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233)
232. 1677만7216색의 마음
확실하게 말하자.
이들이 살면서 느낀 삶의 지식과 내 지식은 궤가 다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들은 300년 전의 지식이 완전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생각의 기틀을 깨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이 세계에 처음 왔을때 했던 일은 바로 빈즈를 찾는 것이었다.
빈즈는 콩 주제에 참으로 여러 맛을 내포하고 있고, 상위 빈즈로 가면 한 알 만으로 체력을 거의 최대치까지 회복시켜주는 녀석도 있다.
그 때문에 빈즈는 자연에서 구하기 좋은 재료면서 동시에 키우기도 쉽고 변형체를 만들기도 쉽다. 빈즈 컬렉트가 괜히 개꿀잼 컨텐츠였던게 아니다.
나만해도 어느정도 빈즈 컬렉터 칭호를 채우고 있다. 원체 양이 많아서 반 년 정도로는 택도 없어서 문제지만 슬슬 결과가 나올때가 됐다.
아무튼 빈즈 이야기를 왜 하냐면, 이 세계에 와서 처음 빈즈 컬렉터 칭호를 얻은게 나면서…. 동시에 이 세계 누구도 빈즈를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야 뭐 먹으면 마비가 걸리는 빈즈부터 일정확률로 즉사 상태이상을 거는 놈도 있다 보니까. 분류하기 쉽지 않겠지.
이해할 수 없는 건 또 아니다.
게임이야 죽으면 살릴 수 있고, 살아나면 다시 테스트 할 수 있었다.
나는 파티원을 죽인 적 없지만 대신 켈터스는 오지게 죽였거든 이게.
그렇게 생명을 담보로 수 없이 많은 시행착오와 공략본이 만들어준 지름길이 있다.
‘내 생명이 아니니까.’ ‘고작 데이터니까.’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들 금단에 가까운 지식을 가지고 있는 나는 교수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이런 나의 지식을 교수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허어. 이게 빈즈란 말인가!”
“빈즈? 그 콩이란 말인가!”
“빈즈는 같은 무늬를 하고 있어도 그 특색이 다 다르다 들었다만…. 이건 정말 안전한 것 맞습니까?”
“맞다. 전부 감정이 끝난 빈즈들이다. 신선한 맛이지.”
“부장교수 임명때 황실에서 마셨던 최고급 홍차맛을 빈즈로 낼 수 있다니…. 허허. 이것 참….”
“그렇다면 가져가서 연구해 보는것도 좋지 않겠나. 빈즈의 효과를 알았으니 내뿜는 마력 파장을 기록하면 꽤 재밌는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
“…흠. 꽤 유쾌한 발상이군요. 시험삼아 해볼만 하겠습니다.”
그야 뭐 정신을 못 차리지.
어느새인가 내가 반말하고 교수들은 존대나 반존대를 하지만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속성 중첩은 상위 티어 마법까지 가능하다던가, 상급 물약을 효율적으로 만드는 법. 골렘 기동식에 대한 대화까지.
‘나만이 알 법 한 게임 정보’는 풀지 않았지만 ‘게임적 측면’에서 발상을 제시하는 것 만으로도 교수들은 크게 만족했다.
아무튼 나와 교수들간의 ‘지식’의 갭과 그 방향성을 검토할 수 있어서 괜찮은 대화였다.
그렇게 대화가 쭉 이어지고 세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관점의 연구를 시작할 수 있겠군요. 정말 유익한 하루였습니다. 보답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지만…. 이번 중간고사 점수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 합니다.”
“이 안에서 내가 수강하는 건 고등 마법 이론 하나 뿐인데….”
“하하. 그렇군요. 그럼 제 과목 하나의 점수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른 교수들에게도 그리 말해두죠.”
“그래도 괜찮나? 성적 평가는 공정한 것이 교수의 소임 아닌가.”
“하하. 여기는 제프린이고, 저는 교수입니다.”
와.
완전 나쁜 사람이었네 이 교수도.
“학점은 감사하게 받도록 하지.”
“예에.”
나도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말이야!
***
한밤 중.
제1기숙사 글레스트헤임.
각 국가의 왕족. 혹은 중앙에서도 백작가문 이상의 차기 가주. 최소 그 정도 지위를 확보할 수 있는 전도유망한 학생들만 입주를 허락 받은 천재들의 낙원.
최고로 호화롭지만, 그렇기에 정숙하고 예절을 지켜야 하는 이 곳의 밤은 다른 기숙사들보다 압도적으로 고요하다.
풀벌레 소리, 가을 밤 바람이 가벼이 부는 소리. 그런 작은 소리들이 귓가를 때리는 천둥이 될 정도로 고요한 기숙사의 밤.
그 정적을 깨트리지 않은 채 한 소녀가 건물 앞으로 느긋하게 걸어왔다. 쥐고 있던 단검을 가볍게 반 바퀴 돌린 후 검집에 밀어 넣었다.
딱히 소리를 숨기는 것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발걸음이었지만 그 어떤 소리도 나지 않는 것을 보면, 이 소녀의 체술이 얼마나 극한까지 은밀하고 정밀하게 가다듬어졌는지 알 수 있다.
철문은 굳게 닫혀 있는 상황이지만, 소녀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녀는 평범하게 걷던 중 다음 발걸음에 아무런 전조 없이 뛰어올랐고 그렇게 허공을 날아 글레스트 헤임의 최상층 벽에 붙었다.
그대로 오른손 검지 하나만으로 벽에 붙은 소녀는 그대로 능숙하게 미끄러져 내려가기 시작했다.
체중 이동은 신묘함의 극치를 달려 손가락 하나만으로 의지하고 있건만 때로는 정지하며, 때로는 가속했고, 그 끝에 한 창문 앞에 섰다.
스윽 하고 몸을 안으로 옮겨 방 안으로 들어간 소녀는 어깨를 으쓱했다.
울프람마저도 ‘훌륭한 몸놀림이구나’ 라며 박수를 칠 정도의 정도의 기교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자신의 집 정문을 오가는 듯 한 평온함.
루디카 핫산 샤도우의 귀가였다.
“…잘까.”
“오늘은 조금 늦었네요?”
“어라. 세실. 깨어 있었어?”
“아뇨. 자고 있었답니다. 다만 루디카가 돌아오는게 느껴져서요.”
“내가 돌아오는걸 눈치챈거야? 실력이 많이 좋아졌네. 아니면 내가 무뎌졌나?”
루디카는 어깨를 으쓱했다.
평소처럼 행동했고 그건 완벽하다는 의미였다.
벌써 실력이 떨어진 걸까. 아니면 세실의 실력이 그만큼 오른걸까.
루디카의 물음에 세실은 고개를 저었다.
“보이는게 달랐어요.”
“…보이는게 달랐다. 혹시.”
“네. 달빛과 단검이 말해주더라고요.”
“…아하하.”
“어쩌다 그런 휘황찬란한 단검을 주셔서는….”
휘황찬란이라니.
뭐라 말하고 싶었지만 할 말은 없었다.
울프람이 만들어준 단검은 다섯 속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루디카의 숙련도가 오를 때 마다 단검이 호응해주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온갖 상태이상을 부여할 수 있는 단검이라니, 이 얼마나 특수하고 다채로우며 …또 사랑스러운가.
쓸 때 마다 만든 사람의 얼굴이 떠올라서 참을 수 없을 정도였다.
다만 …샤도우 가문의 단검들 보다는 당연히 빛 반사율이 높아서, 달빛에 비춰진 검신이 세실의 눈에 띄었다는 것이다. 한 밤중에는 최대한 빛이 안 나게끔 하는데도 말이다.
“그래도 이 단검은 계속 쓸 거야. …세실은 반대해?”
“루디카의 실력이 역대 핫산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라는 것도, 그 단검이 얼마나 유용한지도 알아요. 그래도 그 작은 차이가 혹시라도 루디카를 위험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면….”
세실의 말에 루디카도 고개를 끄덕였다.
옛날 소설에도 기습하려던 암살자들을 주인공이 막아서며 ‘크윽 어떻게 알았지?’ 라는 암살자의 물음에 ‘달빛이 말해주더군, 네 검은 너무나 빛이 나’ 라고 대답하지 않나.
루디카 입장에서는 그만한 놈을 타겟으로 잡았다면 단검을 뽑는 순간 바로 행동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뭐 아무튼 영 있을 수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울프람은 이 빛나는 다채로움을 루디카 본인의 색으로 삼으라고 했지만 세실의 걱정도 받아들였다.
그래서 내놓은 결론은 실로 명쾌하고 깔끔하며 누구나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럼 내일 울프람을 만나보지 뭐. 아마 좋은 해답을 내 줄 거야.”
“그 말을 핑계로 놀러가고 싶은 거 아닌가요?”
“…….”
그 말에는 고개를 돌릴 뿐 대답하지 않았다.
***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아먹는다는 말이 있다.
그럼 반대로 일찍 일어나서 잎사귀 개조질 예정이었던 벌레는 대체 무슨 죄가 있어 잡아먹힌다는 것인가.
부지런함이 주는 행복은 상대적이라는 의미인가.
아무튼. 내가 이 이야기를 왜 하냐면, 학점 하나 따서 개이득이라는 생각과, 밀푀유의 ‘교수들과 지식담론을 나누다니 선배님 대단해욧!’ 의 폭풍 칭찬을 약 두 시간에 걸쳐 들은 결과 기분이 업 된 나는 일찍 잠들었고 당연히 얼리버드 기상을 해냈다. 그리고….
“울프람. 깼나.”
“노크는 하고 들어와라.”
둥근해가 떠서 자리에서 일어나 제일먼저 눈을 닦고 본게 암살자라는 사실에 깊은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다.
눈 앞에서 방긋방긋 웃으면서, 의자에 앉아 이쪽을 바라보는 암살자 소녀. 루디카 핫산 샤도우.
“아…. 곤히 자고 있어서 몰래 들어왔다.”
“그런가.”
뭐. 최근 루디카와의 관계는 나름 괜찮다고 생각한다. 모험도 다니고 밥도 먹고 선물도 하고 대련도 한 판 했고, 이거 완전 깐부 아니냐.
그래. 내가 악행을 저지르지 않는 한. 루디카가 갑자기 교수님이 되어서 나를 죽일 일은 없다.
최근 저지른 악행 …은.
【그럼 학점은 감사히 받도록 하지】
앗.
“그래서 울프람. 이것을 좀 봐다오.”
“단검은 왜 꺼내는 것이지?”
그걸 왜 꺼내고 그래 무섭게.
“…알다시피 이건 울프람 네가 만들어준 단검이다.”
그래. 내가 만들어주긴 했지.
이제 그걸로 뭐 어쩌려고 그러니?
루디카가 이정도 지근거리에서 무기까지 쥐고 있다면, …이전 대련과는 다르게 나에게 승산은 없다. 괜히 켈터스로도 ‘단 한 번’도 막아낸 적 없는 교수님이 아니다.
그러니까….
남은 방법은 단 하나.
“【루디카. 우리의 관계는 썩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우리 교섭하지 않을래?
“으, 응? …그렇다. 후후. 좋은 관계다. 나쁠 건 전혀 없지.”
“【그렇다. 우리는 실로 좋은 관계였지. 함께 요리를 만들고, 밥도 먹고, 모험도 하고, 야영도 하고, 거대 몬스터도 잡고, 대련도 했으며, 나는 너에게 단검까지 선물했다. 그렇지?】”
“……어, 어? 맞아. 응. 그랬지. 후후. 그건 지금도 핏빛으로 칠해진 내 삶 전체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어. …고마워. 울프람.”
…음?
루디카의 상태가 이상하다.
교섭이 보통 이런식으로 진행되던가?
일단 황실혈통을 끄고 루디카에게 물음을 던졌다.
“정확하게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다시 물어도 되겠나.”
“…아. 아하하. 그게 으음. 이제 와서 말을 꺼내자니 부끄럽네. 나는 이 단검을 받았을 때 맹세했는데 말이야….”
“말 해 보도록.”
“그게 말이야….”
루디카는 머뭇거리다가 이내 설명을 시작했다.
요컨데 단검이 달빛을 너무 많이 반사한다는 점.
자신의 실력으로는 상대가 그걸 눈치채기 전에 처리할 수 있지만, 세실이 걱정한다는 점.
“그렇군. 타당한 지적이다.”
“…하지만 울프람은 이 단검으로 나에게 오색으로 빛나기를 원했으니까. 이제 와서 칙칙한 묵빛으로 칠하는 건 …이 단검을 만들어준 너에 대한 모욕이겠지?”
아 그거.
“아니다만.”
“아니야?”
“아니다.”
“…어, 어.”
루디카는 입을 벌리고 헤에 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뭐 단검 그거 무광블랙으로 코팅 할 수도 있는거지.
“결국 마음이 바뀌어야 하는 법. 네 마음은 단검 색에 의해 좌우되는가? 그렇다면 그 단검의 색이 천 가지를 넘어가면 천개의 빛을 내나?”
게이밍 단검 만들면 마음이 1677만색! 와!
“…그건 아니지.”
“그런 것이다.”
“그렇구나. …너는 언제나 내게 깨달음을 주는구나.”
“본제로 들어가지. 그래서 그 단검을 빛을 반사하지 않는 묵빛으로 바꾸고 싶은 건가?”
“…어, 응…. 하지만 우리 가문의 비전기술로 만든 단검도 아니고 …이 정도는 그냥 써야 하지 않을까….”
“무얼. 어렵지 않은 일이다.”
“…진짜?”
“음.”
드디어 본편 중 온갖 정신병자를 만들어 낸 부분을 팔 때가 된 것인가.
그 이름도 유명한 ‘커스터 마이징’
나만의 색으로 머리카락을 물들이고, 무기나 갑옷을 염색하는 온갖 정신병자들의 컨텐츠!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무지개 색이 하나하나 번갈아 초고속으로 빛나는 방패를 든 네프티의 쉴드 스트라이크…!
우리는 이를 컬러 코팅이라고 하고, ‘코팅제’는 당연히 게임 내에서 입수가 가능하다.
보자.
그럼 어디…. 가장 처음 코팅제를 입수할 수 있는 곳이…. 아.
“그럼 움직이도록 하지.”
“어, 어딜 가는데?”
“잔영의 숲 안쪽이다.”
“…거길 울프람이 가도 되나?”
“숲이 아니다. 숲 안쪽으로 들어간다.”
울프람이 채집권으로 이권장사를 하다가 학생회한테 몰수당한 맵.
그곳은 1차 DLC에서 뉴비용 재료 채집맵으로 부활했다.
그리고 그 안에는 하나의 던전이 있다.
“지금부터 던전 탐사를 나선다.”
“준비를 단단히 해야겠네. 나도 각오를 다지겠다.”
“아니 몸만 가도 된다.”
“……응?”
1차 DLC 뉴비용 맵.
하르크의 수하중 하나 존 마니어스의 이름을 따 지은 뉴비 구제 던전.
통칭 존마니의 던전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