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288)
287. 형언할 수 없는 광기
이 제프린에서 대학원생은 참으로 불쌍한 존재다.
우선 대학에서의 대우가 바뀐다. 학부생은 학비를 내고 다니지만, 대학원생은 월급을 줘야 한다.
즉 손님에서 노동자로 격하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교수들은 대학원생을 철저하게 부려먹고, 자신이 계산하거나 정리해야 할 잡스러운 일을 도맡아 하는 편리한 사역마 취급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교수와 대학원생이라는 절망적인 상하관계의 역차를 좁힐 수 있는 인물이 있다.
이 녀석은 반드시 자기보다 위대한 인물이 된다. 라는 재능을 지닌 학생?
물론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허나 거기에 교수마저 무언가를 시킬 때 그녀의 뒤에 있는 배경을 생각해야 할 정도의 인물이라면 어떨까.
대표적으로, 이브 폰 로엔그린이 대학원생이 된다고 쳐보자. 이브는 손사래를 치며 ‘무슨 말을 그렇게 하세요.’ 라고 하겠지만 어디까지나 가정 하에. ···이브의 대학원 생활은 다른 이들과 똑같이 절망으로 물들 것인가?
결코 아니다.
차기 황위 후보. 모든 황위 후보들이 한 패로 삼고 싶어하는 마력 22의 괴물은 교수의 뺨을 쳐도 교수가 울면서 고개를 조아리고 살려달라고 할 것이다.
물론 이브에게 견줄수는 없지만 ···이브와 비교하면 달과 반딧불이에 지나지 않지만 그럼에도 스스로 빛나고 있는 한 명의 차기 대학원생.
그것이 바로 이졸데.
내년 기사학부 대학원생이 될 그녀는 자신의 지도교수와 함께 무려 교수진들의 단합대회에 참석하는 영광을 누렸다.
교수 단합대회.
2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사이에 서로간의 연구를 공유하고 황실에서 유행시킨 마력족구를 한 게임 뛰면서 땀 한 번 흘리고, 끝난 뒤에는 스튜를 먹으며 하하호호 이야기를 나누는 단합대회.
물론 무대장 설치. 선 긋기. 공 준비. 요리 준비까지 전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대학원생들이 한다.
허나 그럼에도 이졸데는 교수의 제안에 얼굴이나 비추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응당 그래야 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학원 선배들이 땀과 눈물을 흘리며 교수님들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 족구장을 설치하는 그 와중에도, 내년 신입 대학원생이 될 이졸데는 교수들과 담화를 나누며 이를 방관했다.
사회생활을 안 해본 티를 내는 것일까. 그도 아니면 자신은 일반 대학원생과 다르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약자멸시를 시도한걸까.
선배들이 저리 노력하는데 교수와 웃으며 담화 나누는 대학원생(진)의 두려울 정도의 광기.
그리고 이 자리에는 공교롭게도.
대학원 진학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기사학부와도 관계가 없으며, 그렇다고 일을 돕기 위해서도 교수와 친분을 다지기 위함도 아니라 어쩌다 보니 말려든 한 인간이 있었다.
“오래간만이군 이졸데.”
울프람과 이졸데.
옛 주종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또 한 번의 재회를 가졌다.
***
내가 이졸데와 만나기 조금 전···. 그러니까 새벽이 가고 만연한 아침이 찾아온 그 시간.
교수들의 마력 족구를 위해 운동장에 선을 긋는 대학원생들을 하릴없이 보고 있었다.
교수들의 권력은 정말 장난 아니다.
이런 단합대회를 한 번 해도 대학원생을 동원해서 밑준비를 시키고, 그 뿐만 아니라 주요 인물들에게는 한 명씩 급사를 배분했다.
졸프. 너의 혁명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
잘 지내고 있니?
뭐 아무튼.
당연히 나에게도 한 명의 급사가 찾아왔으며, 음료와 과자를 쟁반 위에 올려놓고 내 옆을 졸래졸래 따라온다.
저기 교수들은 족구를 하고 있고, 볼 잡아오는 애들은 열중쉬어 자세로 서있고, 여기가 노예시장도 아니고 진짜.
내 급사는 눈 아래가 까맣게 파여서 나보다 체력이 낮을지도 모르는 대학원생이었다.
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황자님. 음료 드시겠습니까?”
“괜찮다.”
“네. 그럼 대기하겠습니다.”
“······.”
“무언가 시키실 일이 있으십니까?”
여기서 너한테 뭐 시키면 반 윤리적 인권침해로 고소당할거같은데?
“아니. 네가 할 일은 없다.”
“예?”
“나는 지금부터 필티아 교수님과 함께 행동할 것이다. 너는 들어가서 조금 쉬어도 된다.”
“···그, 그러면 제가 명령받은 것이···.”
“물론. 그 부분은 네 지도 교수님께 말씀드릴테니, 내 급사일일랑 그만두고 대기실에서 쉬도록 황손과 교수의 대화에 대학원생이 끼는 것도 말이 안 되는 노릇 아니겠나. 교수님께서도 이해해 주실 것이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 말하며 대학원생은 대기실로 이동했다.
그리고 저 멀리서 뭔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필티아를 바라봤다.
“표정은 왜 그러지? 나는 누나의 권유로 여기에 온 것이니, 누나가 웃는게 맞지 않나?”
“···전부 다 거짓말이었던 거 같아. 동생.”
“역시 그런가.”
이 교수 단합회의 마력 족구는 ···민생 스포츠가 부족하다고 느낀 초대 황제 하르크 폰 로엔그린이 민간에 보급한 것으로 아마 필티아는 파파가 보급했다고? 직접 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라는 것에 쫄래쫄래 낚여서 왔고, 대학원생을 초대한다는 말에 아는 사람과 함께 가자고 냅다 나를 초대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보인 것은 뱃날 나온 아저씨의 조기 족구회와 그걸 위해 랩실에서 밤새고 선그으러 나온 대학원생의 좀비 파티인가.
하지만 곰곰히 따지면 거짓말은 하나도 없었기에 또 화내기가 묘했기 때문에 필티아는 뾰로통해져 있었다.
하여.
“그럼 누나는 지금부터는 어쩔 생각이지?”
“···아침부터 손해봤어. 누나는 그냥 둥지에 돌아가서 쉴래. 동생은? 편의점까지 바래다줄까?”
“아니. 나는 좀 더 이곳을 돌아보도록 하지.”
“···그래? 그러렴. 자. 누나의 작은 비늘을 줄 테니까 편의점에 돌아가고 싶으면 누나를 불러도 된단다. 아니면 누나랑 단 둘이서 남은 시간동안 다른 곳에 가고 싶다면 그것도 괜찮단다?”
“아니. 오늘은 사양하도록 하지.”
“······.”
필티아는 좀 더 뾰로통해져서 돌아갔다.
뭐 아무튼.
지금은 저쪽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눠야 할 때겠지.
“오래간만이군. 이졸데.”
“후후. 오래간만입니다. 황자 전하. 먼저 말을 걸어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무얼. 궁금한 것이 있어서 말이다.”
“어머. 무엇이 그리 궁금하시죠?”
나는 잠깐 말을 아꼈다.
궁금한 주제야 하나 뿐이지.
쿨피스···. 아니 켈붕이. 아니 켈터스.
이졸데의 5막은 켈터스의 2학년부터 시작하지만 스토리 진행이 가장 빠른 히로인 기준이면 지금이 5막의 시작이다.
그리고 5막은 이 게임에서 꽤 중요한 분기점이 잔뜩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빛의 타락.
빛의 영웅인 켈터스가 현실에 좌절해 검은깃발에 투신. 제프린에 찾아올 절망이 된다.
영 뒷맛이 찝찝한 스토리다보니, 자연스레 시선이 가게 되거든 이게.
아 타락한 켈터스에게도 히로인이 있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엔딩 취급도 안하고, 히로인 앨범으로 안 들어가고 기타 앨범으로 들어가는 등 취급은 영 묘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여자를 꼬실 수 있는 엄청난 놈이다.
아무튼. 이게 아니지.
어떻게 켈터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이졸데는 나를 ···아니 내 뒤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아. 잠시 실례합니다. 후후 이쪽이에요.”
“네, 네! 선배님! 지금 갑니다!”
“······.”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2만 시간 넘게. 매일 들었던 그 목소리가 들려왔으니까.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내 옆을 스쳐지나가는 붉은 머리의 소년을 보며,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켈터스.
빛의 영웅.
그리고 동시에.
나는 이졸데의 그 미쳐버렸다는 말로 전부 수식할 수 없는 광기에 몸을 떨었다.
쟤 지금.
교수들 족구하는 데에 1학년생을 부른거야?
***
나는 슬쩍 켈터스의 눈을 살폈다.
여전히 밝기 그지 없고, 내가 게임에서 봤던 그 눈과 완전히 똑같다.
어떻게 말을 걸까.
나는 이 녀석과 아무런 접점이 없다.
아니 접점이 있다고 해도 ···아마 그리 좋은 접점은 아닐 것이다.
내가 육성하고 있는 ···신뢰하고 있는 내 후배와 이 녀석은 철천지 원수 ···는 아니더라도 적대적 관계에 있는게 틀림 없으니까.
물론 나는 밀푀유를 선택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낙인의 운명을 스스로 뒤집기 위해 노력하는 밀푀유를 선택했기 때문에, 이제와서 켈터스를 내 수족으로 부리거나 편으로 삼을 생각은 없다.
즉
켈터스 이 녀석은 지금 나에게 있어서, 그 어떤···.
“켈터스 군? 어서 선배님들을 도와주러 가보지 않겠어요?”
“네, 네?”
“어차피 켈터스 군은 대학원에 진학할 거니까, 지금 선배님들을 도와드리면서 점수를 따두면, 나중에 대학원생이 되었을 때 이쁨받을 수 있다구요?”
“······아,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켈터스를 빤히 바라보고 있자 그 앞을 가로막듯 이졸데가 딱 반 발자국 내 앞에 섰다.
그렇게, 켈터스와 나는 잠시 시선만 마주쳤을 뿐.
한 마디의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그리고.
제 식구 감싸기를 시전한 이졸데에게 물었다.
그리고.
“나와 ···저 소년을 만나게 하고 싶지 않은 건가? 언젠가 대학원에 갈 아이니 ···악당이 건드리지 않았으면 한다. 라는 의도였나?”
“후후. 절반은 맞습니다. 저 아이는 저와 함께 제프린에서 오래오래 면학을 해야 할 사이니 감싼 것도 있습니다만.”
“만?”
“황자님의 눈빛이. 제가 감히 당신의 검을 자처했을 때를 떠올리게 하여 저도 모르게 나섰습니다.”
“어떤 의미지?”
“냉혹 잔인한 눈으로 ···마치 배제해야 할 대상을 바라보는 눈빛. 당신께서는 종종 그런 눈을 지으셨죠. 그리고 그 눈길을 받은 모두가 파멸하였습니다. 저 아이는 제가 특히 아끼는 원석이니 이번만은 이해해 주시길.”
흠.
그러니까 내가 켈터스를 부숴버릴거라 생각해 막아섰다는 것인가.
“잘못 본 것이겠지.”
“예에. 제가 잘못 본 것이니 나중에 사죄의 의미로 저희 가문에서 나오는 보석을 진상하겠습니다. 제 지레짐작과 불충을 용서하시길.”
“······남은 반은?”
“당연히 전부 진심입니다. 대학원생 선배님들과 만나서 이쁨받으려면 1학년때부터 얼굴을 자주 비추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렇군.”
······.
나는 차마 말 할 수 없었다.
그럼 너는 켈터스가 대학원생이 될 때 까지 쟤네들이 전원 학위를 못 딸거라고 생각하는 거니?
그리고.
그럴거면 내년에 대학원생이 되는 너는 왜 도우러 안 가는데···?
***
울프람의 호의에 의해 대기실에서 조금이나마 숨을 돌리던 대학원생은 ···방금 전 부터 빨빨 돌아다니던 어린 아이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저 정도 나이의 아이가 올 곳이 아닌데?
“···너.”
“네! 선배님!”
“학부생이지? 교복을 보니 1학년 같은데. 왜 여기에 있니?”
“아! 저도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이라 지금부터 도와드리려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 어, 어째서, 그런 선택을············?”
“배움에 끝이란 없고, 공부하고 싶으니까요!”
“······아니, 공부 그, 아니······. 대학원은 공부 하는 곳이···. 아, 으···.”
도망쳐! 여기로 오지 마! 살아남아! 너라도! 너같은 아이가 올 곳이 아니야!
비명은 소리가 되지 못했다. 외치지 못한 것이 아니다. 마음 속으로 울며 대학원생은 켈터스를 막아서려고 했으나 ···등 뒤에서 느껴지는 마력에 입을 다물어야 했다.
자신의 지도 교수가 반짝이는 눈으로 이쪽으로 다가온 것이다.
“허허. 정말 좋은 마음가짐의 1학년 생이군. 자네 이름은?”
“켈터스라고 합니다!”
“그래요.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다고요?”
“네!”
“신념 있는 올곧은 눈이군요. 알고 있나요? 배움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신념입니다.”
“신념···입니까?”
“네. 자네같은 학생이 배움에 뜻을 두고 연구에 신념을 담아야 학문이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지요. 저는 요새 석학들이 논문을 써냄에 있어 신념과 의도를 담지 못해 안타까움을 느꼈는데, 정말 제프린의 미래가 밝습니다. 그 뜻 꺾지 않고 랩에서 만났으면 좋겠군요. 하하.”
“감사합니다! 반드시 대학원에 진학하겠습니다!”
“좋아요. 훌륭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켈터스의 눈은 신념과 긍지로 빛나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