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281)
280. 짓이겨 찢고 토막내고
필티아 블루브리즈는 교수들 사이에서도 특출난 존재였기에, 그 누구도 쉬이 말을 걸 생각을 하지 못했다.
허나 그럼에도, 지난 삼백년 간 고착화 되어있는 교수들 사이의 규칙이 있었기에, 필티아 블루브리즈가 교수가 되겠다고 한 이상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있다.
“연구와 발표?”
“네···. 네 그렇습니다. 필티아 님. 교수가 되신 이상 무슨 분야를 연구하실지. 그 부분에서 어떤 실적을 내실지 확실한 기준을 잡아주셔야 합니다.”
아. 그렇군. 하고 필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즉 교수인 이상 무언가 연구 성과를 내야 한다.
겉으로는 학문적 성취와 인류 전체의 발전이라는 명제를 내걸고 있지만, 그 속은 뻔히 보였다.
아무튼 연구를 해야 연구 자금도 나오고 프로젝트 후원도 나오고···. 교수들 사이의 체면도 신경써야 하고 귀족가의 눈치도 봐야 한다.
필티아는 자신의 앞에서 비굴하게 떠드는 교수를 힐끗 바라봤다.
교수는 필티아의 차가운 시선도 눈치채지 못한 채 그저 고개를 숙이며 비굴하게 말을 이어나갈 뿐이었다.
“하여 필티아님의 마법적 성취를 저희들 후학에게 조금만 베풀어주신다는 마음으로···.”
“······.”
그러니까. 뻔히 보인다니까.
그리고 필티아는 신화의 시대의 인물이며 동시에 살아있는 원전 그 자체.
그녀가 내뱉는 마법적 말 한마디는 용언이며, 300년전 신화의 재연이니 당연한 것 아니겠나.
비굴한 교수를 뒤로 하고서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본디 필티아는 모든 세속적인 것에서 떨어져 살 수 있다.
보아 하니 인간들은 파파의 위대함을 여전히 칭송하며, 그 분의 수양딸인 자신은 당연하게도 어느정도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
다른 황손들이 접촉해오지 않는게 신기할 정도였지만, 친애하는 동생 울프람에게 물어보니 ‘너무 거물이라 접근하지 못한다.’ 라고 한다. 그게 당연한 사실이라는 듯 하는 말에 오히려 필티아가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가 보는 시선에서 그가 내리는 답은 대부분 명확한 정답이다.
아무튼 각설하고.
필티아는 돈이 많다. 보물이 넘쳐난다. 혈통의 권위도, 보장도 당연히 받아야 하며, 300년 전 전승에 적혀있을 정도의 거물이다.
즉 교수들의 ···사사로운 사회적 부품으로서의 연출장치에 자신이 말려들 이유는 없다.
사실 이 교수가 말하지 않아도 랩 자체는 만들 생각이 있었다.
연구도 뭐 끌리는게 있다면 할 생각은 있다.
고급 마법 연구에 대한 논문 몇 개만 쓰면 바로 어떻게든 되겠지.
하지만.
최근의 필티아는 그게 과연 옳은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초법. 초월.
모든 규격을 넘어선 존재로서 그렇게 떠받을어지면서 살아가고 싶은 걸까.
자신의 동생은 마계 팔문을 완전히 봉인하고 자신을 세상에서 꺼내준다고 했다.
그렇다면, 필티아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그 다음.
나가서, 무엇을 할 것인가.
나가서, 어떻게 살 것인가.
동생이 준 새로운 삶을 어떻게 향유할 것인가.
그저 떠받들어지는게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능동적으로 하기 위해. 사사로운 연구 과제와 랩실에 대한 구상을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짜고 싶은 것이다.
하여. 그녀가 하고 싶은 연구는 돌고돌아 처음부터 고민중.
“······알겠어요. 생각해보고 말해드리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흠.
이런 문제는 역시 그 사람과 만나서 이야기 할 수 밖에 없다.
필티아는 교수를 물리고, 차가운 표정을 풀고, 햇살 머무는 정원에서 낮잠자는 소녀마냥 풀어진 표정으로, 친애하는 이의 가게에 찾아갔다.
“동생!”
“필티아 누나인가. 무슨 일이지.”
“누나가 지금부터 하고 싶은 연구가 있는데 누나의 랩실에 와서 도와주지 않을래?”
“······뭐라?”
***
용사는 마룡을 쓰러트리는 법.
마룡이란 인간에게 위해를 끼치는 법.
그렇다면, 인간을 대학원생으로 끌어들이려고 하는 드래곤은 마룡이며, 드디어 나는 이 마룡과 숙명적 대치의 때가 온 것 아닐까.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누나 옆에서 대학원생 하지 않을래? 라고 물어보는 필티아에 대응해 나는 우선 ···그래 최대한의 분노를 참고 그 진의를 물었다.
그리고 필티아가 한 말은, 이내 나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것이었다.
“연구 주제라.”
“응···. 뭘 하는게 좋을까?”
“고등 마법을 연구한다 하지 않았나?”
“으음···. 그건 이미 누나가 할 수 있는것. 자 보렴.”
그리 말하며 필티아는 손 끝에서 마력을 요리조리 움직였다. 자세히 보면 불꽃 위를 물방울이 덮고 그 위를 흙의 고리가 감싸며 고리에는 작은 번개가 몰아치고 그 모든것을 바람이 회전시키고 있다.
“【지수화풍뇌 : 엘레멘트 스톰】 인가.”
“어머 ···알고 있니?”
“고위 용족이나 요정족이 주로 쓰는 마법이지. 그런 흉흉한 걸 여기서 꺼내들지 마라.”
“네에.”
저 마법이 진짜 위험한 건 지:수:화:풍:뇌가 각기 다른 마법으로 계산되고, 그 마법들언 전부 다른 부가스펠을 달고 있다. 각각 세개만 해도 저건 15소절의 마법이 되는 것이다. 저 연산 능력은 인간에게 불가능하다.
흠.
그건 그렇고. 필티아의 연구 주제라.
“우선 이건 확실하게 말하도록 하지. 나는 대학원생이 될 마음이 추호도 없다.”
“······그러니?”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누나의 연구를 도울 생각은 있다.”
“정말이니?”
“음. 그래서 테마는 정했는가?”
“······응.”
필티아는 나를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파파가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단다.”
“···그렇군.”
“그래서 ···파파의 흔적을 찾고 싶단다. 아니 ···파파를 찾고 싶어.”
자신을 이 곳에 놓고 사라진 파파. 하르크 폰 로엔그린의 흔적을 쫓고.
결과적으로 하르크 폰 로엔그린을 찾는 것이라고 말이다.
***
필티아를 이 곳에 놓은 것은, 그녀를 지키기 위해.
곰인형 사건도 있고 하니 필티아도 그 정도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그녀를 이 안전한 새장에 가둔 것은 ···그녀의 의사를 무시한 끔찍한 처치기도 하다.
그러니 필티아는 찾아서 물어보고 싶은 것이다.
“···어려운 주제로군.”
“그렇지? 알고 있단다 ···물론 동생에게 무리하라고는 말하지 않을게. 누나 혼자서라도···.”
“나는. 어렵다고 했다.”
“으, 응? 그, 그랬지.”
“불가능하다고는 하지 않았다.”
그래.
불가능하지는 않다.
물론 하르크 폰 로엔그린은 D/Z SAGA의 본편에는 단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
모두가 그를 죽었다고 생각하지만, 묘지는 존재하지 않고, 그저 은거했다고 나오긴 한다.
하르크의 환영이나, 300년전의 기억 등으로 그를 옆에서 보거나 환영을 만나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만, 그 본인이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즉 그것은···.
“흥미롭군.”
“어, 어?”
나도 지금까지 경험해 본 적 없는 미지.
하르크 폰 로엔그린 본인을 찾아 떠난다.
제프린이 아니라, 이 세계 너머. 이 대륙 어딘가에 있을. 아니면 ···이 중간계라는 차원을 넘어서서 있을지도 모르는 그를 찾는다?
두근거리는 미지 아닌가.
“돕도록 하지. 나도 위대한 선조님을 찾는 데에는 흥미가 있다.”
“저, 정말? 정말이니?”
“자 그럼. 이전에 했던 위대하신 선조님의 보물을 찾는 일에 박차를 가할까.”
“······응! 어, 언제부터 할까? 일단 동생의 일이 정리되면···.”
“무슨 소리지? 바로 떠나도록 하지.”
“······응?”
뭐.
원래는 파티원들과 다 뚫으려고 했는데
이 응애 드래곤의 마음이 가상해서 하나 선물로 줘야지.
***
보통 하르크의 유산은 레이드 보스를 쓰러트린 보상방이나, 고레벨 맵의 히든 지역에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 모든것을 파티원들과 함께 공략할 생각이었지만 ···그 안에서도 도저히 공략이 불가능한 지역이 있다.
맵핑 자체가 불가능한 곳. 길 없는 길.
몬스터만 득시글 거리는 땅.
그곳은 ···그냥 진입 자체가 짜증난다.
그리고 나는 필티아와 함께, 그런 땅 중 하나. 만악의 미로를 찾아왔다.
여기는 남부에서도 더 남부로 들어간 끝에 나오는 곳이고, 필티아의 부유마법 덕분에 하늘을 날았다.
드래곤 모드로 변신해서 등에 태워주나 했는데, 그건 너무 부끄럽다며 사양당했다.
뭐 아무튼. 저 아래를 보고 있으면 무언가 검은 것이 꿈틀거린다.
그것은 땅 그 자체. 숲과 늪지대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처럼 구불거리는 그 모습에, 필티아가 나를 빤히 바라봤다.
“동생. 여기는?”
“만악(萬惡)의 미로다. 분 단위로 길이 바뀌는 미로지.”
“어, 엄청나게 위험한 곳 아니니?”
“그야 정면으로 들어가면 위험하겠지.”
“·········응?”
나는 필티아를 보고 어깨를 으쓱했다.
“저기 상자가 보이나?”
“······으, 응.”
“그럼 그걸 가져오면 된다.”
“······저길 뚫고서? 누나라도 저건 좀 싫은데···.”
“무슨 소리를 하는거지. 우리는 날고 있지 않은가.”
“·········?”
지상형 미로 특징.
하늘에서 내려가면 골인지점에 바로 도착할 수 있음.
***
하늘에서 내려가면 골인지점에 바로 도착할 수 있음.
이 만악의 미로를 하늘에서 공략한다.
그건 게임 내에서도 할 수 있는 공략법이었지만 그럴 경우 미로가 하늘을 향해 덩굴을 내뿜어서 이쪽을 공략해온다.
게임사도 알고 있는거지.
덩굴은 각양각색의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내뿜으면 수 없이 많은 카운터 속성 공격을 가지고 있지 않은 한 정면으로 뚫는것과 대등하거나 더 어려운 길을 걷게 된다.
그런데 뭐.
이쪽은 드래곤이 있다.
나는 필티아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필티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여기를 공중전으로 공략하기 위해서는 방금 전 보여준 【지수화풍뇌:엘리멘탈 스톰】이 핵심 스킬이 된다.
각양각색의 속성 덩굴에 저거 하나 던져주면 알아서 자체 파괴되며 좋아 죽는다.
정면에서 뚫다가 멘탈 나간 뉴비들은 그거 하나 배우고 공중에서 폭발시키며 스샷을 찍고 카페에 올리며 ‘어쩔티비 저쩔티비’를 적기도 하고 그랬다. 아무튼 그립구만.
그렇게 덩굴은 혼자 울부짖으면서 타오르거나 얼거나 부숴지거나 갈라지거나 으깨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덩굴의 생체반응이 사라지는 그 무렵. 미로의 끝에 도착할 수 있었다.
덩굴은 반응이 없고, 나는 필티아와 함께 대지에 내려섰다.
그리고 약속된 대사를 슥 읊어준다.
“해치웠나?”
휙!
“동생!?”
역시.
해치웠을리가 있나.
이 마지막 발악패턴도 똑같다. 나는 덩굴이었던 것이 마지막으로 등 뒤에서 쏘아낸 가시를 휙 하고 피한 뒤 어깨를 으쓱했다.
여기서 ‘해치웠나’를 말 한 뒤 피하는게 진짜 재밌단 말이지.
그 뒤에 진짜 ‘어쩔티비 저쩔티비 죽이고싶죠? 그런데 아무것도못하죠? 이미 죽어버렸죠?’를 박아주는게 고인물의 센스다.
뭐. 아무튼.
“···아. 사라져간다.”
뭐. 아무튼.
“진짜로 죽은 것이다.”
덩굴은 사르르 바스라지기 시작했고, 결국 보물상자만 남았다.
그리고 그 앞에 서서, 가지고 있는 재주로 능숙하게 상자를 열었다.
달칵 소리가 나고 열린 보물상자 안에 있던 것은.
한 세트의 빗과 거울.
아름다운 용이 양각된 황금의 빗과 거울은, 신성하기 그지 없었다.
나는 그걸 보고 고개를 끄덕였고, 필티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디선가 봤지만, 기억나지 않는 묘한 기시감.
“어라···? 이거···. 어디선가.”
“위대하신 선조님께서, 황후님께 청혼할 때 드린 선물은 총 다섯가지라고 하지.”
“······응. 들은 적 있단다. 마마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다섯개의 선물을 드렸다고 말이야. 마마는 평생 그 다섯개를 자신의 몸처럼 소중하게 사용하셨다고 ···했었지.”
“그리고 이 빗과 거울은 황후님께 드린 선물이 되지 못한 것이다.”
“······못한 것?”
“세계 최고가 되지 못했던 것. 허나 ···최고에 가까웠던 것. 선물들 중 빗과 거울은 당대 모든 드워프들이 경합해 내놓은 것들 중 최고 품질을 드렸다고 한다.”
“그렇구나···. 그래서 생김새가 비슷하다고 생각했구나. 마마가 쓴 거랑 조금 다른데도 말이지.”
“음. 당대 미술양식이라 묘하게 생김새가 비슷한 것이겠지. 아무튼 이게 위대하신 선조님의 유산 중 하나다.”
“······그렇구나. 마마의 것이 되지 못한 채 삼백년 간 잠들었던 보물. 나와 똑같이 길게 잠들어 있었구나”
“이 보물도 드디어 사용처를 얻었으니 다행이군.”
“후후. 누나도 동감이란다. 그래서 이건 아일라에게 줄 거니? 그 아이도 크게 기뻐하겠구나.”
“무슨 소리인가.”
“응···?”
“이건 누나거다. 누나와 내가 발견했으니 말이지 당연한 것 아닌가?”
“···어, 어?”
필티아는 눈에 띄게 당황하다가 빗과 거울을 쥐여주자 격한 숨을 몇 번이나 들이쉬고 내쉬고는, 이쪽을 바라봤다.
“동생.”
“뭐지.”
“아일라가 아니라 ···이 누나에게 이걸 주는 의미는 뭐니? 누나가 물어봐도 될까?”
“의미야 하나 뿐이지.”
“하나···!”
“그 자리에서 먹은건 그 자리에서 분배한다. 당사자 빼놓고 제 삼자에게 몰아주는 건 예의가 아니다.”
그게 파티플의 기본 아닌가?
“···············.”
필티아는 눈을 가늘게 뜨고, 빗과 거울을 으스러지게 꽉 쥐었다.
그렇게 하르크의 보물을 손에 넣은게 기쁜 걸까.
아무리 튼튼하게 만들어졌다고 해도.
드래곤이 전력으로 쥐면 짓이겨지고 찢겨져서 토막날텐데 말이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