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225)
224. 서로간의 빚 하나
업체의 교체라는 것이 생각보다 내 일갈 한 마디로 되는것이 아니라서 당연하게도, 학생회에서 인력이 파견되었다.
“···으음. 발주서대로 발주한 게 아니라 분명 뒷돈을 챙겼군. 이건 확실한 문제다.”
“그렇군.”
“처음에는 갑자기 네가 트집을 잡았다는 보고가 들어왔길래 또 무슨 사고를 쳤나 했다만···.”
학생회에서 나온 인력.
그건 바로 은발 포니테일의 살짝 차가운 눈의 검사.
실피아 에버그린 그로브였다.
그녀는 몇 번이고 발주서를 확인하고는 미간을 좁히고는 이마를 짚으며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이건, 확실히 우리 측 잘못이 맞다. 업체는 바로 교체하도록 하지. ···고맙다. 울프람.”
“음.”
이 녀석이 순수하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묘하게 머쓱했지만, 문제는 문제고 감사는 감사니까.
그것보다.
“사과는 내가 아니라 노동자들에게 하는게 어떤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감시 할 것이고 관리 할 건지 확실하게 공시하도록.”
“···거기까지? 아니지. 해야겠군. 네 말이 맞다.”
실피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몇 번 내 말을 되뇌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잘 듣네.
착하네.
그럼 이것도 들어주지 않을까?
“그것과 함께 할 이야기가 있다만···.”
“뭐지?”
“단시간에 급하게 육류를 소비할만한 곳이 있나?”
“······으음? 그건 갑자기 왜 묻지.”
“설명하기 복잡하다만, 간단하게 말해서 대량의 고기가 들어왔는데 처리가 곤란하다. 내 편의점은 소수의 손님들이 와서 즐기는 숨겨진 명품관 같은 느낌 아닌가.”
어허 나쁜말 금지.
“아무튼, 고기를 소모했으면 좋겠다. 이번 일로 나에게 은혜를 느낀다면, 상부상조 하지 않겠나.”
“어떤 고기지? 고기의 양은?”
“마수. 레드 그리즐리 베어의 고기. 무게는 약 1톤 ···정도 된다.”
“···사냥했나? 그걸?”
출처를 묻는 건가.
얘는 전(前)파티원. 이 정도 정보는 공개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다.
“트라이스타 가문의 장녀가 단독으로 사냥해서 넘기고는 도망쳤다.”
“···으음. 그녀라면 그럴 수 있지. 아니 오히려 출처가 너무나 깔끔하고 명확해졌군.”
대체 아일라의 평가는 어떻게 되어 먹은걸까.
실피아는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게 소모하기 어렵나?
“···애매하군 맛이야 마수 고기 진미라는 것은 정평이 나 있으니 그렇다 쳐도 그 정도 양은 ···기사학부 전체가 먹기는 너무나 적군 ···그렇다면···.”
“방법이 없겠나?”
“없지는 않다. 다만 내겐 결정권이 없군. ···따라와라.”
“어딜 가는거지?”
“결정권자인 이브님께 가는게 당연하지 않나.”
음.
나는 그 당연한 곳에 가고 싶다고 한 적은 없는데?
***
학생회장실에 도착하니, 이마에 파스 비슷한 것을 붙이고서 업무를 보는 이브가 있었다.
저거 아마 ···해열에 좋은 약초에 냉기의 마력을 담아 만든 해열 파스다.
원작에서도 학생회 비품으로 지급되긴 하지만, 단가가 꽤 나가는 터라 이브가 저걸 쓰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말이야.
진짜 아픈가보군.
“이브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손님? 뭐야···. 울프람이네요. 울프람은 손님이 아니지 않나요?”
“말이 심하군. 학생회가 보고 놓친 것을 수습해 줬는데 말이다.”
“······윽. 알고 있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이브는 눈을 가늘게 뜨다가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이게 학생회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야?
“대놓고 빚을 지고 싶지 않다는 표정이군.”
“당연하죠. 이 이상 빚을 졌다간 어떻게 갚으라고요?”
“이 이상? ···나에게 빚 진 게 있었나?”
“본인은 자각도 없다고요?”
아니.
정말 기억이 안 나는데.
내가 너한테 뭐 해준게 있던가?
“살 빼라는 조언은 해준 기억이 있다만”
“【성광창】 ···으윽.”
순식간에 성광창을 장전하다가 이내 머리가 다시 지끈거리는지 캐스팅을 취소하는 이브.
···저건 상태이상이다. ‘마력 고갈로 인해 마법 시전시 일정 확률로 상태이상 ’혼란‘에 걸립니다.’ 라는 퓨어 메이지의 상태이상 중 하나다.
음. 성광창 한 발에 드는 마력량을 생각 해 봤을 때 ···정말로 상태가 안 좋나 보군.
“아무튼 나에게 빚을 지기 싫다는 사실은 잘 알았다. 그렇다면 거래를 하지. 이번 은혜를 네가 돈으로 사면 빚은 없던게 되지 않겠나?”
“······뭘 팔려고요?”
“고기다.”
“···고기?”
“그건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이브님.”
“······?”
이브는 고개를 갸웃하고, 이내 이야기를 듣고 ‘아일라 트라이스타라면 그럴 수 있죠.’ 라고 한 뒤 나를 잠깐 보고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소모할만한 일도 있었으니까요. 다만 조건이 있어요.”
“···조건?”
“고기만 파는게 아니라, 조리까지 당신이 한다면 받아들이겠어요.”
“······.”
어렵지 않다.
오히려 재주를 올리기에는 아주 좋은 일 아니겠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가서 생각하면.
그때 끄덕여서는 안 됐다.
***
그 날 밤.
내가 불려간 것은 학생회 소유의 공터.
공터라고는 해도 바닥이 그을려 있거나 주변이 말끔하게 청소되어 있고, 당연하지만 나는 여기가 어딘지 안다.
“학생회 소유 캠핑장이군. 그것도 기사학부생들이 주로 쓰는 장소.”
“···이런 곳도 기억하고 있나요?”
“물론이다.”
원작 기준으로는 이브나 레지나와는 아예 관계가 없다.
있다고 하면···.
“그래서 오늘 여기서 당신이 할 일이 뭔지, 당연히 알겠죠?”
그야 당연히 요리.
그것도···.
저 멀리 떨어져서 경계의 시선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무척이나 경계하는 학생회 소속 기사학부생 아이들을 상대로 고기 요리를 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그야 요리로 재주에 영향이 가는 것도 좋고, 재고 처리도 좋고, 학생회가 고기 값도 적당히 잘 쳐줬지만 ···이 인선 배치 맞아?
고기 요리하다가 칼맞으면 누가 책임지는거지?
“아. 혹시 모를 위험은 실피아가 막아 줄 거에요. 그렇죠?”
“네. 주군.”
그럼 뭐. 안전하긴 하겠네.
“그럼 저는 가볼게요.”
“학생들이 이렇게 모였는데 연설 한 마디 안 하나?”
“저는 일이 바빠요.”
“일을 떠넘기고 도망치는가.”
“제 마음이에요. 아무튼 나머지는 실피아. 당신이 설명하세요.”
“네. 주군.”
이브는 그리 말하며 자리를 비웠다.
주목을 받기 전에 꽤 급하게 자리를 뜬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렇게 표정을 굳힐 필요는 없다. 울프람. 혼자서 요리하라는 것도 아니고 나도 도울 것이다.”
“너라면 크게 도움이 되겠군. 의지하겠다.”
전에 요리교실을 열었을 때. 실피아는 분명 레시피 대로 정확하게 조리하는 모습을 보였었다.
도전하지 않고, 맡은 바 임무를 그 자리에서 수행하는 강직한 기사.
거기에 전 파티원이기도 하니, 믿고 의지하기에는 모자람이 없다.
“···윽. 여전히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군···. 후우. 알겠다. 네가 나를 믿고 의지한다면 최대한 돕도록 하지.”
실피아는 손가락을 튕겼고, 일렬로 쭉 늘어놓은 길고 큰 불판 아래에 불이 붙었다.
기사학부생들 ···그러니까 저쪽도 포크와 일회용 접시를 하나씩 들고 있는 것을 보니, 쌍방간에 이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을 듯 했다.
자. 구울 준비는 모두 끝났다.
“울프람. 지시를.”
“시작하지.”
***
곰 고기.
특히 야생동물의 고기는 기본적으로 질겨서 웬만한 조리법으로는 먹기 힘들다.
엄청 누린내가 난다고 해야 할까.
그렇기 때문에 제일 처음 해야 하는 것이 손질이고, 두 번째가 정확한 조리법이다.
그 점에 있어서, 실피아와 나의 합은 꽤나, 아니 엄청나게 잘 맞았다.
“실피아. 3번 불판의 고기는 뒤집어도 된다. 그리고 6번 불판의 불이 약해져 있다.”
“···알겠다!”
우선 긴 불판을 열 개로 나눠서 숫자를 붙이고, 라피스라줄리를 이용해서 고기를 뒤집거나 불의 기세를 조절한다. 정확하게 익은 고기를 불판 가장자리로 옮기고, 다시 정령으로 고기를 들어올려 불판 위에 올리면,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좋은 향이 퍼져 나간다.
“와···.”
“냄새 진짜···.”
“고기, 진짜 고기다···.”
흠.
곰고기라도 좋으니 고기가 좋은 망자들인가. 이래서 기사학부 놈들은.
허나 이 울프람 폰 로엔그린. 익지도 않은 고기를 집어먹는 걸 용서할 수는 없다.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망자들을 보며, 나는 가볍게 스킬을 켰다.
오래간만에 쓰네 이거.
“【그 자리에 서라. 내 명령이 있을 때 까지 이쪽으로 다가오지 마라.】”
그 말에, 수 백명의 망자들이 그 자리에 섰다.
고기, 고기를 줘. 같은 망령된 소리가 울려퍼진다. 어딜 감히.
몇 명이 의문 어린 시선을 내게 던진다. 설마 향으로만 고문하고 고기를 주지 않을 생각인가! 같은 표정이다. 절망에 물들어있다.
“【먹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향기만으로 너희들을 고문할 생각은 없다. 이 모든건 너희의 입에 들어갈 거다. 약속하마.】”
그 말에 슬금슬금 열기가 퍼져 오른다.
“【허나. 내 명령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제프린 학생회라는 소임을 잊지 말고 익은 것들을 정량 가져가서 특제 소스와 먹는다. 추레함. 무질서. 그 모든것은 내가 용서치 않는다.】”
그 사이에 고기들이 치이익 소리를 올리며 익어나갔다.
음. 이 정도면 됐군. 내 요리 스킬이 지금이 제일 괜찮다고 말하고 있다.
“자. 먹어라. 내가 너희에게 베푸는 식사다.”
내 말에, 각 철판 앞에 선 학생들이 질서정연하게 고기를 받아간다.
그저 구웠을 뿐인 고기를 들고서, 소스에 찍어 먹는다.
“···하아.”
“완벽해···. 이런 고기가···.”
그저 구웠을 뿐인데 거 참.
뭐 나야 편하다.
처음에는 조리를 하라고 해서 너튜브에서 본 수비드니 마리네이드니 리버스 시어링이니 그런걸 해야 하나 싶었지만 ···‘기사 학부’ ‘수 백 명’ ‘캠핑장’ 이라는 세 개의 단어가 조합되자 마자 그런건 싹 다 날아갔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만든 특제 소스로 어떻게든 하는 것이다.
빈즈. 식초. 소금. 물. 겨자. 그 외 수 없이 많은 향신료들.
여름에 천혜의 고도에서 구해 지금 유통기한 아슬아슬한 조미료를 몽땅 때려넣고 만든 대량의 소스를 소분해 놓으니, 그나마 먹는 학생들의 표정이 풀어지는게 보였다.
그리고 내가 서있는 불판 앞에, 내 가슴께밖에 오지 않는 동그란 눈의 검은 단발을 한 후배가 와서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러니까 얘가···.
“···아, 안녕하세요. 고기 ···익은거 있나요?”
“가져가도록. 이 불판 앞에 있는건 다 익었다.”
“가, 감사합니다! 에헤헤···. 저, 정말 맛있어요. 선배님!”
“맛있게 들고 있다니 다행이군.”
“저, 정말로 이렇게 좋은 고기는 처음 먹어봐요. ···가, 감사합니다! 아, 제 소개가 늦었네요. 저는···.”
“알고 있다. 기사학부의 2학년 코튼. 주 무기는 메이스.”
“···아? 저, 저를 알고 계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 뿐이겠니. 이 자리에 있는 애들은 대부분 알고 있지.
“고기가 식는다. 친구들이 기다리지 않나. 가 보도록.”
“네, 네!”
그리 말하며 코튼은 자리에서 멀어졌다. 쟤도 나름 파티원으로 잘 써먹던 애였는데 ···작은 체구라 피격판정이 좋은데 메이스 돌격병이라는 직업이라 돌파용으로 잘 썼다.
“울프람. 혹시 여학생들의 이름은 다 기억하고 있는건가?”
“여학생 뿐만이 아니다. 저기에 있는 헤세드. 비나. 니무스. 기본적인 인적사항은 다 꿰고 있지.”
“···그런가. 기사학부생들의 이름과 인적사항을 다 외우고 있었다. ···네가 말이지.”
실피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고, 마침 떠오른 질문이 있어서, 나는 그녀에게 물음을 던졌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는 뭐였지?”
“···기사학부 단합 대회다.”
“그거 이상하군. 이런 시기에 단합 대회를 하나? 보통 시험이 끝나고 축하 파티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만.”
“원래라면 그렇다. 하지만 이번에는 여러 사고들이 겹쳐서 말이다.”
실피아는 그리 말하며 사고에 대해 설명했다.
“우선 올해는 ···학생회 기사학부생을 중심으로 외부 원정이 무척이나 잦았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 이상으로 다들 지쳐 있었다. 이 상태에서 중간고사까지 치르게 되면, 다들 부담이 너무 심해져서 시험 전으로 당기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렇다고 당일 바로 하나? 라는 의문이 생기지만, 제프린 유일의 권력자인 학생회장이 이끄는 것이 학생회다.
로엔그린은 제국이고, 황실의 명령은 절대적이니까 어쩔 수 없다.
“그리고 고기를 거부할 기사학부생은 없다. 다른 일이 있어도 마수 고기를 공짜로 먹는다는데 안 오고 버티겠나?”
그건 또 맞는 말이긴 해.
“곰고기는 맛이 없지 않나?”
“···독특한 향취는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귀족. 그것도 최상류 귀족들이나 하는 말이다. 일반 학생들이 고기를 먹어봐야 뭐 얼마나 먹겠나. 저들에게는 이 고기마저 진미중의 진미다.”
“······.”
“거기에 네가 직접 만든 이 소스도 무척이나 고기와 잘 맞지. 평생 이런걸 언제 먹어보겠나? 저 아이들에게는 일 년. 혹은 삼 년에 한 번 있을 포식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처음에 저 녀석들이 머뭇거리면서 고기를 잘 안 집었던 것과 익자마자 다가왔던 건···.”
“그냥 울프람. 네가 무서웠던 것 뿐이다. 그리고 본능을 못 참은 것 뿐이고.”
“······.”
그렇구나.
그게 또 그렇게 되는구나.
“하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서스럼 없이 고기를 집으러 왔지? 코튼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
“모르긴 몰라도, 이 자리에 있는 학생들 중 몇몇은 너에게 작게나마 호의가 생겼을 거다. ‘무한정으로 고기를 먹여주는 선배님’이라고 말이야”
“그런가.”
그렇구나.
그러면 한 가지 의문이 또 남는다.
“실피아. 하나 더 묻도록 하지.”
“말해봐라.”
“이건 전부 이브가 설계한 건가?”
고기가 남는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예정되어 있었다고는 하나 기사학부생들을 모집하고.
나를 대놓고 전면에 드러내서 고기를 굽게끔 만들고.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호위로 실피아를 붙이고.
자신이 전면에 나서서 인지도를 올릴 수 있었음에도···.
제프린 내에서 내 이미지가 바뀔 기회를 제공했다?
“···말을 아끼마.”
“그런가.”
그렇구나.
···이브가 나를 배려했단 말이지.
“건방진 녀석이군.”
“···신하 앞에서 주군을 모욕하는 건가?”
뭐.
사실이 그런걸 어쩌겠어.
퓨어 메이지 주제에 골골거리면서 자기 앞가림이나 할 것이지.
···나중에 포션이라도 한 병 줘야겠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