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292)
291. 정확하고 묵직한 팩트
뭐.
이브를 제치고 레지나가 파티에 들어오고 싶다면 그것도 상관 없다.
어떤 방식으로 파티에 넣어볼까. 생각을 했는데 ···이브랑 대련해보는건 어떨까.
파티 지정을 스킬로 쳤을 때 무려 한 달이라는 쿨타임을 가진 스킬이다.
그렇다면 그 파티에 레지나 시엘라는 이브 폰 로엔그린을 대체할 정도의 가치가 있느냐면 나 역시 고개를 갸우뚱 하게 된다.
그러니까.
둘이 싸워보면 될 일 아닌가.
물론 레지나가 이브를 이길 확률은 단 하나도 없다.
장담할 수 있다.
지금 이브의 스펙을 상대로, 내가 레지나라고 치고 상대하는게 아닌 이상 방법이 없다.
거기에 내가 상대하는 법은 ···아일라에게서 수레국화 지팡이를 빼앗은 후 이브에게 근접전으로 암습을 거는 것 뿐이다.
하지만. 그렇게나 파티에 들어오고 싶다면 싸워 봐야지.
암. 그렇고 말고.
어린이들은 다투면서 크는 거고, 이브랑 싸우는 것으로 배우는게 또 있겠지.
나중에 이브를 후려쳐서 레지나랑 대련이나 시켜봐야겠다.
“음. 그것도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 말이다.”
대련의 끝에 레지나가 개박살나서 흑화 할 경우, 내가 칼침을 맞는다는게 문제다.
좀.
조금 기분 나쁜 이야기긴 한데.
그녀의 배드 엔딩 중 하나. 혈화의 유일한 사랑 엔딩에서 레지나는 ···피안화가 가득 피어 있는 정원에서 켈터스를 마력으로 움직임을 봉쇄한 채.
‘사랑해요. 켈터스. 하나가 되고 싶을 정도로. 사랑해요.’
라고 하면서 켈터스를 끌어안은 채.
‘크윽···. 헉. 레지···나.’
‘후우···. 하. 이제···. 이제 하나에요. 놓아주지 않을거야.’
라고 하면서 자신의 맹고슈를 켈터스의 등 뒤로 길게 뺀 뒤.
칼날이 켈터스의 등 뒤로부터 시작해 자신의 심장께로 이어지게끔 푹!
훌륭한 켈터스-레지나 꼬챙이의 완성이다.
칼날에 흘러내리는 피가 이어지는 것을 보며 드디어 하나가 되었다고 하면서 웃으면서 죽는데···.
“······.”
싫다.
그 결말은 내가 싫다.
물론 내가 그 루트를 연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진짜 좀 그렇다.
물론 그 루트를 가려면 약속잡아놓고 바람맞히기 데이트 잡아놓고 다른 히로인이랑 놀기. 거짓말하기. 이브 편 들기. 레이드 장소에서 버려두고 도주하기를 비롯해 총 스무번의 호감도 마이너스작이 필요하다.
D/Z SAGA 최악의 엔딩. 이라는 제목으로 누가 떡밥을 돌렸길래 나도 딱 한 번 해봤는데, 그 뒤로 절대 레지나 루트를 열지 않았다.
아무튼.
나도 그렇게 칼찌맞고 죽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파트라슈?”
“···주인은 정말로 그 레지나라는 ···마력에 소양이 있는 소녀가 죽이러 올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없지는 않다고 본다만.”
“······진심인가?”
파트라슈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
아무튼, 레지나와 이브의 대련을 성사시킬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 잠시 고민하고 있는 사이.
편의점에 한 명의 손님이 찾아왔다.
저 멀리서 매일 편의점을 바라보는 코튼도 아니고 우리 파티원도 아니고, 친구가 없어서 혼자 점심먹는 삼백살 드래곤 응애도 아니다.
정말. 예상외의 인물.
“오래간만이군.”
“예. 잘 지내셨나요. 전하.”
“그야 못 지낼것도 없다.”
회백발의 긴 생 머리. 항상 감고있는 듯 보이는 눈. 루디카와 같은 피부색. 허나 그보다 훨씬 더 큰 신장은 나와 대등하거나 조금 작은 수준.
루디카 핫산 샤도우의 수행원. 세실 샤도우.
그러고보면 카페에서 세실 좋아하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냉정 침착하면서 평소에는 메이드인 암살자 누나는 최고라던가 뭐라던가.
암살자로의 격은 당연하지만 루디카보다 떨어지고, 초반에 암살 캐릭터가 활약할 부분이 얼마 없긴 하지만 이런 디자인 때문에 세실 샤도우를 기를 쓰고 파티에 영입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4학년이기 때문에 그 해 바로 졸업하고 그 뒤로는 등장하지 않지만 말이야.
뭐 아무튼, 나에게 있어서 세실 샤도우는 꽤 희귀한 캐릭터다.
파티에는 넣어 본 적 없지만 이렇게 인연이 생기면, 조금 관심도 가는 법이다.
전설급은 아니더라도 희귀한 무언가가 길거리를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면 하이퍼 볼을 던져서 포획해보고 싶은 수집가의 마음 아닐까.
“저에게 호기심을 느끼시는 건가요?”
“음?”
“실례했습니다. 타인의 시선을 민감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훈련을 받았기에 ···황자님의 시선을 분석했습니다.”
아. 그렇군.
그러고보면 얘가 보유하고 있는 스킬들 중에는 분명, 기척 감지도 있었지.
파티에 넣어본 적 없지만, 보유 스킬군 캐릭터를 한 번 쫙 훑으면서 외웠던 기억이 난다.
기척 감지는 이런 식으로 적용이 되어 있구나.
그리고 보자···. 얘도 특수한 스킬을 가지고 있었을 텐데.
아무래도 캐릭터가 수 만이 넘어가다 보니, 캐릭터 고유 스킬을 전부 기억해 내는 데에는 조금 시간이 걸린다.
그보다.
대답을 요구하는 듯 한 모습에 먼저 얼버무리기로 했다.
“루디카 핫산 샤도우의 오른팔 아닌가. 장차 부족 연합을 이끌 녀석의 오른팔이라니 어떤 녀석인가 흥미롭게 생각했을 뿐이다.”
“···이전에도 느꼈지만, 정말 돌려 말씀하시는 것이 능숙하시군요. 본질을 회피하며 대답하시는 점이 정말 놀랍습니다.”
“무슨 의미지?”
“말씀 드렸습니다. 저는 시선의 의도를 눈치채는데 능숙하다고 ···그런 연유로 저를 보고 있는게 아니라 느꼈습니다.”
“흠.”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얘의 기척 감지 티어가···. 그래 3이었다.
3티어. 즉 ‘실전 투입이 가능한 영역’
그게 현실에서 적용 된 거라면 ···이 녀석의 기척 감지는 12막에서도 쓸 수 있을 정도.
즉 어중간한 구라핑은 안 통한다는 이야기인데···.
“그렇군. 본론을 이야기 하자면···. 세실 샤도우 본인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네?”
눈에 띄게 당황한 모습.
아마 ···이게 ‘진심’이라고 느꼈기 때문에 당황하는 건가.
루디카도 그렇고, 암살자들 앞에서 앞으로 거짓말 하는 건 좀 참아야겠군.
어디보자.
그렇다고 갑자기 심연의 단검과 쌍을 이루는 침묵의 단검이 어떤 녀석인지 알고 싶었다.
라고 하면 경계를 살 확률이 높다.
그러니까 그 부분은 버리고 ···정확하게 구라핑과 진심 사이를 섞어서, 진심을 좀 더 크게 느낄 정도로만 포장하자.
무얼. 이 정도의 심문은 D/Z SAGA 인게임에서도 꽤 자주 나왔다.
“나는 꽤 이전부터 너에게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단순한 흥미다.”
“···그렇습니까. 단순한 흥미.”
“음. 그렇다.”
“또 거짓말을 하시는군요. 단순한 흥미로 치부하기엔 깊이를 느꼈습니다.”
이런.
그 부분까지 눈치 채는구나.
3티어는 그럭저럭 ···아니 꽤 날카롭다.
“내 입으로 진의를 말하길 바라는가? 아니면 ···인간 관계에 있어 모든 부분을 털어 놓아야 성미가 풀리는가?”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만.”
“그러면 됐다.”
“한가지 말씀드리자면. 저희 일족은 일부일처제입니다.”
“음.”
“그러면 됐다.”
“······물론 핫산의 반려는 다릅니다. 핫산이 선택한 이는 일족에서 가장 우수하기 때문이죠.”
“음?”
“하지만 그건 ···핫산을 정실로 받아들였을 때 이야기입니다.”
“그렇군.”
“샤도우에 모든것을 걸 각오가 되어 있지 않으면 곤란하다는 이야기입니다.”
“······.”
“그러니 그 점을 유의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 말하며 세실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물러났다.
그렇구나.
샤도우 일족에 대한 지식이 늘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이야기를 왜 하는거지?
그리고.
왜 찾아온거지?
***
세실이 어째서 내 편의점에 찾아왔는지는, 다음날이 되서야 풀렸다.
“울프람.”
“루디카인가.”
어딘가 묘한 눈으로 이쪽을 빤히 바라보는 루디카.
어제 세실에 이어서 오늘 루디카도 찾아오는 것을 보니 갑자기 초콜릿이 먹고 싶어졌다.
대충은 만들 수 있지만, 아무래도 퀄리티를 올리기 어려운게 초콜릿이다보니 ···아직 스니커즈의 아성을 뛰어넘긴 힘들다.
아 이게 아니지.
나는 내 앞에서 이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암살자에게 용건을 물었다.
파티원인데다가 위협을 가해 오지 않기 때문에
“무슨 일이지. 루디카.”
“···울프람은 세실을 노리는가?”
“노린다?”
“그래. 내 종자이자 언니인 세실을 노리나?”
아.
그렇군.
저 의심의 시선을 포함해 모든게 맞아 떨어졌다.
나는 어제 분명 ···세실을 희귀한 무언가가 어슬렁 거리기에 ‘하이퍼 볼을 던져보고 싶은 마음’을 운운했다.
그 때문에 세실은 자신을 포섭하는 줄 알았던 거고, 언니를 빼앗기기 싫었던 루디카가 찾아왔다. 라는 건가.
···그럼 샤도우 일족의 역사 교육은 왜 한거지?
뭐 아무튼.
“세실 샤도우. 분명 우수한 편이라 생각한다.”
“···으, 으윽. 나, 나도 우수하다만!”
루디카는 자신의 가슴께를 내려보고, 그 다음 까치 발을 섰다.
거의 발끝으로 섰는데도 신체 균형이 완벽한 것을 보면 대체 어떤 식으로 훈련을 받았는지 짐작도 안 간다.
그나저나.
네가 우수하다고?
“그야 당연한 말 아닌가. 네 우수성을 의심하지도, 너 스스로 증명할 필요도 없다. 하늘이 위에 있고 땅이 아래에 있는 것 처럼. 루디카 핫산 샤도우가 우수한 것은 당연하지.”
“······아. 그러면 세실은···. 세실을 나 대신 파티에···.”
“넣을 이유가 없지 않나. 우리 파티의 정규인원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후우. 그래. 그러면 됐어. 나도 참 쓸모 없는 걱정을 했네.”
그리 말하며 루디카는 그제야 까치발을 풀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파티원에서 잘려서 백수가 될까봐 걱정 한 건가.
바보같은 걱정이군.
“그래서, 나에게 용무가 있나?”
“···아. 있다. 어제 세실에게 대리로 전해달라고 부탁했는데 그냥 돌아와 버려서 말이다.”
“그렇군. 그럼 이야기 해 보도록.”
“곧 십이장로회의가 열린다.”
“그렇군.”
십이장로 회의. 그러니까 제프린이 아니라 ···로엔그린 제국의 황손을 정하는 레이스에서 십이장로들이 누구를 지지할지 정하는 일종의 파벌 경쟁이다.
거기서 이브가 표를 얻느라 꽤 고생했지.
그러고보면 십이장로회의 장면에서 가주가 루디카였던가?
······아니었을텐데?
그때 샤도우 가문의 대표가 누구였지?
“그래서 말이다 울프람. 우리 핫산 샤도우 가문은 슬슬 지지할 사람을 택하려고 하는데 말이다.”
내 상념을 깨듯, 루디카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 지금은 회상보다는 용건을 먼저 들어줘야지.
“그렇군. 누구를 택할 생각이지? 일족 전체가 지지한다면 그만한 인물일 것이다.”
“그게 말이야. ···으음. 당사자에게 엄청나게 큰 민폐가 될 거 같아서 지금까지 말 못했는데 ···아무래도 이번 십이장로 회의는 빠질 수가 없다.”
“그런가?”
흠.
지지자는 역시 이브겠군.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루디카는 나를 보다 땅을 보다 발로 바닥을 긁다 이내 한숨을 내쉬고는 ···과장된 몸짓과 만들어진 웃음을 전부 풀고, 깊은 한숨으로 ‘평소의 루디카’로 돌아온 채 말했다.
“응. 처음으로 지지하고 ···그 사람과 같이 출석하는게 얼마나 큰 신뢰로 엮여 있는지 보여주는 증표라서 말이야. 그래서 ···그러니까. 웬만하면 너에게 부담이 될 거라 생각해서 숨기려고 했거든? 그런데 좀 그런 거 같아서 말이야. 만일 시간이 된다면.”
“말 하지 않아도 안다. 이브겠지.”
“······응?”
“그렇군. 이브라면 나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한다. 그 녀석은 누군가 이끌어 줄 수 있다면 남 위에 서기에 충분하고 남는 소질이 있다.”
“······아. 음. 그래? 그렇구나.”
“···후. 내가 말해놓고 입에 안 맞는군. 실피아가 가급적 이브를 인정하고 받아들여 달라고 부탁하기에 해보려 했건만, 조금 칭찬하는 것 만으로도 입에 가시가 돋칠 지경이다.”
“······으, 응. 그래.”
“아무튼, 샤도우 일족이 이브를 지지하는 것에 나는 아무런 불만도 없다. 만일 이브와 네가 회의로 공백기간이 생긴다면 일정을 맞춰보도록 하지”
“아니 그게···. 그러니까.”
“난 괜찮다. 이브에게도 연락을 넣어두도록.”
“응. 그래. 알았어. 이브한테 연락 넣어줘···.”
그리 말하고 루디카는 축 쳐진 어깨로 돌아갔다.
돌아가던 길에 힐끗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보고는, 정말 느릿느릿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날.
이브가 찾아왔다.
그리고는 나를 가느다란 눈으로 노려보며.
“이 등신아.”
욕을 박았다.
···갑자기?
오