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255)
254. PM 10:30
짜잔
원래 극초반 퇴장 설계용 울프람이 중간보스였다면?
그걸 기획단계에서 폐기했는데 사실 보스로서의 길이 있었다면?
세상에 그런 반전이!?
는 개뿔.
이건 더미 데이터다.
왜 그렇게 확신하냐면 보통 1차 승급을 찍으면 ‘무조건적인 스테이터스 상승’ 과 ‘추가 스킬’이 붙는다.
그런데 나는 0이잖아? 없잖아?
“즉 개념은 존재하는데 적용은 안되는 버그라는 건가.”
만들다 말았겠지 뭐.
화난다기보단, 그냥 아 그렇구나, 하는 심경과 ···작은 흥미로움 해소. 그 정도가 끝이다.
추가 스킬을 읽으면서 나는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 참. 흥미로운 추가 스킬이군.”
스킬은 단 하나 만들고 끝났다고 했다.
재미있게도 그 스킬이 참 많은걸 가리키고 있었다.
【악당과 마녀의 맹약】
【7T】
【악당과 마녀가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마녀 아일라 트라이스타를 지정해 결속을 맺을 수 있습니다.
시전자의 스테이터스 일부. 혹은 전투 보정이 피시전자에게 옮겨갑니다.】
“···내 위치는 4막이었나.”
작중에서 마녀라고 칭해지는 건 아일라 뿐이니까.
울프람은 초반에 퇴장하고 그대로 죽는게 아니라 원래 아일라와 함께 4막의 보스로 등장할 예정이었나보다.
하지만 5막에서 길가던 좀비 A로 등장하는 것으로 바뀌었고, 죽음으로서 이브를 성장시켰다.
왜 보스전에서 탈락된걸까.
아일라 트라이스타가 너무 강해서? 그게 아니면 이브 폰 로엔그린 루트는 전형적인 초보 밀어주기 루트니까, 어려운 보스를 내기 싫어서?
모든것은 추론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추론은 결코 확신이 될 수 없다.
울프람 폰 로엔그린은 4막에서 아일라 트라이스타와 함께 이브와 레지나, 그리고 켈터스를 막아섰을까?
보스 울프람은 어떤 식으로 전투를 펼쳤을까. 궁금한게 한 두가지가 아니지만 지금은 그 편린. 그 중에서도 사그라드는 조각 하나만으로 겨우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어떤 길이라 한들, 별 상관은 없지.”
나는 울프람으로 살겠다고 결심했지만, 그 안에 있는 것은 틀림없이 이영진이다.
그것은 기획 의도에 의해 움직이는 캐릭터가 아니라, 내 삶을 스스로 정하는 인간이라는 이야기다.
나는 악당으로 끝나지 않았고, 아일라는 마녀로 끝나지 않았다.
훌륭한 파티가 있고, 이 세상을 즐기고 있으며 서로간의 신뢰감도 나쁘지 않다.
그러니 이 스킬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직업으로는 안 된다.
“재미있어보여서 선택은 했다만.”
이 직업도, 이 스킬도 버려야겠군.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버러지 직업으로는 도저히 내가 바라는 영역까지 갈 수 없다.
호기심 해소와는 별개로,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나는 이 어둠의 군주를 버린다.
“1차 승급을 했기 때문에 꽤 귀찮겠지만 직업변경권을 찾아야겠군.”
그리 생각하면서 시스템 창을 끄려는 그 순간.
또 하나의 메세지가, 머릿속에서 울려퍼졌다.
【마녀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스킬 보유조건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스킬 변화를 일으킵니다.】
“······?”
【운명의 결속】
【7T】
【파티원 한 명을 지정해 결속합니다. 결속된 대상은 전투 보정. 스테이터스 보정등의 버프가 붙습니다.】
【결속된 파티원은 직접 명령을 내릴 수 있습니다.】
【지속시간만큼의 쿨타임을 가집니다.】
“······.”
뭔데.
왜 이걸 주는데.
“···켈터스가 메인 히로인과 단 둘이서 파티를 짤 때 쓰던 스킬 아닌가.”
***
D/Z SAGA는 보통 자신의 인생 캐릭터가 없으면 접게 된다.
하지만 인생 캐릭터가 있다면, 그 캐릭터를 밀어주기 위해 온갖 밑작업을 다 하게 되고 이것저것 밀어주는데, 당연하지만 그 안에는 아이템 뿐만이 아니라 스킬도 있다.
그리고 그 인생 캐릭터를 위해 쓰는 스킬 중하나가, 바로 이 【운명의 결속】이다.
효과는 간단하지만 묵직하다.
내가 상대를 지정해서 운명의 결속을 쓰면, 그 캐릭터는 내 스테이터스중 가장 높은 것의 일부를 이어받아 추가 보정을 얻는다.
또한 직접 지시를 내릴수도 있고 전투 판정도 올라가는 등. 훌륭한 버프가 된다.
실로 좋은 스킬.
어느정도 좋냐면, 이 스킬이 있다는 것 만으로, 나는 직업 변경권을 찾기보단 일단 이 스킬을 써볼까 생각하고 있을 정도다.
자 그럼, 이 스킬을 누구에게 먼저 써보는가 ···인데.
“쯧.”
“울프람?”
“···아일라인가. 무슨 일이지?”
“별 용무는 없어요. 그냥 여기에 오고 싶었고, 그래서 왔고, 그래서 여기에 있죠.”
아일라는 방긋 웃고는 편의점 구석에 자리를 잡고는 우아하게 책을 펼쳤다.
거 참.
여기는 장사하는 곳이라니까 그러네.
손님. 그렇게 아무것도 안 사고 공부만 하면···.
“마실거랑 먹을 거. 대충 3만 린 내에서 맞춰서 주시겠어요?”
“기다려라. 금방 준비해서 가져오도록 하지.”
역시 학생의 본분은 공부지. 좋은 자세다.
***
아일라는 공부하고, 나는 이 스킬을 어떻게 쓸지 다시 생각에 잠겼다.
“울프람은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나요?”
“···얼마 전 새로운 기술을 얻어서 말이다. 활용처를 생각하고 있다.”
“어머. 어떤 기술이죠? 저도 알 수 있을까요?”
“운명의 결속. 이라는 기술이다. 혹시 알고 있나?”
“처음 보는 기술명이네요.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나요?”
나는 아일라에게 스킬을 설명했고, 이야기를 듣던 아일라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그런, 그런 운명적인 기술이 있었군요. 서로 운명적으로 묶이는 기술!”
“이름이 그런거지, 실질적으로는 일종의 강화계 기술에 지나지 않는다.”
“아뇨. 그건 너무 삭막하게 생각하는거에요. 그건 틀림없이 운명이에요!”
“······그래. 그래.”
“그래서, 그런 운명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 울프람은 뭐가 걱정인가요?”
“···걱정이라.”
걱정.
잡스러운 걱정일지도 모르지만, 하나 있긴 하다.
그건 바로···.
“어떤 식으로 직접 명령을 내릴 수 있는지. 그 기준을 모르겠군.”
“그런가요? 운명의 힘으로 마음을 읽어서 쓴다던가?”
“그런 낭만적인 기술이 아닐지도 모른다. 싸구려 세뇌일수도 있지.”
“···아.”
내 말에 아일라는 생각도 해본 적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기 때문에, 대상으로 지정할 상대를 찾는 것이 어렵군. 만약 싸구려 세뇌라면 ···파티원에게 쓸 이유도, 쓰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잘 되기만 하면 그만큼 이득이라는 거죠?”
“음. 그건 부정할 수 없다. 앞으로의 행보에 큰 도움이 될 거야.”
“···그렇다면, 저에게 쓰세요. 울프람.”
“······이야기를 듣지 못했나? 싸구려 세뇌···.”
“그러면 어때요.”
“뭐라?”
“울프람이 한다면 상관 없어요. 저는. 아니면 그 세뇌로 나쁜 일을 시킬 건가요? 은행을 턴다던가?”
“···그럴리가 있나. 절대 그럴 일은 없다.”
“그렇죠? 제 상태가 이상하면 울프람이 그냥 풀어주면 되는거에요.”
그리 말하며 방실방실 웃는 아일라.
그러고 보면.
이 스킬의 원래 이름은 악당과 마녀의 맹약.
틀림없이 악당은 나고 ···마녀는 아일라다.
한 바퀴 돌긴 했어도, 원래 대상 지정은 ···아일라에게만 가능했다고 친다면, 변화를 거쳤어도 아일라에게 쓰는것이 정답 아닐까.
“···알겠다. 이상한 증세가 있다면, 바로 말하도록.”
“네! 별 일 없을거라 믿고 있어요.”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오는지. 【운명의 결속】”
스킬을 발동하고 내 손등과 아일라의 손등에 황금색 늑대무늬가 동시에 떠올랐다.
틀림 없다. 이게 결속 상태다.
“···아일라. 뭔가 변한게 있나?”
“······.”
아일라는 멍하니 자신의 손등을 바라보고 있다.
역시 이런 식이었나. 무작정 명령을 듣게 하는 기술 따위 어떻게 신용하겠나.
“지금 이 기술을 해제할테니 기다려라.”
“아뇨. 괜찮아요. 울프람. 저는 아무렇지 않아요.”
“정말인가? 멍하니 있었는데?”
“아, 그건요.”
아일라는 검지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허나 그 동작이 보통의 기술이 아님을 나는 알 수 있었다.
손가락을 튕기는 것 만으로 파공음이 생길려면 어느정도의 재주가 필요하겠는가.
적어도···. 아일라 본인의 재주 수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즉.
“···빨라졌군.”
“네. 아마 한 단계정도 빨라진 거 같아요. 이 속도감이 놀라워서···. 그냥 가만히 있었네요.”
난 또 뭐라고.
그런 이유였나.
한 단계가 올라갔다면 지금 아일라는 내 재주의 영향을 받아서 재주가 18인 상태다.
즉 스킬은 안정적으로 발동했다.
그럼 그 다음 실험이다.
“지금부터 은행을 턴다.”
“그건 나쁜짓이에요. 울프람.”
“그렇지.”
음.
이 명령은 듣지 않는군.
그렇다면 결속된 파티원에게 직접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건 뭘까.
“······뭘까요?”
“뭐지.”
대답은 나오지 않았고, 내일 다시 시험해보자며 아일라는 귀가했다.
“아 이 기술은 해제하지 말아주세요. 재주 18의 속도감을 느끼고 싶어요!”
“편할대로 하도록.”
“네!”
아일라는 빠른 걸음으로 귀가했다.
그리고 일정 이상 아일라와 떨어졌을 때.
나는 이 기술의 두 번째 능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았다.
***
아일라가 떠나간 뒤. 나는 다시 편의점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대체 이 스킬의 두 번째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그리고 그 때.
-와! 빠르다! 정말 반역적인 속도에요! 이야아아아호오오오!
내 머릿속에서, 아일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
기분탓이겠지. 요새 수면이 부족한 듯 하다. 빨리 자도록 하자.
그리 생각하며 이부자리를 폈을 때.
-아 곧 여덟시네요. 두시간 반 뒤면 잠들테니까 서둘러야겠어요.
-울프람의 편의점에 가는건 정말 즐겁고 행복하지만···. 가끔은 너무 멀어요.
-차라리 다른 곳에 건물을 사서 울프람이 이사를 하면.
-가게도 새단장 하고···. 가게 이름은 이니셜을 따서 W&A 편의점으로···.
뭔데.
내 머릿속 아일라가 언제부터 이렇게 다채로웠는데?
아니다. 나는 이런 아일라를 생각한 적 없다. 장담할 수 있다.
“아일라?”
-후후. 이상하네요. 울프람의 목소리가 들린 거 같은 착각이 들어요.
“아일라. 착각이 아니다. 들리고 있나.”
-어머. 제 머릿속의 울프람이 지금 대답한 건가요?
“아니. 네 머릿속에 있는게 아니다. 나는 실존하는 울프람이다.”
-머릿속의 울프람이 스스로를 실존한다고 말하다니···. 그렇군요. 저도 참 중증이네요. 후후.
“뭐가 중증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진짜 편의점에서 이야기 하고 있다.”
-네. 제가 생각하기에도 울프람은 그 곳이 어울려요. 후후.
“···방금 전까지 편의점에서 운명의 결속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그 울프람이 맞다.”
-·········네? 어, 어라? 진짜 울프람?
“음.”
-어라··· 그러니까. 어, 어떤 방식으로 말하고 있는거죠?
“내 생각이다만, 운명의 결속은 ···서로 연결한 상대와 이렇게 머릿속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듯 하군. ···직접 명령한다는 건 이런 의미였나.”
-아, 아하. 그렇군요.
쌍천석의 반지도 이와 비슷한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그건 고유 패턴을 섞어서 보내는 것이기 때문에 거리 제한도 있고, 중간에 마력 방해나 매직 재밍등으로 얼마든지 끊을 수 있다.
허나 ···이건 좀 다른거 같다. 이쪽이 압도적으로 편리하다.
“신기하군. 잘 돌아가고 있나?”
-···네. 그런데 울프람. 제 혼잣말이 ···들린거죠?
“미안하지만, 조금 들었다. 사과하도록 하지.”
-대체 어디서부터 들었나요?
“별거 아니다. 편의점이 조금 멀다는 거 하고 ···새로운 가게에 대해”
-아, 아아아···. 아아아아아아 못 들었어요. 울프람은 못 들은거에요. 그렇죠? 못 들은걸로 해줄거죠?
“······.”
잘 모르겠지만, 네가 그걸 바라면 뭐.
그런데 새로운 가게라.
“혹시 2호점의 주인이 되고 싶은 건가?”
-······네?
“그렇다면, 나는 기쁘게 받아들이지 너는 2호점의 주인으로 어울린다.”
-울프람. 그 기쁜 마음을 기쁘지 않게 거절할게요.
그런가. 아쉽게 됐다.
“아무튼. 이 직접 명령 기능은 초장거리 통신이고, 문제라면 상대방의 사생활도 침범할 수 있다는 점인가. 함부로 쓰면 안 되겠군. 개선도 필요하겠어.”
-···어느정도 개선의 필요성이 있는건 부정하지 않을게요.
“그래. 그럼 이 스킬은 이쪽에서 해제할테니 신경쓰지 말고 좋은 밤···.”
-아뇨. 울프람. 해제하지 마세요.
“어째서지?”
-후후. 재밌지 않나요? 울프람은 저 멀리 편의점에 있는데, 저는 지금 글레스트헤임 기숙사에 도착해 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어져있죠. 뭐라고 해야 할까요···. 두근거려요!
“두근거린다라. 그런가?”
-저희의 대화는 대부분 필요에 의한 것들만 했지 ···잡담은 무척이나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반역에 대한 이야기가 잡담이 아니라고 생각한거야 지금?
어디까지 반역에 진심인거야.
“······그런가.”
-네. 공간의 제약이 있어서, 시간의 제약이 있어서 하지 못했던 잡담들을 떠들어요. 밤이 깊을 때 까지. 새벽이 찾아 올 때 까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잔뜩. 저 지금 울프람과 떠들고 싶어요!
“······어렵지 않지.”
-네! 그럼 무슨 이야기부터 해 볼까요? 우선 글레스트헤임 기숙사의 오늘 저녁 식사는 미트 파이지만 별 맛이 없어요. 그리고···.
그렇게 한참을 아일라와 이야기 했다.
아일라의 말마따나 밤이 깊고, 새벽이 찾아올 때 까지.
···라고 말하고 싶지만. 당연히 그럴 일은 없다.
“아일라. 자나?”
-······아뇨. 안 자요. 안···안자고 있어요···. 이야기···울프람······.
“스킬을 해제하마.”
-·········.
저 너머에서 들려오는 것은 곱고 작은 숨소리 뿐.
어깨를 으쓱하고는 시계를 바라보니, 아니나 다를까 시간은 열 시 삼십 분.
착한 아이인 아일라는 푹 잠들 시간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