***
이후 아일라는 재빠르게 곰을 수납해 상인 거리에 맡기러 갔고, 잠시 후 치워진 곰의 사체 대신 품 안에 종이봉투를 한 아름 안고 편의점에 돌어왔다.
“자 울프람. 보세요! 최상급 곰 고기! 그거 알고 있나요? 곰은 언제나 힘의 상징이었답니다.”
“그렇군.”
그래서 우리 아일라는 그런 곰과 근접전을 펼쳐서 이겼다 이건가.
뭐지. 세기말 패왕이라는 선언인가. 이건 또 납득이 간다.
“그래서 곰 요리를 먹으면 체력이 붙는다고 해요.”
“음.”
실제 인게임에서도 곰으로 만든 요리는 전체적으로 근접전 버프가 붙기 쉽긴 했다.
그래서?
“실피아 에버그린 그로브가 파티에서 나간 이후. 우리 파티의 이로운 효과가 바뀌었잖아요? 아마 ···체력이 줄고 마법 쪽 효과가 늘었던 걸로 기억해요.”
“그랬지.”
“그건 ···울프람에게 있어서 큰 부담이니까요.”
“······그렇군. 나를 위해 잡은 건가.”
“후후···. 알아 주면 됐어요.”
아일라는 양손을 허리에 올리고는 훗 하고 웃으며 눈을 감았다. 언제나 보던 아일라의 모습이다.
“그래서 울프람에게 곰 요리를 해주려고 했어요. 보자···. 곰은 어떻게 조리하는 게 좋을까요?”
“···음.”
분명히 내 기억으로 게임 설명을 보면 ‘기본적으로는 질겨서 구이 요리 성공율은 높지 않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니까 카레나 스튜가 무난하겠다.
“그거 말고 다른 건 없을까요?”
“아예 갈아버리는 것도 있긴 하다. 대표적으로는 만두가 있겠군.”
“···만두? 만두가 뭔가요?”
그러게.
이 세계에는 만두가 없는데 하하.
“···내가 고안한 요리다.”
죄송합니다. 제갈량 선생님. 꼬우면 제프린에서 다시 태어나셔서 저작권으로 따지러 오십시오. 로엔그린 황실 법관이 당신을 정중하게 대접할 것이다. 오케이?
“그럼 그걸로 하죠!”
“그렇군. 나쁘지 않겠다.”
어제의 빵으로 만든 김밥 짭퉁도 그렇고, 기묘한 재료들이긴 하나, 옛날 편의점에서 즐겨 먹었던 것들이 하나둘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물론 나의 소중한 MSG들이 없어서 맛이 조금 싱거운 느낌도 들지만, 그건 조미료 계열 요리들이 숙달되면 비슷한 걸 만들 수 있으니 괜찮다.
아무튼 아일라가 만든 곰 고기를 갈아서 속을 만들고 얇게 편 만두피에 싸서 찌거나 튀기거나 하면서 하나둘 맛을 보기 시작했다.
“···와아. 굉장한 맛이에요. 울프람. 반역적인 맛!”
“그렇군. 꽤 괜찮지 않은가.”
“그 그래서 울프람···. 체력에는 변화가 ···있나요?”
“음?”
아일라는 불안 반. 기대 반 섞인 눈으로 나를 올려봤다.
그렇군.
“있다. 네 노력 덕분이다. 감사를 표하지.”
“저, 정말요?!”
“정말이다.”
“후우···. 다행이다. 혹여나 울프람이 ‘왜 이런걸 잡아 왔지?’ ‘혼자 싸우면 위험하다 생각하지 않나.’ ‘의미도 없는 일을 했군’ 같은 소리를 하지 않을까 걱정했어요.”
할 뻔했는데. 어떻게 알았지?
아 그것보다.
“의미가 없지는 않다. 왜 이런걸 잡아 왔는가···. 는 의문이 조금 들지만 네 스스로를 강화하기 위해 싸움을 택한 것을 무의미라 평가절하하지는 않으마.”
“네, 네···?”
“하지만 혼자 갔기에 위험했던 것은 사실이다.”
“······우.”
“함께 하기에 파티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사람을 너무 걱정 끼치지는 말도록.”
“···걱정 했어요?”
“당연하지 않나.”
그 천혜의 고도는 DLC맵이면서 동시에, 숲 지역의 난이도는 해안가보다 높다.
당연히 곰은 숲지역에나 가야 만날 수 있고 말이야.
“···미안해요. 앞으로는 걱정 끼치지 않도록 할게요.”
“아니. 그게 아니다.”
“···응?”
“갈 거면 다 같이 가자. 라는 이야기였다. 모험은 함께 해야 가치가 있지 않나.”
“······후후. 네. 알았어요. 울프람.”
아일라는 순수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 잘 듣네.
착하네.
“꾸중은 들었지만 ···그래도 체력에 효과가 있다니 다행이에요. 설마 이것도 저를 배려해서 한 말인가요?”
“아니다.”
【체력에 좋은 요리를 먹었습니다. 미약한 증진이 있습니다!】
【곧 체력 수치에 큰 변화가 있을 듯합니다!】
정말.
거짓말이 아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