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236)
235. 크로스카운터
편의점으로 돌아와 가게 구석에 담요를 깔고 쿨쿨 잠든 루디카를 뒤로하고, 사무실에서 오늘 루팅한 아이템을 바라봤다.
【각성의 비서】
“이게 나왔다는 것은···.”
참으로 여러가지를 시사한다.
애당초 이 아이템은 1차 DLC가 아니라 본편 기준에서도 극후반에나 얻을 수 있는 물건이다.
그러니까 【전체적인 파티 성장을 따라가지 못했지만 새로 영입하고 싶은 캐릭터】를 위한 전승서. 라고 보면 될 것이다.
예를들어 극딜마팟을 짰다고 쳐보자. 이 파티가 어마어마하게 강한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이브가 아니라 하필이면 레지나 루트고, 레지나 루트인 이상 【천족】 【마족】에 대한 즉결권은 발휘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항마력을 갖춘 마족과 대면했을 때 이 극딜 마팟은 어느새인가 모든 이점을 잃고 맵 하나 뚫기 버거워진다.
그 때 어떻게 해서든 파티를 전환하고 싶어진다. 예를 들면 【5마딜팟】에서 【1탱 4마딜팟】 혹은 【1탱 3마딜 1마방깎유틸서폿】 이런 파티로 움직이고 싶어진다.
하지만 뭐, 마법 방어력 감소를 주력으로 쓰는 캐릭터는 어떻게든 구한다고 쳐도, 지금까지 기사학부랑 담 쌓고 지냈는데 어떻게 괜찮은 탱커를 영입하겠는가. 그렇다고 키우자니 또 한 세월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각성의 비서】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 D/Z SAGA는 노력해서 맵을 뚫고 다니는 이들에게는 좋은 아이템을 얻을 기회를 주지만, 날로 먹으려는 이들은 철저하게 배제하려는 기획 의도를 가지고 있다.
“···신기하군.”
본디 저 던전에서 나오지 않았을 아이템이 하르크의 안배가 되어 나타났다.
상자의 갯수는 백 개. 당연하지만 세이브 로드가 없는 세계인 만큼, 한 번에 이 각성의 비서를 뽑았다면, 그 또한 실력으로 인정한다는 건가. 운 또한 실력이니까?
나야 뭐 아흔 아홉개의 상자의 위치와 그 내용물을 전부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이게 못 보던 상자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니까···. 이게 그런 의도의 안배라면 하르크한테 미안하게 됐고 ···잘 좀 하지 그랬냐. 이번만 형이 좋은데 쓸게. 그러려니 해야지 세상이 다 그런거 아니겠냐? 라고 말해주고 싶다.
아무튼.
“이걸 누구에게 줄지.”
이건 랜덤 옵션이 부여되는 드레스와 다르다.
명확한 의도와 목적 가지고, 파티 강화용으로 써야한다.
즉 처음부터 얼추 주인이 정해져 있다.
“지금까지의 파티 동선을 생각하면 후보는 크게 두개.”
한 명은 ···파티의 탱커를 맡아야 하는 네프티.
그리고 다른 한 명은···.
***
다음날. 루디카는 수업을 들으러 떠났고, 나 또한 강의를 들으러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 학기에는 ‘대련’을 하지 않아도 학점을 어느정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에 대련을 포기할 생각이었다.
마법사와 전장 과목 자체가 교수가 바뀌면서 학점을 따도 큰 이득이 없기도 하다.
그러니까 상대가 누가 되던 간에 승부를 포기하고 다음 학기에 더더욱 전력을 다하자.
마음을 그리 먹고 강의실에 들어가니
“자. 오늘이야말로 끝장을 볼까요.”
“···어머. 바라던 바랍니다.”
아일라와 레지나가 서로를 죽일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부터 둘은 목숨을 건 사투를 할 생각인가?”
“아뇨. 대련이랍니다. 불행하게 누군가 죽을지도 모르지만요.”
“예에. 대련이랍니다. 불행하게 누군가 죽을지도 모릅니다만.”
오.
요새 대련은 그런식으로 포장하는구나. 그건 또 처음알았네.
“그래서. 이 사투의 이유는?”
“레지나 시엘라가 저에게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아서 그래요.”
“트집이라뇨? 파스타를 삶을 때 반으로 쪼개서 넣는 것은 미식에 대한 모독 아닌가요? 중앙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에요!”
“흥. 실리적으로 생각하면 파스타를 반으로 쪼갰을 때 소지하기가 더욱 쉬워요. 거기에 반으로 쪼갠다고 뭔 큰 문제가 있나요? 서부는 그렇게 해서 먹는답니다.”
“이래서 서부의 망나니들은···!”
“중앙의 샌님들한테서 듣기 싫거든요?”
그렇군.
아일라는 실용주의자라 파스타를 반으로 쪼개는 편이며, 레지나는 미식을 따져서 그대로 삶는 편인가.
그러니까 나 생전으로 치면 부먹 vs 찍먹 싸움인데, 이걸로 진짜 싸우는 사람은 처음봤다. 온라인에서야 실컷 싸우느니 마느니 하지, 현실에서는 보통 돈 내는 사람이 먹자는대로 먹으니까.
“울프람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꺾는 것이 맛과 관계가 있나요?”
“당연히 관계가 있죠. 황자 전하께서는 미식을 아시는 분. 당신이 약혼녀라 해도 이번에는 제가 옳답니다.”
여기서 나한테 화살을 돌리지 마라 이 멍청이들아.
“내가 여기서 대답하는 것이 너희들의 싸움을 중재시킬거라 생각하지 않는군. 아니면, 내 말 한마디로 너희는 신념을 꺾는가?”
“···아뇨. 이건 참을 수 없는 일이죠.”
“예에···. 설령 황자전하님의 말씀이라 한들.”
“그렇다면, 타인에게 물음을 던지지 말고, 스스로의 힘으로 의지를 관철해라.”
“···좋은 말이네요. 역시 울프람.”
“실로 현명하신 말씀입니다.”
그래. 그럼 서로 죽을만큼 싸워보렴.
설마 죽기야 하겠니.
두 사람은 대련장을 향하고 나도 느긋하게 그 뒤를 따랐다.
“어머 울프람도 따라 오나요?”
“어머?”
“별거 아니다. 현 마법학부 3학년 수석과 차석의 실력을 눈에 담아두고 싶은 것 뿐이니 신경쓰지 말도록.”
원래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게 싸움구경 아니겠니.
자. 열심히 싸워보렴.
원래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거니까.
***
아일라 트라이스타랑 레지나 시엘라의 대립은 뭐 운명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라면 아일라가 퇴학당하고 가문이 몰락하고 파멸엔딩에 레지나는 레지나대로 초월적 피폐모드에 들어가 맛이 갔겠지만, 이렇게 티격태격 하면서 다투는 것 정도는 서로의 정신건강에 이로울 지도 모른다.
“오늘이야말로 진짜 죽여버리겠어요.”
“어머. 할 수 있으면 해보세요. 제가 늪으로 당신의 목을 꺾어버리기 전에요.”
하하. 요새 애들 말하는거 참 험하네.
그래도 뭐, 말만 그렇지 서로 진짜 죽일만큼 싸우겠어?
【흑수정:최강화:단발:점사:관통:필중:치명상】
【늪:최강화:강권:공간지배:광폭화:필중】
······.
뭔데 저거.
아일라의 거대한 흑수정은 ‘최강의 일격’으로 ‘숨통을 끊는’ 명백한 살의를 내포하며 날아갔다. 거기에 오른손에 쥐고 있는 【황혼에 물든 수레국화 지팡이】는 굉음을 내며 레지나 시엘라의 발동억제에 대응하고 있다.
그와 반대로 레지나 또한 수레국화 지팡이의 효과를 아는지 마력으로 찍어누르기 보다는 거대한 주먹을 생성해냈고 그리고, 거대한 마력을 담은 투사체 둘이 허공에서 충돌했다.
쿠우우우웅!
장담컨데, 내가 현역시절 참호 속에 던져봤던 수류탄의 굉음은 ‘따위’로 치부할 정도의 굉음과 진동이었다.
콰직. 콰직 ···콰드드드득!
허공에서 부딪친 주먹과 수정창. 그 일 합은 【늪】의 승리로 돌아갔다.
주먹은 흑수정을 산산조각 내며 앞으로 나아갔고, 흑수정의 거창(巨槍)은 순식간에 무너져내리며 파편이 되어 흩날렸다.
이 일 합. 틀림없는 레지나의 승리.
허나 마법전은 이른바 두뇌싸움.
그 아일라 트라이스타가, 여기서 물러날리 만무했다.
【흑수정:산탄:최강화:일점집중:관통:관통:관통】
“···허어.”
아일라가 입에 담은 부가 스펠은 누가 봐도 비효율의 극치다.
마법사가 어째서 부가 스펠을 그리도 많은 종류를 익히려 하는가. 이는 같은 스펠을 중첩시킨다고 해도 정비례로 효과가 늘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지금 저 관통은 3단으로 보이지만 300%가 아니라 고작 해봐야 220%내외. 같은 티어의 부가 스펠을 다른 종류로 썼다고 쳤을 때 80%의 손해다.
허나 내가 놀란 것은, 아일라의 일격이 무지(無知)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실로 현명한 일격. ···마치. 내가 게임 플레이 할 때 썼던 ‘상상의 밖에서 꺼내든 패’를 보는 듯 했다.
무너져내린 흑수정을 그대로 ‘산탄화’ 시켜서 허공에 고정시킨 다음 그대로 일점집중으로 레지나를 향해 쏘아낸다.
허나 레지나의 마법은 전부 ‘광역 제어’에 걸맞기 때문에 아일라의 마법은 평소라면 흩날리는 날파리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두 번을 넘어서서 세 번의 관통을 걸어 공격한다. 비효율의 극치지만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일 수. 아일라가 가진 손패로 펼칠 수 있는 최고의 무력.
이 뒤의 아일라의 패턴은 내가 봤을 때 단 하나 뿐이다.
산탄과 늪은 서로 길항중. 그렇다면 ‘전사’의 소양을 가지고 있는 아일라는 당연히 근접전으로 들어가 레지나를 후려칠 준비를 할 것이다.
“······호오.”
【늪:공간제어:공간장악:저항:방벽화:회수:사출】
레지나의 스펠을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 수가 있었나.
“···이 싸움은 이미 결판이 났군.”
콰아아아앙!!
순식간에 늪을 풀어 산탄이 쏟아지게 만든 후.
산탄이 자신의 몸에 닿기 직전. 아주 잠시의 틈을 만들었다.
그 사이 모든 마력을 담은 늪의 【회수】로 자신을 뒤쪽으로 최대한 빼낸 후.
“···죽어버려!!”
“으익!? 이익!!”
그대로 【사출】을 통해. 아일라를 향해 날아갔다.
어설프게 쥔 주먹. 제대로 잡히지도 않은 자세. 하지만, 그 누구보다 곧게 뻗어 날아가서 그대로···.
아일라에게 주먹을 때려박았다.
요약하자면···.
마법을 쓰지 못할거라 생각한 레지나를 향해 주먹으로 짓쳐든 아일라
거기까지 예상해 자신의 몸을 고무줄 튕기듯 뒤로 뺐다가 앞으로 날아간 레지나.
분명 근력은 아일라가 압도적으로 위
허나 가속도로 그 힘을 보완한 레지나.
중앙 지점에서 서로간의 라이트 훅이 교차된 멋진 크로스 카운터.
“에으.”
“히잉.”
두 사람은 나란히 바닥에 쓰러졌고, 나는 그 자리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감상평을 입에 담았다.
“마법전?”
마법전 맞지?
***
보건의를 불러 두 사람을 보건실로 옮긴 이후 강의실로 돌아왔고, 수업이 끝난 뒤 찾아가니 마침 보건실에서 빠져나오는 아일라와 만날 수 있었다.
볼에 큰 반창고를 붙이고 있던 아일라는 나를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울프람···?”
“음.”
“···못난 꼴을 보였네요.”
“상처는 어떻지? 큰 상처인가?”
“응? ···아. 괜찮아요. 흉터도 안 남을거고, 지금은 거의 다 나았어요.”
그리 말하며 아일라는 반창고는 툭 하고 뗐고, 엄청나게 경쾌한 크로스 카운터를 맞은 것 치고는 아주 조금 붉어져 있을 뿐이다.
이게 전사계에 준하는 무시무시한 체력인가.
부럽다.
그 힘 나도 가지고 싶다.
“그렇다니 다행이군.”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세계는 부활 마법이 없으니, 체력만 믿고 무작정 들이댔다간 되돌릴 수 없는 치명상을 입을수도 있다.
“···경멸했나요?”
“경멸?”
“네. 오늘 ···그. 무승부로 끝났잖아요? 울프람도 뭔가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고···. 제가 약해서 반역을 당한거니까요.”
“그럴리가 있나.”
“정말인가요?”
“그저 걱정했을 뿐이다. 앞으로는 너무 무모한 전투방식은 취하지 말도록.”
“···네. 그럴게요.”
“거기에 오늘 너의 전법은 실로 훌륭했다. 3단 관통···. 쉬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비효율을 알면서도 그것이 최선이라 생각하는 것은 무척이나 다채로운 발상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런가요?”
“그래. 그러니 자신감을 가지도록.”
이건 꽤 진심이다.
오늘은 무승부로 끝나긴 했지만, 그건 아일라의 ‘피니시’가 근접전이라는 것을 숙지하고 있던 레지나가 대처했기 때문이다.
발상은 레지나의 회수와 사출도 훌륭하지만, 나는 그래도 아일라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그러니까 역시···.
“아일라. 너는 더 강해지고 싶지?”
“물론이죠. 이번에는 제 마지막 한 수가 읽혀서 당했지만, 다음번에는 절대 그렇게 끝나지 않을 거에요!”
“음.”
그 부분도 눈치채고 있었나.
배움도 빠르고, 발상도 다채롭다.
역시···.
각성의 비서는 아일라에게 걸맞다.
“아일라. 당장 더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나?”
“그런게 있나요?”
“있다.”
“당장이라도 더 강해질 수 있는 울프람의 특제! ···특제 뭐죠? 아무튼 반역적인 비전이 있다는거죠?”
역시.
아일라라면 이렇게 신나서 좋아할 줄 알았다.
그럼 역시 각성의 비서는 아일라에게 주는게 맞는 것 같군.
품 안에 넣어놓은 각성의 비서를 꺼내려던 그 때.
아일라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말해준 건 고맙지만 울프람. 그건 조금 뒤로 미뤄도 될까요?”
“어째서지? 강해지고 싶지 않은가?”
“저 말이죠. 지금은 저 레지나 시엘라와 대등하거나 그 이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대등하긴 한데···. 그 이상은 아니긴 해.
뭐 아무튼.
“그래서?”
“그러니까, 지금 이 상태로 레지나에게서 완전한 승리를 점치는 게 ‘아일라 트라이스타’에게 더 도움이 될 거 같아요.”
“힘보다는 기교의 영역을 말하는 것인가?”
“네. 오직 힘에만 의지하면 거기에 ‘저만의 전투 방식’은 어디에도 없잖아요?”
“······하하. 그래. 그렇구나.”
그래.
나는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힘이 아니라 실력을 쌓고 싶다는건가.
그 말 또한 실로 옳다.
“그렇다면, 이 힘은 잠시나마 내가 가지고 있도록 하지. 네가 충분히 만족했을 때 가지러 와라. 오직 너만을 위해 준비된 것이니.”
“···네. 울프람. 꼭 그럴게요!”
아일라는 방실방실 웃으며 내 손을 마주잡았다.
“그럼 오늘은 왜 패배···.”
“무승부에요!”
“···무승부로 끝났는지 복기하는게 좋겠군.”
“물론이죠! 그럼 가요!”
“···가자니. 강의실에서 하는게 아닌가? 어디서 복기할 생각이지?”
“그야 당연히 편의점이죠!”
아.
그야 그렇겠군.
그렇게 아일라는 편의점에 도착할 때 까지 꼭 쥔 내 손을 놓지 않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