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234)
233. 어마어마하고 무시무시한 던전
D/Z SAGA를 대충 요약하면 ‘히로인과 함께 청춘을 구가하며 닥쳐오는 사건을 해결하는 아카데미 파티 RPG’ 였다.
크게 ‘수업’ ‘일상’ ‘히로인 이벤트’ ‘메인스토리’ ‘모험’ ‘던전탐사’ ‘시험’ 등의 파츠가 나뉘어 있었으며, 하나하나 세심한 디테일을 자랑했다.
어떻게 이 나라에서 이런 게임이 나왔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수상하게 돈을 때려박은 게임.
풀 보이스는 당연하고 충분한 파고들기 요소. 각 히로인들마다 개성적인 캐릭터성과 재미있는 스토리. 리얼타임 배틀이면서 동시에 수 백 수 천 가지의 스킬 조합.
보스들은 특히 충분히 육성된 파티를 짜서 레이드를 해야 한다는 점. 거기에 뛰어난 아군의 인공지능까지.
특히 인공지능은 캐릭터별로 다르게 설정되어있어 스펙이 높더라도 인공지능이 구리면 파티에서 못 써먹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건 비밀 스테이터스라 확인도 못 했기에 다들 알음알음 정보로 공유해야 했다.
출시 전에는 말 그대로 ‘갓겜’의 위치에 서기에 충분했다 할 수 있다.
물론 실제 출시되니 버그도 있고 이것저것 빠져나갈 요소도 있다. 허나 그것을 제보했음에도 일부러 패치하지 않은 것은 그런 자잘한 버그까지 개발사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였다.
허나 이 갓겜에도 끔찍한 문제가 있었으니, 자잘한 버그도, 엿 같은 일정관리도, 생각보다 빡센 던전 플레이도 아니다.
바로 처음으로 만나는 진짜 레이드 보스. 뉴비 학살자. 마법과 물리를 전부 겸비하며 민첩이라 회피도 높은데 마법 방어도 장난아니게 높고 설정된 인공지능 레벨도 최상급에 일정 턴이 지나면 궁극의 8소절 마법을 영창해서 파티를 즉사시키는 괴물중의 괴물.
뉴비 절단기.
다른 말로 반역의 숙녀.
아일라 트라이스타였다.
수 많은 뉴비들을 작살낸 아일라 트라이스타는 뉴비들에게 트라우마를 심어줬고, 이러다 응애 다 죽어요!! 하면서 수 많은 고인물들이 5,700자의 장문의 메일을 보냈으며 그 봉화를 내가 시작했다.
처음에는 ‘의도된 난이도입니다.’ ‘까다로운 선택이 필요할것입니다.’ 같은 반응을 보이던 개발사도 유저들의 성원에 지쳐 결국 대답을 내놨다.
그것이 바로 ‘DLC Pack 1.’이었다.
어떤 내용이냐면.
【D/Z SAGA DLC Pack 1】
【최고 난이도 맵. 천공의 성역이 추가됩니다.】
【루트에 관계 없이 12막을 진행한 세이브 파일로만 진입할 수 있습니다.】
【※어둠 속성의 파티를 꾸리는 것을 권합니다.】
【※주의 2회차 이후의 플레이를 권합니다.】
【특수 직업군이 추가됩니다.】
【닌자】 【무인】 【카드마스터】 외 5종. 총 8종의 직업이 추가됩니다.
【히로인들의 스킨이 추가됩니다.】
【이브 폰 로엔그린과 레지나 시엘라의 스킨이 추가됩니다.】
【어둠의 황녀 이브 폰 로엔그린】
【보유 속성이 ‘어둠’으로 변합니다.】
【빛의 소녀 레지나 시엘라】
【보유 속성이 ‘빛’으로 변합니다.】
【※본편 스토리와 관계 없이 구매시 바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초심자 분들을 위한 던전이 추가됩니다.】
【하르크의 곁을 수행하던 존 마니아스가 모든 아이들에게 상냥한 교육을 해야 한다며 제시했고, 하르크는 이에 한참을 고뇌하다 만든 던전입니다.】
【게임을 쉽게 만들어주는 초보자 전용 아이템이 가득한 던전입니다.】
【다만 그 던전의 아이템을 활용하면···?】
***
대단한 DLC였지.
너무 대단해서 카페가 불타기도 했고···. 분탕들이 날뛰고, 게임도 안하고 까고 싶은 놈들이 와서 글쓰고 카페는 똥통이 되고 제목 낚시에 혐짤 올라오고 카페 좀 정리하려고 하면 ‘좆영진 탄압한다’ ‘‘슈퍼 영진’ 닉 지금보니 개찐따 같으면 개추’ 같은 글도 날아오고 내 카페 마스터 인생 최악의 나날이었다.
그 때는 진짜 죽는 줄 알았다.
물론 싹 다 잡아 죽였다.
내가 카페 마스터라는 건, 나에게 전권이 있다는 거잖아? 그러니까 죽일 권한도 내게 있다는 거잖아?
[그러니까 내가 죽여도 된다는 거잖아?]하지만 평소에도 ‘제 절대권력이 꼬우면 완장을 하겠다고 하십시오. 고닉 여러분’이라고 했는데 누구도 지원하지 않은걸 보면, 내 철권통치에 따르겠다는 이야기 아니었을까?
아님말고.
뭐 아무튼 나와는 참 악연이 깊은 던전이다.
돌길을 걸으면서 잠시 생각에 빠져 있자니 한참을 앞서 걷던 루디카가 내 앞에 스윽 다가왔다.
“···울프람. 그리 잡생각이 많은 채로 걸으면 위험하다.”
“위험해 보이나?”
“···으음. 그건 아니군. 미안. 실수했다.”
그래.
재주가 17쯤 되면 모든 행동에 이로운 보정이 붙는다.
제프린에서도 2학년 2학기 기준으로 ‘현역’으로 쓸만한 스테이터스다.
내가 3학년 2학기라는게 문제긴 한데 ···뭐 아무튼.
나는 잡생각을 하며 돌길을 걸어도 돌뿌리에 걸려 넘어지는 일 따위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오래 못 걷는게 문제지.
문제가 산적해 있네. 풀어도 풀어도 끝이 없어 진짜.
“그래서 울프람 이 길이 맞는가?”
“맞다.”
“설마 잔영의 숲에 이런 뒷길이 있을 줄이야···. 동부 숲에서 들어가는 길이 있었나.”
“음.”
없었는데요. 있었습니다.
“그러고보니 루디카. 한 가지 묻고 싶은게 있다만.”
“뭐가 궁금한가. 울프람?”
“존 마니어스라는 사람을 아는가?”
“알다마다. 열두장로중 한 명 아닌가.”
“······.”
그렇군.
원작 게임에서는 갑작스럽게 설정이 추가된 인물이었는데, 여기는 처음부터 있다 이거지.
그럼 DLC 기준인건 확실하고···. 이건 또 생각할 부분이 많네.
이렇게 세계와 나의 지식의 오차를 미세조정하는 동안, 우리는 그 던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는?”
“존 마니어스가 남긴 던전이다.”
누가 봐도 초보자용 던전이에요. 라고 적혀있는 듯.
부직포로 만든 듯 한 바위들로 입구가 만들어져있고 입구 옆 팻말에는 꼬마가 대충 그린 인간들이 손잡고 하하호호 웃고있고 그 뒤에 공룡이 불을 뿜으면서 웃고 있다. 12색 크레파스로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려보아요. 수준의 그림이다.
그 뿐일까. 입구 주위에는 분홍색 노랑색 하늘색 흰색 꽃이 초롱초롱 피어있고 바람이 기분좋고 따듯하다.
“던전 인가?”
“던전이다.”
“······내가 아는 던전과는 좀 다르군. 뭐 이렇게 평화롭지···? 그리고 입구에 저건 뭐지?”
그리고 입구에는 무언가 사람 팔 같은것이 있다.
그래 저거.
제작진의 돌아버린 발상이
“···다가가지 마라.”
“어, 음. 알겠다.”
그래 저거.
제작진이 돌아버린게 아닌 이상 할 수 없는 미쳐버린 발상.
“들어가지 않나? 아니면 그만큼 이 던전의 방어 마법이 강력한가?”
“들어 갈 거고 방어 마법도 강력하지 않다. 문제는 ···전승에 따르면 저 팔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저 팔은 낙인을 찍는다.”
“낙인?”
“그래. 두려운 낙인이지.”
정문으로 들어가자마자 저 팔은 플레이어의 팔을 잡고 손등에 무언가를 꾹 찍는다.
데미지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건 마음을 산산조각 내는 ‘도장’이며 동시에 ‘낙인’ 이다.
무시무시하고 끔찍하게도 저 골렘의 팔은
【♡초보♡】
라고 적힌 낙인을 손등에 강제로 찍어버린다.
이 낙인은 클리어 이후 2주차로 넘어가기 전 까지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다.’
진짜 절대로다. 이
건 고인물인 나도 해제가 불가능하다.
12막을 클리어한 뒤 천공의 성역을 깨서 환생의 물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다.
더욱 두려운 것은 스크린샷을 찍으면 오른쪽 위에 【초보에오♡】라는 워터마크가 박힌다는 점이다.
무시무시하고 두려운 절대적인 낙인.
그래.
이거 때문에 카페가 터졌다.
뉴비들이 힘들면 어 초보팩좀 쓸 수 있지 제작사가 미쳤냐고 말이다.
하지만 이 건에 대해 제작사는 침묵으로 일관.
당연히 카페는 터졌다.
글로벌 런칭도 한 게임이라서 글로벌하게 분탕들이 쳐들어오더라.
인세의 지옥. 수라장 그 자체.
나는 그런 것을 몇 번이나 넘어와야 했다.
“그건 ···내 최고속으로도 벗어날 수 없다는 건가?”
“호승심을 부리지 마라. 그러다 너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남으면 내 마음도 같이 무너진다.”
“············응. 그, 그럴게.”
“그러도록.”
내 말에 루디카는 조용해졌다.
그래. 고인물 말은 듣는 법이야.
파티원 손등에 존마니 낙인이 박히는 걸 보고 참겠냐고.
“그럼 말이야. ···안 들어갈거야?”
“아니 들어 갈 거다. 다른 방법이 있지.”
불타는 지옥을 수습한 것은 역시나 나의 고인물 플레이 덕분이었다.
개발진도 의욕이 없어서 정말 대충 만든 던전이라 그런가 전에도 썼던 벽뚫버그를 통해 들어갈 수 있다.
정확히는 새로운 입구를 여는게 아니다.
조금 다른 꼼수다.
“루디카 입구 말고 오른쪽 첫 번째 바위 앞에 서라. 그 살짝 들어가 있는 곳에 오른발을 밀어넣고 왼 주먹으로 【강격】을 때릴 수 있겠나?”
“응. 해볼게!”
루디카는 그리 말하며 던전 벽을 쿵! 하고 때렸고, 이내 무언가가 툭. 하고 떨어졌다.
그건 뉴비들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낙인을 박던 가증스러운 골렘의 팔.
“···팔이 떨어졌네?”
“음.”
저 팔도 엄연히 몬스터 취급이라 피격판정이 바위랑 일체라서 딱 붙어서 때리면 팔에 데미지가 들어간다.
거기에 루디카의 크리티컬이 터지면 뭐, 팔 정도는 툭 하고 떨어지지.
“빨리 들어가야 한다. 저 팔은 재생하니 말이다.”
“으, 응. 알겠어!”
정말 귀찮고 짜증나는 던전이다.
심지어 이 던전의 진가는 팔이 아니라 안쪽에 있다.
자.
무시무시하고도 끔찍한 뉴비던전 파밍을 시작하자.
***
던전에 진입하자마자 보인 광경을 루디카가 한 마디로 대변해줬다.
“······뭐야 여기?”
“존 마니어스의 안배가 담긴 던전이지.”
“던···전?”
“그렇다.”
안에는 꽃밭으로 가득하고, 저 멀리서 몬스터들이 풀을 뜯으며 던전 안인데 태양이 떠있고, 구름이 둥실둥실 흐르고 그 정점으로 태양은 또 크레파스로 대충 그린 주황색 소용돌이 모양이라고 해도 여기는 던전 안이다.
“···이런 던전도 있는 법인가.”
“······음.”
“그래도 뭐, 몬스터들도 있으니 말이다. 저건 사냥하면 되겠지?”
“···아니 하지 마라. 해서 좋을게 없다.”
“그만큼 강한가?”
“아니 약하다. 끔찍하게 약하지.”
“······?”
다만 저 몬스터에도 사람의 마음을 갉아먹는 ‘안배’가 들어 있다는게 문제다.
이 초보 던전의 몬스터는 공격하면 ‘절대’ 반격하지 않으며 엄청나게 높은 확률로 아이템을 드랍한다.
초급 마정석. 하급 열화석. 빙정석. 뇌전석. 기본 마술보조재. 초보자 세트 등. 정말 초심자들의 아이템 위주로 듬뿍듬뿍 퍼준다.
다만···. 이 몬스터들은 ‘피격’과 ‘사망’의 장면이 다르다.
예를 들어 맞을 때는 【정말 잘하는걸?】 【금방 고수가 되겠어!】 라면서 윙크하면서 웃는다.
그리고 죽을 때가 더 가관인데 따봉을 날리면서 【화이팅!】하고서 죽는다.
고인물 기준에서는 보는 것 만으로도 뇌가 녹아버리는 던전.
한 걸음 걸을 때 마다 마음이 깨져서 부서져 내릴 것 같다.
물론 여기는 현실이니 그 정도의 미쳐버린 기믹을 가지고 있진 않을거라 생각하지만, 공식 설정상 ‘하르크가 못마땅해하다가 만든, 도전을 포기한 학생들의 구제책’ 같은 던전이라 ···똑같은게 있을수도 있다.
“···으, 음. 그럼 몬스터는 처리하지 않는다고 치자. 그 다음은?”
“우리의 목표를 우선해야지. 루디카. 네 단검의 색조 변화가 목표 아니었나?”
“···아. 그렇지. 맞다. 이 던전의 풍경에 마음을 빼앗겼군. 가슴 따듯하고 상냥한 풍경이야.”
“······.”
너는 그렇게 느끼는구나, 나는 수치와 굴욕과 증오와 번뇌로 가득 찬 악의 덩어리 던전으로밖에 안 보이는데 말이야.
우리는 조금 더 걸어가서 초원 필드가 아니라 던전 중간 보상방인 보물상자방에 도착했다.
보물상자는 무려 열 개였고, 나는 여기서 딱 하나만 가져갈 생각이다.
루디카가 바랐던 ‘초심자용 무기 코팅제’가 있는 상자.
“우측 끝에서 세어서 네 번째 상자를 열어라.”
“···으? 응. 알았다. 오?”
루디카가 그리 말하며 보물상자를 열었고, ‘펑!’ 하는 귀여운 효과음과 함께 상자가 열렸다.
루디카는 무슨 일이 일어나나 싶어 단검을 꺼내들었지만, 이내 별 일 없음을 깨닫고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튼.
안에서 나온 것은 무지개빛으로 찰랑거리는 약병 하나.
“울프람 이건···.”
“무기 코팅제다. 그걸 단검에 뿌리고, 네가 염원하는 색을 강하게 떠올려라.”
“아, 응. 알았다.”
그리 말하며 루디카는 단검에 코팅제를 뿌리고, 이내 단검은 칠흑같은 무광 블랙으로 물들어갔다.
정말 모든 빛을 흡수할 정도로 어둡군.
“···그 색이 마음에 드나?”
“응···. 정말 마음에 드는 색이다.”
“잘 되었군. 허나 ···네가 불편해 질 수도 있다. 그 점은 감안하도록.”
“응? ···후후. 괜찮아. 단검이 검은색으로 물든다고 해서, 내 마음까지 칙칙해지는게 아니라는 건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어. 단검은 도구. 내 마음은, 내 가슴 안에 있어.”
“아니 음. 그게 아니다. 그, 음. 단검의 손잡이 부분을 잘 봐라.”
“···어?”
루디카는 손잡이 부분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그 곳에는···. 실로 귀엽기 그지없는 강아지 발자국이 음각으로 아로새겨져 있었다.
“···어라, 이런 문양이 있었나?”
“설명이 늦었다만, 이 던전에서 나오는 물건을 쓰면 그런 식으로, 모두 처참한 낙인이 붙는다. 괜찮겠지?”
“······어, 응. 그, 그렇구나.”
루디카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손잡이를 계속해서 바라보다 이내 웃었다.
아무튼 임무는 완수했고, 집에 가서 잠이나 자고 싶다. 진짜···.
“여긴, 정말 신비한 곳이구나. 울프람. 이 안에도 던전이 이어지는 듯 하니. 좀 더 같이 들어가보지 않겠나?”
···진심이야?
여길 더 돌자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