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285)
284. 더블 부킹 1
더블 부킹.
사실 그리 놀랍지 않은 일이다. 대단하게 생각할 일도 아니다.
아일라와 필티아.
둘이 아예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새삼 같이 식사하면 뭐 어떻겠는가.
그럴 수도 있는거지.
아무튼 그래서. 보석을 얻기 위해 필티아에게 찾아가서, 솔직하게 말했다.
그 날 저녁은 아일라와 예약이 되어 있다. 그러니 다른 날을 잡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고 말이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정말 예상 외였다.
“그러면 누나는 점심에 찾아가면 되지 않을까?”
“다른 날이 아니라…. 말인가?”
“응.”
“…어째서지?”
“글쎄?”
아예 점심 약속과 저녁 약속을 따로 잡아야 한다.
“알겠다. 그럼 점심 약속은 편의점에서….”
“으음. 그건 재미가 없어요. 누나는 그런걸 바라는게 아니란다.”
“……뭐라?”
“오늘이 아니라 약속날 점심. 누나의 둥지에서 동생이 보석도 고르고 요리도 해주면 안 될까?”
음.
이른바 원정 요리인가.
아예 영문을 모르겠지만, 필티아가 지불하는 대가가 엄청나게 큰 이상. 이쪽도 무리해서 요구하기는 어렵긴 하다.
…아니.
요구하면 들어야 주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알겠다. 그러도록 하지.”
“응. 그럼 그 날 오전부터 점심 너머서까지는 누나의 시간. 그 때 모시러 가겠습니다. 황자님?”
그리 말하고 필티아는 나를 둥지에서 편의점 앞까지 날려줬다.
“묘하게 고집을 부리는군 답지 않아. 대체 뭐가….”
아.
그렇군.
슬슬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이니 그럴만도 하다.
“음. 좋은 테스트를 할 때로군.”
그러니까 계절상으로 치면 …필티아 이벤트 에피소드 17번.
이벤트명.
‘우리 딸아이에게’
“모두가 호평했지만, 나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
그러니까.
이번에는 원작을 조금 덧칠해 볼 생각이다.
***
숙명의 날이 찾아오고, 그 날 오전.
아일라를 위한 요리의 밑준비를 마치고, 그렇게 필티아의 둥지에 유괴되었다.
“어서와! 동생!”
“…….”
필티아는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환대했고, 제일 처음 한 것은 식사 준비…. 가 아니라 보수의 지불이었다.
“보석 세 개라고 했지? 이 안에서 골라보렴?”
“음.”
필티아의 창고중 악세서리를 잔뜩 보관해 놓은 칠색의 낙원.
악세서리 안에는 당연하다는 듯 보석이 박혀 있으며, 필티아의 경우 이 안에 있는 보석을 빼서 내게 줄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하다.
“여긴 과하다.”
“…그, 그러니?”
“음. 금화의 산으로 돌아가도록 하지.”
허나, 그건 상위템을 갈아서 나온 재료로 하위템을 업그레이드 하는 듯 한 바보같은 짓.
나는 금화의 산으로 돌아가서, 금화들 사이에 쳐박혀 있는 보석들을 찾기 시작했다.
정제된 최고급품이 아니라, 말 그대로 폐업정리 창고를 방불케 하는 금화들 사이에서 보석을 빼내야 한다.
“전부터 생각했지만 동생은 …이런 금화들을 보고도 전혀 미동도 하지 않네?”
“음? 그야 그렇지.”
“…인간들은 금화를 보물로 생각하는거 아니었니?”
“금화. 보석. 무구. 그런것들은 나에게 있어서 보물이 아니다.”
“너무 많이 봐서 질린거구나?”
“음. 조금 다르다. 그저 진실되게 이걸 보물로 느끼지 않는 것 뿐이다.”
이 게임의 후반 인플레이션은 정말 맛이 가버려서 무기 하나에 수십억씩 하니까, 그런거 하나 쥐어서 풀강 때리거나 옵션작 좀 하면 여기에 있는 금화도 가볍게 녹는다.
그러니까, 태생부터 1티어. 혹은 최상위. 혹은 그 위에 있는 압도적인 괴물같은 무구가 아니면 보물이라 칭하기도 아쉽다.
하르크의 옥좌도 으악 플라잉 켈터스다 놀이 하려고 얻는거지 그게 실용성이 있냐면 글쎄다.
그나마 지금까지 본 것중 최하위라고 한들 보물 랭킹에 들여놓자면 마방깎이 가능한 스펠디아라비정도? 그것도 플레이가 편해지는거지 그거 외엔 딱히 없다.
“그렇구나. 후후…. 동생은 신념이나 동료. 혹은 긍지. 그런 것들을 보물로 삼는구나. 파파도 그랬단다. 천상의 최고위 천사들과 대적할 수 있는 무구를 손에 넣고서도 소박하고 순수한 면이 있으셨어.”
“…….”
아니 뭐.
그런건 아니고요. 하르크가 진짜 쓰던 보물이면 저도 조금 관심이 있긴 하네요.
환혼창세검이나 개천의 갑옷같은거 하나만 주면 안 될까.
“역시 동생은…. 후후.”
하지만 굳이 그걸 말하진 않았다.
그런걸 반박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금화의 산은 어마어마 했으니까.
***
금화들 사이에 보석이 껴있다는 것은, 연마된 금속 사이에 광물을 쳐박아 놨다는 의미고, 당연히 광물 위에 스크래치가 생긴다.
허나 그 안에서도 스스로의 가치를 입증한 …즉 마력으로 자신을 두르고 있는 보석은 자체적으로 재생하거나 스스로의 흠집이 나는 것을 막거나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무척이나 좋은 보석 세 개를 구할 수 있었다.
“…동생 괜찮니?”
“………괜찮다.”
내 체력을 대가로, 죽기 직전까지 보석의 산을 헤집은 결과로 말이다.
와 이거 힘들어, 체력 3이라고 나 자신을 너무 높게 평가한 거 아닐까.
하지만, 보석을 주겠다고 한 필티아를 고생시킬수도 없는 노릇.
결과적으로 얻어낸 보석은, 그럭저럭 괜찮은 상등품이었다.
“…그럼 이제 요리를 해 볼까. 필티아 누나. 먹고 싶은 것은?”
“동생이 만들어준다면 뭐든 괜찮단다.”
“…….”
세상에. 그렇게나 어려운 주문이라니.
***
하지만, 정말 다행이게도 나는 필티아 블루브리즈의 취향을 알고 있다.
당연히 필티아도 히로인 중 하나였고, 그에 걸맞는 이벤트야 잔뜩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안에는 필티아가 좋아할 법한 요리도 있었다.
이게 과연 정찬에 어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아무튼
필티아에게 부탁해서 얻은 식용 몬스터 고기를 손질해 나아가며, 다른 쪽에는 우유를 준비한다. 그 외에는 버터와 소금. 그리고 밀가루와 허브 몇 개 정도.
거기에 살짝 퍽퍽하지만 잘 구워진 빵. 마지막으로 손바닥 크기 정도로, 정말 어떻게든 쥐어 짜냈다고 봐야 할 시폰 케이크 한 조각.
“…동생? 이 요리는……. 잠깐, 정말? 어떻게 이걸….”
“문헌에 있었다.”
삼 백년 전.
필티아 블루브리즈는 친아버지 란그리스 블루브리즈를 잃고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는 절망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당연히 맹우였던 란그리스를 잃은 하르크 역시 충격에 빠져서 필티아를 돌보는데 소흘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필티아를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적진 한가운에 몰린 하르크. 죽어버린 벗. 판단 한 번에 수 없이 많은 병사들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
야습과 암습은 기본이요. 흉내를 내서 꾀어내려 하기도 하고, 목숨을 걸어야 하는 시간이 그렇지 않은 시간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전장.
필티아는 이해하면서도 점점 메말라가고 있었고 그 때 나선 것이 황후였다.
필티아를 자기 딸처럼 아낀 황후는, 곧 필티아의 생일이라는 것을 알았고 딸의 생일 코앞에서 눈을 감아야 했단 친우 란그리스의 죽음에 슬퍼하면서도, 그 뜻을 이어갔다.
절박하기 그지 없는 전장. 오늘 밤 당장이라도 침공해올 마족.
암습과 야습에 능하기에 불을 피우는 것도 제대로 할 수 없었지만, 황후는 최대한 노력해서 …자신의 딸아이가 될 필티아의 생일을 준비했다.
그렇게 쥐어 짜낸 것이 바로 몬스터 고기를 베이스로 주변 허브를 따서 만든 크림 스튜.
보급으로 나오는 빵 중에서 그나마 덜 퍽퍽한 것을 최대한 골라 올리고.
그 끝에 어떻게든 주변 물자에서 남는 것들을 공수해 만든 케이크 한 조각까지.
암습에 대비해 불을 꺼야 했지만, 목소리는 최대한 낮춰야 했지만 막사에서는 필티아의 생일 축하 노래가 매우 작게 울려 퍼졌다.
그 날 필티아는 소리 죽여 울면서 진심으로 황후 품에 안겨들었다고 …전해진다.
“……그 때가, 떠오르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파파는 힘들고, 전장은 무섭고…. 그때 마마가 해준 생일 요리.”
“음. 문헌에도 그리 적혀 있었다.”
“후후. 정말 무서운 나날이었단다. 그런데 있지? 이걸 먹었을 때. 나는 살아 있어도 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이 세상에 혼자 남은게 아니구나.”
“…….”
“고마워 동생. 후후. 그래. 정말 행복해.”
필티아는 웃으며 식사를 마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필티아 블루브리즈라는 드래곤이, 300년 전 역사서에 기록된 것은 실로 한 줌이나, 모으고 모으면 몇 가지 내용이 튀어나왔다. 그중 하나가 …누나의 생일파티지.”
“…….”
“누나의 생일을 추론해보면 계절은 가을.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든 남은 식량으로 만드신 거겠지. 곧 누나의 생일 아닌가?”
“응. 맞아. 동생은 누나의 생일을 그렇게 추측하고 이걸 만들어 준 거니?”
아니.
루트 보고 알았는데요.
물론 떠올리는건 조금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요새 생각할게 너무 많아서요.
뭐 아무튼.
원작 기준으로는…
살아가도 된다. 라고 깨닫게 된 요리를 본인에게 직접 만들어주는 것으로 본편 이벤트는 끝난다. 그때를 추억하며 행복한 하루가 되니까.
하지만 나는 모두가 좋게 본 그 스토리를 결코 호평가 할 수 없었다.
고아원에서 나온 내 입장을 대입해보면.
20년 후 쯤에 김치짠지에 일부러 퉁퉁 불려서 위에 우겨넣은 라면을 그때를 추억하라고 만들었어. 라고 하는건 일부러 맥이는거 아닐까.
그러니까, 그 이벤트는 이렇게 수정되어야 옳다.
“살아가도 되는게 아니다. 필티아. 아직 먹을 배는 남아 있나?”
“응? …조금이라면?”
“그럼 잠시만 기다리도록.”
“…으, 응?”
그럼. 이제 시작해야지.
준비된 우유에 버터와 밀가루는 조금 더 고급진 것으로, 고기는 더 최상품으로 쓴다.
고기가 익어가는 소리가, 버터의 향이, 밀가루의 풍미가 기존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같이 구운 빵은 부드럽게 잘 찢어지며, 모락모락 김이 피어 오른다. 저것만으로도 행복하게 배불리 먹을 자신이 있다.
당연히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내 최선의 실력을 발휘해 케이크를 한 번 더 만들어낸다. 생크림이 가득 발려져 있고, 위에는 아기자기하게 데코레이션 되어 있는 과일의 동산.
“…이건.”
“같은 메뉴지만, 조금 더 품질을 올렸다.”
“조금 더…. 수준이 아니잖니?”
“그야 그렇지. 누가 만든 것인데.”
“…….”
“그리고 이 정도는 되어야.”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최상급 스튜. 갓 구운 따듯한 빵. 사랑스럽고 아기자기한 케이크.
“살아도 된다. 라는 추억을 행복해져도 된다로 덧씌우기에 충분하지 않겠나?”
“……행복.”
“살아도 된다. 라는 추억을 행복해져도 된다로 덧씌우기에 충분하지 않겠나?”
얘도 참 불우하게 살았으니 말이야.
“자. 들도록. 이게 진짜 식사다.”
“……응.”
“아. 그렇군 이 말을 깜빡했다. 생일 축하한다.”
나의 그 말에 필티아는 조용히, 대답 하지 않고 식사를 들었다.
나도 굳이 말을 걸지 않았다. 대답을 바라지 않았다.
생일상에서 우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서, 울음 섞인 파티가 되는 것은 조금 …그렇지 않나?
뭐 아무튼. 필티아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웃으면서.
아무 말 없이 내가 만든 요리를 입에 넣고, 하나하나 추억을 덧칠해갔다.
음.
이제야 그 이벤트를 보면서 도저히 납득하지 못한 것들을 해낸 기분이다.
좋은 일을 했구만 그래.
***
그렇게 한참의 식사가 끝나고, 필티아는 흠흠.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으흠. 누나는 참으로 감동 받았단다.”
“눈이 부었다만. 그럼에도 어른인 척 하는건가?”
“으흠. 으흐흠! 그러니 누나는 이 감동을 주체할 수 없단다.”
계속해서 어른인 척 할 셈인가.
아무튼 필티아는 식기를 정리하고는 그저 빤히 나를 바라봤다.
“으음…. 원래 백 년 정도는 기다려 주려고 했는데, 당장 가지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는걸? 누나는 아일라가 참 부럽네.”
“……?”
무슨 소리지?
아일라가 가진 보물 중. 필티아가 샘나는 물건이 있었나?
“그래 뭐. 불로불사의 비약 몇 개 정도는 구할 수 있겠지. 백년은 순식간이니까…. 후후.”
“무슨 소리를….”
“자. 누나는 이제 동생을 돌려보내 줄 거야.”
“성급하군.”
“더 이상 동생이랑 같이 있으면 …으음. 누나도 소유욕이 강한 드래곤이니까. 참기 힘들 거 같거든.”
“……?”
“자! 아무튼 이제 동생은 아일라를 신경 써 주렴. 알겠지?”
“……?”
아.
생각해보니.
이벤트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덧칠하느라 체력을 다 쓴 바람에….
그리 생각하며 번뜩 생각을 되돌리니 눈 앞의 풍경이 편의점으로 변했다.
필티아가 나를 둥지에서 날렸음을 깨달았다.
더블 부킹.
오늘의 약속은 하나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찰나간에 스스로를 점검한다.
체력은 얼마가 남았지?
천 오백보 중 얼마를 더 걸을 수 있지?
오늘 나는 움직일 수 있는가?
결론은 금방 나왔다.
적다.
아주 조금.
쉽지 않다.
그리고.
“울프람. 저 왔어요!”
“…….”
저 멀리서 아일라 트라이스타가 만면의 미소로 손짓하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후후. 디너까진 시간이 남았으니까, 조금 산책부터 해요. 우리!”
이상하다.
저 녀석의 등 뒤에 사신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