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23)
022. 달콤한 반역의 맛
시험은 코앞으로 다가왔고, 나는 한동안 아침 장사를 줄이기로 했다.
여기서 더 장사를 했다가 체력이 고장나면 그대로 퇴학엔딩이다. 그건 안 될 일이지.
“아무튼 그래서 한동안 아르바이트도, 일거리도 없다.”
“···어째서입니까?”
“못 들었나본데, 나는 미니 테스트를 쳐야 하니 바쁘다.”
일자리를 주십사 하고 찾아온 네프티는 내 말에 인생이 끝장난 표정을 지었다.
“기사학부도 시험이 있을 텐데”
“통과했습니다.”
“지나치게 빠르지 않나? 무슨 시험이었지?”
“3일간 지정된 산맥에서 살아남으면 통과할 수 있는 생존 시험이었습니다. 몬스터는 안 나온다고 하나 맨손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산이었습니다.”
“그래서?”
“1일차에 통나무로 된 오두막과 나무줄기를 엮어 만든 해먹을 만드니 내려가도 된다고 했습니다.”
“······.”
그야 그렇겠지.
“음 그래서 남는 며칠간 아르바이트라도 하려고 했는데, 어떻게 하지요. 이러다간 이번 달 생활비가 위험합니다.”
“산행에서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돈을 그리 썼지?”
“집에 송금할 때 까지는 어느 정도 생활비를 남겼습니다.”
“그런데?”
“새 학기 준비물을 사고 나니 돈이 없었습니다. 기사학부는 비품을 많이 소모 하니까요. 목검도 다 돈입니다.”
그건 실로 슬픈 일이다. 게임 시스템과는 또 다른 부분이다.
그렇다고 무리하게 일을 맡길 수도 없다.
“이 편의점은 목이 안 좋으니 말이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편하게 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
여전히 지나치게 솔직하다.
생각했고, 떠올랐다.
“그렇군. 그럼 내 대신 잠깐 일을 맡아보겠나?”
“무슨 일 말씀이십니까?”
“별거 아니다. 아침에 리어카를 끌고 마법동 대학원생들 상대로 도넛이나 음료를 파는 일이다.”
“어렵지 않군요. 하겠습니다.”
“즉답이로군.”
네프티는 씩 웃었다.
“예에. 그러니 이제 보수의 이야기를 하죠. 시급은 어떻게 됩니까?”
“우선 새벽일이고 약 세 시간 장사하면 끝난다.”
“일은 쉽네요. 그러면 평균단가로?”
“그래. 시급 8,720린으로 직접 의뢰 방식이다. 기사학부에 수수료를 낼 일은 없지.”
“좋습니다. 완벽하군요.”
“하지만, 나는 새벽 업무고 특근인 만큼 1.5배 특별수당을 지불할 생각이다.”
“13,080린···! 역시 울프람님이십니다. 위대한 황실의 그릇!”
“아니, 3시간에 4만린을 맞춰주지.”
“이 몸 다 바쳐서 충의를 표하겠습니다. 저의 신념은 당신이 걷는 길과 함께 할 것입니다.”
네프티는 한쪽 무릎을 꿇고 나에게 충의를 맹세했다.
***
그렇게 네프티에게 아침 장사를 맡겼다. 설마 돈을 빼먹을까 싶었지만, 그래도 나름 신념의 기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학생이고, 양심적으로 살긴 한다.
그냥 보수 욕심이 많은 거지 도둑질을 할 애는 아니다. 재고 확인도 내가 할거고.
아무튼 네프티는 떠났고, 나의 공부는 멈추는 일 없었다.
가끔 루디카가 찾아와서 매운 수제비를 내놓으라고 성화였기에 축객령을 내렸다.
“장사를 안 하려면 여기에 가게는 왜 연 거냐 울프람!”
또 아픈 부분을 패시네.
“주인 사정으로 며칠 간 영업 안 한다.”
“···그렇다면 홍초라도 팔아라! 내가 알아서 만들어 먹도록 하지!”
“그건 어렵지 않군.”
루디카는 그렇게 홍초를 한 아름 샀다.
저게 게임 기준으로 하나에 20린인데 대충 60린 정도에 판 것 같다.
상태이상 치료제를 세 배 비싸게 사는 호구라니···.
“루디카. 너의 시험은 어떻지?”
“음? 루디카는 괜찮다.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가.”
“루디카는 열심히 공부한다. 울프람은 루디카가 마법부에 들어 온 이유를 알고 있나?”
“그건 모르겠군.”
설정집에도 적혀있지 않았거든.
“기사학부는 루디카보다 다들 많이 약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근처 학년에서 이졸데 수준이 아니면 루디카와 싸워서 승산을 점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건 그렇군.”
“하지만 마법부는 다르다. 마법은 암살자의 예측을 벗어난다. 그래서 루디카는 마법부에 들어왔다. 그래서 마법 공부는 확실하게 하고 있다. 루디카는 가문의 자랑이다.”
히죽 웃는 루디카.
기사학부는 약하고, 마법학부는 자신이 대처할 수 없는 신비가 있다.
루디카는 편하게 학점을 받아먹을 수 있는 기사학부보다 고행길인 마법학부를 택한 것인가.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미지를 인지하기 위해.
실로 마음에 드는 삶의 방식이다.
“루디카. 이 국물도 가져가라. 어포로 우린 그 국물이다.”
“울프람은 실로 좋은 녀석이다.”
“그리고 시험 날 까지는 가급적 찾아오지 마라.”
“알겠다! 노력한다! 울프람도 시험 잘 쳐라!”
그렇게 루디카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정말 시험날까지 찾아오지 않았다.
착하네.
쟤가 부족한건 언어뿐인가?
“···잠깐. 고등한 마법 수업을 수강할 수 있는데 말이 어눌하다고? 그게 가능한가?”
나는 무언가 섬뜩한 생각이 들었으나 이내 생각을 접었다.
깊게 생각하지 말자.
“암살자를 깊게 파고드는 건 안 좋은 일이지.”
목숨은 소중하니까.
***
아일라는 그 날 이후로도 에너지 드링크를 만끽했고, 우리는 스터디를 가졌다.
우리 대단한 아일라 선생님은 본인의 공부를 하시면서도 빈 틈 없이 내 공부를 봐주셨고, 마지막 날 채점을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 정도면 합격은 별 문제 없을 거 같아요. 객관식은 아마 거의 합격일거고, 주관식은···. 잘 모르겠네요.”
“그만큼 불안한가?”
“교수님이 천편일률적인 해답을 바라지 않으신다고 해야 할지, 관점을 비트는것을 좋아하세요. 천생이 학자세요.”
“그런가.”
“울프람과는 또 잘 맞을 수도 있겠네요. 울프람은 모든 것을 보는 관점이 다르니까요.”
“과찬이다.”
아일라의 말을 가볍게 넘겼지만 생각해보면 이건 또 어마어마한 꿀팁이다.
“그럼 오늘 공부는 이쯤 할까요. 내일이 시험이니까요.”
“아일라. 나의 공부를 봐 주느라 고생이 많았다.”
“어머, 천하의 울프람에게 순수한 감사인사를 받는 날이 오다니.”
그리 말하며 아일라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키득키득 웃었다.
“네 공부는 괜찮나?”
“최상위 권에 가면 지식을 머릿속에 넣는 것 보다는 얼마나 실수하지 않느냐의 승부에요. 남을 가르친다는 건 엄청 좋은 복습이 되는 걸요.”
그리 말하는 아일라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저게 에너지 드링크의 부작용···. 일리는 없나. 아마 긴장하고 있는 것.
음.
여기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름 배운 것도 있고 하니 은혜를 갚고 싶긴 한데···.
“아 맞다 울프람. 마동석 냉동고는 시험이 끝나고 도착할 거에요. 최대한 빠른 편으로 구해봤는데 어쩔 수 없더라고요.”
“그런가. 괜찮다.”
그렇군 마동석 냉동고도 받기로 했었지.
그렇다면 ···아하. 그게 있겠다.
“아일라.”
“이번 시험은 반드시 ···네, 네?”
“마동석 냉동고가 오면 내가 괜찮은 간식을 만들어주지.”
“와아···.”
이거면 조금 긴장이 풀리지 않을까.
아일라는 해맑게 웃다가 이내 올라간 입꼬리를 거두고는 흠흠, 두어 번 헛기침을 하고 또렷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울프람. 그 간식은 반역이 성공하면 받을게요.”
“좋다.”
그래.
이게 아일라지.
***
당연하지만 시험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그럼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1문. 상대가 기병 200을 중심으로 속도전. 포위전을 펼칠 때. 보병이 50%를 차지하는 아군 병력 1천에 4티어 대마법사가 한 명 끼어 있다면, 마법사는 어떤 식으로 활용됨이 옳은가?(단 4티어 마법은 1회로 제한한다.)】
전장에서의 마법사들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이 세계의 지식을 묻는 시험이었고 객관식이었다.
객관식 9문제에 주관식 1문제. 배점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객관식 6문제는 확실하게 아는 문제였다.
이것만 다 풀어도 확실한 점수를 딸 수 있을 거고 객관식 6문을 맞췄다면 그리 망한 것도 아니다.
우선 객관식을 확실하게 풀고, 주관식 지문으로 넘어갔을 때. 생각 외의 문제에 조용히 눈을 치켜떴다.
“이건···.”
【전장에서 대마법사의 다른 활용법을 논리에 갖춰 서술하시오.】
아 또. 어쩌다 이런 문제가 나왔담?
“어디보자···.”
마음대로 쓰라고? 논리만 갖추면? 아 내가 또 논리야 놀자의 위선생님을 존경해서 3권을 완독한 독서 어린이 출신이야 임마.
이런 문제 내면 설정충 겜돌이가 참겠어요 못 참겠어요?
***
시험은 무난하게 끝났고, 채점은 신속했다.
아무리 그래도 다음날 발표라니 지나치게 빠른 거 아닐까. 수강생이 오십 명 남짓이라 쉽게 채점했나?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봐라 교수 옆의 조교들 눈이 퀭하다. 아마 교수가 어제 밤을 새워 대학원생들을 신명나게 굴렸나보다.
아무튼 그런 불행한 선택을 한 대학원생들의 처지를 동정 할 이유는 없었고, 교수는 담담하게 성적을 읊었다.
“이하의 학생들은 낙제점이다. 무블. 리퍼리. 엔도르. 쿼크···.”
아니 오십 명 있는데 이렇게 죽이기가 들어간다고?
중세는 중세다 이건가?
시험은 그냥 조용히 통지해주거나 최상위 몇 명만 말해주면 되지 저기 흙마법 필스의 꼴 좀 봐 울려고 하잖아.
봐. 울프람도 울려고 하잖아!
그리고 그렇게 하나 둘 낙제점 학생들의 이름이 불려지기 시작할 때 내 심장은 미친듯이 울부짖었다.
“이상으로 낙제점은 끝이다.”
어?
내 이름이 ···없어?
“그 다음으로 중간급부터 중상위급까지 성적을 발표하지. 디센트. 아이오. 스트라티스. 폴카. 레에븐. 필그림. 울프람. 라투아.”
순간 주먹을 꽉 쥐었다.
됐다.
합격했다!
중위부터 중상위라고 하니까 정확히 어디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살아남았다.
“다음은 최상위권 성적이다.”
아일라와 나는 다른 과목이지만, 최상위라고 하니 그녀의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다.
“······.”
나는 살아남았다. 살아남았다고 치자.
그럼 아일라는?
그리고···.
“이상으로 모든 시험 결과 발표를 마치겠다. 전원 수고 많았다. 특히 이번 주관식 시험에는 실로 흥미로운 대답이 몇 나왔더군. 나는 학생들의 발전을 항상 응원한다. 그들에게 씌워진 편견이 아니라, 학문을 대하는 자세로 평가하고자 한다. 뜻이 있다면 찾아오도록, 대학원 과정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
왜 교수님은 저를 빤히 보고 그런 말씀을 하세요?
***
편의점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석양이 져 있었으며, 새로운 물건이 하나 도착해 있었다.
“벌써 설치를 끝내고 갔나.”
돌아오니 설치되어 있는 마동석 냉동고.
어마어마한 그 크기와 위용을 보며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저 덩치 봐봐 어우.
“아일라의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실험을 할 겸 빠르게 간식을 만들도록 할까.”
우선 오렌지 빈즈와 아쿠아 빈즈를 섞어서 오렌지 주스를 만들고 설탕을 섞은 뒤 냉동고로 투입. 그 뒤에 크림 빈즈를 만들어서 작게 나온 냉장실로 투입.
그렇게 한 시간 쯤 지났을까.
편의점 앞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울프람.”
“왔나.”
아일라가 도착했고 나는 우선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그리 밝지 않다.
성공하지 못한 것인가. 또 차석인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마법부 3학년 수석 레지나 시엘라는 엘프중에서도 특출난 존재.
위그드라실의 현 마스터이자 진짜 천재다.
“졌나. 너무 상심하지 마라.”
“지진 않았어요!”
“음?”
“하지만 이기지도 못했어요.”
그 말은 즉.
“그 레지나 시엘라와 동점이라는 건가?”
“네···. 만점 이상은 줄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군.”
“우우. 상대는 이미 1등이고, 2등인 제가 동수를 이뤘다면 반역의 의지 1점을 추가해서 101점을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건 어디 채점 방식이지.”
아일라는 끝없이 꿍얼거렸고 나는 눈앞에 일어난 가장 큰 변화를 빤히 바라봤다.
3막에서 떨어져나갈 아일라가, 초장에 그렇게 켈터스에게 한 대 맞고 비뚤어 졌을 아일라가.
조용히 성장해, 어느새 인가 6막 7막. 아니 최종막에서도 충분히 활약할 캐릭터와 어깨를 맞댔다고 한다.
나는 이 캐릭터. 아니지. 이 아일라를 몇 백 번이나 쓰러트려 왔다.
허나 단언 컨데, 이런 아일라는 처음이다.
“따라 잡을 수 없던 녀석을 잡았다. 충분히 멋진 반역이다.”
“그, 그런가요? 울프람이 그렇게 말하면 뭐,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예 그렇죠. 저는 반역에 성공했어요!”
태세전환 속도 보소.
“잠시만 기다려 봐라. 약속대로 훌륭한 간식을 만들어 주지.”
“아 맞다. 울프람은 성적이 어땠나요?”
“중위에서 중상위 사이라고 하더군.”
“와아!”
교수의 마지막 시선이 신경 쓰이긴 하지만, 그 부분은 말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아일라를 위해 생크림을 올린 과일 셔벗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시험으로 지친 뇌를 위해. 사각사각 부드러운 셔벗 위에 듬뿍 올라간 생크림.
몸에 좋다고 말 할 수는 없지만, 뇌는 이것을 필요로 하고, 혀는 이것을 즐긴다.
아일라는 이 간식에 한줄 평을 남겼다.
“달콤한 반역의 맛!”
“그건 또 무슨 맛이냐.”
“반역의 맛이죠!”
···하여간 이 반역무새.
허나 오늘은 호응해 주기로 했다. 그만큼 수고하기도 했고, 진짜 여러 의미로 반역을 이뤄낸 것은 맞으니까.
“그래. 네가 이뤄낸 반역의 맛이다.”
“아뇨! 아니에요!
“음?”
“울프람과 제가. 즉. 우리가 이루어낸 맛이죠!”
아일라는 그렇게 스푼을 내밀었고, 그 끝에 내 스푼을 부딪치며 픽 웃었다.
쨍 하는 소리가 기분 좋게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