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287)
286. 두렵지 않은 밤
자고 일어났을 때는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왜 흑왕호 객석에서 깨어났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름 멀쩡해진 체력으로 편의점에 돌아오니 데스크 위에 쪽지 하나가 놓여 있었다.
내용은 ‘죄송합니다. 나중에 반드시 이 빚을 갚겠습니다. 아일라 올림’
이상하게도 덜덜 떨리는 필체로 적혀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던거지.
“그건 내가 설명하도록 하지.”
파트라슈 말로는 아일라 또한 상태가 좋지 않아 우리 둘 다 디너 도중 뻗었고, 결국 아일라는 사무실에, 그리고 나는 흑왕호의 객석에 재웠다고 한다.
그런가. 아일라 녀석도 무언가 피로한 일이 있었나보다.
음….
“나중에 다시 한 번 식사를 준비해야겠군.”
“그게 좋을 듯 하다. 주인.”
파트라슈는 내 어깨에 손을 턱, 하고 올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보니, 이 녀석 두 다리로 서서 오른 발을 들어서 내 어깨 위에 올려 놓은 모양새.
드디어 사족보행을 포기한 것인가. 아니면 늑대라는 종 자체를 포기한 것인가.
…뭐 아무튼.
아일라 앞에서 못 보일 꼴을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체력 문제 해결이 시급하군.”
체력은 퓨어 스테이터스중 마력 다음으로 올리기 까다롭다.
마력은 …진짜 타고나는게 대부분이니까.
일단.
“이 망토부터 풀 작업을 하는게 우선이겠군.”
얼음정수의 망토에 있는 체력1을 우선 얻고, 체력 4부터 찍자.
…이브를 파티에서 빼는 건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 실피아의 영입은 조금 뒤로 미룬다고 쳐도 우선은 그게 최선이다.
***
그리하여, 나는 라이아 다이아 프로스트가 살고 있는 얼음 여왕의 성에 찾아왔다.
“나의 동맹 울프람. 오늘은 무슨 일이죠?”
“나에게 할 의뢰는 없나?”
“……대담하군요.”
“무얼. 의뢰가 있다면 언제든지 말 하도록 우리는 동맹이니.”
“…음. 있습니다.”
“단. 그만한 보수는 받을 것이다.”
“물론이지요. 지금 당신이 바라는 것은, 그 망토의 강화 아닌가요?”
“알고 있었나?”
“그 또한 물론입니다. 저는 당신의 동맹이니까요.”
동맹과 이게 무슨 상관인지 도저히 감도 오지 않지만, 라이아는 차갑기 그지 없는 차를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차 맛도 모를 애가 대체?
뭐 아무튼 의뢰가 있다고 하니 받으면 될 것이고…. 이제 내용을 들어봐야지.
그녀를 빤히 보며 내용을 재촉하자 라이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무척이나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그대에게만 부탁할 수 있는 의뢰가 말이죠.”
“무엇이지?”
“아케아 협곡에 사는 그 불쟁이 계집의 세력에 대한 조사에요.”
“너희들 스스로의 조사로는 부족한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저 단순 무식한 화력쟁이들과 정면으로 붙었을 때 저희가 불리합니다.”
음.
라이아가 스스로의 약점을 인정한다는 건 호감도가 꽤 올랐다는 이야기다.
간단한 이야기다. 영하는 한계가 있지만 영상은 끝없이 치고 오르기 때문에, 기본적인 화력 차이는 홍염여제쪽이 유리하다.
하지만 홍염쪽은 대체로 멍청하고 급진적이며 생각이 짧기 때문에, 지지 세력으로 선택하려면 꽤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아무튼, 그러니까 나에게 바라는 것은 …옳거니. 정탐이렷다.
어디보자.
그럼 내가 희망의집부터 시작해 막노동 생활을 길게 하면서 편의점의 끝까지 가서 얻은 걸쭉한 입담과 말장난 조금의 아부와 사회생활을 합치면….
이거. 생각보다 쉽게 풀릴수도 있겠는데.
“물론 어려운 부탁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의 전력이 부족하여 직접 출병할수도, 상성상 정보원을 투입할수도 없는 노릇 부디 동맹인 당신에게 처음부터 조사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라이아. 너의 말에는 두 가지 어폐가 있다.”
“네?”
“첫째. 어려운 부탁이 아니다. 무척이나 쉽고 간단한 부탁이지.”
“……이게, 쉽다는 말씀이신가요? 울프람이 저희의 동맹인 이상 그쪽은 당신을 적대할 것입니다.”
“말 끊지 말도록. 둘째.”
“…….”
“대체 왜 처음부터 조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뭐, 라고요?”
“네 말대로, 내가 너의 동맹을 자처하고 나선 이상. …내가 정말 ‘우리의 숙적’이 될 홍염 세력에 대한 조사를 하지 않았을거라 생각하나?”
“……그, 그렇다면 당신은.”
“무엇이 궁금하지? …동시에 얼마나 지불할 수 있지?”
내 말에 라이아의 차갑기 그지 없는 표정에 금이 갔다.
“…당신의 정보가 맞다면, 그야 얼마든지 지불하죠. 울프람 …나의 동맹.”
“좋다. 거래는 성립이다. 나의 동맹. 라이아 다이아 프로스트.”
오.
개꿀.
***
라이아 다이아 프로스트와 그녀의 세력의 이야기를 조금 하자면.
하르크 폰 로엔그린과 함께 공투하여 지상의 평화를 지켜냈지만, 한 세력의 주인이었고, 불구대천의 원수가 있었기에 중간계는 결국 그 둘에 의해 다시 한 번 전투가 벌어질 것임에 틀림 없었다.
결국 하르크는 나란히 제프린이라는 이름의 감옥에 가두는 것을 선택했다.
하지만 결국 이 감옥에 둘 다 가둔 것이 화근. 서로의 세력은 시시탐탐 전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아. 덧없고 덧없고 덧없도다. 어찌하여 세상에는 전쟁이 끊이질 않는가.
“그래서 무슨 정보를 원하지?”
“저들을 씹어먹기 위한 모든 것을 원합니다.”
“좋다. 그럼 이야기 하도록 하지.”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상대 세력에 대한 정보는 꽤 비싼 가격에 팔 수 있으니 상관 없지만 말이야.
죽음의 상인 한 번 하지 뭐.
“우선 그랑 펠리시에 휘하의 최하급 요정. 샐러맨더의 이야기부터 해볼까. 놈들의 홍염핵의 시작은 미간이다. 미간을 기준으로 오른쪽 앞발의 발바닥. 꼬리 끝으로 이어지는 삼점이지.”
“…홍염핵의 위치를 안단 말입니까?”
“그럼 …이런 정보를 바라는 것이 아니었나?”
“아, 아니 …그 이건…. 생각 외의…. 대체 어디서 그런 정보를….”
라이아는 어버버거리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래서. 홍염핵이 뭐냐 하면 …간단하게 말해서 급소이자 심장이다.
불을 원동력으로 살아가는 홍염 세력은 스스로의 몸의 급소인 핵의 온도가 떨어지면 죽는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런 핵을 신체 한 곳에만 보관할리도 없고, 대충 맞았다고 죽어서도 안 되니, 정확하게 타이밍에 맞춰서 패턴대로 공략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홍염핵의 순서.
말 그대로 홍염세력을 정확하게 죽일 수 있는 약점 패턴.
지금까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던 금단의 비의.
“정말입니까? 정말, 정말 홍염핵의 위치와 순서를 알고 있는 겁니까?”
“물론이다.”
“대체…. 대체 그 정보를 어떻게…. 어디서.”
음.
그야 세력 내의 몬스터는 각각 만 마리는 넘게 찢어봤으니까, 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
“내 위대한 선조님의 지식이지.”
“…그렇군요. 하르크. 우리를 가뒀다면, 응당 우리의 약점 또한 후대에 물려줬을 터.”
“아니 그건 아니다. 오직 나만이 알고 있다. 그 분의 안배를 얻은 것은 이 삼백년의 시대에서도 오직 나 하나 뿐이다.”
“뭐라고요?”
“잡설이 길어졌군. 시간이 없으니 설명을 계속하지. 그 다음은 플레임메이커다.”
나는 그 뒤로 플레임 메이커의 설명을 이어 나갔다.
이번에는 좀 더 디테일하게 짚었다. 홍염핵의 위치는 물론 놈들의 생태. 쓰는 기술. 전투 방식까지.
“맞아요. 놈들은 그런 전법을 썼었죠. 의심할 길 없는 진짜 정보군요.”
“…나를 불신했는가?”
“죄, 죄송해요. 그럴 생각은….”
“그럼 설명을 계속하지.”
“아. 아아….”
“또 뭐지?”
“전부 외우지 못하면 어떡하죠. 무언가 적을 곳이 있다면….”
“그렇다면, 내 편의점에서 파는 펜과 종이가 있다. 그걸 이용해서 적으면 금방이지.”
“…아, 아아. 그런 보물이 있다면!”
“하지만 우리는 대등하기에, 나는 그 물건을 일정의 삯을 받고서 너에게 팔 생각이다.”
“…보물이라면, 내겠어요!”
좋은 대답이에요.
그렇게 나는 다시 한 번 샐러맨더와 플레임메이커에 대한 설명을 했고, 라이아는 중간계공용어로 이를 적어나갔다.
“다음…. 다음은요?”
“다음이라…. 말해 줄 수 있다. 말해줄 수 있다만.”
“……뭐죠?”
“세 번째부터는 중간급 정령. 즉. 실질적인 전력이다.”
“네, 그러니까 어서….”
“헌데 말이다. 너에게서 얻을 수 있는 보물이 과연 그놈들의 정보와 교환하기에 충분한가? 너는 그 삯을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대. 대체 뭘 원하는 거죠? 우리는 동맹 아니었나요?”
“동맹이기에, 무한한 호의가 아니라 호의가 기반된 거래를 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너에게 무상으로 무언가를 원하지 않았지만…. 여기서 정산이 흐트러지면 우리의 동맹은 파국으로 치달을거라 생각하지 않나? 일방적인 호의는 붕괴의 시작이다.”
“…그 또한 맞는 말이군요. 그, 그래서 저에게 뭘 바라죠?”
“정산서를 다시 한 번 검토하자는 이야기다.”
“……알겠습니다. 보물고로 안내하죠. 거기서 대화를 다시 나누죠.”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그나저나 쉬운 정령이다.
홍염여제 그랑 펠리시에의 정보를 팔면 이 성 전체는 얻을 수 있는 거 아닐까?
***
얼음여왕의 보물고는 필티아의 보물고보다 화려하진 않지만 그렇기에 가진바 특색이 명확했다.
간단하게 말하면 순수한 마력의 집합체다.
요정들과 인간들. 그리고 정령들이 보물을 보는 기준은 저마다 다르고, 주력으로 삼는 속성에 따라 또 달라지기 때문에 라이아 다이아 프로스트의 보물고에 넘쳐나는 것은 크게 잡아 두 종류.
하나는 순수한 고밀도의 마력을 보관하고 있는 물체.
다른 하나는 얼음의 정령력을 보관하고 있는 물체.
여기서 물체라고 하는 것은 …정말 그렇게 싸잡아서 말 할 수 밖에 없다. 양손검부터 반지까지. 돌맹이부터 보석까지. 그 모든것에 마력만 담겨 있다면 일단 모아놓은 듯 한 착각이 들었다.
제각기 서로 다른 외형을 하고 있지만, 피워 올리는 마력과 정령력은 폭풍이 몰아치는 파도와도 같아서 황실 혈통이 정신을 잡으라고 소리 칠 정도다.
얘네들은 스토리로 치면 중반에서 중후반부로 넘어가는 기점. 당연히 얘네들 때려잡고 보물고를 털 때는 그만한 레벨의 물건들이 나오는 것은 필수.
“플레임메이커 이후의 정보를 주신다면 …이 안에 있는 보물을 드리겠습니다.”
“음.”
그랑 펠리시에의 정보를 넘기면 이 안에것을 싹 다 쓸어갈 수 있겠지만…. 그렇게 다 쓸어가면 정령력을 저장한 무구가 없어서 얘네들이 대판 깨지게 된다.
그러니 나는 선택해야 한다.
여기서는 정보를 주면서도 선의를 베풀 것인가.
아니면 대가를 가혹할 정도로 뜯어 낼 것인가.
내 알바인가 싶지만, 고이 모셔놓고 두고두고 우려먹고 싶은 마음의 발로일까. 벌써부터 배때지를 찢어서 얼음 알을 낳는 타조를 죽여버리고 싶진 않다. 아깝기도 하고 말이야.
뭐. 지금 내가 여기서 얻을 거라고는 일단 이거 하나 뿐이다.
“그럼 지금까지의 정산으로 이것을 받도록 하지.”
“그걸로 괜찮으신가요?”
“추가로 얼음정수의 망토를 강화하고 싶은데 괜찮나?”
“무, 물론이죠. 하지만…. 정말로 그걸로 괜찮으신가요?”
“괜찮다마다.”
“저희는 그 물건의 사용법도 모릅니다. …하르크의 마력이 느껴져서 가지고 온 것입니다만….”
“나는 알고 있으니 괜찮다. 자. 그럼 정보의 공개를 계속하지.”
나는 슬쩍. 손에 넣은 물건의 설명을 읽고는 만족하며 이야기를 계속 해 나아갔다.
【초대황제의 초마도숙면베개(미사용)】
【2T】
【착용시 귀속】
【작은 불면증을 앓았던 황후를 위해 초대 황제가 만든 베개의 복제품이며 미사용품입니다.
착용시 본인에게만 이하의 효과를 가집니다.】
【절대로 때가 타지 않습니다.
배고 잘 경우 완벽한 숙면의 품질을 보장합니다.
중급의 체력 자연 회복 증진이 있습니다.
숙면을 일정 시간 이상 취할 경우 사용자의 대부분의 상태이상과 후유증을 회복합니다.】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보물.
그건 보검도, 갑주도, 영약도 아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득템 아닐까.
이제.
근육통이 두렵지 않은 밤을 보낼 수 있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