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24)
023. 대학원을 회피하는 방법
미니 테스트를 무사히 마친 날 이후.
나의 아카데미 생활은 아주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우선 일정. 네프티가 리어카로 장사를 맡아준 며칠간 솔직히 말해 몸이 너무나 편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 몸 하나 건사하자고 네프티에게 전권을 주기도 뭐한 것이, 아일라처럼 반역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아니지만 내 앞길에 대학원생들과의 인맥은 꽤 중요하게 작용할 듯 싶기 때문이다.
학부에서는 악당 취급 받지만, 학원에서는 아침부터 맛있는 것을 조달해주는 개념찬 상인이니까.
그들과의 인맥이 단단할수록, 나를 지킬 방벽 하나가 더 생기는 셈이니까.
그 다음은 편의점.
손님이 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생각보다 괜찮게 구색이 갖춰졌다.
우선 마동석 냉동고를 손에 넣음으로서 음료의 폭이 넓어졌다.
에너지 드링크는 함부로 풀었다가 아일라가 ‘반역의 시간이에요!’ 하면서 난리 피울 거 같아서 내놓지 않았지만, 셰이크와 셔벗 계열이 늘어났다. 아쿠아 빈즈와 버블 빈즈를 활용하면 탄산음료도 만들 수 있을 거다. 최고의 비율을 연구하고 있다. 아마 여름이 되면 쏠쏠하게 팔리겠지.
그 다음은 식용 슬라임을 넣은 젤리와 사탕계열. 흑빵. 밸리만쥬. 도넛도 냉장보관이 가능하니 식품 매대에 이것저것 올려놓는 재미가 늘어났다.
홍초로 만든 음식은 루디카만 찾는 특수한 기호식품이지만, 나도 가끔은 즐기고 있다. 홍초로 고추장을 담그면 홍초장인가 홍 떼고 초장으로 할까 네이밍을 고민하고 있다.
자 이렇게 내 일정과 일상에 대한 변화를 조금 서술했으니 그만큼 중요한, 아니 그 이상 중요한 아카데미 생활 이야기를 해 보자.
우선 수업.
놀랍게도, 실로 놀랍게도 전공은 어떻게든 따라가고 있다.
학점이 좋을 거 같지는 않지만 이 지옥같은 제프린에서 살아남을 정도의 지식은 있나보다.
사실 이건 아일라 선생님의 개인교습이 무척 뛰어났던 성과 같지만, 울프람은 스스로를 칭찬할 줄 안다. 잘 했어 울프람. 하면 되는 아이다.
특히 미니 테스트를 봐야 했던 마법사와 전장 과목의 란티카 그레이스 교수가 나를 보는 눈이 심상치 않다.
올해 예순 줄을 넘긴 란티카 그레이스 교수는 전장 마법사의 권위자라던가 뭐라던가. 아일라가 말해줬다.
그러던 어느 날.
“오늘 강의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고, 울프람 폰 로엔그린 학생. 잠시 대화 좀 나눌 수 있을까요?”
“네. 교수님.”
그 교수님이 직접 나를 찾으셨다.
왜 부르는 걸까.
왜 존대하시는 걸까
존나 무섭게.
***
교수와 함께 담화실로 향하니 교수는 나를 향해 직접 차까지 따라주고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울프람 폰 로엔그린 학생···. 학생이라고 불러도 되겠죠? 이제 학생회장이 아니니.”
“네. 괜찮습니다. 교수님. 지금 저는 학생회장이 아닙니다.”
제프린에서 학생회장이라는 이름은 이처럼 무겁다.
황실의 후예이며 유일한 계급자니까. 저런 노교수들도 함부로 상대하고 싶어 하지 않아 한다.
“이해해주니 고맙군요. 혹시 지난번 테스트에서 적어 낸 해답을 기억하나요?”
“전장에서 마법사들을 호위하기 위한 대규모 호위는 끔찍한 인력 낭비다. 라고 적었습니다.”
“맞아요. 하지만 그러면 방어에 구멍이 생기죠. 대 마법사는 엄청난 인력입니다. 그래서 울프람 학생은 아래에 두 가지 대처법을 적어냈죠.”
[하나는 【수호요새:요인보호:강철화】를 부여한 골렘을 방벽으로 쓰는 것이다. 허나 적의 공세가 골렘의 방어력을 넘어설 때 마법사에게 위험을 초래한다.]“이건 흔한 대답이죠. 실제로 쓰고 있기도 하고요. 그런데 두 번째 대답이 아주 흥미로웠어요.”
[또 하나는 두 가지 마법을 담은 아티펙트를 준비하는 것이다.3티어의 【하이매직:프로텍트:마나실드】
2티어의 【하이매직:텔레포테이션:이스케이프】
발동을 위한 마력은 일반 마법사들을 모집해 충당시킨다.]
“사실 그냥 공상이 아닐까 했어요. 마법사 고유의 마력색은 경향성을 가지니까요. 아티펙트에 여러 마법사의 마력이 모이면 펑. 하고 터질 뿐이죠.”
“맞습니다.”
“물론 울프람 학생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죠.”
“그러니 모든 마력의 색을 투명으로 돌리는 마법을 개발해야 한다. 라고 적었죠.”
“예. 그런데 그 이론은 마법사들 사이에서는 불가능하다고 결론이 났거든요. 채색이 된 마력을 투명하게 되돌리는 건, 이미 칠해진 물감을 없었던 걸로 하는 것과 같으니까요.”
“네. 맞습니다.”
“하지만, 이게 좋은 예시일지는 모르겠지만, 역사상 다채색 마법을 쓰셨던 분은 한 분 계시죠.”
“예.”
초대 황제.
이 학원섬을 만든 가장 위대한 패자.
“그 분의 혈족이 말씀하시니 또 그런 가능성이 있는 거 같기도 하고 말이죠.”
“저도 어디까지나 가설로 적었습니다. 시험문제는 그저 논리를 바라고 계셨으니까요.”
“······으흠. 그렇긴 하죠.”
아하. 그렇구만.
교수는 내가 실마리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 하는 것 같다.
모든 유색 마법을 무색으로 돌릴 수 있다면, 바꿔 말하면 그 어떤 마법도 침투할 수 없는 절대적인 마법방벽이 된다.
모든 관념이 뒤집힌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맛이 가버릴 정도로 욕심이 나기도 하는데, 그 떡밥을 뿌린 게 황자다? 못 참지 이건.
“객관식은 얼추 맞췄다고 생각하여 이론을 적어 낸 것뿐입니다.”
“아, 아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교수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네. 조심히 들어가요.”
나는 돌아서며, 그 마법에 대해 생각했다.
모든 마력을 무효화하며, 자신의 마력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절대적인 치트키 스킬 아닌가?
그래서 실제로 그런 게 있냐고?
하하.
그야.
당연히 있지.
1티어 중에서도 최상위에 위치하긴 하지만 있긴 있다.
이 게임에서 오직 단 둘 만에게만 허락된 마법이다.
그것도 온갖 히든 퀘스트를 풀로 땅겨서 12막 후반에 가서야 겨우겨우 익힐 수 있었던 가장 위대한 기적.
마법에 모든 것을 바쳤을 때의 빛의 영웅 켈터스.
그리고,
태생 마력치 22의 이브 폰 로엔그린.
그런 그녀가 인간을 벗어 던졌을 때 겨우 쓸 수 있는 신화의 재림이다.
***
다음 날 새벽.
나를 반긴 것은 네프티였다.
“뭐지.”
“저, 오늘만 대신해서 마법학부 앞에서 장사를 해도 되겠습니까?”
“네프티. 대체 일당을 전부 어디에 쓰는 거지?”
“그 어제 스킬 연습을 하다가 목검을 세 자루를 날려먹어서.”
아 그럴 수도 있지.
내 기억으로 제프린의 목검이 하나당 1만 린 부근이었을 텐데.
“대신 특별 시급은 없다. 알고 있지? 시간당 8,720린이다.”
“······물론입니다!”
그 망설임 뭐냐고.
아무튼 임금협상은 끝났고 네프티는 리어카를 몰고 쌩 하니 달려갔다.
“다시 잘까.”
오늘은 강의가 없는 날이기에 느긋하게 낮잠을 때리고 나니, 눈앞에 보이는 것은 또 네프티였다.
“또 뭐지.”
“아, 아뇨. 장사 끝났습니다. 시급 정산 받으러 왔는데요.”
“······아.”
그건 해 줘야지.
보자.
세 시간이니까 26,160린인가.
적당히 1만 린 지폐 세 장을 건네주니 네프티의 눈이 반짝였다.
“감사합니다. 역시 울프람 님께서는 진정 황실의 후손이시군요! 최저 시급만 준다고 하셨을 때 얼마나 걱정했는지···. 이 네프티 잠시나마 울프람 님을 의심했습니다!”
“······그런가. 앞으로도 충의를 다하도록.”
“네! ···그러고 보니 장사하면서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상한 일? 대학원생이 울부짖거나 오열하거나 고함을 치거나 그걸 다 하면서 알몸으로 춤이라도 췄나?”
거기까지는 정상적인 범주일텐 데?
“아뇨. 대학원생 선배님들의 추태는 처음에만 놀랐습니다만 이제는 익숙해 졌습니다. 그게 아니라, 한 교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교수님의 소문?”
“네. 황실에서 극비 정보를 얻었다며 연구를 개시했다고 합니다. 아마 이름이, 란티카? 란티스?”
“···란티카 그레이스.”
“예. 그 이름인 것 같습니다. 대학원생들을 쥐어짜면서 연구를 시켰다고, 가뜩이나 연구할 게 많은데 추가로 더 얹어줬다고 대학원생이 팬티바람으로 헤드스핀을 하면서 오열하더군요. 어제도 한 명이 유아퇴행을 거쳐 신입생 때로 돌아가겠다며 랩을 탈주했다고 합니다.”
그건 유아퇴행이 아니라 정신질환이란다.
생각해보면 내가 그걸 목격하는 건 너무 무시무시한 일 아닐까?
나 대신 네프티가 일하러 나가서 다행이다.
“그리고 학부생 한 명을 대학원으로 납치하는 계획도 있다고 합니다.”
“뭐?”
“음 다 풍문이긴 하지만요. 아 헤드스핀 오열이랑 탈주는 진짜입니다.”
“······그래. 그건 진짜라는 거지.”
“네.”
······.
뭐 아무튼. 좋은 정보를 물어다 줬다.
“네프티 2만 린을 더 주마.”
“충의를 다해 충심으로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오직 제 신념은 당신의 것입니다.”
“그래.”
3만린 을 받고 5만 린 지폐로 건네주자 네프티가 헤벌쭉 웃었다.
그 멍청한 표정을 뒤로 하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상대는 업적과 명예에 미친 교수. 대학원생을 쥐어짜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그리고 그 교수는 눈에 불을 켜고 나를 대학원으로 납치할 계획도 있는 모양.
“방법은 하나 뿐이군. 하!”
감히 나를 물로 보다니. 그렇게 나오시겠다 이거지?
***
“안녕하세요. 선배님.”
“안녕하세요.”
“음. 주문하도록.”
“스토로베리 도넛 두개랑 너는 뭐 할래?”
“나는 살찌니까 ···크림 없는 슈가 도넛 두개!”
“스트로베리. 슈가 두개씩. 주문 받았다. 먹고 갈 건가?”
“포장이요.”
“저도 포장이요.
“알겠다.”
다음 날.
나는 1학년 학부동으로 리어카를 옮겼다.
***
아니, 이건 결코 도주나 도망이 아니다.
그저 대학원생들 보다는 신입생들.
본편에서 1티어로 성장할 여지가 있는 아이들에게 장사를 하는 편이 훨씬 내 미래에 가치가 있지 않을까. 그리 생각했을 뿐이다.
대학원생들을 파티로 받아봐야 대부분의 스테이터스에 상태이상인 【강박】【공포】【정신질환】【우울】등이 걸려 있기 때문에 사용하기 까다롭지만, 1학년들은 그런 게 없다. 다들 찬란히 빛나는 아이들이다.
그리고 곧, 켈터스를 중심으로 하는 본편 1막 1장이 시작된다.
“아일라는 켈터스를 무너트렸지 그것도 완벽하게.”
원래라면 켈터스에게 한 대 맞고 헤헤, 하면서 쓰러진 켈터스를 보고 ‘내가 한 대를 허용했다고? 이 아일라 트라이스타가? 평민 ···용서할 수 없어요!’ 하면서 온갖 분노를 쏟아낸다.
울프람이 3류 악당이라면, 아일라는 3류 악역 영애가 컨셉이니까.
허나 이 완승으로 인해 “이이이익!” 하는 괴성을 지르며 켈터스를 적대하지도 않을 거고, 진짜 반역을 일으키 ···지는 않을 거라 믿고 싶긴 한데 아무튼.
3막의 스토리에서 엄청나게 큰 변화가 올 것은 자명한 사실.
1막 맵인 동부 숲에 돌아다니는 식용 슬라임과 인생의 한타를 벌여도 승률이 4할 남짓한 울프람은 본편에 관여는 안 할지언정 정보는 최대한 얻어야 한다.
그래서 1학년들에게 정보를 얻기 위해 이렇게 리어카를 끌고 장사를 시작했는데···.
“괜찮게 먹었나?”
“네? 네 ···그럼 잘 먹었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가보겠습니다. 선배님!”
1학년 아이들은 내가 뭔가 물어보기도 전에 도넛을 포장하더니 후다닥 달려서 도망 칠 뿐이었다.
어째서지.
도넛이 맛이 없다면 사러 올 리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장만 해서 잽싸게 째는 건 대체 어떻게 된 노릇일까.
야자 째고 떡볶이 먹으러 나온 고딩도 아니고···.
나의 이 고민은 무척이나 쉽고 간단하게 해결됐다.
“그야 울프람. 당신의 노점에서 뭔가를 사서 먹는걸 길드 선배들이 금지 시켰으니까요.”
갑작스럽게 찾아온 불청객.
이브 폰 로엔그린은 어이가 없다는 듯 자리에 앉아, 멍청이를 보는 눈으로 나를 쏘아봤다.
금지 시켰다고?
“어째서 지?”
“당신이 작년까지 한 짓을 2학년 이상의 학부생들은 아직 용서하지 않았고, 그게 대물림 된 거죠.”
“그렇군.”
실로 합당한 이유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오히려 이브 쪽에서 당황해 고개를 갸웃했다.
“···충격 안 받았어요? 당신은 어떻게든 개과천선하려고 노력하는데, 낙인이 찍힌 셈이잖아요.”
“충격이라.”
물론 내가 지은 죄는 아니고 울프람의 죄지만, 나는 이제 울프람이다.
그리고···.
“그렇다 해도 몰래 도망쳐서 나온 1학년이 있다. 선배들의 금기를 무시할 정도로 매력적인 간식이라는 의미지.”
“그렇게 받아들이다니 ···하.”
이브는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 저었다. 욘석이.
“뭔가 사러 온 게 아니면 돌아가라. 여긴 상점이고 손님이 아니면 받지 않는다.”
“···좋아요. 모든 맛 세트로 하나씩 다 줘요.”
“음. 주문 받았다.”
“사탕도 한 컵 가져갈게요. 괜찮죠?”
“돈은 내라.”
“물론이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등 뒤에서 바스락거리면서 사탕을 입에 넣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헤헤.”
라는 귀엽게 끔찍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니 논리적으로 해부하면 귀여울지도 모르지만 울프람의 몸에 우수수 소름이 돋는 것이 진짜···.
대체 켈터스는 쟤가 뭐가 좋다고 마법부 루트에서 그렇게 숭고한 수호기사의 길을 걸었을까.
미치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진짜.
아.
그러고 보니 다른 1학년생에게서 정보를 얻을 수 없다면 이브에게 물어보면 되는 일이다.
켈터스는 지금 뭘 하고 있을지. 누구 호감도작을 하고 있을지.
켈터스가 혹시 뇌를 빼놓고 살아서 설마하니 이브 루트를 탄 것은 아닐지 말이다.
나는 조리를 계속하며 이브에게 툭 던지듯 물었다.
“그러고 보니 이브.”
“헤헤 ···응? 왜요?”
“올해 1학년 수석 기억하고 있나.”
“1학년 수석···. 아 음. 그러니까···. 그게···.”
“음?”
“아 기억났어요. 쿨, 쿨피스? 아닌데 그런 맛있는 이름이었나? 켈 ···켈이었나?”
“켈터스다.”
“···그랬죠. 네. 그 켈터스가 왜요?”
“······아무것도 아니다.”
이브에게서 등을 돌리고 도넛을 조리하고 있었기에 다행이지 지금 내 표정을 봤으면 이브가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브와 켈터스가 지금 시점까지 인연이 없다는 것.
즉 바꿔서 말하면, 마법학부 루트는 아예 박살이 났다는 것과 같은 의미니까.
마법학부는 황녀인 이브가 히로인이기 때문에 온건하고 정통적인 스토리로 정평이 나 있다.
그리고 마법학부 루트가 무너졌다는 건, 켈터스 입장에서는 압도적으로 배드엔딩이 많은, 기사학부 루트거나,
혹은 그 이상으로 불지옥이라고 알려진 히든 루트를 탔다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