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291)
290. 별에게 소원을
아일라 트라이스타는 책상 앞에 앉아서 펜을 돌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앞에 펼쳐 놓은 노트 위에 적혀 있는 가장 큰 제목은 울프람 폰 로엔그린 – 반역의 인도자 였다.
멋드러진 필기체로 적은 것은 …반역을 위해서라면 멋진 필체도 필요하다는 어린 시절의 깨달음 덕분이고, 그 결과 이런 멋진 글씨로 제목을 쓸 수 있던 것은 좋지만 …막상 그 아래에 있는 내용은 전부 백지였다.
막상 쓸 것이 막혔냐 하면 그건 아니다. 쓰고 싶은 것은 많다.
울프람이 얼마나 착한지. 무뚝뚝 한 척 하지만 부끄러움이 얼마나 많은지, 모두를 이끌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는지 등등.
그렇기 때문에 …이 울프람을 적어내기 위한 노트의 첫줄로 무엇이 어울릴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있는것 뿐.
울프람은 멋지고 대단하니까.
겉으로는 다들 약해보인다고 하지만, 아일라는 울프람의 진실을 알고 있다.
그는, 결코 약하지 않다.
오히려 그의 약한 스테이터스만이 발목을 잡고 있을 뿐.
스테이터스가 보장되었을 때의 울프람은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그리고 그의 곁에서 자신은 어떻게 행동하고 있을 것인가.
“그러고보면 그것도 생각해봐야겠네요.”
그 전투에서 울프람이 보여준 움직임.
상대의 공격을 끝까지 파악한 이후. 자신의 움직임을 행한다.
말 그대로 흘려넘기기를 중심으로 하는 …트라이스타류 체술의 끝을 보는 느낌이었다.
개안(開眼) 울프람의 그 움직임을 보며, 그제야 아일라 트라이스타는 흘림의 극의에 아주 조금 다가간 느낌이었다.
“배우고 싶다. 따라가고 싶다. …으음. 그거로는 만족 못 하겠네요.”
아일라는 당연히 울프람의 뒤에서 바라보고 있을 생각은 없다.
바로 옆에서 만족할 생각도 없다.
때로는 그가 이끌어주고, 때로는 자신이 이끌기도 하는 삶.
그렇게 함께 살아가고 싶다.
“그걸 위해서는 배운 것을 학습해야겠네요.”
학습은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행동해 숙달시키는 것.
그러니. 아일라는 내일 자신이 보고 배운 것을 실천해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마법학부 강의실.
“자. 싸우죠. 레지나 시엘라! 연무장으로 따라오세요.”
“당신 미쳤어요?”
그리 말하면서도, 레지나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주먹을 풀었다.
그녀 또한, 걸려 온 싸움을 피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
그러고보면.
이 제프린은 슬슬 가을 대축제 준비 기간에 돌입한다.
슬슬 우리도 노점상의 출점 준비를 해야 하고, 무엇을 중심으로 장사 할 것인지 정해둬야 하기 때문에 학생회실로 가서 서류를 작성할 필요가 있다.
“…오늘은 밖으로 돌아야 겠군.”
편의점 문을 걸어 잠그고, 그대로 밖으로 나섰다. 오늘 편의점에 올 녀석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도 밖으로 돌 때는 돌아야지.
음. 이번 노점상이 어떻게 굴러가든, 가게 설계와 제작은 아일라의 흑수정의 도움을 꽤 받을 것 같다.
건물 전체가 검보랏빛 광물로 번쩍거리긴 하지만, 그래도 지난번 학생회실 지하 찜질방 때 꽤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 말이다.
우선은 마법학부에 들러서 아일라를 만나자.
그리 생각하며 마법학부쪽으로 걸어가니….
저 앞에서 흉흉하게 연무장을 향하고 있는 아일라와 레지나가 보였다.
음.
또 싸우는건가.
이것 참. 그만 좀 싸울 수 없나. 쟤네는 뭐 매일 싸우고 그래. 다칠 때도 많으면서.
“음.”
둘이 싸우더라도 …아마 지금은 아일라의 승률이 더 높을 것이다.
그러니까 크게 걱정 할 필요는 없다.
아니 음. 걱정은 안 하지만.
“싸움은 구경이 최고 재미지.”
나는 조용히. 두 사람의 뒤를 쫓기로 결심했다.
뭐, 이제 와서 서로 죽일 각오로 싸울 것도 아니고, 구경 정도는 괜찮잖아?
***
두 사람은 평소 사용하던 제 1 연무장을 향했다.
제프린 최고의 연무장을 그냥 마음대로 빌리는 것이, 저 두 사람의 위치를 깨닫게 해 줬지만,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묘하게 미적지근 한 것이, 또냐. 혹은 또 왔네. 정도로 생각하는 듯 했다.
대륙 최고의 거상가문 출신인 두 사람을 저렇게 보다니, 대체 얼마나 싸운 걸까.
아무튼.
두 사람이 대기실로 가기 전에, 나는 슬쩍 말을 걸었다.
그냥 구경만 한다면 나중에 무슨 말이 나올지 모르고 말이야.
“아일라. …레지나 시엘라.”
“울프람?”
“어머. 황자님.”
“또 대련인가? 혈기도 좋은 녀석들이구나.”
“사람은 움직여야만 단련되는 법이니까요.”
“…저는 아침에 강의실에 들어서자마자 아일라 트라이스타양이 싸우자고 해서 말려든 피해자입니다.”
아일라는 방긋 웃었고, 레지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아마 레지나의 말이 진실이겠지.
…거 우리 파티원이 미안합니다.
음.
그렇다 해도 …아일라의 성장에 레지나와의 대련이 필수불가결인것 또한 사실이다.
앞으로 두 사람은 계속해서 싸워야 하는데 아일라가 일방적으로 대련을 신청하고, 레지나가 그걸 무리하게 받아들인다면 결국 레지나가 대충 싸우거나, 그녀가 맛이 가서 죽어버린 눈으로 찌르러 오거나 둘 중 하나다.
두 사람은 계속해서 건전하게 대련해주기를 바라는 입장상 어느 한쪽의 균형이 깨지는것은 나에게 있어서 썩 좋은 일이 아니다.
이 갑작스러운 문제.
어떻게 하면 아일라와 레지나를 싸움의 투쟁에서 벗어나지 않고 서로 싸우며 성장시킬 수 있는가.
우선.
각본을 짜자.
누가 위험하냐면 …역시 레지나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아일라를 조금 혼내고, 레지나를 다독이자.
“아일라. 우선 너의 과한 투쟁심에 …레지나 시엘라를 너무 말려들게 한 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 미안해요.”
“울프람 전하……?”
아일라는 시무룩해지고, 레지나는 믿을 수 없는 말을 들었다는 듯 습기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게 울 만한 일이면 대체 아일라가 얼마나 괴롭힌건데.
뭐. 아무튼.
“하지만 …두 사람의 대련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실력이 맞는 두 사람이 서로 대련하며 성장하는 것은, 장차 제국의 주춧돌이 되겠지.”
“울프람….”
“전하….”
사실 다 뻥이다. 제국의 주춧돌은 됐어요. 그거 해봐야 이브만 좋지.
그냥 둘 다 내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레지나의 칼에 맞기 싫은거고, 아일라의 성장 역시 바라고 있다.
그러니까…. 상인인 내가 내걸 수 있는 것은 하나.
“그러니 대련 자체가 즐거우면 되는 것 아니겠나.”
“저는 즐거운데요?”
“……흑요석을 감은 주먹에 맞는 것은 전혀 즐겁지 않습니다.”
그야….
그건 그렇겠지.
“그러니까. 이긴 자에게 내가 상을 수여하는 것은 어떻겠나. 아일라가 이기면 파티원이 이겼으니 상을 받는 것이고, 레지나가 이기면 …내 파티원을 상대하느라 고생하고, 하물며 좋은 성적을 거뒀으니 감사함에 상을 주는 것이다.”
“…울프람이 주는.”
“……상?”
“…울프람이 주는.”
그래.
그렇게 상을 주면 좀 더 화기애애하게 싸우지 않을까.
당연히 상인인 내가 줄 수 있는 상은 얼마 없다. 간식 정도가 끝이겠지.
“하여. 받고 싶은 상이 있다면 지금 말하도록. 이 대련에서 이겨서 받고 싶은 것 말이다.”
“으음…. 울프람에게서 받고 싶은 상이라. 잠깐 생각 좀 해 볼게요.”
“그러도록.”
아일라는 잠시 생각에 잠겼고, 레지나는 내 바로 앞으로 걸어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상이라면 …전하께서 상을 주신다면, 바라는 상이 있습니다.”
“말 해 보도록”
“제 작은 소원을 하나만 들어주세요. 단 하나면 됩니다.”
“내가 들어줄 수 있는 범위 내라면 …들어주도록 하지.”
“오직 전하께서 들어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말 하도록.”
“……지금 말하면, 추해질 수 있으니. 이기고 나서 해도 되겠습니까?”
“알겠다.”
“감사합니다. 울프람 폰 로엔그린 황자 전하.”
레지나의 눈은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저 눈빛, 어디서 본 적이 있다.
아니야.
벌써 저럴리가 없지.
“으음. 저도 이기고 나서 생각할게요. 그럼 다녀올게요. 울프람!”
“다녀오겠습니다. 황자전하.”
“서로 크게 다치지 않는 선에서 잘 하도록. 특히 레지나 시엘라.”
“…고려하겠습니다.”
저 눈.
내가 잘못본게 아니라면 좋을텐데 말이야.
***
“…자 그럼. 공이 울리면 시작할까요?”
“언제든 울리세요. 아일라 트라이스타.”
레지나 시엘라는 오늘 대련에 큰 기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일라 트라이스타와의 대련은 …이제 일과 정도일 뿐. 하나하나 진심으로 상대했다간 끝이 없다는 사실을 그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허나 지금은 아니다.
그 분께 소원을 빌 수 있는 기회.
별에 소원을 빌어 기적이 이루어 지는 정도의 기회.
하지만. 기적을 붙잡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
그러니까. 오늘의 전법은….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찌잉! 하고 공이 울렸다.
그리고 즉시.
아일라 트라이스타는 평소의 전법대로 튀어나갔다.
보통 여기서는 마력의 방벽을 세워 어떻게든 막아내고 카운터를 노리는 것이 평소의 레지나의 전법.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어머.”
“돌진은 …당신만의 특기가 아니에요!”
레지나 역시, 자신의 마력으로 스스로를 후려쳐. 아일라 트라이스타와 대등하게, 아니 그 이상의 속도로 날아갔다.
마법사들의 장절한 인파이트의 서막이었다.
***
나는 눈을 깜빡이며, 저 전투를 바라봤다.
저 양상. 저 전투 방식.
그리고 레지나가 보여준 저 눈동자.
“…수레국화 지팡이를 들고 마법 발현에 제한이 없었을 때의 레지나가 …이브와의 최종전에서 보여줬던.”
이브 폰 로엔그린의 마력 22를 …마법으로 뚫는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그러니까, 레지나 시엘라가 자신의 루트에서 이브와 싸웠을 때 쓴 전법은 …중거리 인파이트 메이지.
수레국화 지팡이로 마법 발동이 자유로워진 이점 단 하나만으로.
“저런 식으로 싸우는 것이지.”
마력을 자신의 주위에 둘러, 스스로를 후려쳐 날아가고, 관절의 움직임을 빠르게 하며, 시력을 강화한다.
공간 단위의 마력을 운영하는 늪의 특성상 개인의 강화에 써봐야 효율적인 마법이 될 수 없다.
뭐라고 해야 할까. 개천 전체를 움직일 동력으로 종잇배를 움직이는 것과 비슷하다.
허나 그럼에도 …아니 오히려 그렇게 비효율적이기에.
“오히려 승산이 있구나.”
순수한 마력량으로는 아일라를 넘어서는 레지나기 때문에, 마법 발동에 당연히 제한이 없다.
늪의 마력으로 자신을 강화해 강제적으로 출력을 올리거나 고속이동을 하는 레지나의 마법은 물 흐르듯이 펼쳐지고 있었다.
다만 순전히 레지나가 우세하냐면 그건 아니다.
우선 기본적인 육체의 파워가 다르다. 순수 전사급의 근력과 체력. 재주를 가진 아일라에게 …퓨어 메이지인 레지나가 마력 1 높다는 것을 근거로 근거리로 덤벼든 것과 같은 꼴.
하지만.
저 결의를 담은 눈은 …레지나 루트 최종장. 이브 전(戰)에서 보여줬던 긍지 높은 투사의 눈이었고, 그에 비해 아일라의 움직임은 평소보다 잔 실수가 섞여 있다.
마치. ‘보고서 피하는’ …고인물의 플레이를 따라하려는 뉴비를 보는 듯 한.
음.
뭐 아무튼.
결론은 그거다.
“재밌군.”
정말 재밌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싸움은 결판이 났다.
결과는 놀랍게도 레지나의 승리.
평소와는 다른 전법을 구사한 아일라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긍지 높은 투사의 눈이 보여준 기적일까.
아무튼. 내가 싫어하거나 이해할 수 없다 한들, 레지나 스스로 벽을 깬 것은 틀림 없고, 자신 있는 인파이트에서 밀려버린 아일라는 이로서 한 단계 더 성장하겠지.
거기에 최종장에서나 쓸 법한 전술에 도달한 레지나의 건투에 나는 박수를 쳤다.
“수고했다. 두 사람.”
“…울프람.”
“…황자님.”
두 사람은 멍하니 나를 바라봤다.
“아일라. 그 전투 방식은 아직 너에게는 이르다.”
“네. 조금 더 연구가 필요하겠네요. 아아…. 오늘은 져 버렸여요. 이기면 울프람한테 디저트를 만들어 달라고 하려고 했는데요.”
그리 말하며 아일라는 뒤로 털썩 드러눕고는 웃었다. 패배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모습이다.
성장했구나. 아일라.
그리고. 다음은….
“그래서. 레지나 시엘라. 이기면 말하겠다고 했지. 어디 말 해 보도록. 네가 바라는 소원이 있는가?”
“있습니다. …그리고 감히, 말씀 올리겠습니다.”
레지나는 큰 숨을 들이쉬고, 토해내듯 내게 말했다.
“저를. 울프람 폰 로엔그린 황자전하의 일행으로 삼아주세요. 이전에도 말씀하셨던 것 처럼 제 자리가 있었으면 합니다.”
“…….”
음.
그야 확실히 …오직 ‘나 만이 들어줄 수 있는 소원’이고 ‘내가 할 수 있는 범주 내의 소원’이다.
우리 파티에 들어오고 싶다.
레지나 시엘라가 말이지….
“만약 실력순이라고 하신다면 …그 안에 있는 다른 사람을 쓰러트려서라도 제가 들어가고 싶습니다.”
“…….”
“쓰러트려서라도, 제 실력을 증명하고 …반드시 들어가고 싶습니다.”
음.
아아….
그건 상관 없는데.
한 달 뒤로 하는게 좋지 않을까?
지금 한 명 밀어내고 들어오려면 …그게. 그러니까.
이브를 쓰러트려야 하는데?
되겠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